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때 국정교과서 첫 등장…DJ정부 국·검정 혼용 거쳐 MB때 완전검정제
과거 국정교과서, 10월 유신과 신군부 쿠데타 미화 전력박근혜정부 “검정교과서, 좌편향·대한민국 부정적 묘사” 국정화 강행
정부 수립 이후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 방식이 국정과 검·인정 제도를 왔다갔다 한 배경에는 한국근현대사 해석을 둘러싼 이념논쟁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검정으로 출발한 역사교과서가 국정으로 바뀐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10월 유신을 단행하면서다.
박정희·전두환 정부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는 유신과 신군부의 5공 정권 수립을 미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김대중 정부 들어 역사교과서는 검정제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2011년 이명박 정부에 완전검정제가 정착됐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혼이 비정상”이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기며 국정화를 집권 후반기의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 역사교과서는 다시 한 번 이념논쟁의 격랑에 휩싸이게 된다.
◇ 전쟁 뒤 검정제로 보급 시작…50년대 초 중고교 국사 교과서만 14종
국정교과서는 국가가 직접 교과서의 개발, 집필, 편집, 발행 등 전체 제작과정을 책임지는 형태다. 검·인정은 민간 출판사가 제작한다는 면에서 같지만, 검정은 국가의 검정(심의)을 거쳐 발행되고, 인정은 시·도교육청의 인정을 거쳐 발행되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국정과 검정을 정규 교과서로 하고 인정을 보조 교과서로 하는 현행 교과서 발행체계의 틀이 마련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다.
전후 복구과정에서 1954년 8월 제1차 교육과정이 공포됐는데 이때 역사는 공민·지리·도의 교육과 함께 ‘사회생활과’로 편제됐다.
1956년 문교부의 사열(査閱·일종의 검정)을 통과한 국사 교과서는 중학교 10종, 고교 4종이었다.
4·19 이후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박정희를 위시한 군부가 5·16 군사정변으로 제2공화국을 무너뜨린 이후 1963년 2월에는 반공·경제적 효율성·국민정신 등을 강조한 2차 교육과정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교과서의 종수가 제한되고 검·인정 심사절차가 강화됐다.
1967년 검정에 통과한 중학교 사회교과서(지리·역사·공민)는 7종이었고, 고교 국사 교과서는 11종이었다.
◇ 10월 유신 이후 국정교과서로 전환…“유신·신군부 통치 미화” 지적
이런 검·인정 발행제도가 무너진 것은 1973∼1974년 3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다.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헌법을 어기면서까지 1972년 유신체제를 선포한 뒤 제정된 3차 교육과정에 따라 1974년 중·고교 정책교과(사회·국사·도덕)는 국정으로 바뀌었다.
물자절약, 경제적 부담 경감, 학력평가 시 공동출제 가능 등이 국정화의 표면적 이유로 제시됐다.
하지만 당시 국정교과서는 정치적·헌법적 정당성이 결여된 유신체제를 미화하고 독재와 철권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권의 홍보수단이었다는 것이 학계와 시민사회 일반적인 평가다.
유신 직후 국정 국사 교과서는 “정부는 1972년 10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헌법을 개정하고 10월 유신을 단행했다”고 썼다.
4차(1981년)·5차(1987년)·6차(1992년) 교육과정에서도 국사 교과서는 국정교과서 하나만 편찬됐다. 교과서 개발과 집필, 편집 등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총괄했다.
1982년 고교 국사 교과서(국정)는 신군부의 5공화국 출범을 “이제 대한민국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안고 우리 민족의 무한한 힘과 능력을 세계사에 펼 기반을 다지고 있다”고 칭송했다.
이렇게 국정 역사교과서들이 유신체제와 12·12 쿠데타 등 헌정을 유린한 사건들을 미화한 전력은 현재까지도 국정화 반대의 주요 논거로 제시되고 있다.
◇ DJ때 검정제 전환 시작, MB때 완전검정제로…박근혜 정부 “다시 국정으로”
2003년부터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국사 교과서 발행에 또다시 변화가 있었다.
정부 주도로 편찬해온 국사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시각을 주입한다는 비판이 일자 김대중 정부는 2002년 국사 교과서의 검·인정제 도입을 결정한다.
김대중 정부는 중학교와 고교 1학년 국사 교과서는 국정으로, 고교 2·3학년 한국근현대사는 검정으로 발행하도록 했다. 이때 근현대사 교과서는 6종이 사용됐다.
이후 국사와 한국근현대사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10년 ‘한국사’로 통합되면서 지금의 완전검정 체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기존 검정교과서들이 대한민국 건국과 이후 발전과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많이 하고 ‘좌편향’됐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평가였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분단 책임이 남한에만 있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도발의 행위주체가 명시돼 있지 않다며 검정교과서들에 수정명령을 내렸고, 현재는 정부의 수정명령이 모두 반영된 검정교과서들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수정된 검정교과서들로는 부족하다면서 국정화를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하나의 역사를 보급해 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줘야 한다’는 논리다.
박 대통령은 작년 11월 국무회의에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를 통해 ‘올바른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에 중도·진보 진영은 다양한 역사해석에 따른 다원주의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역사를 가르치며 다양한 가치와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 검·인정제나 자유발행제가 민주주의에 훨씬 적합하다는 제도라는 것이다.
실제로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 가운데 국정교과서 제도를 채택한 나라는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가운데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국가는 터키, 그리스, 아이슬란드 등 3곳뿐이다.
이에 따라 북한 등 정치적 자유가 없는 나라들에서나 채택하는 국정교과서 제도를 밀어붙이는 것은 오히려 국격을 해하는 일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