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후보 못 바꾸는 TV토론… 유권자 ‘확증편향’만 커진다

지지후보 못 바꾸는 TV토론… 유권자 ‘확증편향’만 커진다

명희진 기자
명희진 기자
입력 2017-04-24 22:46
수정 2017-04-2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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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없다” 58% “더 지지” 26%

유세·퍼포먼스 캠페인 효과 미미… “저비용 고효율 선거방식 고민을”

“어제(23일)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가 가장 토론을 잘했습니다. 전에는 주저주저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카리스마 있게 토론을 주도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문 후보를 좋게 지켜봐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요.” -택시운전기사 박모(59)씨

“역시 유승민 후보가 차분하고 똑똑해요. 어제 TV토론에서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질문하고 답하면서 토론을 주도했잖아요. 유 후보가 괜찮은 사람인데 왜 지지율이 안 오르는지 답답합니다. ” -회사원 최모(30·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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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당 대선후보 5명(왼쪽부터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이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여했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주요 정당 대선후보 5명(왼쪽부터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이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여했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TV토론은 못 봤는데 뽑을 사람은 다 정해져 있는 것 아닙니까. 네거티브 공세나 오가고 수준이 너무 떨어집니다. 안철수 후보가 이번 토론을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말보단 그 사람이 살아온 삶으로 증명한 것들을 봐야 합니다.”-자영업자 나모(46)씨

24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만난 시민들은 지난 2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3차 TV토론을 지켜본 소감을 묻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가 최고였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지지 후보의 토론에 실망했더라도 지지를 철회할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TV토론이나 선거운동이 유권자의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토론을 통해 드러나는 후보자의 태도나 비전, 정책으로 지지 후보를 결정하기보다 이미 마음속에 정해 둔 후보에게 유리한 사실을 찾는 데 집중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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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응답자 1021명)에 따르면 지난 19일 2차 TV토론 결과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답한 이들은 13.8%에 불과했다. 57.6%는 변화가 없다고 했고 지지 후보를 더 지지하게 됐다는 경우가 26%였다.

TV토론을 잘한 후보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는 심상정 후보(21.9%), 유승민(21.5%) 후보, 문재인 후보(15%), 안철수 후보(11.1%), 홍준표 후보(6.5%) 순이었다. 토론 이후 심 후보와 유 후보, 홍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했고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떨어졌으나 등락 폭이 미미해 TV토론 내용과 지지율 간에 의미 있는 상관관계를 찾기는 힘들었다.

지난 13일 있었던 1차 토론회를 두고 리얼미터(14일 MBN·매일경제·CBS 의뢰)가 조사한 결과도 비슷했다. 토론을 잘한 후보에 대한 답변은 문 후보(33.7%), 안 후보(21.7%), 심 후보(12.2%), 유 후보(11.8%), 홍 후보(9.6%) 순이었지만 심 후보, 안 후보, 유 후보의 지지율은 다소 올랐고 문 후보는 44.8%(1위)를 그대로 유지했으며 안 후보는 36.5%에서 31.3%로 오히려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TV토론이 유권자들의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데 이용될 뿐 정책선거를 유도하는 기제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경선 정치평론가는 “이미 지지자를 정한 유권자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확증편향의 프레임 속에서 TV토론을 보는 시각이 많다”며 “부동층에 다소 영향을 미치겠지만 이 경우에도 수많은 요소가 종합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TV토론은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창열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선 토론은 학술 토론이 아니므로 논리성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심 후보가 토론을 잘해도 유권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다르면 ‘토론은 잘하지만 그 생각에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하게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선거 유세나 길거리 퍼포먼스, 종이 홍보물 등 선거 캠페인의 효과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미미하다고 지적하고 그 이유를 강한 ‘확증편향’으로 봤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유세 한 번에 몇십만명이 모이기도 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다양한 상황에서 요즘은 기존 선거 캠페인이 별 효과가 없다”며 “저비용 고효율의 선거 방식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대선 캠페인 비용은 홍 후보가 약 500억원으로 가장 많고 문 후보(약 470억원), 안 후보(450억원), 유 후보(약 90억원), 심 후보(약 50억원) 순이다.

이런 확증편향 속에서 ‘비전과 능력이 중시되는 정책 선거’를 치를 방법은 없을까. 서 평론가는 “확증편향은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심리적인 사회 현상일 뿐”이라며 “정책 선거로 가려면 각 정당이 확실한 지지층을 기반으로 정체성이 분명한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비교적 선거 규모가 작고 선거 기간도 짧은 데다 제한이 많아 공약 위주의 홍보를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홍국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방송이나 광고를 많이 활용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공직선거법은 대선에서 신문 70회, TV 30회 정도로 강한 제한을 두고 있다”며 “이 때문에 비용은 안 들고 효과는 큰 네거티브 전략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재훈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자체 평가단을 구성해 실시간으로 공약이나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팩트체크를 진행한다”며 “우리도 최근 들어 조금씩 팩트체크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후보들이 사용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제대로 검증하려면 아직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2017-04-2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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