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판결문 살펴보고 항소 여부 검토”
출판사들이 책정한 교과서 가격이 너무 비싸니 이를 낮추라는 교육부의 가격조정명령에 법원이 제동을 걸면서 내년 신학기를 앞두고 교과서 가격의 향방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교육부와 출판사 간의 줄다리기에서 일단 출판사들이 웃었지만, 향후 교육부의 항소 여부와 가격 대책 등에 따라 상황은 여전히 가변적이다.
법원은 4일 도서출판 길벗 등 출판사 8곳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가격조정 명령 취소소송에서 “교육부의 가격조정명령이 절차적으로도 위법하고 조정된 가격을 결정한 근거가 된 교육부 고시도 구체적 산정기준이 없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일단 출판사들은 “법원이 가격은 올랐지만 출판사들의 품질향상 노력을 인정해준 것 같다”며 크게 반겼다.
출판사들은 당장 교육부와의 내년도 신학기 교과서 가격 협상에 이번 판결이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인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황근식 아침나라 대표는 “교육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는 우수한 교과서 개발의 기틀이 마련됨에 따라 교과서를 통한 공교육 정상화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교과서 가격 인하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온 교육부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무엇보다 교육부의 가격조정 명령을 위한 고시에서 기준부수 산정방식 등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판결이 나옴에 따라 가격조정을 위한 치밀한 법률검토도 없이 성급하게 명령을 내렸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교과서 가격에 관한 양측의 대립에는 과거 정부의 교육 정책까지 살펴봐야 하는 복잡한 배경이 숨어 있다.
이명박 정부가 2010년 ‘교과서 선진화 방안’으로 교과서의 가격 자율제를 도입하면서부터 교과서 가격이 크게 올랐다.
그전까지는 정부가 정한 가격에 따라 출판사들이 교과서를 판매해 거둔 전체 수입금을 나눠갖는 구조였지만, 출판사가 교과서 수익금을 전부 챙기는 새로운 경쟁체제가 도입된 것이다.
이에 따라 출판사들은 일선 학교에서 자사 교과서의 채택률을 높이려고 시각자료 등에 투자해 화려한 교과서를 제작했고 페이지를 늘려 제조 원가가 껑충 뛰었다.
작년 중학교 검·인정교과서는 전년보다 평균 54.6%(3천146원) 올랐다.
올해 교육부가 교과서의 가격 인상이 도를 넘는다고 보고 제동을 걸면서 본격적인 충돌이 빚어졌다.
교육부는 올해 2월 교과서 가격이 부당할 경우 교육부 장관이 가격조정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고 3월에는 5일과 19일 두차례에 걸쳐 출판사들에게 가격조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출판사들은 “교육부가 교과서 발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반발하며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교육부는 3월 27일 검정교과서 171개에 대해 초등학교 교과서는 34.8%, 고등학교 교과서는 44.4%를 인하하라고 가격조정명령을 내렸고 출판사들은 이 명령의 효력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판결은 일단 출판사들이 승소했지만, 양측간 ‘샅바싸움’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판결문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나서 항소를 하거나 위법 시 하자를 보완해 다시 처분하는 재처분 조치를 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가격조정 명령을 위한 고시에서 기준부수 산정방식 등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한 만큼 교육부가 이 부분을 보완하고 가격조정 조치를 다시 할 가능성이 있다.
비싼 교과서 가격을 낮추는 것은 교육부와 출판사들이 계속 떠안은 숙제다.
황근식 대표는 “출판사들이 앞으로 교과서 개발 비용을 절감해 학부모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교과서 가격을 낮추도록 페이지 분량 등에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출판사들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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