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벤자민학교’ 삼총사, 진짜 나의 길 찾기 1년
조은별(16)양은 지난해 11월 경기도의 한 국제고에 합격했다. 꿈에 그리던 입학 허가서를 받아 들자 힘들었던 시간을 모두 보상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밤늦도록 공부하는 일상에 ‘난 지금 행복한 걸까’란 의문을 품게 됐다. 국제고 합격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그가 오히려 합격 이후 왜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 것. 딸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부모는 “1년 동안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뭘 할 때 행복한지 찾아보라”며 대안학교를 권했다.‘벤자민학교’ 1기생인 양성훈(왼쪽부터)군, 신채은양, 조은별양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뫼비우스갤러리에서 자신들이 기획한 축제에 앞서 활짝 웃고 있다.
양성훈(17)군도 고1 때까지 평범한 모범생이었다. 그는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고, 1학년 중간고사에서 수학 95점을 받았지만 정작 시험이 끝나니 허무했다”며 “문득 ‘좋은 대학을 다니고 대기업, 전문직을 갖는다고 행복해질까’란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양군은 “당장은 공부보다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눈뜨면 학교, 눈 감으면 집을 오가던 생활을 그만뒀다. 처음에는 자퇴를 완강하게 반대하던 부모도 1년 동안 꿈을 찾아보겠다는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신채은(16)양도 고교 진학 무렵 비슷한 고민을 했다. 그는 “원래 욕심이 많고 모든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였다”고 했다. 그는 “내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학원과 과외를 더 시켜달라고 졸랐는데 외려 엄마가 말리는 바람에 갈등이 심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이런 식의 공부는 널 위한 길이 아니고, 널 이렇게 몰아가는 학교 시스템이 문제”라며 대안학교를 권했다. 신양은 “1년이 지난 지금 엄마는 ‘여기 보내길 진짜 잘했다’고 말씀하신다”며 웃었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뫼비우스갤러리. 은별이와 성훈이, 채은이를 비롯한 27명의 ‘벤자민 인성 영재학교’ 1기 학생들이 기획한 축제가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150여명의 관객 앞에서 1년 동안 공들인 그림과 사진을 전시하고 자아를 찾아나선 지난 1년을 들려줬다. 사단법인 국학원이 설립한 ‘벤자민학교’는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이 정규교육은 비록 2년밖에 받지 못했지만, 자기계발에 힘써 큰 인물이 됐듯 인성교육의 가치를 강조하는 1년 과정의 대안학교다. 학교, 교사, 숙제, 시험이 없다. 학생들이 교실을 벗어나 직접 교육과 체험과정을 설계하도록 ‘멘토’들이 돕는다.
지난 1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은별이는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에서 초등학생들에게 평화와 인권을 쉽고 재밌게 설명한 ‘지구마을 선생님’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성훈이는 4개월 동안 우동집 아르바이트 경험을 떠올렸다. “처음엔 사장님이 날 ‘문제아’처럼 여겼어요. 그런데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 웃으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자 사장님도 ‘대단하다’며 인정하셨죠.” 채은이는 ‘미얀마 문화교류 여행’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배웠다. 그는 “미얀마에서 만난 민주화 운동가들은 우리가 공기처럼 당연히 여기는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축제에서 ‘내가 만난 일상의 소중함’을 주제로 찍은 사진 20여점을 공개했다.
1년 과정을 마친 아이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진짜 원하는 ‘길’을 찾았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은별이는 “시민단체나 비정부기구(NGO) 활동가가 되고 싶다”며 “국제고로 돌아갈 생각이지만 꿈을 찾았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할 생각이라는 성훈이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꿈이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꿈을 버렸던 것’이란 걸 깨달았다”며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이룰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채은이는 “직업을 선택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사진 찍는 일,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며 웃었다. “학교에 갇혀 자아를 찾지 못한 친구들도 한발 비켜서서 시간을 가진다면 저마다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입을 모으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글 사진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2014-11-2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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