[씨줄날줄] 금관총 발굴 혹은 도굴/서동철 논설위원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금관총과 이사지왕’이라는 전시를 볼 수 있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같은 이름의 전시를 경주박물관의 신라역사관 2층 로비로 옮겨 놓은 것이다. 서울에서 ‘테마전’이라고 했던 것을 ‘특집진열’이라고 부르는 것이 다를 뿐이다. 금관, 관모, 관꾸미개, 금허리띠를 비롯해 90점 남짓한 금관총의 대표 유물이 망라됐다.
앞서 중앙박물관은 2013년 금관총에서 출토된 큰칼을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斯智王’(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을 발견했다. 또 다른 큰칼에서도 날카로운 도구로 새긴 ‘八’(팔), ‘十’(십), ‘?’(이)라는 글자를 확인했다. 이사지왕이 누구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금관총을 다시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경주박물관 전시에도 당연히 이 칼들이 출품됐다.
수준에 관계없이 우리나라에 근대적 개념의 고고학 조사 방법이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다. 일본인들은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경주의 신라 무덤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 1909년 144호분, 1915년에는 100호분을 조사했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다.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라는 신라 특유의 매장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무덤을 덮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