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정권 입맛따라 ‘오락가락’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정권 입맛따라 ‘오락가락’

입력 2015-10-09 14:14
수정 2015-10-0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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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유신 후 국정 전환…김대중 정부 들어 검정제 환원2010년엔 완전 검정체제…”혼란 여파 고스란히 학교에”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체제를 놓고 그동안 국정과 검인정제를 오간 이면에는 역사 해석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 진영의 치열한 주도권 대립이 자리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보수 진영은 한국사 검정 교과서 일부가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을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그렸다고 비판하며 정부가 하나의 역사를 보급해 학생들에게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줘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반면에 진보 진영은 다양한 역사해석에 따른 다원주의를 강조하면서 국정으로 가면 정권의 역사 전유 시도가 계속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번에 국정 전환을 놓고 여당이 총력 공세를 펴고, 야당은 장외투쟁까지 거론하면서 격돌하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세력 결집 등 정략적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그동안 역사 교과서 발행 체제는 한국 사회의 치열한 이념대립 과정에서 정권에 따라 국정과 검정제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 처음엔 검정제…전쟁 직후 중·고교 국사 교과서만 14종

해방후 미군정시기이던 1946∼1948년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교수요목’(일종의 교육과정 지침)이 발표됨으로써 일정한 체계를 갖춘 근대적 한국사 교육이 처음 시작됐다.

정부 수립 이후 1950년 6월 본격적인 교육과정 마련 작업이 시작됐지만,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 탓에 시행이 한동안 중단됐다. 전쟁 막바지인 1953년 교육과정 제정 작업이 재개됐고 이듬해 8월에는 제1차 교육과정이 공포됐다.

이때 역사는 공민·지리·도의교육과 함께 ‘사회생활과’로 편제됐다. 1956년 문교부의 사열(査閱·일종의 검정)을 통과한 국사 교과서는 중학교 10종, 고등학교 4종이었다.

국정과 검정을 정규 교과로 하고, 인정을 보조 교과서로 하는 현행 교과서 제도의 근간이 휴전 이후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5·16 군사정변 이후인 1963년 2월에는 반공정신, 경제적 효율성, 국민정신 등을 강조한 2차 교육과정이 제정돼 교과서의 종수를 제한하고 검인정 심사를 강화했다.

1967년 검정에 통과한 중학교 사회교과서(지리·역사·공민)는 7종이었고, 고교 국사 교과서는 11종이었다.

◇’10월 유신’ 국사 국정화…3∼6차 교육과정 국정 체제

교과서 발행제도가 크게 변한 것은 1973∼74년 3차 교육과정이 공표·시행된 이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10월 유신체제를 선포한 이후 1974년 중·고교 정책교과(사회·국사·도덕)를 국정으로 바꿨다.

정부는 교재내용의 조속한 개편, 학습과 경제적 부담 경감, 학력평가시 공동출제 가능, 물자절약 기여 등을 이유로 국정화를 단행했다.

학계는 유신체제의 국정 교과서가 독재를 미화하고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1974년 국정 국사 교과서는 10월 유신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1972년 10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헌법을 개정하고 10월 유신을 단행했다”고 적시했다.

4차(1981년)·5차(1987년)·6차(1992년) 교육과정에서도 국사 교과서는 1종 교과서로 국사편찬위원회가 개발했다.

1982년 국정으로 출간된 고교 국사 교과서는 신군부의 5공화국 출범에 대해 “이제 대한민국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안고 우리 민족의 무한한 힘과 능력을 세계사에 펼 기반을 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 완전 검정체제 7년 만에 ‘국정화’…정권 바뀌면 또 전환 가능

2003년부터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국사 교과서 발행에 또다시 변화가 있었다.

과거 정부 주도로 편찬해온 국사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시각을 주입한다는 비판에 제기됨에 따라 김대중 정부는 2002년 국사 교과서의 검인정제를 도입하기로 한다.

중학교와 고교 1학년 국사 교과서는 국정으로, 고교 2·3학년의 한국근현대사는 검정으로 발행하도록 발행 체제를 개편했다. 근현대사 교과서는 6종이 사용됐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였던 2010년 국사와 한국근현대사가 ‘한국사’로 합쳐지면서 국사 교과서는 완전 검정 체제로 돌아섰다.

완전검정체제에서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6종의 일부 서술에 대해 ‘좌편향’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교육부는 분단 책임이 남한에만 있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도발의 행위주체가 명시돼 있지 않다며 수정명령을 내렸다.

집필진은 이에 불복, 수정명령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교육부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는 정부의 수정명령이 모두 반영된 교과서가 사용되고 있다.

당정이 국사의 국정화 전환을 확정하면 중·고교 한국사는 2017년부터 국사편찬위가 편찬하는 국정 교과서 하나로 일원화된다.

이처럼 국사 교과서는 해방 직후 검정 체제를 거쳐 유신체제에서 국정으로 바뀌었다가 김대중 정부 들어 검정으로 전환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번에 국정으로 바뀐다고 해도 정권이 교체되면 언제든지 검정체제로 되돌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정치권을 필두로 한 보수·진보 세력이 국정과 검정의 우위를 서로 주장하며 오락가락하는 사이 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고스란히 그 혼란의 여파를 뒤집어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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