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총선에서 어떤 역할했나
26일로 D-20을 맞이한 4·15 총선은 2년 뒤 치러질 차기 대선을 노리는 잠룡들에게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중요한 무대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선 직전 총선에서 저마다의 전략으로 ‘대권 루트’를 다졌다.2016년 4월 8일 20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일에 광주 북구청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하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왼쪽 사진) 2016년 총선을 앞둔 4월 3일 충남 천안시 성정동 전통시장을 찾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오른쪽 사진) 서울신문 DB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1년 전인 2016년 총선을 대승으로 이끌며 더불어민주당에 12년 만의 원내 1당의 영광을 안겼다. 그해 1월 대표직에서 사퇴한 뒤 칩거에 들어갔던 문 대통령은 3월 부산 사상에 출마한 배재정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선거판 전면에 나섰다. 직함은 ‘전 대표’였지만 김종인 선대위원장과 더불어 사실상 투톱 체제였다. 문 대통령은 당시 전국 지원유세를 펼쳤고 4월엔 두 차례 광주를 찾아 ‘호남 홀대론’을 불식시키려 애쓰는 등 총선에서 대권주자의 면모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등판하며 ‘선거의 여왕’임을 다시 입증했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보수 상징색인 파란색을 버리고 금기시되던 빨간색을 당에 입혔다. 경제민주화 등 진보적 경제공약도 과감히 내세우는 등 보수 개혁·혁신의 메시지로 새누리의 과반 승리를 이뤄내 보수층의 굳건한 지지를 얻어냈다.
●이명박 대선까지 시차 있어 지원 유세 자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17대 대선과 직전 총선(2004년) 사이엔 3년 8개월 시차가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 전 대통령의 행보도 다소 달랐다. 그는 밀려드는 같은 당 후보자들의 지원 요청도 마다했다. 대선까지 시차가 있는 상황에 무리하게 선거전에 개입하는 대신 자기 업적을 쌓는 데 집중했다. 이 전 대통령에게는 청계천 복원, 버스 체계 개편 등 굵직한 사업 성공 경험이 대선 승리의 자양분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스스로 ‘험지’인 부산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발판을 다진 경우다. 노 전 대통령은 1992년 총선,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2000년 총선을 다시 부산에서 출마한다. 이후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과 함께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으면서 탄탄한 지지층이 만들어졌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2020-03-2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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