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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이란 동결자금/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란 동결자금/이순녀 논설위원

    2021년 1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에미리트(UAE)로 향하던 한국 국적 화학운반선 ‘한국케미호’가 걸프 해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 한국인 5명을 포함해 인도네시아·베트남·미얀마 국적의 선원 20명이 탑승한 선박에는 메탄올 등 세 종류의 화학물질이 실려 있었다. 혁명수비대는 “기름 유출로 인한 환경오염 때문에 억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선박 소유주인 부산 지역 선사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반박했고, 국제사회도 다른 배경을 의심했다. 이란의 속내는 하루 만에 드러났다. 정부 대변인은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선박 나포가 인질극에 해당한다는 지적에 “70억 달러를 인질로 잡고 있는 건 한국”이라며 발끈했다. 2019년 미국의 제재로 한국 금융권에 묶인 자국 동결자금에 대한 불만과 선박 나포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2018년 5월 이란의 핵개발을 이유로 핵합의(JCPOA) 파기를 선언하고 대이란 금융제재에 나서면서 이듬해 5월 한국 내 이란 원유 수출 대금도 동결했다. 이란 정부가 억류 한 달 뒤인 2월 2일 나포 선원 전원 석방을 결정하면서 “이란 자산 동결을 풀기 위한 양국의 노력”을
  • [씨줄날줄] 가야 외연 넓히기/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가야 외연 넓히기/서동철 논설위원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이다. 한반도의 고대 문명 가야를 대표하는 7개 고분군이다. 전북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과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경남의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성 송학동, 합천 옥전 고분군으로 이루어졌다. 영호남 공동유산이라는 점이 더욱 뜻깊다. 문화재청의 국가문화유산포털은 한반도에 가야와 관련된 고분군이 780개 남짓 분포하고, 이 고분군에 들어선 무덤은 모두 수십 만기를 헤아린다고 설명한다. 각 정치체는 지역마다 형식이 조금씩 다른 무덤을 만들었는데, 가야가 출범한 기원 전후부터 대가야가 멸망하는 562년까지 지속적으로 조성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에 세계유산에 오른 7개 고분군은 빙산의 일각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가야문화권은 영남이 중심이지만 호남에도 넓게 펼쳐져 있었다. 전북 동부에서 가야계 고분이 처음 확인된 것이 1974년 임실 금성리 유적이다. 1982년에는 남원 월산리에서 가야고분군이 발굴됐다. 가야의 범위를 처음으로 호남으로 확장시킨 이는 실학자 성호 이익(1681~ 1763)이다. 최근의 고고학적 조사 결과는 성호의 견해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남원에서만 월
  • [씨줄날줄] 노인 운전자/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노인 운전자/박현갑 논설위원

    지난 5월 충북 음성군에서 시속 120㎞로 달리던 승용차가 인도를 덮치면서 10대 두 명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 조사 결과 운전자는 70대로 음주운전 상태는 아니었고 차량 이상도 없었다. 고령 운전자 면허 박탈 등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센 사건이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운전자가 낸 사고가 사상 최고치를 보였다. 전년(3만 1841건)보다 8.8% 증가한 3만 4652건이었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나 부상자는 각각 6.2%, 10.2% 줄었지만 유독 노인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와 부상자는 3.7%, 10.2% 늘었다. 교통사고 감소와 별개로 그만큼 고령 운전자가 늘어난 탓이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등록 통계를 보면 개인차량 소유주 중 60대 이상이 30%를 넘은 상황이다. 운전면허 소지자도 최근 10년간 연평균 2.5% 증가한 가운데 65세 이상 면허 소지자는 11.2%나 증가했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는 2019년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치매검사 등 면허소지 기준을 강화했다. 하지만 고령자 교통
  • [씨줄날줄] 지하철 노선도/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지하철 노선도/이순녀 논설위원

    영국 BBC방송과 디자인뮤지엄은 2006년 공동으로 ‘위대한 영국 디자인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00년 이후 디자인된 작품 중에서 25개 후보를 골라 국민투표를 실시한 것. 영국을 상징하는 이층버스와 빨간 공중전화 부스, 월드와이드웹(WWW) 등이 후보에 올랐다. 21만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1위는 콩코드 여객기가 차지했다. 그런데 콩코드와의 접전 끝에 2위로 밀린 경쟁작이 더 눈길을 끌었다. 지하철 노선도였다. 디자인 강국인 영국의 국민이 지하철 노선도에 이처럼 애정과 자부심을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영국은 지하철 발상지다.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1863년 런던에서 개통했다. 이후 1차 세계대전 때 전 세계적으로 지하철 건설이 추진됐다. 지하철 종주국답게 노선도 디자인에서도 앞서갔다. 서울을 비롯해 도쿄, 뉴욕, 베를린, 리스본 등 세계 주요 도시 지하철 노선도의 얼개는 엇비슷하다. 이 원형을 제공한 것이 바로 런던의 지하철 노선도다. 노선을 색상으로 구분하고, 직선과 사선을 활용한 단순한 형태의 안내도가 뭐 그리 특별한가 싶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영국이 제시한 표준 디자인 덕분이다. 반전은
  • [씨줄날줄] 문화자유행동/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문화자유행동/서동철 논설위원

    우리 문화단체의 역사는 이념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출범한 것이 1945년 8월 18일이다. 처음에는 순수문화단체의 인상을 풍겨 문화예술의 구심점이 되는가 싶었지만 곧 좌익 성향을 드러낸다. 카프(KAPF)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핵심 단원들이 주도했으니 갈 길은 정해져 있었다. 이에 맞서 민족 진영은 1947년 2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문총)를 출범시킨다. 6·25 전쟁 기간 산하 단체를 망라한 비상국민선전대를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문총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해산됐지만,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예총)라는 이름으로 다시 집결해 오늘에 이른다. 예총이 집권당의 직능조직이었다는 사실은 잊혀져 가고 있다. 음악·국악·연극·무용·미술·건축·사진 등 산하 협회에 전국적 지방 조직까지 갖고 있으니 무시할 수 없었다. 영화배우 신영균과 중요무형문화재 태평무 보유자였던 무용가 강선영이 국회의원이 되고, 수필가 조경희가 제2정무장관에 오른 것도 예술적 성취와 관계없이 예총 회장이기 때문이었다.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민예총)이 출범한 것은 1988년이다. 1987년 이른바 6월항
  • [씨줄날줄] 서울판 D티켓/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서울판 D티켓/황비웅 논설위원

    지금 세계는 대중교통을 활용한 기후위기 대응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20년 우리나라도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2021년에는 2030년까지 수송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7.8%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최우선 수단이 바로 대중교통의 활성화다. 가장 앞서가고 있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지난해 6~8월 독일 전역 버스, 트램, 지하철, 에스반 열차 등 대중교통을 우리 돈 1만 3000원으로 한 달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9유로티켓’을 시범 운영했다. 약 5200만장을 판매했으며, 그 결과 대중교통 이용 25% 증가, 온실가스 180만t 저감(3개월), 교통혼잡 개선과 물가상승률 0.7% 감소 효과를 달성했다. 독일은 올 5월부터 월 7만원(49유로)으로 대중교통을 한 달간 무제한 이용하는 ‘도이칠란트(D)티켓’을 도입해 3개월 만에 1100만장을 판매했다. 교통복지와 기후위기 대응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독일의 성공 사례는 다른 나라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프랑스는 독일을 벤치마킹해 내년 여름 월간 철도패스를 출시할
  • [씨줄날줄] 하마평/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하마평/이동구 논설위원

    ‘사람의 사지와 머리카락,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요, 몸을 일으켜 도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 드날려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이 효도의 마지막이니라.’ 서애(西厓) 류성룡이 선조의 명을 받아 유가의 경전인 ‘효경’을 풀이한 효경언해(孝經諺解)의 한 구절이다. 입신양명의 잣대가 달라졌을 뿐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과거에는 높은 관직에 올라 나라에 큰 공을 세워야 이름을 더 높일 수 있었다면 요즘은 스포츠, 문화예술, 경제활동 등으로 다양해졌다. 다만 경쟁 또한 훨씬 치열해졌으니 입신양명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서양에서 말하는 노블레스오블리주는 왕족과 귀족 등 권한을 많이 가진 지도자들이 가져야 하는 도덕적 의무다. 권위주의 시대가 지나면서 우리 국민들도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오블리주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져 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권한을 가진 부류는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이다. 2000년 인사청문회법이 시행된 이후 고위공직자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인사청문회 본래의 목적은 국정 수행 능력과 자질 검증을 위한 것이지만 권력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서의 역할
  • [씨줄날줄] 위고비 신드롬/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위고비 신드롬/황비웅 논설위원

    비만은 현대사회에서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으로 통한다.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21세기 신종 유행병’으로 규정하며 질병으로 지정했다. 전 세계 비만 인구는 이미 10억명을 넘어섰다. 미국심장협회는 최근 조사에서 2035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만 또는 과체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암페타민을 1947년 최초의 비만치료제로 승인했다. 각성제로 먼저 주목받은 이 약은 뇌가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심혈관계 부작용 등으로 1979년 퇴출됐다. 1959년 미국에서 처음 승인된 펜터민은 단기 복용을 조건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살 빼는 약’으로 통하는 펜터민은 현재 국내에서도 비만치료제로 쉽게 처방받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경희대와 아주대 공동 연구팀이 2010~2019년 부작용 보고 사례(1만 3766건)를 분석한 결과 펜터민의 부작용이 가장 심각했다. 2014년에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주사제 형태의 ‘삭센다’(리라글루타이드)를 출시했다. 2017년 국내에서도 허가받아 ‘살 빠지는 주사’로 유명세를 타 국내 시장 점유율 1위가 됐다. 하지만 삭센다 역시 위 조사
  • [씨줄날줄] 벌초와 벌 주의보/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벌초와 벌 주의보/박현갑 논설위원

    벌초 시즌이 돌아왔다. 이달 말 추석 명절을 앞두고 돈을 주고 조상묘의 잡풀을 제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고향에 가서 벌초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벌초는 한식이나 추석 전에 한다. 부모, 조부모 등 직계 조상의 묘가 대상이다. 벌초에는 주의할 게 한둘이 아니다. 산속에 있는 산소일수록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잡목을 헤치며 가야 한다. 가는 도중 가시에 찔릴 수도 있고, 잡풀 속 뱀을 잘못 건드려 물릴 수도 있다. 예초기나 낫 준비는 기본이다. 보호안경에 군화 같은 목 있는 신발에다 벌레를 퇴치할 스프레이도 챙겨야 한다. 특히 예초기 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예초기를 돌리다 벌집을 잘못 건드려 벌에 쏘여 다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풀을 깎다가 돌이 튀면서 눈을 다치는 경우도 많다. 질병관리청에서 벌초객이나 가을 산행객들이 참고할 만한 벌쏘임 주의 요령을 내놨다. 응급실 손상환자 심층조사 결과 최근 5년간(2017~2021년) 5457건의 벌쏘임 사고로 151명이 입원하고, 24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발생 시기를 보면 벌초, 성묘, 단풍놀이 등으로 야외활동이 증가하는 9월(25.3%)이 가장 많았다. 벌에 쏘이지 않으려면 향수나 화장품 사용을 자제하고 어두운
  • [씨줄날줄] 도시 지하공간/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도시 지하공간/이순녀 논설위원

    ‘파리 아래에 또 다른 파리가 있다. 하수구의 파리. 거리, 교차로, 광장, 막다른 골목, 동맥, 도로가 있는 이곳은 진흙탕이고 인간의 모습은 전혀 없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묘사한 19세기 파리의 하수구 풍경이다. 파리 7구 레지스탕스광장 지하에 있는 ‘파리 하수도 박물관’은 총 2600㎞의 하수도 구간 중 500m를 개조해 만든 전문 박물관이다. 1975년 문을 연 박물관은 파리 하수구 역사와 처리 시설을 볼 수 있는 독특한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박물관이 생기기 훨씬 이전인 1867년부터 하수구 기술자들이 안내하는 투어가 인기를 끌었다니 지하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얼마나 큰지 가늠이 된다. 영국 런던 중심부의 ‘처칠 워룸’은 2차 세계대전 때 윈스턴 처칠이 독일군에 맞서 전시 내각을 이끌었던 장소다. 1938년에 지어진 지하 특수 방공호 건물이다. 총면적 1만 2000㎡에 회의실, 사격실, 숙소, 병원, 매점 등 대부분의 편의시설을 갖췄다. 1984년부터 일부 시설을 일반에 공개하다 2005년 처칠 서거 40주년에 맞춰 전쟁박물관으로 재개관했다. 이 밖에 독일, 러시아, 미국을 비롯한 세계 도시 곳곳에도 수많은
  • [씨줄날줄] 청년기본소득의 수명/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청년기본소득의 수명/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지금은 익숙한 용어가 됐으나 청년기본소득이 국내 처음 등장한 것은 불과 7년 전. 2016년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청년배당’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소득과 재산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만 24세 모든 청년에게 연 100만원을 주겠다니 논란이 뜨거웠다. 성남시는 학생교복과 산후조리비까지 3종 세트의 보편복지 사업을 거의 한꺼번에 선언했다. 지방자치단체 최초였다. 생활 필수 비용을 정책적으로 보장받는 성남 시민들은 ‘선택된 시민’으로 부러움을 샀다. 무엇보다 이 대표의 이름 석 자가 ‘보편복지’의 대명사로 떠올랐던 것이 그때다. 청년기본소득은 끊임없이 복지 포퓰리즘 구설을 몰고 다녔다. 직접 현금을 주려다 지역화폐로 분기별 25만원씩 지급한 것도 여론의 비판 때문이었다.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가 되면서 청년기본소득은 도 단위 사업으로 커졌다. 2019년부터 경기도가 70%, 시군이 30%를 각각 부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이런 우여곡절의 청년기본소득이 발상지인 성남시에서 존폐의 기로에 섰다. 국민의힘 주도의 성남시의회는 지난 7월 청년기본소득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사실상 그때부터 예고된 폐지 수순을 밟는 중이다. 성남시의 올해
  • [씨줄날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동구 논설위원

    잘 알려진 대로 역대 대통령들은 명절에 사회지도층 인사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선물을 보낸다. 위로와 격려, 화합의 의미가 담겨 있다. 물론 국정 협력과 지지를 바라는 속내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것을 선물로 선택할지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명절 선물 고르기가 엄청난 난제였다고 한다. 집권 첫해 추석에는 황태, 대추, 재래김, 멸치 등 지방 특산물을 계획했지만 ‘불가에 생물을 보내는 것은 결례’라는 내부 지적에 따라 다기세트로 급히 교체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종교 편향 논란으로 불교계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었으니 청와대 관계자들이 추석 선물을 고르는 데 얼마나 고민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보통의 직장인이나 서민들도 다를 게 없다. 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물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어느 분께 어떤 것을 선물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다. 한 대형 유통업체가 고객 600여명을 대상으로 추석에 주고받고 싶은 선물을 조사한 결과 상품권이 1위였다. 현금이나 마찬가지인 데다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
  • [씨줄날줄] 화엄사의 비건 버거/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화엄사의 비건 버거/서동철 논설위원

    인도 동북부의 비하르주 보드가야는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이룬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갠지즈강 지류인 네란자라강이 흐른다. 깨달음을 이루기 직전 싯다르타는 초인적인 고행으로 크게 야위었다. 뼈만 앙상한 부처의 고행상(苦行像)은 이때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싯다르타는 네란자라강에 들어가 목욕을 했는데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가까스로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때 소먹이는 소녀 수자타가 피골이 상접한 싯다르타의 모습을 보고 정성스럽게 우유죽을 쑤어 건넸다. 기력을 찾은 싯다르타는 정진을 이어 간 끝에 깨달음을 이룰 수 있었다. 수자타의 우유죽을 놓고 육식이냐 아니냐 입씨름이 없지 않았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소젖이 아닌 코코넛으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엇으로 만들었건 수자타의 우유죽이 부처가 깨달음을 이루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위대한 공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동남아시아 소승불교는 육식을 특별히 금하지 않지만 동북아시아의 대승불교는 가리는 음식이 많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혜공과 원효의 설화는 한국불교의 육식 금기가 최소한 1400년 이상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원효와 스승 혜공이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놀다가
  • [씨줄날줄] 간토대학살/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간토대학살/이순녀 논설위원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규모 7.9의 대지진이 일본 간토(關東) 지역을 강타했다. 도쿄와 요코하마 지역, 지바현, 가나가와현, 시즈오카현 등에서 10만명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삶의 터전은 순식간에 폐허가 됐다.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 사이로 수상한 소문이 퍼졌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와 약탈 등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였지만 일본 민간인 자경단은 적개심으로 조선인 색출과 학살에 혈안이 됐다. 불시검문으로 조선인임이 확인되면 가차 없이 처형했다. 이렇게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인은 6000명을 넘는다.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지 오늘로 100년이다. 일본 정부는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정해 간토대지진의 교훈을 되새긴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 같은 간토대학살의 진상 규명과 사과 요구에 대해선 회피와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관여하거나 방조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 30일 기자회견에서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
  • [씨줄날줄] 미국식 ‘반값 신도시’/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미국식 ‘반값 신도시’/박현갑 논설위원

    누구도 생각 못한 아이디어로 인류 발전에 기여한 사람은 혁신가나 지도자로 부를 만하다. 스마트폰을 만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비즈니스를 통해 돈도 벌고 사람들의 일상까지 바꿨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혁신가로 통한다. 잡스의 창의성에다 이를 사업화할 수 있는 기업 친화적 풍토, 교육 및 연구 분위기 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런 기업 친화 바람을 타고 토지 매입비만 1조원인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실리콘밸리의 거부들이 주도하는 이 도시는 샌프란시스코의 북동쪽 솔라노카운티에 들어설 예정이다. ‘플래너리 어소시에이츠’라는 토지개발업체가 6366만평을 8억 달러(약 1조원)에 사들였다. 링크드인 공동 창업자 레이드 호프먼, 스티브 잡스의 부인, 벤처캐피털 세쿼이아캐피털의 마이클 모리츠 전 회장 등이 돈을 냈다. 도시가 조성되면 직원들에게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할 것이라고 한다. 주민투표 등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부족한 사무공간과 집값 고통을 해결할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스페이스X 등 자신의 기업들이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테슬라 유토피아’라는 자체 신도시를 짓고 있다. 조립식
  • [씨줄날줄] 광화문 월대 서수상/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광화문 월대 서수상/이순녀 논설위원

    조선시대 궁궐과 사당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된 널찍한 단을 월대라고 한다. 경복궁 근정전, 종묘 정전, 성균관 명륜당 월대가 대표적이다. 의례를 거행할 때 참석자들이 대기하거나 악공이 음악을 연주하는 장소로 활용됐다. 궁궐 정문 앞에도 월대가 있었다. 문종 즉위년인 1452년 중국 사신을 맞기 위해 창덕궁 돈화문을 개축하면서 월대가 설치됐고, 창경궁과 경희궁 정문에도 국장 의례를 치르기 위한 월대가 조성됐다. 조선 전기 또는 늦어도 17세기 초의 일이다. 조선왕조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월대 축조에 대한 기록은 1866년(고종 3년) ‘경복궁 영건일기’에 나온다.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 모군이 궁 안에 쌓아 둔 잡토를 지고 왔는데, 실로 4만여 짐에 이르렀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 월대를 설치했다는 기록이다. 경복궁 창건 초기부터 광화문 월대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1431년(세종 13년) 예조판서 신상이 광화문에 월대를 세울 것을 청했고, 세종이 궁궐을 출입할 때 광화문 앞에서 산대놀이 등 각종 행사를 벌였다는 기록으로 미뤄 월대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광화문 월대는 1923년 일제가 전차선로를 설치하면
  • [씨줄날줄] 쪽잠/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쪽잠/이동구 논설위원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올여름 한낮 기온이 무려 44.6도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 스페인의 그라나다를 비롯해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에는 한낮 기온이 50도에 근접한 폭염이 이어졌다. 사실상 폭염이 한낮의 일상생활을 마비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올해 같은 폭염을 세계 각국은 이제 ‘뉴노멀’(New Normal)로 받아들이고 있다. 올 초 “지구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의 경고대로 폭염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데 공감하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는 ‘시에스타(낮잠) 제도’ 도입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독일 공중보건협회가 시에스타 도입을 제안하자 독일 정부도 “나쁜 제안이 아니다”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스페인 등 남유럽의 게으른 문화로 폄하했던 독일인들이 머지않아 한여름에 시에스타에 빠져들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시가 2014년 시에스타를 벤치마킹한 ‘쪽잠제도’를 시행했으나 현재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밤샘 근무자나 임산부 등이 부서장의 승인을 받아 이용할 수 있다. 최대 한 시간 동안 낮잠을 자는 대신 출근을 한 시간 일찍 하거나
  • [씨줄날줄] NO 20대존/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NO 20대존/황비웅 논설위원

    지난 6월 미국 CNN 방송이 한국의 식당과 카페에서 어린이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 정책을 조명해 화제가 됐다. 제주도에만 80곳 남짓 노키즈존이 있고 전국적으로 400곳 이상 운영되고 있다며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극복하기 위해 거액의 예산을 투입하는 한국 정부와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노키즈존 운영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응답이 71%에 이른다는 2021년 11월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도 인용했다. ‘노키즈존’이라는 용어가 한국에 처음 등장한 건 2014년 무렵이라고 한다. 업주에 대한 구속력이 없다 보니 10년째 찬반 논쟁 중이다. 업주의 고육지책이라는 주장과 아동 차별이라는 비판이 상존한다. 국가 인권위원회는 2017년 노키즈존 운영 식당에 대해 아동 차별이라며 시정권고를 내렸다. 그런데도 지난 10년 동안 노키즈존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제주연구원 사회복지연구센터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노키즈존 업장은 542곳에 달한다. 노키즈존이 늘어나면서 가뜩이나 낮은 출산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육아정책연구소에 의뢰해 노키즈존이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 분석을 위한 정부 차원의 첫 실태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 [씨줄날줄] 달 남극 탐사/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달 남극 탐사/이동구 논설위원

    ‘토이 스토리’는 1995년 개봉한 미국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으로 장난감인 카우보이 인형 우디와 우주복을 입은 버즈 라이트이어(버즈)가 주인공이다. 디즈니사는 전 세계에서 3억 62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린 데 이어 계속 속편을 내고 있다. 지구촌 어린이들에게 도전 의식을 비롯해 무한한 상상력과 꿈, 그리고 희망을 키워 주고 있다고 하겠다. 버즈는 1969년 7월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조종사 버즈 올드린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올드린은 닐 암스트롱보다 19분 늦게 인류 두 번째로 달 표면에 발을 디딘 우주인이지만 세상은 1등만 기억하는 법이어서 모든 영광은 암스트롱이 차지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 디즈니는 2등도 보자고 아이들에게 말한 것. 인도의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가 지난 23일 인류 최초로 달의 남극에 착륙했다. 며칠 전 우주 강국 러시아의 달 남극 탐사선 루나 25호는 착륙에 실패했다. 인도가 우주기술 경쟁에서 한발 앞선 것이다. 달의 남극에는 얼음이 존재해 식수나 산소 공급이 가능하다. 달 장기 체류의 길이 열리고 희귀광물 등 자원 확보도 가능해진다. 우주 강국들이 앞다퉈 달 탐사에 나서는 이유다.
  • [씨줄날줄] 민방위의 힘/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민방위의 힘/황비웅 논설위원

    2013년 4월 1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시에서 열린 117회 보스턴 마라톤 행사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우승자가 결승점을 지난 뒤 2시간여 지난 시간 결승점 부근에서 약 12초 간격을 두고 두 차례 폭탄이 폭발했다. 당시 폭발로 3명이 사망하고 260여명이 다쳤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본토에서 일어난 최악의 테러사건이었다. 하지만 보스턴 시민들은 침착하게 대응해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 냈다. 시민들은 지역이동통제 등 테러 대응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102시간 만에 범인을 잡아냈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었다. 보스턴시에서 수년간 실시된 정기적인 민방위훈련이 시당국과 경찰, 시민들 간의 유기적인 협조를 가능케 하는 데 한몫했다고 전해졌다. 대만은 1978년부터 빠짐없이 매년 중국의 공습에 대비한 민방위훈련인 ‘완안(萬安)46’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달 24일 수도 타이베이시를 포함한 북부 7개 현과 시에서 1시간 동안 완안연습이 실시됐다. 공습경보가 발령되면 모든 행인은 건물 지하 등으로 대피해야 하고, 차량은 멈춰야 한다. 지하철 승객도 역사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한국과 달리 대만은 대피 명령을 위반할 경우 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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