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 [씨줄날줄] 현대차와 제네시스/주병철 논설위원

    우리가 현대자동차의 소형 승용차인 포니(pony)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 국내에 처음으로 자동차를 선보였다는 것뿐만은 아니다. 1976년 포니의 탄생은 전쟁의 상흔을 딛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땀 흘린 우리 부모 세대들에게 희망을 주고 의지를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클 것이다. 자긍심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해 내는 우리의 끈질긴 역사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했듯이 자동차 역사도 그랬다. 발전하고 진화하는 역사의 순리를 포니 이후 오늘의 현대차그룹이 보여 주고 있다. 눈부신 성장에 우리 스스로 놀랄 정도다. 포니의 등장으로 마이카 시대를 연 이후 88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현대차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1988년 출시된 쏘나타는 포니에 이은 Y2(2세대) 중형차로 최초로 해외 수출에 성공해 쏘나타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Y3(3세대), EF(4세대), NF(5세대), YF(6세대), LF(7세대)에 이르기까지 쏘나타 전성시대를 이어 가고 있다. 포니, 쏘나타에 이어 이번에는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글로벌 고급차 브랜드로 명명해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서겠다고 그제 공식 밝혀 눈길을 끈다. 지난 48년간 단일 브랜드로 써 오던 ‘현대
  • [씨줄날줄] 新국공합작/박홍환 논설위원

    1924년 1월 20일부터 30일까지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열린 중국 국민당 제1차 전국 대표대회는 중국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이벤트로 기록돼 있다. 쑨원(孫文)이 소집한 당 대회에서 리다자오(李大釗),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이 대거 국민당 간부로 선출됐다.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이른바 제1차 국공합작이다. 5·4운동으로 촉발된 민주혁명의 완성을 위해 북방 군벌 타도가 급선무였던 국민당으로서는 어떤 세력과도 손을 맞잡아야 했고, 출범한 지 3년밖에 안 된 공산당으로서는 통일전선을 통해 세력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소련과 코민테른의 적극적인 지원이 주효했다. 1차 국공합작은 3년 반 만에 막을 내렸다. 쑨원이 사망한 후 국민당은 좌파와 우파 간 권력투쟁에 돌입했고, 1926년 권력을 장악한 장제스(張介石)가 본격적으로 반공 정책을 펴기 시작하면서 골이 깊어졌다. 마침내 1927년 7월 국공합작은 붕괴했고, 대륙은 10년간의 내전에 돌입했다.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대장정으로 대표되는 ‘고난의 시기’이자 각지의 민중을 규합하는 ‘기회의 시기’이기도 했다. 1차 국공합작의 명분이 군벌 타파였다면 2차 국공합작은
  • [씨줄날줄] 샤보프스키의 역사적 실언/구본영 논설고문

    오는 11월 9일.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다. 1989년 그날 저녁, 뜻밖의 인물이 결정적 장면을 연출했다. 동독 공산당 신출내기 공보담당 정치국원이었던 귄터 샤보프스키였다. 여행 자유화 조치에 대한 동독 정권의 의중을 잘못 읽은 그가 기자회견장에서 얼떨결에 한 답변이 수많은 동독 주민을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게 하면서다. 지난 1일 베를린의 한 요양원에서 86세의 일기로 눈을 감은 샤보프스키. 일찍이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공인들의 경솔한 언행을 경계했다. 즉 “입을 닫아 바보로 보이는 게 입을 열어 모든 의심을 해소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고. 그런 견지에서 샤보프스키는 그날 엄청난 실수를 했다. 붕괴 직전의 체제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던 동독 정권의 입장에서는…. 그는 여행 자유화 조치가 언제부터 시행되느냐는 기자들의 빗발치는 질문에 더듬거리며 답했다. “내가 알기로는, 음, 지금 당장.” 호네커 정권은 헝가리 국경을 통한 동독 주민들의 탈주극을 보면서 마지못해 여행법 개정안을 만든 뒤 시간을 끌 요량이었으나, 샤보프스키가 사고를 친 것이다. 그의 실언은 장벽 붕괴의 도화선이 됐고 이듬해 10월 3일 독일은 통일됐다. 물론 통독의
  • [씨줄날줄] 을의 반격/김성수 논설위원

    감정노동이란 고객의 기분을 맞추거나 기업이 요구하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자기감정을 꾹 누르고 일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버클리대 명예교수인 여성 사회학자 알리 러셀 혹실드가 1983년 저서 ‘통제된 마음’에서 처음 언급했다. 고객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전화상담실 직원, 승무원, 호텔 직원, 식당 종업원, 백화점·마트 직원 등 거의 모든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 중 감정노동자 수는 740만여명에 이른다. 전체 임금 노동자 10명 가운데 4명에 해당한다. 감정노동자들은 자기감정을 숨기고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일해야 한다. 자본의 힘에 의해 강요된 ‘친절’이다. 배우 같은 ‘연기’가 필요한 직업인데, 한 술 더 떠 ‘진상손님’들의 무리한 요구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연방 외쳐야 하는 처지라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다. 폭언, 폭행을 일삼는 고객들의 ‘갑질’이 견디기 어려워도 불이익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대응조차 못 한다. 그 때문에 좌절, 분노에서 비롯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부는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도 한다. 감정노동자
  • [씨줄날줄] 경상도 남편과 가사 노동/최광숙 논설위원

    조선시대 유학자 퇴계 이황이 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다. “잇따른 비로 파종과 기와 굽는 일이 늦춰졌다니 걱정이다” “보리와 밀이 아직 여물지 않았는데 날이 가물 기미가 있으니 더욱 근심되는구나” 퇴계 하면 대부분 집안에서 글만 읽는, 세상 물정 모르는 학자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몸소 배추와 무 종자까지 구해 아들에게 보낼 정도로 집안 살림살이에 신경 썼다. 그러니 미역과 소금 등을 구입해 비축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풍석 서유구 가문은 집안일에 신경 쓰는 가정적인 남자들로 유명하다. 풍석이 총 113권의 방대한 생활백과서 ‘임원경제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직접 농사지으면서 물고기 잡으며, 술을 빚고 음식 만드는 부엌을 부지런히 드나든 덕분이다. 선비이면서도 그는 이런 집안일로 가족을 건사한 만능 살림꾼이었다. 정조의 신임을 한몸에 받으며 대제학까지 지낸 그의 조부 서명응은 젊은 시절 어머니에게 요리까지 배웠던 원조 ‘요섹남’(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이다. 풍석의 형 서유본도 능력 있는 아내 빙허각 이씨를 도와 차밭을 경영하고 아내의 저술 활동까지 돕는, 외조 잘하는 남자였다. 그의 부인은 한글로
  • [씨줄날줄] 천경자 문화훈장 논란/서동철 수석논설위원

    프랑스의 국가훈장 레지옹 도뇌르는 훌륭하게 자기 인생을 경영한 사람의 증표쯤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 훈장은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준다. 외국인이라면 프랑스 사람보다 훈장을 받은 것을 훨씬 더 큰 영예로 여길 수도 있다. 이 훈장을 받은 한국인은 생각보다 많다. 가야금병창의 인간문화재인 안숙선 명창이 1998년, 영화 ‘초록 물고기’와 ‘오아시스’, ‘밀양’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이 2004년 4등급에 해당하는 ‘오피시에’를 각각 받았다. 이 감독이 레지옹 도뇌르를 받은 것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직후이니 문화 부처 수장 경력도 수훈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다. 가장 낮은 5등급 ‘슈발리에’ 수훈자는 낯익은 사람들이 많다. 파리 바스티유오페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한 지휘자 정명훈과 동양적 사상을 기반으로 한 단색 작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화가 이우환, 영화감독 임권택의 이름이 보인다. 두 번째 등급인 ‘그랑도피시’는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이 받았을 뿐이다. 세 번째 등급인 코망되르의 수훈자도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으로 모두 기업인이다. 훈격(勳格)을 정하는
  • [씨줄날줄] 콩글리시 브랜드/최광숙 논설위원

    기업가 출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홍보에 무척 신경을 썼다. 기업처럼 홍보하고자 했는데 그때 나온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하이 서울’(Hi Seoul) 슬로건이다. 기업의 CI(통합된 이미지 기업) 작업을 서울시에 도입하면서 나온 첫 작품이었다. 이 슬로건이 최종 결정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민들이 응모한 후보작 가운데 외국인들은 ‘솔오브서울’(Soul of Seoul)에 더 후한 점수를 줬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시민들에게 그 뜻이 잘 와 닿지 않는다고 해 결국 전문가와 논의 끝에 이 시장이 ‘하이서울’을 선택했다. ‘부르기 쉽고 뜻이 분명하다’는 이유였다. 이제 ‘하이서울’ 슬로건은 만든 지 13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아이서울유’(I.SEOUL.U-나와 너의 서울)가 서울시의 새로운 브랜드로 결정됐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의 새 슬로건을 놓고 말들이 많다. 우선 ‘소통’의 문제가 제기된다. 서울시를 상징하는 슬로건이라면 몇 단어로 서울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들도 서울시의 ‘친절한’ 통역 없이는 무슨 뜻인지 ‘해석’이 어렵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서울시 측은 “서울을 중심으로 나와 너가
  • [씨줄날줄] 정화 & 장보고/구본영 논설고문

    정화(鄭和)는 장구한 중국사에서 수수께끼 같은 인물 중의 하나다. 명나라 영락제의 환관 출신 제독인 그는 7차례나 대양 원정(1405∼1433년)에 나섰다. 색목인, 즉 중동계 혈통인 그가 이끈 대선단은 많을 때는 240여척의 배에 승선 인원이 3만명에 육박했다. 선단 중의 일부가 콜럼버스보다 먼저 신대륙에 도달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전해진다. 다만 ‘정화함대’가 동남아~인도~동아프리카를 잇는 바닷길을 연 건 과장 없는 사실(史實)이다. 이를 통해 명은 시쳇말로 ‘자원무역’의 헤게모니를 쥐었다. 하긴 정화보다 앞서 통일신라엔 장보고가 있었다. 장보고 역시 청해진을 설치해 해적을 소탕하면서 갖게 된 제해권을 토대로 동북아시아의 해상 무역을 독점하지 않았던가. 두 인물이 진취적 자세라는 키워드를 공유한 만큼 그들의 몰락 이후 대제국 명이나 신라가 모두 쇠락해지기 시작했다는 것도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국가의 부침이 ‘먼바다로 진출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로 갈리는 경우는 세계사에서 비일비재했다. 정화함대 해체 이후 중국의 600여년은 굴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미국 해군대학에서 전쟁사를 강의한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은 그럼 점에 주목했다. 지금
  • [씨줄날줄] 마이너스 금리/주병철 논설위원

    세계 각국이 ‘돈 풀기’(양적완화) 경쟁에 돌입하면서 ‘마이너스 금리’가 화두다. 마이너스 금리는 일례로 100만원을 빌려주면 1년 후에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만 99만원 갚겠다고 해도 빌려주는 측이 고맙다고 해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조세회피 지역 등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추가 양적완화 발언을 한 뒤 중국이 기준금리 등을 내렸고, 일본은행(BOJ)도 추가 양적완화에 나서기로 하면서 마이너스 금리는 대세로 굳어지는 형국이다. 독일·프랑스 등 유로존 회원국 대다수의 2년 만기 국채금리는 이미 마이너스다. 마이너스 수준인 예금 금리도 추가 인하할 것이란다. 금융위기 이후 더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게 된 선진국들이 양적완화라는 비정상적인 통화수단을 사용해 중장기 국채를 매집하면서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현재 제로 금리인 미국은 연말쯤 금리 인상을 고려 중이다. 지금의 경기 확장기가 2017년 말쯤 경기 하강기로 접어들 것이란 우려 때문에 미리 수단을 강구해 두자는 차원이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017년의 기준 금리 목표치를 2.6% 남짓으로 설정해 두고 있다. 과거 침체 국면에
  • [씨줄날줄] 매 맞는 베트남 신부 보호조직/최광숙 논설위원

    ‘사자 머리’로 유명한 세계적인 팝스타 티나 터너의 성공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은 그의 뛰어난 노래 실력 외에도 결혼 후 남편의 폭력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그는 공연 중 탈출해 가까스로 이혼할 수 있을 정도로 남편의 학대는 지독했다. 여성들에 대한 가정폭력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해묵은 과제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남성의 재산으로 간주돼 왔다. 여성 인권이 일찍이 발달한 미국에서도 부인에 대한 구타는 1871년 앨라배마 법원에서 처음으로 폭력을 행사한 남편에게 “아내를 때리는 것이 과거에는 특권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더이상 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놨을 정도다. 우리나라만 해도 2010년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기혼 남녀 부부 폭력률이 65.6%에 이른다. 부부 폭력에는 정서적 폭력, 신체적 폭력, 경제적 폭력, 성학대, 통제 등이 다 들어간다.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한 폭력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신체적 폭력은 16.7%나 된다. 매 맞는 아내가 선진국에 비해 5배 정도 높은 수치라고 한다. 말과 문화가 같은 부부 사이의 폭력이 이 정도라면 의사소통이 어렵고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겪는 가정폭력은 오죽할까. 최근 여성가족부
  • [씨줄날줄] 정동야행/이동구 논설위원

    유럽 나라들을 여행하다 보면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밤의 적막감이다. 파리의 화려한 샹젤리제 거리를 비롯한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서구 도시 대부분의 밤은 왠지 두렵기까지 하다. 역사와 종교, 문화적인 배경 때문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서구인들은 태양을 숭배해 온 반면 달은 음침한 느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세의 기독교 문화가 서양인들이 느끼는 밤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빛은 신이 첫 번째로 창조한 반면 어둠은 악령의 영역으로 간주됐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역사학 교수 로저 에케치는 ‘밤의 문화사’에서 “미국과 유럽 등 서구의 밤은 지옥의 길, 사탄이 지배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에케치 교수에 따르면 17~18세기 유럽의 도시에서는 실제로 아침마다 간밤에 강물에 버려진 시체를 치워야 했고, 모스크바에서는 밤새 살해된 시신들을 광장에 늘어놓고 가족들이 찾아가게 했다. 그러니 서양인들에게 밤은 오랫동안 공포의 대상으로 잠재돼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밤의 고요함은 불안이 아닌 안정을 상징한다.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날 밤에 만나게 한 것이나 달을 보며 계수나무와 방아 찧는 토끼를 상상한 것에서도 알
  • [씨줄날줄] 극장의 ‘강제 광고’/황수정 논설위원

    극장에 가면 ‘대한뉴스’라는 걸 봐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꼼짝없이 앉아서 봐야 했던 그 뉴스는 정책 홍보용이었다. 대통령 얼굴과 태극기, 애국가가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영화가 아닌 다른 상영물을 강제로 봐야 했던 셈인데, 반골 기질의 관객은 그때도 있었다. 그 무렵의 극장 기사를 뒤져 보니 재미있다. 20분쯤 극장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대한뉴스가 끝나고서야 입장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영화관은 작은 피안(彼岸)의 공간이다. 관람권 값에는 일상 잡사를 두어 시간쯤 맡아 주는 대가도 들어 있다. 공간의 특성상 사람들은 어지간해선 무장해제의 아량을 발휘해 준다. 뭔가 불편하고 부당하다는 느낌이 들어도 한눈을 감는다. 대한뉴스가 극장에서 사라지기까지는 30년 걸렸다. 정권 홍보물이라는 비판도 높았지만 그보다는 더이상 뉴스의 기능을 못 했던 까닭이 컸다. 라디오, 텔레비전이 세상 구석구석으로 확산됐던 터다. 뉴스를 계속 극장에서만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불평을 하면서도 관객들은 대한뉴스를 더 오래 참고 봤을지 모른다. 영화관의 광고가 법정에 서게 됐다. 참여연대, 청년유니온 등 시민단체들이 국내 최대의 극장 업체 CGV를 상대로 부당이
  • [씨줄날줄] 케이팝과 쇼팽 콩쿠르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말할 것도 없이 폴란드가 낳은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을 기린다. 서양 음악사에서도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쇼팽이다. 그런 만큼 쇼팽 콩쿠르는 피아노 부문만 있는 것은 물론 예선부터 본선까지 오로지 쇼팽의 작품만으로 우열을 가린다. 참가자가 대부분 비슷한 작품을 들고나오니 자신의 분명한 쇼팽관(觀)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면 여간해서 심사위원과 관객의 눈길을 끌기 어렵다. 유수한 음악 콩쿠르의 성격이 대부분 그렇듯 쇼팽의 모국인 폴란드가 주관하는 이 콩쿠르도 정치적 입김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특히 1회부터 4회까지는 옛 소련 출신 피아니스트가 우승을 휩쓸었다. 사실상 옛 소련의 영향력이 짙던 시절이다. 1927년 1회 대회는 레프 오보린, 1932년 2회 대회는 알렉산데르 유닌스키, 1937년 3회 대회는 야코프 자크, 1949년 4회 대회의 우승자 벨라 다비도비치는 모두 옛 소련 출신이었다. 나름대로 피아노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고는 하지만, 오보린은 독주자라기보다는 전설적 바이올리니스트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반주자로 친숙하다. 옛 소련 연방에 속했던 아제르바이잔 출
  • [씨줄날줄] 세무조사와 담합조사/주병철 논설위원

    한참 전의 일이다. 탈루·탈세 얘기다. 국세청장과 신임 세무사협회장이 만났다. 국세청장이 덕담을 건네며 에둘러 한마디 던졌다. “세무사들 잘 좀 챙겨주시죠” 납세자들과 세무사들 간의 담합을 두고 한 말이다. 세무사협회장이 나지막하게 답했다. “세무 공무원들이 더 잘해야죠” 세무사들이야 납세자를 상대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세무 공무원들이 잘하면 세무사들의 잘못된 행태는 바로잡힐 수 있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대화 중에는 세무 공무원과 납세자들 간의 직거래에 대한 걱정도 오갔다. 이명박 정부 때 고위 경제 관료를 지낸 A씨는 세수 문제를 꼬집는다. 어느 날 세제 관련 실무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왜냐고 물었더니 세수가 너무 많이 걷혀 문제라는 것이다. 적은 게 문제지, 많은 게 문제 될 게 있느냐고 반문했단다. 올해 너무 거둬 내년에 세수가 구멍 날 수도 있고, 세율을 낮춰 달라는 요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리한 세무조사가 빚은 후유증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업계 담합 등 불공정 거래 조사도 비슷한 맥락이다. 모 기업에 근무한 전직 관료가 공정위의 후배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조만간 선배가 계시는 곳에 담합 관
  • [씨줄날줄] 실상사의 파격 불사/서동철 수석논설위원

    남원 실상사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 창건됐다. 우리나라 선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구산선문(九山禪門)에서도 가장 먼저 세워졌다. ‘한국 선풍(禪風)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과장이 아니다. 유서 깊은 절이니 중요한 문화재도 많다. 우선 실상사 자체가 사적이다. 산내 암자인 백장암의 삼층석탑은 국보로 지정됐다. 실상사를 창건한 증각대사 홍척의 부도와 부도비를 비롯해 보물도 10점에 이른다. 그런데 실상사는 과거의 영화만 먹고사는 사찰이 아니다. 실상사가 실천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도시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는 ‘실상사 귀농학교’와 친환경 농사를 실천하는 ‘실상사농장’, 그리고 지역공동체를 위한 ‘법인 한생명’을 운영한다. ‘실상사 작은 학교’는 불교의 연기사상을 교육 이념으로 하는 중·고등학교 과정의 대안학교이다. 이런 실상사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존재가 철조여래좌상이다. 보물로 지정된 여래좌상은 높이가 269㎝에 이르는 당당한 모습이다. 실상사가 창건되던 시기 조성된 이후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이 절의 명물이다. 여래좌상은 손모습(手印)으로만 보면 중생을 극락
  • [씨줄날줄] 이탈리아 의회의 ‘다이어트’

    국회가 불신의 대상이 되면서 생긴 오래된 농담이 생각난다. 미녀와 임신부, 국회의원이 강에 빠졌을 때 의원을 맨 먼저 건진다는, 썰렁한 개그다. “강물의 오염을 막기 위해서”라는 기막힌 반전이 웃어넘기기엔 더없이 씁쓸했다. 의회 정치가 고장난 건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의회 시스템의 비생산성이나 선량들의 부패에 관한 한 우리 국회보다 한술 더 떴다고 해야겠다. 내각책임제인 이탈리아에서 지난 70년간 내각이 무려 63차례 바뀌었다. 재임 때 온갖 엽기적 스캔들로 해외 토픽을 장식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그나마 장수했을 만큼 정정은 불안했다. 특히 상원이 이탈리아판 ‘불임(不姙) 정치’의 주요인이었다. 하원을 통과한 여하한 개혁 법안도 상원 의원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느라 ‘말짱 도루묵’이 되기 일쑤였던 탓이다. 그런 이탈리아 의회가 확 바뀔 참이다. 지난해 2월 취임한 마테오 렌치(40)총리가 의회 구조개혁에 착수하면서다. 그는 이를 위해 ‘헌법 개혁 장관직’에 신출내기 하원의원인 마리아 엘레나 보스키(34)를 임명했었다. 고질적 난제를 풀 해결사로 미모의 젊은 여성이 발탁됐을 때 이탈리아 조야에선 냉소적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타블로이드
  • [씨줄날줄] 캣맘 사건과 인간의 호기심/이동구 논설위원

    온 국민이 걱정스럽게 지켜봤던 캣맘(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 사망 사건이 초등학교 어린이의 호기심 때문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을 난감하게 하고 있다. 이웃이나 반려동물을 미워하며 고의로 저지른 혐오 범죄는 아니었다는 데는 안도하면서도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소중한 목숨을 잃은 캣맘에 대한 안타까움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이들이 과학 시간에 배운 물체 낙하 실험을 직접 해 보다가 사고를 낸 데다 14세 이하의 형사 미성년자여서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9일 동안이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은 그저 허탈할 뿐이다. 오늘날 일궈 낸 과학 발전의 대부분은 인간의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뉴턴이 만류인력의 법칙을 찾아낸 것도 사과나무 아래서 생긴 호기심이 발단이 됐고, 갈릴레이는 이번 용인 어린이들의 놀이처럼 피사의 사탑에서 낙하 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벽돌이 아니라 금, 납, 구리 등 좀 더 과학적인 소재이었을 뿐 별반 차이가 없다. 16~17세기에 시작된 이 같은 물체 낙하 실험은 요즘도 계속되고 있다. 1971년 아폴로 15호의 우주인이었던 스콧은 달에서 망치와 깃털을 낙하시킨 뒤 동시에 달 표면에 떨어지는 것을 확
  • [씨줄날줄] 왜곡된 노벨경제학상/오일만 논설위원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미 프린스턴대 교수가 돌연 논쟁의 한복판에 등장했다. 지난 12일 그가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국내 일부 언론들은 ‘성장론자의 승리’라고 해석하면서 “불평등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불평등 해소가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분배론자들을 향한 성장론자의 반박으로 해석되면서 논쟁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학계가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다. 디턴 교수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마저 악화시킨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그가 노벨경제학상 선정 직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나친 불평등은 공공서비스를 붕괴시키고,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일침을 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 에필로그에서 그의 주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미국의 경우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소득과 부는 100년 이상 본 적이 없다. 부의 엄청난 집중 현상은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창조적 파괴의 숨통을 막아 민주주의와 성장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명확한 논지를
  • [씨줄날줄] 길고양이 갈등/이동구 논설위원

    사람과 고양이의 공존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추정이긴 하나 약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이 곡물 창고를 습격하는 쥐를 잡으려고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게 됐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태국에서는 오직 왕족만이 고양이를 기를 수 있었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오곡을 풍성하게 하는 동물’이라 부르며 귀하게 대접했다. 우리 국민도 쥐 잡는 동물로서 고양이를 오래전부터 사랑해 왔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고양이가 134번 언급돼 있다. 제 역할을 못 하는 관리들을 ‘쥐를 잡지 못하는 고양이’에 비유하기도 했다. 동서양 모두가 곡식이나 누에고치를 공격하는 쥐를 퇴치하는 역할로서 고양이를 좋아했던 것이다. 반면 수호자, 상징물 등으로 신격화되면서 고양이에게 재앙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풍요와 다산의 여신이자 여성의 보호자인 바스테트로 숭배했다. 이로 인해 고양이를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는 등 고양이로 인한 재앙이 시작됐다. 기르던 고양이가 죽으면 그 주인은 사람들 앞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자신의 양 눈썹을 면도해 슬픔을 표시해야 할 정도까지 됐다고 한다. 기원전 900년경 로마로 건너갔을 당시에도 고양이는 가정과 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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