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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1㎝의 권력/박홍기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1㎝의 권력/박홍기 수석논설위원

    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헌정 사상 최초의 보궐선거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5개월, 헌법재판소가 파면을 결정한 지 꼭 60일 만에 치러졌다. 짧고도 길었다. 지난해 10월 29일 광장에 촛불이 처음 켜졌을 때부터다. 차디찬 겨울도 견디고 따스한 봄을 넘기며 여름의 기운을 맞닥뜨리고서야 마무리됐다. 사철을 다 겪은 듯하다. 투표용지는 가로 10㎝, 세로 28.5㎝다. 역대 가장 길다. 용지에는 15명의 후보 이름이 적혀 있다. 가장 많다. 후보들은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국민의 승리를 장담할, 보수의 새 희망을 키울, 노동이 당당한 나라로 다질 적임자임을 자임했다. 공약들도 실현 가능성만 담보됐다면 나라의 미래와 안녕을 위해 소중한 것들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촛불에 둘러싸여 있었든, 단 하나의 촛불만이 비췄든, 고개를 들고 소리쳤든,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든, 높은 곳에 살든 낮은 곳에 살든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똑같이 갖는 한 칸, 바로 기표란이다. 가로 1.5㎝, 세로 1㎝의 작은 공간이다. 전체 선거인 4247만 9710명이 가진 ‘1㎝의 권력’이다. 기표란이 17, 18대 대선 때에 비해 줄었다
  • [씨줄날줄] ‘반려나무’ 들이는 날/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반려나무’ 들이는 날/박건승 논설위원

    장 지오노의 단편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이 60여년 전 미국에서 처음 출판됐을 때 제목은 ‘희망을 심고 행복을 가꾼 사람’이었다. 알프스 여행길의 한 젊은이가 폐허가 된 마을에서 3년째 도토리나무를 심는 양치기 노인을 만난다. 아내와 아들을 잃고 외떨어진 곳에 들어와 황무지에 나무를 심는 노인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10년 뒤 다시 찾았을 때 그 마을은 더는 황무지가 아니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고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제야 그 옛날 노인이 심은 것은 도토리나무가 아닌 희망이었음을 깨닫는다. 우리 조상은 딸을 낳으면 딸 몫으로 울 밑에 벽오동나무를 심었다. 딸이 혼례 치를 날을 받으면 십수 년 자란 나무를 잘라 농짝이나 반닫이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었다. 오동나무에 둥지 트는 습성을 가진 봉황이 집 안에 깃들라는 희망과 바람도 담았을 것이다. 요즘 ‘반려나무’ 입양 움직임이 국내에서도 활발하다. ‘반려’가 동물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관상용이나 조경용이 아니다. 반려견처럼 생을 함께하며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동반자다. 꼭 집 안에 들이지 않고 집 밖 공원에 사는 나무를 입양하기도 한다. 열흘여 뒤 개장하는 ‘서울로7017’(옛 서울
  • [씨줄날줄] 영부인 관상(觀相)/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영부인 관상(觀相)/최광숙 논설위원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서 ‘대세론’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자 부인 권양숙 여사 관상 얘기가 나왔다. 복이 들어오면 절대 밖으로 새지 않는 상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의 당선은 권 여사 덕이라는 것이다. 5년 뒤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좋은 관상이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대통령은 선출된 권력이지만 영부인은 그렇지 않다. 남편을 잘 만나 청와대 안주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상 보는 이들은 본인의 관상도 좋아야 하지만 부인을 잘 만나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의 농담이 같은 맥락이다. 빌과 힐러리가 주유소에 들렀다. 놀랍게도 주유소 사장이 힐러리의 옛 애인이었다. 빌이 “당신 결혼 잘해 영부인이 됐잖아”라고 말했다. 이에 힐러리는 “내가 저 사람(주유소 사장)과 결혼했다면 저이가 대통령 됐을걸”이라고 대꾸했다. 결혼 전부터 빌을 ‘대통령이 될 사람’으로 소개했던 힐러리만큼이나 정치적 야망이 컸던 미국 퍼스트레이디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부인 메리다. 그녀는 처녀 때부터 백악관에서 살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링컨은 거기에 부합했기에 남편으로 선택됐다. 메리는
  • [씨줄날줄] 봄 운동회와 미세먼지/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봄 운동회와 미세먼지/황수정 논설위원

    중년을 넘긴 나이라면 이맘때 초등학교 운동회의 기억이 새로울 듯하다. 별다른 이벤트가 없다 보니 봄, 가을 열리는 학교 운동회는 동네잔치였다. 이즈음의 봄 운동회는 ‘소(小) 운동회’로 곧잘 불렸다. 시골 마을에서는 학부모가 아니더라도 근동의 사람들이 다 나와서 이어달리기며, 줄다리기며 이런저런 대항전을 열었다. 전날 저녁상을 일찍 물리면 그늘이 제일 푸진 나무 밑에 돗자리를 슬쩍 펴놓고 오기도 했던 것 같다. 운동회 전날 밤잠을 설치는 것은 아이들 몫. 느닷없는 봄비에 운동회가 망쳐질까 봐 새벽잠을 깨워 학교 담벼락 너머를 조마조마하게 살폈다. 만국기는 여러 가지로 그날의 징표였다. 운동장 가득 매달렸던 만국기가 새벽에도 그대로면 운동회는 이상 무. 학교 사택에 살고 있는 선생님이 바쁘게 만국기를 걷어내고 있다면 그날 운동회는 없던 일. 쩨쩨하게 흩날리는 이슬비, 시꺼먼 구름장이 야속해서 하늘을 째려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서로 꿰고 살았던, 빛바랜 저편의 이야기가 됐다. 왜 아니겠나. 다른 사람들의 운동회 기억이 궁금해 인터넷에 ‘봄 운동회 추억’이라고 검색해 봤다. 난데없는 추천 검색어가 뒤통수를 친다. ‘봄 운동화 추천’
  • [씨줄날줄] 취업용 정장/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취업용 정장/황성기 논설위원

    얼마 전 서울신문사의 신입사원들이 회사 각 부서를 돌며 인사를 다닌다고 논설위원실까지 왔다. 놀란 것이 남녀 불문하고 검은색 혹은 짙은 청색 정장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디선가 본 낯익은 풍경이었는데, 기억을 해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쿄에서 봤던 것이다. 일본은 회계연도 시작이 4월이라 신입사원 입사도 이때 몰려 있다. 퇴근 시간에 삼삼오오 검은색 정장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무리들이 있다면 그들은 거의 100% 신입사원들이다. 이들이 입는 검은색 정장을 ‘리쿠르트 슈트’라 부른다. 한국에서도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리쿠르트 슈트와 관련한 언급이 보이기 시작한다. 경향신문 9월 14일자 기사. ‘고용시장 활기에 마케팅 강화, 면접생 필수품 매출 20~30% 신장’이란 제목에 “의류 업체들은 리쿠르트 슈트(Recruit Suit)란 이름으로 예비 취업생 전용 정장을 앞다퉈 쏟아 내놓고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는 내용이다. 일본에서 취업용 정장을 뜻하는 리쿠르트 슈트란 말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이전까지 취업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은 학생복을 입고 기업을 돌아다녔다. 1976년 대학 소비생활협동조합이 대형 백화점과 함께
  • [씨줄날줄] 삼성전자의 인텔 ‘추월’/최용규 논설위원

    [씨줄날줄] 삼성전자의 인텔 ‘추월’/최용규 논설위원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불린다. TV와 컴퓨터, 휴대전화 등 완제품을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이다. 반도체는 IT 제품의 두뇌와 같다. 외관(디자인)이 제아무리 훌륭해도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반도체를 지배하는 자가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키를 쥐게 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수십년간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던 인텔을 밀어내고 시장점유율 세계 1위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인 IC인사이츠는 올해 2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액은 149억 4000만 달러(약 16조 9000억원)로 인텔의 매출액(144억 달러)을 처음으로 앞지를 것이라고 지난 2일 밝혔다. IC인사이츠의 이 같은 전망은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현재 슈퍼 호황을 맞고 있기 때문에 서너 달 뒤면 사실로 드러날 것이다. 하반기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한 연간 기준으로도 인텔을 넘어설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인텔 추월은 그 자체가 반도체 업계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인텔은 아이오와 벌링턴 출신의 천재 로버트 노이스(9
  • [씨줄날줄] 세비 반납할 의원 28명/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세비 반납할 의원 28명/박건승 논설위원

    “국민 여러분, 이 광고를 1년 동안 보관해 주세요.”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한 중앙 일간지의 전면광고는 이렇게 시작했다.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 48명 명의의 이른바 ‘대한민국과의 계약’이란 광고다. “우리는 본 계약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회복하고 뛰는 국회, 헌신하는 국회로의 전환을 시작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한 5대 개혁 과제를 당장 시작하여 1년 안에 법안 발의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간 좀체 보기 어려웠던 ‘용기 있는’ 광고였다. 내용과 형식이 진취적이었다. 1년 뒤를 공개적으로 담보해 의원직에 도전하겠다니 가상했다. 그 계약이 1년 뒤 어떻게 돼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발동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 광고를 버리지 않고 한 해 넘게 보관했다. 서명한 의원 후보들 면면도 범상치 않았다. 대표 서명자인 김무성 당시 대표 최고위원 겸 선대위 공동위원장, 원유철 원내 대표, 현 정부 최대 실세로 꼽혔던 최경환 의원, 총선공약개발단 자문위원장인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 이들과 함께 당선한 인사만 해도 28명이나 된다. 이들은 ‘갑을개혁’과 상속자의 나라에서 혁신가의 나라로 만들기 위한 ‘일자리 규제개혁
  • [씨줄날줄] 트럼프와 백악관 기자단 만찬/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트럼프와 백악관 기자단 만찬/최광숙 논설위원

    2016년 4월 임기 중 마지막 백악관 출입기자단(WHCA) 만찬 연설에서 보여 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영락없는 개그맨이었다.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해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가 외교정책 경험이 없다고 걱정한다죠? 하지만 트럼프는 수년 동안 숱한 세계 지도자들을 만났잖아요.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티나?.” 백악관 출입기자단이 매년 봄 주최하는 만찬은 미 정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행사 중 하나다. 하이라이트는 대통령의 연설이다. 대통령은 유머와 풍자가 넘치는 연설로 언론과의 소통에 적극 나선다. 때로는 대통령 스스로 ‘셀프 디스’로 망가지면서까지 웃음을 선사한다. 이 만찬은 대통령과 대통령을 비판하는 날 선 기자들이 이날 하루만이라도 ‘친구’로 지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1921년 캘빈 클리지 전 대통령이 처음 만찬에 참석한 이래 지금은 정치인과 언론인, 할리우드 배우 등 각계 저명 인사까지 참석하는 전통 있는 행사가 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2차대전 기간 동안 다른 만찬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WHCA 만찬만은 참석했다. 백인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다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여기자들의 참석을 허
  • [씨줄날줄] 사드와 美 ‘군산정 복합체’/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드와 美 ‘군산정 복합체’/오일만 논설위원

    군산(軍産)복합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1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퇴임 연설에서다. 그는 “지금 미국은 방대한 군사체계와 군수산업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군산복합체란 방위산업 성장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세력으로 국방부, 군수업체, 과학·공학자 등이 포함된다. 미·소 화해를 추진했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 배후에 군산복합체가 있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50여년이 지나면서 군산복합체는 미 정치권까지 포함해 ‘군산정(軍産政)복합체’로 진화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50개주(州) 중 48개주에 방산업체 공장들이 퍼져 있다. 록히드마틴이나 보잉사 등 대표적 방위산업체들이 의도적으로 분산 배치한 것이다. 최대 고객인 미 국방부의 무기 구입 시 의회 승인이 필요한 점을 염두에 둔 조치다. 미 정치자금 공개단체인 오픈시크릿닷컴에 따르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은 2015년의 경우 총 535명의 상·하원 의원중 425명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국제적으로 무기 시장은 냉전 이후 최대 호황이다. 지역내 갈등과 전쟁으로 돈을 보는 구조 탓이다. 미국의 ‘테러 전쟁’ 이
  • [씨줄날줄] 의문의 北 난수 방송/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의문의 北 난수 방송/황성기 논설위원

    1970년대 단파 방송이 잡히던 라디오가 집에 한 대씩은 있던 시절 섬뜩한 말투로 영문을 알 수 없는 숫자를 읽어 내려가는 북한 방송을 들었던 사람이 적잖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남파 간첩 혹은 남에 뿌리내린 고정 간첩들에게 보내는 암호화한 지령이라는 사실쯤은 당시의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들어선 안 된다”는 어른들의 훈계에도 우연히 잡힌 난수 방송을 몰래 듣다 보면 왠지 범죄를 저지르는 듯한 죄책감이 든 것은 박정희 시대 반공교육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지금부터 27호 탐사대원들을 위한 원격교육대학 정보기술 기초 복습 과제를 알려드리겠다. 823페이지 69번, 467페이지 92번, 957페이지 100번….” 어제 오전 1시 15분 지령용으로 추정되는 난수(亂數) 방송 내용이다. 북한 평양방송이 송출한 것으로 아나운서가 6분을 들여 같은 내용을 두 번 읽었다. 이날 방송은 지난 14일 것과 같은데 동일한 내용을 두 차례 내보낸 전례가 있다. 북한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난수 방송을 중단했으나 16년 만인 지난해 6월 24일 재개했다. 올 들어 14번째, 지난해까지 합치면 총 34차례 난수 방송을 내보냈다. 북한이 왜 난수 방송
  • [씨줄날줄] 北의 인질 외교/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北의 인질 외교/최광숙 논설위원

    2009년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 길에 오르는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에게 신신당부한 것은 “웃지 마세요”였다. 당시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 여기자 2명을 구출하라는 특별 임무를 받은 빌이 웃겨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게 힐러리의 판단이었다. 빌은 웃지 않는 ‘기술’을 열심히 연습했다. 실제로 평양 체류 동안 찍힌 빌의 사진은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고 무표정하게 굳어 있다. 그의 뛰어난 말솜씨도, 부드러운 미소도 철저하게 억누른 모습이었다. 이런 계산된 행동 끝에 김정일과의 면담 후 그는 여기자들을 구출했다. 북한은 불리한 정세를 모면하기 위해 외국인을 붙잡아 협상 카드로 이용하는 ‘인질 외교’를 펴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3월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말레이시아와의 갈등이 극에 이르자 북은 말레이 국민 9명을 인질로 삼았다. 북에 강경한 태도이던 말레이 정부도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보니 결국 북의 요구대로 김정남 시신을 북에 보냈다. 특히 북한은 미국과 초강경 대치 국면일 때 미국인들을 억류해 대미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꼼수를 부린다. 북한은 지난 2013년에도 2년여간 북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를 내세워 미국과
  • [씨줄날줄] 용산 수복

    [씨줄날줄] 용산 수복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 들어가 ‘용산’을 치면 순종(재위 1907~1910) 시대에 특히 많은 항목이 검색된다. 순종이 직접 조선총독 관저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하거나, 일본군사령부와 헌병사령부, 그리고 연병장 행사에 금일봉을 보낸 내용이다. 일본 거류민을 위한 소방조(消防條)에 술안주값을 보낸 기록도 남아 있다. 총독 관저라면 한강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용산 언덕 위에 있던 저택을 말한다. 일본군사령관 관저로 1909년 지었으나, 이듬해 조선총독의 제2 관저로 용도가 변경됐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화려한 서양식 건물이었지만, 도심에서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연회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서해안 지역의 물산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서강에 집결했다면, 경상도와 강원도, 충청도 동부, 경기도 동북부의 물산은 남한강을 타고 내려와 용산에 모였다. 조선왕조는 초기부터 조운선이 실어온 세곡(稅穀)과 군량을 비롯한 군수물자를 보관하는 군자감(軍資監)의 분관인 강감(江監)을 오늘날의 원효로 3가에 설치했다. 군자감고(庫)는 임진왜란 당시 일대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군이 물러간 이후에도 4만~5만섬의 곡식이 남아 있었을 만큼 규모가 컸다고 한다. 용산은 도성이 지척인 데
  • [씨줄날줄] 인터넷 로또 복권/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인터넷 로또 복권/박건승 논설위원

    좀처럼 잡기 어려운 기회를 뜻하는 ‘천재일우’(千載一遇)를 굳이 확률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학계에선 10의 47제곱분의1 정도로 추정한다. 예로부터 중국에선 큰 수의 단위를 ‘억, 조,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재(載)’로 분류했다. 재는 가장 큰 수의 단위로 10의 44제곱쯤 된다고 한다. 천재(千載)는 재에 1000을 곱한 것이니 10의 47제곱이 된다는 것이다. 정확히 계산하긴 어렵지만, 로또 복권 1등 당첨 확률보다 훨씬 낮다. 로또 1등 행운의 확률은 814만 5060분의1, 2등 확률은 135만 7500분의1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한 사람이 번개 맞을 확률은 100만분의1. 로또 1등 당첨 확률보다 8배 높다. 우리나라 복권의 효시를 계(契) 문화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산통계(算筒契)다. 산통은 숫자를 계산하기 위해 만든 막대기를 담았던 수통(數筒)으로 구한 말까지 쓰였다. 산통계는 통속에 계원 이름을 적은 알을 계원 수대로 넣은 뒤 통을 돌리다가 나오는 알의 주인이 당첨되면 곗돈에 일정한 할증금을 받는 방식이다. ‘산통 깨다’는 산통계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도 있다. 복권에 열광하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한탕’에
  • [씨줄날줄] 서울 길거리 농구 대회/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서울 길거리 농구 대회/서동철 논설위원

    농구는 1891년 미국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의 YMCA 체육학교에서 캐나다 출신 교사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창안한 것으로 스포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야구는 13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크리켓을 바탕으로 18세기 미국에서 이민자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오늘날과 같은 경기장 규격과 경기 규칙은 19세기 중엽 완성되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농구 코트의 규격은 15m×28m이다. 반면 야구 경기장은 훨씬 넓어야 한다. 잠실운동장 야구장이 홈에서 중앙 펜스까지 120m, 양측면까지가 각 100m이니 농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어느 나라보다 활용 가능한 땅이 많은 미국이지만, 대도시는 어느 나라보다 땅값이 비싼 것이 또한 미국이다. 농구와 야구가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환경적 특성을 반영한다. 왕년의 명(名)야구해설가가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구하러 가자”고 하면 미국 어린이들은 배트와 공을 들고 나서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글러브와 공을 들고 나선다고?. 어린 시절 동네에서 야구 배트를 휘두르다 남의 집 유리창을 깬 적도 있으니 수긍할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미국 어린이라도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살고
  • [씨줄날줄] 전설의 고려버거/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전설의 고려버거/최광숙 논설위원

    영화 ‘파운더’는 맥도날드 창업자 레이 크록의 성공 신화를 다룬다. 보고 나면 씁쓸하다. 재주는 곰(맥도날드 형제)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크록)이 크게 벌었으니 말이다. 1954년 보잘것없던 미국의 세일즈맨 크록이 우연히 맥도날드 형제의 가게에서 30초 만에 햄버거가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이거다”라며 무릎을 친다. 성실하고 정직한 맥도날드 형제는 품질 관리를 위해 가게 한 곳에만 매달렸지만 크록은 그들을 설득해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따냈다. 그 후 그는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아이디어와 상표권을 헐값에 사들여 오늘의 맥도날드 왕국으로 키웠다. 햄버거는 콜라와 함께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세계 4위 부자이지만 ‘6살 식성’을 지닌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아침 식사 메뉴도 햄버거다. 그는 돈을 많이 벌었을 땐 특별히 베이컨과 치즈 비스킷이 들어간 3.17달러짜리 햄버거를, 일이 잘 안 풀리는 날에 소시지만 들어간 2.61달러짜리 햄버거를 먹는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햄버거를 달고 살아 의사로부터 햄버거 금지령을 받았을 정도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햄버거 사랑으로 유명하다. 2009년 북한 최초로 햄버거 가게 ‘삼태성’(三台星·
  • [씨줄날줄] 북한이탈주민의 고뇌/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북한이탈주민의 고뇌/황성기 논설위원

    지금은 북한이탈주민이 공식적인 명칭이지만 여전히 탈북자, 새터민 같은 과거의 용어가 우리 사회에 뒤섞여 쓰이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이란 북한을 벗어나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 법률 용어이기도 하다. 통일부의 올해 3월 말 기준 자료를 보면 북한이탈주민은 남성 8848명, 여성 2만 1642명으로 총 3만 490명이 한국에 들어왔다. 2005년 이후 탈북이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2012년부터는 한 해 1500여명선으로 줄어들어 작년에는 1418명이 남한에 왔다. 북한이탈주민이란 명칭 변천은 남북 관계의 역사와 밀접하다. 1960년대 북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월남 귀순자’란 이름으로 불렀다. 법으로 국가유공자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원호대상자로 우대하며 체계적인 지원도 시작했다. 동서 냉전과 남북 대치가 극에 이르렀던 1979년에는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을 만들어 사선을 넘어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귀순용사’로 불렀다. 냉전이 끝난 1993년에는 귀순북한동포보호법을 제정했는데, 귀순자를 국가유공자에서 생활능력이 결여된 생활보호대상자로 격하했다. 정착금을 비롯한 지원도 크게 줄였다. 1997년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탈북
  • [씨줄날줄] 장애인 참정권/박홍기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장애인 참정권/박홍기 수석논설위원

    다시 들렸다. “장애인도 국민이다.”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주체다.” 선거 때엔 여느 때와 다르게 다가오는 외침이다. 투표는 국민으로서 정당한 권리이지만 장애인들이 행사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현실과 괴리가 꽤 큰 탓이다. 헌법 제13조 제2항엔 ‘모든 국민은 참정권을 제한받지 아니 한다’, 제24조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해 선거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대전제 아래서다. 공직선거법 제6조에는 ‘노인·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선거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등의 필요한 대책을 수립·시행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유권자들을 위한 투표권과 이동권은 여전히 미흡하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4·13 총선 당시 투표소가 1층이 아닌 지하나 지상 2층 이상에 설치된 곳이 573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도 16.5%나 됐다. 관련 법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장애인들에게는 절망에 가까운 높디높은 문턱이 아닐 수 없다. ‘2017 대선 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최근 촉구한 “참정권 확보를
  • [씨줄날줄] 계층 사다리/최용규 논설위원

    [씨줄날줄] 계층 사다리/최용규 논설위원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을까. 최근 서울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의 ‘계층 상승 사다리 인식조사’에 따르면 답은 ‘노’(NO)다. 10명 중 8명 이상(83.4%)이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작다”고 답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간신히 빠져나왔으나 우리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2010년대 초와 비교해도 별로 나아진 게 없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1 한국의 사회조사’를 보면 “나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답한 비율은 10명 중 3명(28.8%)에 불과했다. 희망 잃은 ‘잿빛 사회’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다리는 기회와 희망의 상징어다. 계층 사다리는 이동이 속성이며 그 자체가 꿈이요, 희망이다. 그런데 여전히 ‘헬조선’의 음습한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고 흙수저는 영원히 흙수저, 금수저는 영원한 금수저라는 자조(自嘲) 섞인 그림자가 더욱 짙게 드리워져 있다. 계층 이동이나 신분 상승이 가로막힌 나라에서는 밝은 미래를 찾을 수 없다. 끊어진 지 오래인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복원하는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특혜와 반칙을 제거하는 첩경이다
  • [씨줄날줄] 21세기 술탄/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21세기 술탄/이동구 논설위원

    종교와 왕권의 대립은 세계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유럽의 역사는 로마 교황과 인근 국가의 왕들 사이에 벌어진 권력 다툼을 다수 간직하고 있다. ‘카노사의 굴욕’ 사건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는 교회 권력에 독일의 왕이 무릎을 꿇었다면, ‘아비뇽 유수’, ‘영국의 수장령’ 등은 교회 권력에 대항하며 왕권을 키워 나간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터키와 이집트 등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종교 권력과 왕권이 분리되긴 했으나 기독교 문화권과 달리 치열한 갈등은 없었던 듯하다. 칼리프가 이슬람 공동체의 정치·사회·종교 등 모든 것을 관장하는 지위였다면 술탄은 정치·사회적인 세속적인 부문만을 다스렸다. 칼리프가 중세 교황의 권위를 가졌다면 술탄은 황제나 왕들과 비슷한 지위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터키를 중심으로 한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후기에는 칼리프와 술탄의 역할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사실상 술탄이 통치자로 군림하게 됐다고 한다. 터키의 역사 도시 이스탄불에 남아 있는 성소피아 성당을 비롯해 돌마바흐체 궁전 등 몇몇 유적들은 술탄들이 누렸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톱카프 궁전은 터키의 최고 번영기였던 오스만 제국의 지도자 술탄들이 머물던 곳이다. 약 380
  • [씨줄날줄] 정치인의 수감생활/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정치인의 수감생활/최광숙 논설위원

    감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갇히면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극단적 환경에서는 인간의 이성보다는 욕망이 먼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타계한 신영복 교수가 여름 징역살이를 형벌 중의 형벌이라고 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신 교수는 자신의 옥중 서신을 담은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과 달리 여름에는 모로 누어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에서 옆 사람은 단지 37도의 열덩이로만 느끼게 한다”며 감방 동료를 미워하게 될까 봐 마음을 추슬렀단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4년간 시베리아에서 징역살이를 했다. 그는 동생 안드레이에게 “그 기간은 1분 1초가 영혼을 돌로 압박하는 듯한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감옥 담장 밖 세상에서 큰소리치던 정치인들에게 이런 특수한 환경은 더욱 힘들 것이다. 하지만 ‘국립대학’이라는 말이 있듯이 교도소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으며 의미 있게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열 달 동안 징역을 산 정두언 전 의원은 하루 세끼마다 예배를 드리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신앙심 깊은 ‘국립기도원’ 생활을 통해 과거에 잘못한 일들이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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