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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공진단(拱辰丹)/김성수 논설위원

    ‘공진단’(拱辰丹)이라는 한약이 있다. 피로 회복에 좋고 간이 나쁜데도 잘 듣는다고 알려진 보약이다. tvN의 ‘꽃보다 할배’에서 탤런트 이순재씨가 동료 할배들에게 자랑스럽게 나눠줬던 게 이 약이다. 프로야구 넥센 염경엽 감독이 재작년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자비로 선수들에게 나눠주면서 더 많이 알려졌다. 공진단은 중국 원나라 때 명의(名醫) 위역림이 만든 명약이다. 5대째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을 모아서 만든 ‘세의득효방’이라는 의약서에 처방이 적혀 있다. 황제에게 진상하던 약이라 ‘황제의 보약’이라고 한다. 동의보감에도 “신수(腎水·정력)를 오르게 하고 심화(心火)를 내리게 해 선천적으로 허약해도 원기를 굳게 하여 병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고 나와있다. ‘공진단’이라는 이름도 공자가 논어 ‘위정’편 첫 머리에서 ‘덕치’(德治)에 관해 한 말에서 유래했다. “정치를 덕으로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북극성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다른 뭇별이 그를 떠받들어 도는 것과 같다” 우리 몸의 기둥이며 북극성 같은 것이 원기인데, 이를 북돋아주는 보약이라는 뜻이다. 우황청심환처럼 환(丸·알)으로 먹는다. 사향(麝香), 녹용, 당귀, 산수유 등 네 가지
  • [씨줄날줄] 대통령의 건강/문소영 논설위원

    1933년 취임해 뉴딜 정책으로 미국에서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39살의 나이에 뒤늦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가 무척 불편했다. 하지만 재임 중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지팡이를 짚은 모습을 보인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적인 인기를 위해 정력적으로 거침없이 일하는 강인한 대통령의 이미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열적이고 방종한 연애 이력에도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 세계 최초로 진행된 대통령 후보자 TV 토론에서 젊고 싱싱한 이미지로 공화당의 닉슨 후보를 눌렀다. 당시 TV 화면에 비친 닉슨이 창백하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병색이 완연해 보였던 탓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케네디가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 그는 부신피질 호르몬의 분비 부족으로 발생하는 에디슨병으로 평생 고통받았다. 만성적인 요통 증세가 있었고 두 차례 허리 수술을 받았다. 수시로 대장염에 노출됐으며, 요도염 재발도 잦았다. ‘미드웨이 해전’에 따르면 케네디는 1942년 태평양전쟁에 해군 장교로 참전했고, 건강 문제를 은폐하고자 입영 서류를 조작했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다량의 진통제와 항생제 처방, 물리치료사의 치료
  • [씨줄날줄] 국민행복지수의 역설/구본영 논설고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오래전에 봤던 미국 영화가 생각났다. 테네시 윌리엄스 원작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다. 영화는 어차피 다 채워질 순 없는 욕망을 좇는 사람들이 다다르는 종착역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여주인공(비비안 리)은 결국 미친 사람으로 몰려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맞았다는 기억이 난다. 며칠 전 유엔이 발표한 ‘2015년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이 세계 158개 나라 중 47위를 차지했다. 스위스가 가장 행복한 나라로 자리매김했고, 아이슬란드와 덴마크가 2, 3위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가장 불행한 나라는 토고가 꼽혔고, 기아와 질병, 그리고 내전으로 신음하는 부룬디·시리아·베냉·르완다 같은 국가들의 행복도가 낮았다. 여기까지는 수긍이 갔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5위권인 한국이 47위라니! 물론 소득이 높아지는 것과 정비례해 행복감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이론도 있긴 하다.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그렇다고 해도 경제대국 일본조차 46위에 그친다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하긴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세계 행복의 날’(3월 20일)에 즈음한 조사에서는 한국인의
  • [씨줄날줄] 암묵지(暗默知)/문소영 논설위원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돼 있지만, 언어 등으로 표현할 수 없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언어나 문서 등에 의해 밖으로 표출되는 지식은 명시지(明示知·Explicit Knowledge) 또는 형식지((形式知)라고 부른다. 빙산을 예로 들자면 물 밖으로 드러난 작은 빙산은 명시지이고,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빙하 아랫부분은 암묵지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물리화학자인 마이클 폴러니가 과학 지식을 설명하기 위해 구분했다. 요즘은 일반적인 지식의 공유와 수준을 설명할 때도 이용한다.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자신이 아는 내용의 10분의1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잦은데 그것은 지식 대부분이 암묵지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 드러내기 어려운 암묵지는 쓸모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명시지가 암묵지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구분이 낯설고 어려운 개념이지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미 그 차이를 이해하고 있다. 낯선 누군가의 몇 마디 발언을 듣고 “똑똑하다”거나 “어리석다”거나 하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암묵지에 대해 서로 이해가 깔려 있는 덕분이다.
  • [박현갑의 빅! 아이디어] 진정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찾으려면

    [박현갑의 빅! 아이디어] 진정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찾으려면

    교육감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성은 어떤 의미가 있나. 이제 허울뿐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아닌 교육과정과 정책에서 실질적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그제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으면서 교육감 직선제 폐지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한국교총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직선제가 훼손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나 전교조는 직선제 폐지에 반대한다. 하지만 어떤 식이든 제도 개선은 불가피해 보인다. 주민 직선제는 헌법상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됐다. 과거 교육감은 1991년까지 대통령 임명, 이후 2006년까지는 교육위원회 또는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로 선출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다는 비판에 따라 2007년부터 주민 직선제로 전환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든 제도가 그렇지만 직선제 또한 문제점이 있다. 무엇보다 고비용 저효율의 선거 방식이다. 정당 개입이 봉쇄되면서 후보자가 전적으로 선거의 모든 것을 챙겨야 한다. 광역단체장 후보와 달리 선거공보물 작성에서부터 홍보 등 선거유세에 이르기까지 후보자가 다 챙겨야
  • [씨줄날줄] 태안 마도 안흥정/서동철 논설위원

    고려는 송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발전시키면서 교역 규모도 늘릴 수 있었다. 사신의 왕래를 이용한 조공무역은 물론 개성 상인을 일컫는 송상(松商)의 사무역도 활발했다. 고려의 국제항은 수도 개경에서 가까운 예성강 하류의 벽란도였다. 당시 바닷길은 벽란도에서 대동강 어귀 초도를 거쳐 중국 산둥반도 등주(登州)에 닿는 북선항로와 벽란도에서 흑산도를 거쳐 중국 명주로 가는 남선항로가 있었다. 처음에는 북선항로를 주로 이용했지만, 북쪽의 거란이 송나라를 주눅들게 할 만큼 세력이 커지자 남선항로로 대체됐다. 남선항로를 이용한 교류의 모습은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구체적으로 서술해 놓았다. 그는 인종 1년(1123년) 뱃길로 고려에 다녀가면서 보고 들은 것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담았다. 서긍을 비롯한 송나라 사신 일행은 5월 16일 오늘날의 저장성 닝보인 명주를 출발해 6월 3일에는 흑산도를 스쳐 지나간다. 이어 6일 요즘은 선유도로 불리는 군산도 군산정, 8일 마도 안흥정, 9일 자연도 경원정, 12일 예성항 벽란정에서 각각 묵은 뒤 10일 개경에 도착한다. 군산정과 안흥정, 경원정, 벽란정은 고려가 중국 사신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설치한 객관이었
  • [씨줄날줄] 백수오 논란/문소영 논설위원

    하수오(何首烏)는 마디풀과에 속하는 덩굴성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중국에서 들어와 국내에서 오랫동안 재배돼 온 약용식물로, 한방에서는 뿌리를 쓴다. 길이 5~10㎝, 지름 1.5~3.5㎝의 원뿔 모양 뿌리로, 겉은 황갈색이지만 속은 흰색이라 ‘백수오’라고도 부른다. 냄새가 없고 맛은 쓰고 달며 떫다. 신체허약, 요통, 동맥경화, 고혈압, 만성간염, 장염, 옹종, 변비 등의 증상 치료제라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소개했다. 최근 중년 여성들에게 하수오 또는 ‘백수오’가 들어간 건강기능식품이 인기였다. 자양강장과 보혈작용으로 여성들의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거나 개선하고, 면역력을 증강한다고 알려진 덕분이다. 탈모 예방이나 흰머리 예방에도 좋다고 했다. 이 하수오를 대신해서 생김새가 비슷해 일반인은 구별하기 어려운 이엽우피소(異葉牛皮消)가 사용되기도 한단다. 재배 기간이 하수오는 2~3년이고 이엽우피소는 1~2년으로 짧은데, 가격은 이엽우피소가 절반이기 때문이다. 하수오를 이엽우피소가 대체해선 안 된다는 것이 문제다. 생김새가 비슷한 만큼 주요 성분이 비슷하지만, 이엽우피소는 간독성과 신경쇠약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한국소비자원이 그저께 국내에서 판매되는 백수
  • [씨줄날줄] 메르켈과 아베의 국가이성/최광숙 논설위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991년 독일 통일 후 첫 조각에서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첫 외국 방문지로 선택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총리가 된 후 더욱 이스라엘을 챙겼다. 총리 재임 첫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방문한 횟수만 네 번이다. 이렇듯 메르켈의 외교정치에서 이스라엘은 유럽연합과 미국에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독일의 역사적 부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도 화답했다. 히브리대학에서 메르켈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2008년 3월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 의회는 총리로는 처음으로 메르켈에게 연설하도록 기회를 줬다. 국가원수들만 불러 연설을 듣는 관행을 메르켈을 위해 과감히 깬 것이다. 독일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도 ‘레오 백’이라는 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독일유대교중앙위원회가 독일 유대인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2007년 9월 메르켈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나 이전의 모든 독일 총리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의무로 여겼다. 나 역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다. 그것은 독일의 ‘국가이성’에 속한다”고 말했
  • [씨줄날줄] 국기 모독죄/문소영 논설위원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 행사에서 한 20대 젊은이가 종이 태극기를 불태우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어떻게 불태울 수 있느냐”며 깜짝 놀란 사람도 있었고, ‘국가 모독죄’로 처벌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경찰은 태극기를 태운 문제의 20대 남성을 검거하고자 신원 파악에 나섰다. 이날 추모 행사 참가자들도 이 청년을 찾는데, 돌발적인 태극기 소각 탓에 세월호 추모 행사가 과격·폭력·불법시위로 낙인찍히는 만큼 혹여 프락치가 아니냐는 의심을 한다. 조만간 이 청년이 누구인지 밝혀질 것이다. 형법 제105조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를 ‘국기 모독죄’로 처벌하는 조항이다. 그러니 그 청년은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국가 모독죄’라는 것도 한때 있었다. 1975년 신설될 때부터 논란이 된 형법 104조의2인데 6·10 민주화 운동 이후 1988년 12월 31일 삭제됐다. 1979년 9월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두고 당시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국가 모독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전형적인 ‘야당 탄압용’이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국기를 태운 죄에
  • [씨줄날줄] ‘동의보감’의 인간관/서동철 논설위원

    “사람은 우주에서 가장 지체가 높고 귀한 존재다.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을 본받은 것이다. …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안목(眼目)이 있다. 하늘에 밤낮이 있듯이 사람에게 잠들고 깨어나는 것이 있다.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즐거워하고 노여워하는 마음이 있고, 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눈물이 있다. 하늘에 음양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한열(寒熱)이 있고,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혈맥(血脈)이 있다. 땅에 초목(草木)과 금석(石)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모발과 치아가 있다.” 허준(許浚·1539~1615)의 ‘동의보감’은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로 시작한다. 신체의 모양과 장기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이다. 인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요즘 감각으로는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귀중한 정보였을 것이다. 학계에서는 허준이 ‘동의보감’에서 내보이고자 했던 인간의 정수가 바로 이 그림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앞의 설명을 보면 우주와 인간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와 몸은 각각 하늘과 땅을 상징한다. 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척추는 천지(天地)의 기운
  • [씨줄날줄] 랜드마크의 저주/구본영 논설고문

    도시의 랜드마크(상징적 건조물)가 될 만한 초고층 빌딩을 세우는 일. 도시계획가나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에게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일 게다.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국내외 소비층과 관광객을 끌어들일 동인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네 지자체장이나 건설업체들이 간과해서 안 될 대목이 있다. 기념비적 건물을 세우겠다는 욕망이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최첨단 기술력으로 건립한 초고층 빌딩이 이따금 경기 불황을 부른다면 말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1970년대 오일쇼크,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는 모두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 건축붐 이후 들이닥쳤다고 한다. 이른바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란 속설이다. 7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의 경제성에 대해서 전문가들도 회의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지만 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경기 변동에 대응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호황기에 시공했다가 분양 시점에 경기가 식어 버리면 건축주들에게는 애물단지가 되고 만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기 변동은 예측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오죽하면 경제·금융 사이트 마켓워치가 연초부터 활
  • [씨줄날줄] 이완구 총리의 ‘거시기’/진경호 논설위원

    ‘거시기할 때까지 거시기해 불자~!’ 2003년 나온 코믹영화 ‘황산벌’에 나오는 백제 장군 계백의 참 거시기한 대사 가운데 하나다. 대체 무슨 말인가. 어떤 게 거시기고, 뭘 거시기하나. 이 알 듯 모를 듯한 ‘거시기’ 미스터리는 영화 중반 신라군을 거의 패닉 상태로 몰아넣는다. 첩자가 염탐해 온 “머시기할 때꺼정 갑옷을 거시기한다”(이길 때까지 절대 갑옷을 벗지 않는다)는 계백의 말 한마디에 신라군 역관은 “암호 해독 20년에 이런 고난도 암호는 듣도 보도 못했다”며 울상을 짓고, 이에 김유신은 겁먹은 얼굴로 “거시기의 정체를 파악할 때까지 느그들 절대 총공격은 안된데이~”라며 전군에 비상 대기를 명한다. 표준말이건만 충청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즐겨 쓰는 탓에 이 지역 사투리나 진배 없는 ‘거시기’는 그야말로 천(千)의 얼굴을 지녔다. 사전은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이자, ‘하려는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가 거북할 때 쓰는 군소리’라고 정의하지만, 실제로 쓰이는 용례는 훨씬 다양하다. 상황에 따라 그 어떤 뜻도 될 수 있다. ‘거시기’가 충청에서 특히 사랑받는 건 무엇이
  • [씨줄날줄] 연봉 7만 5000달러/문소영 논설위원

    미국 시애틀의 신용카드 결제 처리 회사인 ‘그래비티 페이먼트’의 최고경영자(CEO) 댄 프라이스는 앞으로 3년 안에 직원 120명의 연봉을 7만 달러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 그래비티 직원 120명 중 70명의 임금이 오르고, 그중 30명은 임금이 한꺼번에 두 배로 인상된단다. 프라이스는 또 자신의 기존 연봉 100만 달러를 7만 달러로 삭감했다. 내려놓은 연봉은 직원들 연봉 인상에 쓰겠다고 밝혔다. 올해 예상되는 이익 220만 달러 가운데 75~80%를 직원 연봉 인상에 쓰겠다고도 했다. 태평양 너머 한국에서 미리 김칫국을 마시며 ‘병아리 셈’을 해 봤다. 120명 직원에게 1인당 약 1만 5000달러가 돌아가게 생겼다. 프라이스의 결단은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앵거스 디턴의 행복감 증진 연구가 배경이다. 고전경제학에서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판단을 한다고 전제한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한다고 전제한다. 이런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인간은 돈이 많아질수록 행복의 크기가 커지지 않는다는 것을 카너먼은 발견했다. 소득과 행복감의 상관관계
  • [씨줄날줄] 마당발 정치인과 비타500/구본영 논설고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 장학재단까지 운영한 입지전적 기업인이었다. 자원개발 비리 혐의로 수사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충청권을 중심으로 정·관계에 그물망 인맥을 구축한 ‘마당발’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 말고도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김상현 전 의원도 정치판의 마당발이었다. 타고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발이 넓다면 정치인으로선 강점일 게다. 하지만 팔도에 형·아우들이 널려 있다는 말을 들은 두 사람도 대선 후보급 정치인이 되진 못했다. 성 전 회장이 2013년 4·24 재선거를 앞두고 돈을 담은 ‘비타500 박스’를 들고 이완구 총리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가 이 총리에게 선거 지원금으로 3000만원을 전달했다는 경향신문의 14일자 녹취록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당장 이 보도들이 맞다고 단정할 순 없다. 이 총리가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까지 부인하는 데다 “당시 재선거 후보등록 첫날이라 기자 수십 명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도청 행사에 있었다”고 알리바이도 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리 현금 수수설의 진위는 수사를 통해 가릴 사안이다. 다만 현재로서도 분명한 건 ‘비타500 박
  • [씨줄날줄] 한국문학번역원/서동철 논설위원

    소설가이자 번역작가인 안정효는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사례로 들곤 한다. 미국 작가 마거릿 미첼에게 1937년 퓰리처상을 안겨 준 이 소설을 마무리하는 독백은 빅터 플레밍이 연출한 1939년 작 동명 영화에서도 마지막 대사로 쓰였다. 배우 비비안 리가 연기한 스칼릿 오하라의 유명한 대사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로 번역되면서 명대사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번역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이 구절이 어려운 일을 참지 못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스칼릿 오하라의 입버릇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주인공의 성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꼭 오늘 해야 하는 것은 아니야”라는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멋을 부린 번역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구나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는 일본 속담을 그대로 활용했다는 의심도 있다. 문화한류(文化韓流)의 시대 번역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역시 소설가이자 번역작가인 박찬순은 태국에 수출된 한국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애인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대사가 “brot
  • [씨줄날줄] 자격루/김성수 논설위원

    자격루(自擊漏)는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물시계다. ‘스스로 종을 울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종 16년인 1434년 장영실이 왕의 지시로 김조, 이천 등과 2년여의 연구 끝에 만들었다. 물을 흘러내리게 하는 그릇과 물받이 그릇, 톱니바퀴, 자동 시보(時報) 장치들로 이뤄져 있다. 흘러든 물의 양에 따라 각 기계 장치들이 연쇄작용을 하고 자동으로 종이 울리면서 시간을 알려 주는 정교한 물시계다. 세종 때 만들어진 것은 고장 나서 없어졌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중종 31년인 1536년에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를 개량해 새로 제작한 것이다. 덕수궁에 보관돼 있는데 1985년 국보 제229호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물항아리와 물받이 그릇만 남아 있다. 요 며칠 자격루가 엉뚱한 사건 때문에 입길에 오르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대구 엑스코 전시장에서 있었던 제7차 세계물포럼 개막 행사의 해프닝 때문이다. 행사에서는 ‘자격루 줄당기기’ 퍼포먼스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국가 정상급 인사 등 내빈들이 자격루를 본떠 나무로 만든 2m 높이의 구조물을 잡아당기는 행사였다. 원래 각본대로라면 자격루에 연결된 줄을 당기면 구조물 상단의 항아리에
  • [씨줄날줄] 대부업체/문소영 논설위원

    대부업자는 쉽게 말해 사채업자들이었다. 대부업 관련 법이 2002년 8월 제정되기 전까지 말이다. 대부업은 제도권 금융이 아니므로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다. 결국 ‘금융을 모르는’ 지방정부에 등록한 뒤 영업한다. 대부업법은 서민들의 사채시장 이용이 급증하고 대부업자들의 불법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확산하자 서민 보호 차원에서 제정했다. 연 1000%대의 천문학적 수준의 이자율뿐만 아니라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들을 인신매매도 했다. ‘신체포기 각서’가 근거였다. 불법 추심으로 자살자도 나왔다. 사채시장 양성화 시도에도 비인륜적인 행위를 일삼는 사채업자들을 한꺼번에 정화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2007년 6월 이자제한법이 부활했다. 애초 이자제한법은 1962년 이자가 연 4할(40.0%)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한 대통령령이었다. 1960년대 자금 사정이나 사채시장을 고려하면 유명무실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정부가 약탈적 금융을 제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40%의 법정 최고이자율은 1983년 12월 시행령 개정으로 연간 25%로 낮아졌다. 외환위기로 1997년 말에 다시 40%로 올라갔다. 외환위기를 틈타 국내 금융시장을 간
  • [씨줄날줄] 인종차별/문소영 논설위원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은 대서양과 접한 항구 도시다. 1670년에 건설된 영국 초기 식민지인데 당시 국왕인 찰스 2세를 기념해 찰스타운으로 붙여졌다가 1783년 찰스턴으로 재명명됐다. 즉 ‘찰스 왕의 도시’라는 뜻이다. 영국 청교도들의 최초 미국 이민이었던 메이플라워호의 입항이 1620년이니 찰스턴도 초기 영국인들의 정착지다. 노예 해방을 반대해 남부연합에 가담했다. 1861년 남부연합군이 찰스턴의 섬터 요새를 지키던 연방정부군을 공격해 남북전쟁이 시작됐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북전쟁 시절 미국 남부 대지주들의 화려한 생활상을 찰스턴 촬영으로 반영했다. 고풍스러운 도시인 덕분에 찰스턴은 미국인이 꼽는 ‘가고 싶은 여행지’로 손꼽힌다. 재미교포나 한국인 유학생들이 뉴욕이나 워싱턴DC에서 플로리다주의 키웨스트까지 자동차 여행을 한다면 반드시 들르는 남부 관광지도 찰스턴이다. 이 찰스턴 항구에서 쿠퍼강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노스찰스턴이 있다. 이곳에서 4일 백인 경찰이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흑인을 8발이나 조준 사격해 살해한 혐의가 포착돼 미국 사회가 또다시 인종차별 문제로 요동치고 있다. 애초 백인 경찰은 “몸싸움을 벌였고 전
  • [씨줄날줄] 죽은 임나 되살려 내는 일본/서동철 논설위원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에 수많은 한국 문화재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곳에 전시되고 있는 용무늬 고리자루칼(單龍文 環頭大刀)을 보자. 유물 카드는 한글, 일문, 영문으로 각각 ‘6세기 삼국시대’ 것으로 ‘전(傳) 한국 창녕 출토’라고 명시했다. ‘창녕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는 뜻이다. 고리자루칼을 비롯해 이곳에 전시된 창녕 유물 모두 다르지 않은 내용으로 유물 카드를 적어 놓았다. 반면 일본 문화청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같은 유물을 소개하면서 ‘임나(任那) 시대의 유물’이라면서 출토지 역시 ‘임나’라고 표기해 놓았다. 이른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일본 정부 차원에서 수용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임나일본부설이란 일본 야마토(大和) 정권이 이런 이름의 통치기관을 만들어 4∼6세기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고대 역사책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이런 기록이 나오지만 일본 학계조차 벌써부터 곧이곧대로 인정하기에는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문화청 홈페이지의 ‘고대사 유물 도발’은 당연히 아베 정권의 과거사 행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반도 식민지배의 명분을 고대사에서부터 꿰어 맞추려던 제국주의 역사관을 사실상
  • [씨줄날줄] ‘다시’ 염전노예/문소영 논설위원

    “최근 일어난 염전노예 사건은 정말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뿌리 뽑아야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2월 14일 법무부 등의 업무보고에서 이렇게 지시했다. 서울 구로경찰서 실종수사팀이 일주일 전쯤 소금 구매업자로 위장·탐문해 전라남도 신안군 신의도 염전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있던 시각장애인 김씨 등을 구출한 사건을 거론한 것이다. 구로경찰서의 업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에 직면한 시민은 경악했다. 서울신문도 2월 8일자 본란을 통해 ‘현대판 염전 노예’를 고발하며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노동착취를 개선하라고 했다. 특히 경찰 등 공권력의 감시가 허술할 수밖에 없는 도서·산간 지역에서는 매의 눈을 가진 따뜻한 이웃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권 사각지대인 도서 지역에서 탐욕스런 염전 사업자들이 불법의 카르텔을 맺고 있다고 해도 선량한 공동체가 감시한다면 감금과 폭력, 불법이 판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신안에서는 “한 사람 때문에 온 주민이 범죄자로 매도됐다”며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현대판 노예’ 염전 노동자의 실태를 고발한 지 1년 2개월이 지난 그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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