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없이 혼내주는 선생님… 처음이었어요”

“차별 없이 혼내주는 선생님… 처음이었어요”

이성원 기자
입력 2015-05-15 00:26
수정 2019-04-1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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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스승의 날… “방황하던 우리 ‘6공주’가 달라졌어요” 김유경 서울 성지고 선생님과 아이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담배를 피우든 결석을 하든 전혀 신경을 안 썼어요. 그런데 우리 선생님은 제가 10분만 지각을 해도 막 문자를 보내는 거예요. 겉은 쌀쌀맞은데 하나하나 챙겨주세요.”-성지고 3학년 1반 유희선(19·가명)양

“우리 아이들은 관심을 받으면 무조건 반응을 보여요. 전날 밤 늦게라도 학교에 꼭 나오라는 문자를 보내면 꼭 나와요. 내가 담임 선생님 불쌍해서라도 나간다고 하는 애들이에요. 사실은 관심에 목이 마른 착한 아이들이죠.” - 성지고 3학년 1반 담임 김유경(36)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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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 강서구 성지고 3학년 1반 교실. 수업은 끝났지만 여고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멋을 내느라 바짓단은 여느 학교 교복보다 짧고 화장도 진하지만 앳된 얼굴은 감출 수 없다. ‘강서의 끝판왕’, ‘방황하는 아이들의 종착역’으로 불리는 성지고 아이들이다. 이곳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과 배움의 시기를 놓친 중장년층을 위해 만들어진 대안학교다. 중학교 과정을 합한 성지중·고 전체 480여명 학생 중 절반가량이 청소년이다. 평소 모였다 하면 쉴 틈 없이 재잘대는 유양과 나지서(19·이하 가명), 최정은(19), 김유리(19), 박은지(19), 김희진(19)양의 이날 대화 주제는 코앞으로 다가온 ‘스승의 날’과 ‘선생님’. 이들은 자기들 이름이 가명으로 나가는 걸 전제로 서울신문 취재에 응했다. “인터넷에서 내 이름 검색되는 건 싫다”는 게 가명을 원하는 이유다.

나양이 이 학교로 온 것은 고1 때인 2013년 4월이었다. 이전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와의 사소한 말다툼이 폭력으로 번졌고, 가해자로 몰렸다. 선생님들이 모범생 말만 믿고 자기 얘기는 들어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몇 차례 흡연과 음주를 걸렸던 게 화근이었다. 등 떠밀리듯 전학을 왔다.

“차별하는 선생님이 제일 싫어요. 성적이 같은 반 40명 중 30등 정도 했는데 제가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벌점을 주면서 공부 잘하는 애들이 피우다 걸리면 그냥 넘어갔어요. 한 선생님이 화장을 하고 다니는 저에게 ‘네가 그렇게 사니까 그 모양 그 꼴’이라고 하더라고요.”

나양이 달라진 건 2학년 때부터였다. 당시 담임 선생님을 만난 후 서서히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나양이 기억하는 담임 선생님은 생활기록부를 꼼꼼히 살펴보고 말을 건네는 사람, 처음으로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준 사람이었다. 이후 그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최양과 유양, 김희진 양도 이전 학교에서 말썽을 피워 1학년 때 전학을 왔다.

“먼저 다니던 학교에서 선생님이 담배를 피웠다며 뺨을 때렸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피우지 않았거든요. 그냥 그럴 거라 생각하신거죠. 뒤늦게 사실을 알고도 사과를 안 하시더군요.”(최양)

이 학교로 와서 아이들이 느낀 건 선생님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결석하려고 마음먹으면 귀신처럼 휴대전화 문자를 날리고, 잘못을 하면 혼내고 벌 주는, 그런 선생님들도 있다는 걸 알았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차별당하지 않았기에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었다. 지난 봄 소풍 때 아이들은 담임교사에게 초콜릿을 받았다. 겉은 쌀쌀맞지만, 속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이들은 느낄 수 있었다. 3학년 1반 아이들이 김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래서 붙여준 별명이 일본식 조어 ‘츤데레’다. 쌀쌀맞게 굴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이란 뜻이다.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어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훗날 아이들이 고3 시절을 돌이켜 봤을 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던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제자들의 별명도 하나하나 지었다. 나양은 ‘공주병1’, 최양은 ‘공주병2’. 김유리 양은 ‘수녀님’, 박양은 ‘맏며느리’, 유양은 ‘둘째 아이’, 김희진 양은 ‘천상여자’다. 김 교사와 아이들의 애틋한 정이 담겨 있다.

“저도 알아요. 제가 다정다감한 스타일이 아니란 걸. 대놓고 챙겨주는 편도 아니고. 그런데도 저한테 속사정을 다 털어놓는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제가 기쁘고 고마운 마음이지요.”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사진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2015-05-1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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