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 [씨줄날줄] 관포지교의 허와 실/문소영 논설위원

    우정의 절정을 표현할 때 관포지교(管鮑之交)를 인용한다. 전국시대 열어구가 쓴 열자(列子)에 나오는 고사다. 그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 즉 영원히 변치 않는 참된 우정’이라고 나온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지극한 벗을 은유하는 ‘지음’(知音)도 있지만, 관포지교가 더 대중적이었다. 관중이 남긴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다”라는 ‘생아자부모 지아자포숙아야’(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兒也)는 널리 알려진 문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관중과 포숙아가 우정을 쌓는 과정을 보면 과연 어떻게 이런 우정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김영문 중문학자가 번역하고 글항아리가 최근 출간한 ‘동주열국지’ 제15회를 읽어 보면 이렇다. 관중은 포숙아와 장사를 함께 할 때 돈을 나누게 되면 늘 두 배 이상 많이 가져갔다. 포숙아를 따르는 사람들이 불평을 쏟아내면 포숙아는 “관중이 구구히 돈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이 가난해 자급자족할 수 없기 때문이라 내가 양보한 것”라고 해명한다. 또 전투가 벌어지면 관중은 맨 뒤로 처지고, 회군할 때는 언제나 선두에 섰다. 군사들이 관중이 비겁하다고 비웃자 포숙아는 다시 “관중은 노모가
  • [씨줄날줄] 절의 ‘탐욕’과 소작농의 설움/문소영 논설위원

    단편소설 ‘사하촌´(寺下村)은 소설가 김정한의 1936년 문단 데뷔작이다. 제목처럼 절 소유인 논밭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 농민들의 찌든 가난과 고통을 잘 그려 냈다. 가뭄에 논이 쩍쩍 갈라져 농민 폭동이 우려되자 저수지 물을 터 놓았더니 그 봇물을 탐욕스럽게 보광사에서 다 차지해 소작농들은 그 귀한 물을 구경도 못 하고 물싸움을 벌이게 된다. 불교에 귀의한 종교인을 중이라고 부르지 않고 스님이라고 존칭하는 이유는 그들이 불쌍한 중생을 고해(苦海)의 바다에서 구제해 부처의 정토로 이끈다는 믿음 때문인데, 사하촌을 읽다 보면 승려도 탐욕스런 인간에 불과해 가난한 소작농을 착취하고 타락한 폭력집단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다. 종교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때는 일제강점기로 나라 잃은 설움에 타락한 승려들의 착취로 뼛속까지 가난이라는 이중 고통을 겪는다. 한국 3대 사찰이라는 통도사 주변의 넓은 논밭이 모두 사찰 소유라고 해 고려시대는 대체로 이런 풍경이었겠지 하고 잠깐 ‘사하촌’을 떠올리기도 했다. 토지개혁 하면 1945년 해방 이후 북한과 남한의 토지개혁을 떠올리지만, 왕조가 바뀔 때 토지개혁은 기본이었다. 민생 안정
  • [씨줄날줄] 백제향로/문소영 논설위원

    흔히 ‘백제향로’라고 부르지만, 정식 이름은 ‘백제금동대향로’(百濟銅大香爐)다.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百濟銅龍鳳逢來山香爐)라고도 부른다. 1993년 부여 능산리 절터를 발굴하다가 발견했다. 한국에서 발견된 향로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이 향로의 제작 시기는 7세기 초다.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다음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 64㎝, 최대 지름 19㎝로 향로치고는 대형이다. 2000년 전 한나라 때 만든 ‘박산향로’의 형태를 수용했다고 평가한다. 바다를 상징하는 받침접시 위에 한 개의 다리와 겹쳐진 산봉우리형의 몸체가 특징이다. 향로는 4000년 전 인도가 시초로 박산향로는 고대 중국의 산악숭배, 무속, 불로장생, 무위, 음양 등 도교 사상을 조형적으로 표현했다. 7세기 백제 공예의 자랑이었을 백제향로는 현재 부여박물관의 자랑거리다. 독방에서 조명을 독차지하면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문화재구나’, ‘유물이구나’ 하고 눈길 한 번 주고 휙 보고 돌아서는 사람들조차도 백제향로 앞에서는 발길을 돌리기 쉽지 않다. 우선 백제향로 좌대를 높여 성인 관객의 눈높이까지 올려놓아 관찰하기가 좋다. 크고 형태가 아름답다. 특히
  • [씨줄날줄] 제주 사려니숲의 노루/문소영 논설위원

    ‘사려니’는 제주 방언으로 ‘신성하다’는 뜻이다. 사려니 대신 ‘살안이’, ‘솔안이’라고도 불린다. ‘살’ 또는 ‘솔’이 신령스러운 지역이나 산을 일컫는다고 하니, 사려니숲은 ‘신성한 곳’이나 ‘신령한 숲’이 되겠다. 사려니숲은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의 사려니오름에서 물찻오름을 거쳐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비자림로까지 이어지는 자연휴양림이다. 해발 500~600m의 한라산 중산간지대에 걸쳐진 평탄한 산길로 심지어 오르막 없이 내리막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걷기가 좋다. 15㎞ 남짓이니 조금 빠른 어른 걸음으로 3시간 안팎이면 완주할 수 있다. 제주 올레가 해안을 끼고 돌아 풍광 구경에 다리 아픈 줄 모르듯 사려니 숲길을 걸을 땐 ‘피톤치드’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숲길 양쪽을 따라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등 천연림과 인공 조림한 삼나무나 편백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 늘씬하게 하늘로 뻗어 있다. 산길이지만 무리 지어 걷기 좋게 신작로처럼 닦아 놓았다. 길 양옆으로 푸른 꽃잎의 산수국들이 가로수처럼 서 있어 잘 가꾼 정원 같기도 하다. 예전에 제주도 여행을 좋아했더라도 사려니 숲길은 모를 수도 있다. 2009년
  • [씨줄날줄] 그리스 ‘직접민주주의’의 퇴행/구본영 논설고문

    서구 문명의 요람이었던 그리스 국민들의 생활고가 요즘 말이 아니다. 국가 부도(디폴트) 상황을 맞아 은행마다 시민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하고 있다. 뱅크런(예금인출 사태)을 막기 위해 하루 60유로(약 7만 5000원)로 인출을 제한하면서다. 소비가 70%가량 줄고 가게들이 문을 닫자 멀쩡한 차림의 시민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인 그리스가 부채상환 불능 상태에 빠진 근본 원인은 뭘까. 두말할 것 없이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의 적폐다. 이번에 좌파 시리자 정권이 사고를 쳤지만, 좌우파를 막론하고 지난 수십년간 포퓰리즘 경쟁을 해 왔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그리스는 북유럽 국가들이 울고 갈 정도로 후한 연금과 고용보험의 혜택을 누리는 ‘복지 천국’이었다. 정당들이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득표 전략으로 삼으면서 재정 고갈은 더 심해졌다. 심지어 지각하지 않고 제 시간에 출근하는 공무원들에게 ‘정시 수당’까지 쥐여 줄 정도였으니…. 문제는 포퓰리즘의 폐해에서 벗어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로화 가입 이후 그리스 좌우파 정당 간 선심 경쟁은 더욱 심화됐다. 하지만 재정 위기에 빠진 지 4년째인 올
  • [씨줄날줄] ‘전통’의 한국도자기/문소영 논설위원

    보통명사로 차이나(china)는 도자기라는 뜻이지만 고유명사가 되면 중국을 일컫는다. 고대 중국은 종이·나침판·화약 등 다양한 발명품이 있지만 18세기 유럽 왕실과 귀족뿐 아니라 부르주아에까지 널리 알려진 중국산 도자기가 중국의 정체성을 설명하게 된 것 같다. ‘도자기가 뭐 그리 대단하다는 거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요즘 2만~3만원 안팎이면 유럽의 대형 도자기 접시를 쉽게 살 만큼 도자기가 흔하디흔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자기는 ‘고대의 반도체’와 같이 첨단 기술이 집적된 것이다.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의 합성어다. 흙 그릇을 굽는 온도에 따라 도기와 자기가 나뉜다. 섭씨 800도 정도에서 굽는 질그릇이 도기(陶器)이고,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운 단단하고 영롱한 그릇을 자기(瓷器)라고 한다. 800도에서 굽는 다소 투박한 형태의 도기는 중동 지역에서도 만들었다. 그러나 1300도에서 굽는 단단하기가 쇠붙이 같은 자기는 10세기 무렵에는 자기의 종주국인 중국과 한국(고려)만이 만들 수 있었다. 일본은 다 알다시피 16세기 말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도공들을 끌고 가 자기를 만들어 수출하고 부강해졌다. 또 옻칠한 가구와 함께 19세기 유럽에
  • [씨줄날줄] 선생님도 모른 척, ‘엄마 수행평가’/황수정 논설위원

    알림음과 함께 호들갑 떨며 들어오는 휴대전화 메시지에 둔감한 편이다. 지난 두어 달 동안 그럴 수 없었던 게 딱 하나 있다. 중학생 딸아이의 반 친구 엄마들이 만든 ‘밴드’다. 수행평가 정보를 재깍재깍 올려 주는 반장 엄마의 성의를 무시할 강심장은 없다. 그 엄마의 수고에 번번이 불꽃 박수가 쏟아졌다. 과목별 수행평가의 주제와 요령, 제출 시한 등을 복사물과 함께 귀띔해 줬다. 꼼꼼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수행평가에 취약한 남학생들의 엄마들은 더 악착같이 밴드에 매달렸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들은 다 안다. ‘그 숙제는 곧 내 숙제’라는 사실을. 기말고사 시즌이다. 지필고사를 보기 직전까지 수행평가는 보통 한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그 기간에 분통을 터뜨려 보지 않은 엄마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끙끙거리는 아이에게 “네 숙제는 네가 해야 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들이대기에는 상황이 말이 아니다. 이심전심. 이즈음 엄마들이 모이는 인터넷 공간에는 똑같은 하소연들이 봇물 터진다. 아이와 새벽까지 인터넷 자료를 찾느라 씨름했다, 앞으로는 눈 딱 감고 모든 수행평가를 대신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수행평가가 끝나서 지필시험만 보면 되니 속 편하다…. 수행평가
  • [씨줄날줄] 의정부 터 원형회복/서동철 수석논설위원

    의정부는 조선시대 국정최고기구라고 할 수 있다.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삼정승이 오늘날 정부 각 부처에 해당하는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의 육조(六曹)를 지휘했다. 의정부는 대부분의 역사책이 정종 2년(1400) 성립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조 원년(1392)에 그 존재를 짐작하게 하는 표현이 보이기 시작하고 태조 3년(1394)에 이르면 ‘의정부’라고 직접 적기도 했으니 까닭을 모르겠다. 의정부는 국정최고기구였지만 언제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 ‘경국대전’은 의정부가 6조 판서로부터 소관 업무를 보고받아 국정을 처리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하지만 왕권 강화를 노린 태종이 벌써 의정부를 제치고 판서들이 직접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이후 세종·세조·중종처럼 왕권이 비교적 강해지면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들고 나와 의정부의 기능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곤 했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비변사에 권한 대부분을 넘겨준 의정부는 고종이 즉위한 1864년 옛 기능을 상당 부분 회복하기도 한다. 의정부는 대한제국이 출범한 1907년 내각이 신설되면서 폐지됐다. 의정부 청사는 국정최고기구답게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
  • [씨줄날줄] 대통령의 노래/최광숙 논설위원

    마오쩌둥 사망 이후 화궈펑과 권력 투쟁을 벌이던 덩샤오핑 중국 전 주석은 1979년 9월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그는 방미 기간 중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쓰고 로데오 경기를 관람했다. 공식석상에서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열창하기도 했다. 공산주의 중국에 대해 거부감과 경계심을 갖고 있던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우상 엘비스의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고 친근한 지도자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그로부터 27년 후인 2006년 6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역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엘비스의 생가가 있는 멤피스를 방문해 기타 치는 엘비스를 흉내 내며 서투른 영어 발음으로 ‘러브 미 텐더’ 등 엘비스의 노래를 불렀다. 엘비스의 열렬한 팬인 고이즈미는 이를 미국과 일본 두 나라의 밀월관계를 보여 주는 데 적극 활용했다. 노래 솜씨가 꽤 좋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애창곡 ‘베사메무초’를 불러 멕시코 국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이렇듯 정치인들의 노래는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부르는 노래와 다르다. 노래를 부르는 장소와 선곡 등에는 보이지 않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외교
  • [씨줄날줄] ‘컬처버시아드’ 휴가/서동철 수석논설위원

    2015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U대회)가 열리는 광주시가 맛의 고장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U대회는 광주시뿐 아니라 목포, 무안, 영광, 장성, 나주, 화순, 보성, 순천, 구례 같은 전남 각 시·군에서도 나뉘어 열린다. 전북 정읍과 충북 충주에서도 일부 종목이 열린다고 한다. 광주와 하나의 ‘맛 문화권’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전남·북 지역의 각 고을은 그렇다고 해도 충주 역시 맛이라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드높은 고장이다. 그제 서울신문이 ‘커버스토리’로 다룬 ‘남도 맛 기행’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광주의 유서 깊은 한정식을 비롯해 민어회, 홍어회, 짱뚱어탕, 갈낙탕, 곰탕 같은 대표 먹거리가 망라되어 있었다.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의 나비파이, 영광 읍내의 칼로리 적다는 치즈케이크, 화순시장의 팥죽이 남도 대표 먹거리 반열에 새로이 올라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충주의 메밀싹막국수집은 중앙탑 옆에 자리잡고 있던 시절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시내로 옮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U대회는 개막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완전히 퇴치되지 않는 바람에 참가를 주저하는 선수가 아주 없
  • [씨줄날줄] 한성백제 빠진 백제역사지구/서동철 수석논설위원

    며칠 전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가슴이 매우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잘 알려진 것처럼 서울 송파 풍납토성이 초기 백제의 왕성(王城)이라는 사실을 학계가 공인토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고고학자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최종 결정하는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현지시간 28일부터 새달 8일까지 독일 본에서 열린다. 백제역사지구와 함께 ‘일본 산업혁명 시설’의 등재 여부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다. 일본의 등재 대상지에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이 포함되어 있어 한·일 두 나라의 치열한 외교전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두 안건은 사전 심사를 맡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이미 ‘등재’를 권고한 상황이다.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어떤 형태로 반영하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렇듯 백제역사지구의 세계유산 등재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 교수는 “돌 맞을 이야기일 수도 있다”면서 “회의 마지막 날이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서울을 제외한 백제역사지구의 등재 신청을 철회해 주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라고 했
  • [씨줄날줄] 드론/김성수 논설위원

    드론(drone)의 사전적 의미는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다. 무선전파로 원격조종하는 무인항공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도 특유의 소리 때문일 것이다. 드론은 20세기 초반 군사용으로 개발됐다. 공군기나 고사포의 연습사격 때 적 항공기를 대신한 표적으로 썼다. 나중엔 정찰기와 공격기로도 활용도가 넓어졌다. 용도에 따라 카메라와 센서, 통신 시스템 등을 탑재한다. 폭탄을 싣는 대형도 있지만 최근에는 25g짜리 초소형도 개발됐다. 작아지면서 쓰임새는 더 넓어졌다. 상업용·레저용으로 개발되면서 ‘어른들의 장난감’이 됐다. 고공 촬영과 근접 촬영을 쉽게 할 수 있어 취재 현장 촬영에도 많이 쓴다. ‘드론저널리즘’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최근 CJ그룹 계열사인 CJ E&M이 이탈리아에서 드론으로 홍보영상을 몰래 찍다가 사고를 쳤다. CJ E&M 직원과 외주 제작사 직원 2명 등 한국인 3명이 지난 22일 밀라노 중심에 있는 두오모(대성당)에서 드론을 띄워 도둑 촬영을 했다. 역사 도시 밀라노에선 드론 촬영이 제한돼 있는데도 무시했다. 이들은 경찰이 출동하자 당황해서 원격조종을 제대로 못 했고 드론은 원형지붕 부근 케이블에 부딪혀 추락했다. 불행 중
  • [씨줄날줄] 셰프 외교/서동철 수석논설위원

    백악관 주방장을 지낸 월터 샤이브가 뉴멕시코주 집 근처에서 등산길에 나섰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CNN의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언론이 앞다퉈 속보를 내보내고 있다. 그는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인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1년 동안 백악관 수석 셰프로 일했다. 샤이브 사건을 대서특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셰프가 생겨나듯 잘나가는 셰프는 벌써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최고 권력자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셰프의 일거수일투족은 어느 나라나 뉴스의 초점이 된다. 무엇보다 최고 권력자의 셰프가 특히 외교적 영역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잘 알고 있다. 1975년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은 랑부예성(城)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을 열었다. 고민스러운 안건으로 쉽지 않았던 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난 공로는 엘리제궁 수석 주방장 메르셀 르세르보에게 돌아갔다. 마지막 날 만찬 자리에서 지스카르데스탱 대통령은 각국 수뇌가 지켜보는 가운데 르세르보를 불러내 “우리가 보낸 최고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고 공개적으로
  • [씨줄날줄] 신경숙의 상처를 위한 변명/황수정 논설위원

    작가 신경숙을 오랫동안 좋아했다. 열여섯에 고향 정읍을 떠나 서울의 야간 산업체 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낮에는 구로공단의 여공이었다. 돌아가는 컨베이어 앞에서도 머릿속으로 ‘난쏘공’(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노트에 옮겨 적었던 소녀다. 문학 지망생의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는 사실은 그의 독자라면 다 안다. 작가가 되기까지의 내력은 등단 초기 작품들로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독자의 눈에 그런 그는 늘 위태롭고 안쓰러운 글꾼이기도 했다. 현실과 문학의 경계를 뭉개며 삶을 살아내는 족족 작품의 재료로 ‘털리는’ 작업을 스스로 반복했으니까. “제 살을 파먹는 듯한 글쓰기를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한 평론가들이 일찍부터 많았다. 작가의 위기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제 살을 모두 파먹은 뒤의 절필 선언이 아니라 표절 시비다. 어이없는 논란이 다시 불거졌던 순간 독자들은 직관적으로 그를 변명했다. 문제는 필사(筆寫)다, 박경리 박완서 오정희의 글을 한 자 한 자 베끼며 글쓰기를 다진 작가였다, 작가적 영감이 통했던 표현들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체화됐을 수 있다…. 그가 무대응으로 일관한 지난 며칠 동안 독자들은 난감했다. 검찰 고발로까지 문제가
  • [씨줄날줄] ‘기쁨을 아는 몸’/문소영 논설위원

    ‘두 사람 다 건강한 양심의 주인은 아니었다. 그들의 베끼기는 격렬하였다. (중략) 첫 표절을 하고 두 달 남짓 뒤, 여자는 벌써 표절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변화를 기뻐한 건 물론 출판사였다.’ ‘기쁨을 아는 몸’이라는 구절을 넣은 다양한 패러디가 양산되고 있다. 메르스 확산과 관련해 “정부는 이미 이윤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정부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것은 물론 삼성서울병원이었다” 등등. 올 상반기 ‘말말말’을 뽑는다면 단연 “아~ 몰라”라는 의미의 ‘아몰랑’이란 신조어와 함께 ‘기쁨을 아는 몸’이 선정될 것이다. 지난해의 말말말 중에는 ‘마리 안통하네트’가 있었다. ‘기쁨을 아는 몸’이란 표현은 소설가 신경숙이 ‘전설’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일본 탐미주의 작가이자 극우 인사인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우리말 번역본에 나온다. 표절 의혹을 제기한 소설가 이응준에 따르면 일본어 원문은 ‘기쁨을 알았다’는 평이한 서술이다. 그런데 시인 김후란이 1983년 번역을 맡으면서 그 표현에 시인의 감각을 첨가해 착 달라붙는 표현을 만들었다고 했다. 늘 쓰는 표현 같아도 이렇게 출처들이 있다. ‘전설’이 ‘우국’을 표절했다는
  • [씨줄날줄] 니캅의 역설/구본영 논설고문

    메르스는 뜨겁지만 건조한 날씨와 궁합이 잘 맞는 건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12년 첫 발병 이래 이 ‘열사의 땅’에서 줄곧 맹위를 떨치고 있다. 본래 낙타에서 사람에게 전염된다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낙타도 없는 한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어 장마철인데도 건조한 요즘 날씨가 왠지 마음에 걸린다. 메르스가 창궐한 사우디에서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감염 사례가 적다고 한다. 확진자도 여성이 남성의 절반 수준이지만, 발병 이후 사망률도 여성이 현저히 낮았다고 최근 외신이 전했다. 지난해 세계 의학저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13년 6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사우디 남성 확진자는 사망률이 52%였으나 여성은 23%에 불과했다. 물론 바이러스가 성별을 가릴 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사우디에서 여성 환자가 적은 것은 ‘니캅’이 평소 입과 코를 가려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라이나 매킨타이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라는 분석이 그럴싸하다. 니캅은 눈 빼고는 얼굴과 몸을 모두 가리는 이슬람 여성들의 전통 의상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선 여성들이 집 밖으로 나갈 때 베일을 두르는 게 종교적 전통이다. 다만 나라별로 사회적 분위기나 이슬람 율법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 [씨줄날줄] 역질의 기억/서동철 수석논설위원

    친구가 보내 준 사진을 보고 웃었다. 한국사 참고서의 일부분인 듯했다. ‘고려 초 거란이 사신을 보내 낙타 50필을 바쳤다. 고려 태조가 사신은 섬으로 유배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 아래에서 모두 굶겨 죽였다.’ 이런 내용을 서술하고는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아이가 삐뚤빼뚤하게 적은 답이 걸작이었다. ‘메르스 때문에….’ 만부교 사건은 고려 태조 25년(942년) 일어났다. 거란이 외교관계를 맺고자 유화 제스처를 취했지만, 고려는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며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내용이 들어 있어야 정답이다. 하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이라고 적은 아이의 상상력은 칭찬해 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승은 전염병의 중요한 매개체인 데다 특히 낙타는 유럽 사람들이 ‘중동’이라고 부르는 서아시아 지역이 고향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역질, 즉 유행성 전염병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드문드문 보이다 ‘고려사’에서 조금 더 잦아진다. ‘조선왕조실록’은 보다 자주, 보다 구체적으로 적었다. 의학사학자들은 하지만 삼국시대나 조선시대나 ‘화기(和氣)가 상함에 따라 변괴(變怪)가 일어나 생긴다’는 역질에 대한
  • [씨줄날줄] 눈 뜨고 코 베이는 극장 ‘갑질’/황수정 논설위원

    다가올 삼복더위에 가장 만만한 피서지는 뭐니 뭐니 해도 영화관일 것이다.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진 세상에 극장이야말로 ‘문화 보루’ 같은 곳이다. 그럼에도 번번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곳도 극장이다. 영화 관람이 이제 우리에겐 특별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생활 소재로 밀착됐기 때문이다. 생활공간의 일부로 빠르게 편입되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한 관리의 강도가 따라 높아져야 함은 당연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의 불공정 거래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조사 대상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간판 극장 업체 3곳. 이들이 독과점 수준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따져 보겠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올 초 신고서를 제출한 결과다. 앞서 시민단체들은 다음 아고라에 토론 공간을 열어 관객들의 목소리를 모았다. 불공정 거래 혐의가 집중 성토되는 대상은 팝콘과 음료수.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시중 극장에서 유통되는 큰(라지) 사이즈 기준 팝콘의 원재료 값은 613원. 극장에서 5000원에 팔고 있으니 원재료의 8배로 뻥튀기된 셈이다. 요즘 웬만한 블록버
  • [씨줄날줄] 두장옌과 소양강댐/박홍환 논설위원

    중국 서부 쓰촨(四川)성의 성도인 청두(成都) 주변은 청두평원, 또는 촨시(川西)평원으로 불린다. 총면적 2만 3000㎢에 이르는 대평원으로 끝없이 논과 밭이 펼쳐져 있어 중국 서부지역 최대의 양곡기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예로부터 이곳 사람들은 기근(飢饉)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홍수와 가뭄이 없어 흉년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곳을 물산이 풍부한 천부지국(天府之國)으로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사실은 하늘이 내려준 땅이 아니었다. 수천년 전 선조들의 지혜와 땀으로 옥토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종의 댐, 제방 역할을 하는 두장옌(都江堰)으로 가뭄과 홍수를 효과적으로 제압해 온갖 산물이 풍성한 땅으로 바뀌었다. 역사는 227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시대 진(秦)나라 소왕(昭王) 때 촉(蜀) 지방의 태수로 부임한 이빙(李?)은 청두평원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민(岷)강의 관개시설에 관심이 많았고, 마침내 기원전 256년부터 5년여간 두장옌을 건설했다.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강의 중심에 물고기의 주둥이를 닮은 대형 둑을 쌓아 물줄기를 두 가닥으로 분리함으로써 홍수와 가뭄을 동시에 대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대형 둑의 좌
  • [씨줄날줄] 데미안과 PPL/문소영 논설위원

    광고 마케팅 전략 중에 ‘PPL’이 있다. 간접광고인데 프로덕트 플레이스먼트(Product PLacement)의 약자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자연스럽게 소품으로 등장시켜 상품이나 상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이를 판매로 연결하는 전략이다. 할리우드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에 삼성 갤럭시 휴대전화가 나왔다고 한국인들은 자랑스러워했는데 아마도 PPL 마케팅이었을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휴대전화 브랜드 중에서 삼성 갤럭시가 선택된 이유는 비용지불 능력뿐 아니라 미래와 첨단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덕분일 것이다. 몰입한 영화나 드라마 속의 상품이나 브랜드는 시청자이자 소비자의 잠재의식으로 들어와 그 상품을 욕망하게 한다. 상업 광고에서 인간의 인지와 감성을 조작하는 광고, 예를 들자면 음료 광고에 사막 영상을 여러 차례 찰나로 끼워 놓으면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불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PPL처럼 대놓고 간접적으로 광고하는 것은 허용돼 있다. PPL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면 영화나 드라마의 흐름이 끊기고 시청자들에게 저항감을 주는 탓에 배경에 넣어 두는 것으로 은근하게 노출한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드라마 등의 제작비가 너무 커지는 탓에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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