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 칼럼
  • [손성진 칼럼] 두 귀를 다 열어야 제대로 들린다

    [손성진 칼럼] 두 귀를 다 열어야 제대로 들린다

    국민 대다수가 속이 뻥 뚫릴 것 같은 느낌으로 새 정부를 보고 있다. ‘불통’의 아이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을 보고 전 국민은 환호했다. 비서관들과 허심탄회하게 정책을 논하고 정책과 인사의 배경을 국민 앞에 공개하는 모습은 당연한 것인데도 갓 딴 과일처럼 신선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대통령 주변에서 불통의 그림자가 하나둘씩 어른거린다. 요사이 가슴이 정말 답답한 사람들이 있다. 원자력 관계자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에 국책연구소 등의 관계자들은 할 말을 못 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새 정부 인사들은 그들과 아예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원전을 하지 않겠다고 한 마당에 무슨 대화가 필요하냐는 뜻일까. 전 정부의 적폐를 새 정부가 손보는 것은 그른 것을 바로잡는 개혁의 이름으로 국민의 공감을 얻는다. 4대강 사업의 전면 재감사도 그런 점에서 명분이 충분하다. 그러나 적폐 청산과 개혁이 국민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일 때는 매우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교육정책도 그중 하나다. 그러잖아도 조령모개하는 교육정책은 손바닥 뒤집히듯 단칼에 바뀌고 있다. 학부모나 학생들은 현기증을 느
  • [손성진 칼럼] 탈원자력, 탈석탄 그후

    [손성진 칼럼] 탈원자력, 탈석탄 그후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탈원자력, 탈석탄이다. 반핵,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이다. 원자력과 석탄의 매력은 무엇보다 발전 원가가 싸다는 데 있다. 원가 순위를 보면 대체로 원자력, 석탄, LNG, 태양광(대), 풍력(육상), 바이오매스, 석유 순이다. 그러나 러시아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듯 원전 사고의 피해는 원자폭탄 폭격에 버금가는 재앙이다. 발전 원가가 가장 싸지만 위험도 가장 큰 두 얼굴을 지닌 에너지가 원자력이다. 후쿠시마 원전이 쓰나미에 무력하게 붕괴되면서 원전에 대한 불신은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독일, 스위스, 대만 같은 국가들이 원전을 포기했다. 세계 최대의 원전 국가인 프랑스도 원전 비중을 줄일 계획이다. 우리도 같은 길을 걸으려 한다. 왜곡과 과장 논란 속에서도 40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원전 재난 영화 ‘판도라’도 반핵주의에 힘을 실어 줬다. 원전은 국가의 선택 문제이며 이념과도 결부돼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어느 나라에서나 반핵 시위는 격렬해졌다. ‘원전 제로’를 내걸고 당선된 진보 성향인 대만 차이잉원 총통은 2025년까지 전력 생산의 14%를 담당하는 원전 3기의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역시 탈원전을 공
  • [손성진 칼럼] ‘J노믹스’, 서민의 눈물을 닦아 줄까

    [손성진 칼럼] ‘J노믹스’, 서민의 눈물을 닦아 줄까

    10여년 전 백련산을 가끔 오르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집 근처를 지나다닌 적이 있다. 비탈진 산기슭의 주택가 맨 위쪽에 있는 K빌라다. 문 대통령은 경남 양산에도 주택이 있기는 하지만 시가 3억원이 채 안 되는 산비탈 빌라에 산 것에서 그의 서민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K빌라의 조금 아래쪽에는 안대희 전 대법관이 25년 동안 살았던 S아파트가 있다. 대검 중앙수사부장도 지내고 청렴한 검사라는 말도 들었던 안 전 대법관은 국무총리 후보자가 되었다가 다섯 달에 16억원을 번 고액 변호사 수임료 논란으로 사퇴한 바 있다. 재산 신고액만으로 보면 문 대통령은 서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에 대한 서민들의 기대가 지금만큼 큰 적이 없는 것 같다. 안보나 외교도 중요한 국정이겠지만 국민은 무엇보다 국민, 서민과 함께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그만큼 서민의 살림살이는 어렵고 먹고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가 어제 가장 먼저 문 대통령에게 “생존절벽에 내몰린 소상공인들의 눈물을 닦아 달라”고 성명을 낸 것은 절박감 속의 기대일 것이다. 10년이 넘는 장기 경제불황에 민생이 몹시 피폐해 있는 게 사실이다
  • [손성진 칼럼] 국민과 대통령

    [손성진 칼럼] 국민과 대통령

    정치의 발전은 국민 의식이 깨어남으로써 이루어지며 그 산물이 곧 민주주의다. 민주 국가에서 주인은 국민이며 주인이 잘하고 못함에 따라 국가의 흥망이 결정된다. 국민 개개인이 직접민주주의로 주권을 행사할 수도 없는 이상 선거에 의한 지도자 선출은 필수적인 과정이며 만약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결국은 국민의 책임이다. 즉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부메랑은 바로 국민에게 돌아온다.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6월 항쟁이나 촛불시위처럼 국민의 저항권으로 권력을 무너뜨리고 역사의 물길을 바꿀 수는 있지만 무력을 가진 권력에 대해 저항권을 언제라도 쉽게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권력의 근원적 속성을 악으로 규정할 때 민주 국가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선거권을 올바로 행사함으로써 ‘덜 악한 권력’을 선택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서구 국가들이 수백년에 걸쳐 이룬 민주주의를 겨우 70여년 만에 압축 달성한 한국의 국민 의식이 잘못된 선택으로 부메랑을 맞지 않을 만큼 수준 높은지는 우리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되새겨 봐야 한다. 경선에서 탈락한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지율이란 것은 바람과 같다”고 촌평했지만 건전한 유권자로서는 듣기 좋은 말이
  • [손성진 칼럼] 운명의 날, 분노 게이지를 낮추자

    [손성진 칼럼] 운명의 날, 분노 게이지를 낮추자

    운명과 명운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명운은 내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 운명은 바꾸고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운명의 날, 우리의 국운을 바꿀 내일을 향한 시곗바늘이 재깍재깍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다. 운명은 ‘촛불’이나 ‘태극기’,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다 같다. 더 큰 운명은 물론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이제 내일이면 그 운명이 결정된다. 마주 달려온 두 기관차가 충돌할 직전의 상황까지 와 있다. 과연 이 나라의 앞에는 어떤 운명이 펼쳐질 것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 손에 달린 게 운명이다. 증오에 찬 섬뜩한 악다구니부터 먼저 던져 버려야 한다. 엄동설한 곱은 손에 촛불과 태극기를 손에 손에 든 것은 누구라도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애국심의 발로임을 의심치 않는다. 민주 국가에서 다양성의 충돌은 인정된다. 그것은 나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토양으로 승화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양성이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내 생각만을 절대적 가치로 끌어올리고자 할 때 민주주의는 붕괴되고 만다. 독재주의로의 회귀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아름다운 별빛처럼 보였던 촛불도 때로는 화를 못 이긴 민초들의 횃불로 시커먼 연기를 내며 더 거대하
  • [손성진 칼럼] 꼭 나쁘게 볼 것만은 없는 트럼프 정책

    [손성진 칼럼] 꼭 나쁘게 볼 것만은 없는 트럼프 정책

    ‘트럼프 쇼크’에 전 세계가 떨고 있지만 미국민들의 속내는 각자가 다른 것 같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내가 지금껏 본 가장 준비되지 않은 정책”이라고 했고, 상·하원 의장은 미국판 촛불시위까지 벌인 반면에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57%가 반이민 행정명령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찬성파의 대부분은 트럼프를 당선시킨 ‘샤이 트럼프’들일 것이다. 대선 기간에 힐러리 클린턴을 지원했던 억만장자 투자자 워런 버핏은 트럼프 당선 후 주식을 14조원어치나 매수했다고 한다. 반발도 있지만 어쨌든 국민의 지지를 업은 트럼프의 공약 이행은 가히 전광석화식이다. 취임 열흘 만에 서명한 행정명령은 17건에 이른다. 미국의 안전과 번영을 최우선시하는 트럼프의 정책을 마주한 우리는 다가오는 태풍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할까.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최대 10만개의 미국 일자리를 잡아먹은 ‘일자리 킬러’라고 부르고 있다. 이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에 서명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공식화한 트럼프가 한·미 FTA를 걸고넘어질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트럼프 쇼크를 가장 크게 받은 접경 국가 멕시코나 환율조작국이라고
  • [손성진 칼럼] 책의 위기

    [손성진 칼럼] 책의 위기

    택시 기사들이 택시 안에 책을 갖고 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니라 프랑스 파리의 얘기다. 사르트르 같은 어려운 책도 그들은 읽는다. 책을 갖고 다니며 읽는 기사가 욕설을 하거나 승차 거부를 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발견하기가 ‘옷 벗고 춤추는 사람’보다 발견하기가 어려운 지경이 됐다. 20년 전만 해도 책이든 신문이든 인쇄된 활자 매체를 보는 사람들이 십중팔구였다. 지금은? 2015년 1인당 평균 독서 권수는 9.3권이란다. 2004년과 비교하면 33%나 줄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말초적인 인터넷 게임, 웹툰 따위다. 이런 조사도 있다. 대학생들은 5명 중 1명은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단다. 취업과 학업에 치여서 그럴 것이다. 그 대신에 하루 113분을 인터넷을 쓰는 데 할애한다. 독서의 질도 떨어진다. 마음의 양식(良識)에 보탬이 되는 인문학 서적은 거의 보지 않는다. 심심풀이로 만화책이나 월간지를 볼 뿐이다. 선진국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지만 우리는 심하다. 매일 또는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독서를 하는 ‘습관적 독서’ 인구의 비율이 2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 [손성진 칼럼] 이념의 시대에서 정의의 시대로

    [손성진 칼럼] 이념의 시대에서 정의의 시대로

    침묵하는 다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선거 때의 부동층처럼 그때그때 정착할 곳을 찾는 이념의 노마드들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촛불 민심은 이념에 무지한 그들이다. 그들이 정착하고 싶은 곳은 이념이 아니라 정의다. 저항하는 것은 박 대통령의 이념이 아니라 부정이다. 촛불집회의 주축은 평범한 시민이다. 불의를 바로잡고 싶은 장삼이사(張三李四), 우리의 이웃이다. 선량한 서민들이다. 그런데 6월 항쟁을 능가하는 피플 파워가 이념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촛불에 편승하고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그 순수성을 퇴색시켰다. 주최 측부터 순수성을 잃었다. 이적 단체까지 포함된 주최 측의 구성원 체계는 촛불을 이념에 물들게 한 빌미를 제공했다. 지난 10일 주최자들은 구속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석방하라는 외침을 집회 참가자들에게 요청했다. 일부 시민은 따라 했지만 다른 일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러 갔지 한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러 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촛불이 국회를 넘고 권력에 순종하는 법관의 권위를 넘는 것이 진짜 민주주의다.” 한 위원장이 2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자 민주노총은 이런 반응을 내놓았다. 폭력 시위를 주도
  • [손성진 칼럼] 좋은 대통령

    [손성진 칼럼] 좋은 대통령

    5년간 우루과이 대통령직을 수행한 호세 무히카는 작년 2월 퇴임 직전 지지율이 65%였다. 프로야구 선수가 은퇴기에 3할대 타율을 기록하는 것과 비교할 만한 높은 지지율은 청빈 때문이다. 그는 1987년형 폭스바겐 비틀 승용차, 트랙터 2대밖에 갖고 있지 않았고 퇴임식 후 허름한 농장으로 돌아갔다. 물론 청빈, 도덕성만으로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임기를 두 달 남겨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57%나 되는데 나흘간 41억원을 골프비용으로 써도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코 청빈하지 않은 오바마가 레임덕도 없이 인기를 유지한 이유는 경제적 업적 때문이다. ‘오마이 갓 대통령’ 미국 트럼프가 다우지수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가 망언을 쏟아내는 ‘괴물’에 대한 혐오를 능가한 것이다. 최고의 민주 선진국가에서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의심을 받는 파렴치한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도리어 국민의 기대를 받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국사(國事)를 총괄하고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 대통령에게 필요한 덕목은 수십, 수백 가지다. 장재찬 저 ‘참 좋은 대통령감’에 거론된 대통령의 자질은 도덕심, 정의감, 건전한 가치관, 청렴성, 절제,
  • [손성진 칼럼] 충신은 없는가

    [손성진 칼럼] 충신은 없는가

    조선을 이제 더 욕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도리어 배워야 한다. 폭정과 찬탈, 당쟁으로 얼룩진 허약한 왕정국가 조선이 그래도 600년 역사를 유지한 것은 직언하는 참모들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첨단 과학과 민주 정치의 시대에 참모들이라도 깨어 있었으면 눈 뜨고 못 볼 참담한 스캔들은 싹이 트지 못했을 것이다. 견제받지 않고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의 문무백관, 유생들에게는 언로(言路)가 틔어 있었다. 직언을 할 수 있는 언로가 뚫려 있었기에 부패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폭군의 집정기에도 충신들이 목이 달아날 각오를 하고 직언을 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제도적인 장치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3중 장치가 대간(臺諫), 감찰, 암행어사다(‘조선은 어떻게 부정부패를 막았을까’, 이성무). 대간은 관료를 감찰하고 탄핵하는 대관(臺官)과 국왕에게 간언을 하는 간관(諫官)을 합쳐 부른 말이다. 대관은 사헌부, 간관은 사간원 소속이다. 조선에는 왕에게 간언을 하며 왕권을 견제하는 삼사(三司)가 있었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다.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은 비서실장 격인 도승지와 좌·우 승지가 6조의 업무를 맡아 왕을 보필
  • [손성진 칼럼] 이기주의에 병들어 가는 사회

    [손성진 칼럼] 이기주의에 병들어 가는 사회

    심장마비 상태에 빠진 택시기사를 버려 두고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버린 승객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이기주의의 한 단편이다.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이기주의에 나라가 병들고 있다. 군중이 떠나간 곳이라면 으레 나뒹구는 쓰레기나 천년 문화유산에 낙서를 하는 행위쯤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몇 푼 이득을 보겠다고 주사기를 재사용해 간염을 퍼뜨리는 의사들이나 내부 정보를 빼내 주식을 공매도해 이득을 보는 세력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주의라는 점에서 악덕 중의 악덕이다. 택시기사를 버린 승객처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 있다.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다. 프랑스에서는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어도 자신에게 위험이 없는데도 도와주지 않는 자는 최고 5년의 징역이나 1만 5000프랑의 벌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인륜 도덕을 법으로 강제하는 세상은 이미 말세에 가깝다. 나, 내 가족밖에 모르는 한국인의 이기주의를 이시형 박사는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말한 ‘결핍 동기’로 풀이한다. 지독한 가난을 겪다 보니 채워지지 않으면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악착같이 해서 오직 나와 내
  • [손성진 칼럼] 이기주의에 병들어 가는 사회

    [손성진 칼럼] 이기주의에 병들어 가는 사회

    심장마비 상태에 빠진 택시기사를 버려 두고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버린 승객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이기주의의 한 단편이다.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이기주의에 나라가 병들고 있다. 군중이 떠나간 곳이라면 으레 나뒹구는 쓰레기나 천년 문화유산에 낙서를 하는 행위쯤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몇 푼 이득을 보겠다고 주사기를 재사용해 간염을 퍼뜨리는 의사들이나 내부 정보를 빼내 주식을 공매도해 이득을 보는 세력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주의라는 점에서 악덕 중의 악덕이다. 택시기사를 버린 승객처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 있다.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다. 프랑스에서는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어도 자신에게 위험이 없는데도 도와주지 않는 자는 최고 5년의 징역이나 1만 5000프랑의 벌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인륜 도덕을 법으로 강제하는 세상은 이미 말세에 가깝다. 나, 내 가족밖에 모르는 한국인의 이기주의를 이시형 박사는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말한 ‘결핍 동기’로 풀이한다. 지독한 가난을 겪다 보니 채워지지 않으면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악착같이 해서 오직 나와 내
  • [손성진 칼럼] 언론인의 윤리

    [손성진 칼럼] 언론인의 윤리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의 호화 여행 파문을 보고 가슴이 조금이라도 뜨끔했던 언론인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경력 20년이 넘는 중견 언론인이라면 누구라도 외유성 취재를 한두 번쯤 다녀온 경험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필자도 일선 기자 시절 여러 기자들과 함께 비행기, 호텔, 식사를 제공받으며 해외 취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기업체에서 일체의 취재경비를 제공하는 게 관행이었다. (김진태 의원의 폭로가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다른 점이라고 하면 송 전 주필의 경우 접대의 내용이 관행을 뛰어넘는 초호화판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고 더 과거의 일이라는 점 때문에 도덕적 면책을 받겠다는 생각은 없다. 앞서 밝힌 대로 많은 외유성 취재 관행이 외환위기 이전에 있었던 과거의 일이라면 송 전 주필의 경우는 언론 정화 과정을 몇 번은 더 거친 후인 2011년, 최근의 일이라는 점이 좀 놀랍다. 영화 ‘내부자들’을 본 사람들은 송 전 주필의 사례를 보고 “그런 일이 현실에서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그 영화를 보고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제작자를 탓했던 언론인들도 할 말을 잃게 됐다. 겉으로는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뒤로는 촌지를
  • [손성진 칼럼] 홍·진·우에서 곪아터진 검찰병

    [손성진 칼럼] 홍·진·우에서 곪아터진 검찰병

    “시험 한번 잘 쳐서 평생 잘 먹고 산다.” 검찰 고위직을 거쳐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경한 변호사는 가끔 이런 자족적(自足的)인 말을 하곤 했다. 몇 년 넘게 불철주야 공부를 해야 하지만 나흘에 걸쳐 치러지는 사법시험에 통과하기만 하면 그 열매가 얼마나 달콤한지 50년 법조인 생활 끝에 깨달았던 것이다. 비상한 두뇌와 각고의 노력이라는 인풋에 비해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아웃풋은 고려나 조선의 과거 급제보다 더 크다. 약관의 나이부터 ‘영감’ 소리를 들으며 죄의 면탈권, 심하게는 생명 박탈권을 행사하는 그들 법조인에게 좀 과장하면 세상은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다. 탄탄대로의 재조에서는 권력욕에 도취되기에 충분한 자리들이 보장돼 있고 재야로 나오면 퇴직의 보상책치고는 너무 거대한 금전이 기다린다. 뭘 해도 잃을 것이 없는 ‘꽃놀이패’를 쥔 그들이다. 임관하자마자 3급 공무원급이라는 칙사 대접을 해 준 것은 군부정권이었다. 권력 유지를 위해 또 다른 권력을 키웠던 게다. 최유정-홍만표-진경준-우병우로 이어지는 일련의 비리 의혹 사건은 이런 배경에서 잉태돼 자라던 악의 덩어리였다. 권력욕에 금전병이 결합한 이들 사례의 결과가 언젠가 폭발하듯 터질 것이라고 검찰 안팎에
  • [손성진 칼럼] 이념 아닌 이익을 좇은 영국, 우리는?

    [손성진 칼럼] 이념 아닌 이익을 좇은 영국, 우리는?

    이념 호사가들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해 왈가왈부하기가 몹시 껄끄러운 모양이다. 왜냐하면 브렉시트는 영국의 극우파와 좌파, 서민, 노동자가 손을 맞잡고 만들어 낸 희한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민자를 배척하는 인종차별적 극우파와 유럽 통합이라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좌파가 결과적으로 동상이몽의 합작을 했던 것이다. 정통 좌파로 불리는 영국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은 브렉시트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지만 보수당이나 노동당이나 모두 당론으로 잔류를 지지했다. 사정이 이러니 적어도 브렉시트를 놓고 일률적으로 이념적 재단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의 구분이 없다. 영국민들은 좌파, 우파가 아니라 잔류파, 탈퇴파로 구분할 수밖에 없다. 영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각자 영역에서의 이익이었다. 탈퇴로 결론이 나자 극우파와 좌파가(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며 서로 자신들이 승리를 주도했다고 우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국민들은 이념과는 크게 상관없다. 유럽의 통합으로 자신들의 삶이 피폐해졌다는, 어쩌면 단순한 생각에서 고립주의, 반세계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본디 세계화는 선진국들이 밀어붙였다.
  • [손성진 칼럼] ‘알파고’ 법조인 시대가 빨리 와야 한다

    [손성진 칼럼] ‘알파고’ 법조인 시대가 빨리 와야 한다

    홍만표 변호사를 수사하는 후배 검사들의 심정이 어떨지 참 궁금하다. 특별수사통으로 존경했던 선배가 1년에 100억원을 버는 변호사로 변신했을 때 선망의 대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언젠가 ‘대박 변호사’가 될 거라는 꿈을 가졌을 후배들이 선배의 거액 수임료를 수사하는 상황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변론이란 이름으로 상상도 못 할 거액이 오가는 이런 풍토에서 법이니 정의니 떠드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수임료의 일부가 판검사에게 흘러들어 가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들은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현직 판검사와 변호사는 소위 ‘전관예우’의 고리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퇴직해 변호사가 되면 또 같은 형태로 다른 후배들과 연결돼 도움을 주고받을 것이다. 홍 변호사와 나는 다르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 법조인이 몇이나 될까. 한때는 나도 정의의 편에서 섰다고 자부했을 판검사들이 종내 물욕에 사로잡혀 아등바등 수임료 강탈에 목을 매는 현실이 서민들에게 주는 건 절망뿐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를 일컫는 법조 삼륜은 서로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권력집단, 즉 카르텔이다. 고교와 대학 동문이란 학연과 재조 동료의 인연을 가진 이들은 한솥밥을 먹는 한 지붕 세
  • [손성진 칼럼] 행복지수의 상승곡선을 보고 싶다

    [손성진 칼럼] 행복지수의 상승곡선을 보고 싶다

    도대체 사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은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이런 논제를 꺼내는 이유는 한국의 행복지수가 늘 세계 중하위권이고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달 발표된 유엔의 행복지수 조사에서 한국은 150여개국 중 58위였다. 전년보다 11계단이나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는 27위다. 영국 기관의 조사에서는 우리가 100위권 밖이다. 우리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성적을 제일 중요시한다. 마찬가지로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돈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국가의 위치, 국민의 수준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지표는 국내총생산(GDP), 국민총소득(GNI)과 같은 계량하기 쉬운 경제적, 물질적 지표들이긴 하다. 결국 돈인 셈이다. 그러나 경제적,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풍요로운 국가의 행복지수가 낮고 빈곤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높은 예는 얼마든지 있다. 잘 알다시피 1인당 GDP가 세계 120위인 부탄의 행복지수 순위는 그보다 훨씬 높다. 사람, 즉 국민이 추구하는 가치가 부귀영화를 넘어 행복이
  • [손성진 칼럼] 배신의 시절, 감정의 정치

    [손성진 칼럼] 배신의 시절, 감정의 정치

    갓 서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 되어 그를 존경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인물이 조경태 의원이다. “노무현의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당을 옮긴다.” 조 의원이 이런 명분을 내세우며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바꾸었을 때 야당 당원이나 지지자들은 “이게 바로 ‘배신의 정치’”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게 정치의 속성이지만 하룻밤 자고 나면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외침이 들리는 듯 ‘배신’이 속출하는 요즘 정치판이다. 대통령과 각을 세우다 곤욕을 치르는 유승민 의원은 일찌감치 ‘배신자’의 멍에를 썼다. 하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일 뿐이다. 배신이 배신을 낳는 셈이다. “쓴소리가 해당 행위냐”고 반발한 조 의원도 당이 먼저 배신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배신당하고 보복당했으니 나도 그러겠다는데 어찌 보면 변절자라고 심하게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뜻에서 공천에서 탈락한 비박계 인사들의 탈당 사태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컷오프는 당사자들에겐 정치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당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무소속으로 홀로 맞서겠다는데 이의를 달기는 어렵다. 그러나 조 의원처럼 당적마저 바꾸는 행동은 건
  • [손성진 칼럼] 애증의 중국 사용법

    [손성진 칼럼] 애증의 중국 사용법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한·중 관계가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는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은 분노 이상의 감정이 솟구치게 한다. G2를 넘어 세계 최강국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오만방자함이랄까. 중국의 이런 무례한 언사는 물론 처음도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대만 총통 취임식에 참여하려던 우리 국회의원들에게 가지 말라는 압력을 넣기도 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사례가 있다. 2013년 중국 정부가 우리에게 ‘필리핀에 전투기를 수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베니그노 아키노 3세 필리핀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었다. 필리핀은 중국과 영토 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다. 중국은 왜 일개 외교관의 내정간섭성 발언을 우리에게 멋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시간이 흐르면 적이 동지가 되고 동지가 적이 되는 게 외교의 생리라지만 속국 취급했거나 적대적 관계였던 역사,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네티즌들은 ‘삼전도 굴욕’을 거론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추 대사의 발언이 보도된 24일은 바로 그 일이 있었던 날이다. 379년 전인 1637년이다. 조선의 인조는 청군 앞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 [손성진 칼럼] 유일호 경제팀에 바란다

    [손성진 칼럼] 유일호 경제팀에 바란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보면 측은지심부터 생긴다. 엄중한 경제 상황은 말할 것도 없지만 둘러싼 현실은 숨이 막힐 지경일 것이다. 우군도 없다. 일도 하기 전에 깎아내리기부터 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외생변수 탓이 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울한 소식들이 줄을 잇는다. 중국의 바오치(保七·7% 경제성장률 유지)가 무너졌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0.2% 포인트 낮췄다. 인위적인 정책으로 현실을 타개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웬만한 카드는 다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유 부총리가 ‘백병전’과 같은 군대 용어를 쓰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지만 뾰족한 묘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일 테다. 재정·통화 정책도 한계에 이른 상황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마당에 외국 자본의 이탈이 걱정돼 저금리를 고수할 수도 없다. 대규모 재정 확대도 선뜻 말을 꺼내기 어렵다. 양적완화 등 ‘아베노믹스’의 ‘화살 세 개’도 모두 과녁을 맞히지 못한 마당이다. ‘케인스식’은 이미 ‘낡은 정책’이 돼 버렸다. 성숙한 경제 체제에서는 인위성이 가미될수록 부작용이 비례해서 커진다. ‘한국판 뉴딜’이라는 4대강 사업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지 못한 채 논란만 부추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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