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 [특파원 칼럼] 일본은 방사능을 극복할 수 있을까/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본은 방사능을 극복할 수 있을까/이종락 도쿄특파원

    지난 15일 도쿄 특파원으로 구성된 공동 취재단이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상황을 보도한 뒤 기자에게도 여러 문의가 잇따랐다. 과연 일본은 괜찮은 것인가, 왜 이렇게 원전 사고 수습이 늦어지느냐, 후쿠시마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느냐 등의 질문이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면 후쿠시마 제1원전은 현재 멜트다운(노심융해)이 발생했던 1∼3호기의 압력용기 하부 온도가 38∼68도의 추이를 보이며 냉온 정지 상태에 있다. 방사성물질의 비산도 억제돼 원전으로부터 20㎞ 내 구역도 대부분 일반인의 연간 피폭 한도인 1밀리시버트(mSv)를 오르내리고 있다. 원전에서 230여㎞ 떨어진 도쿄 등에서는 평상시의 활동이 가능한 상태다. 도쿄는 사고 이전의 방사능 수치인 시간당 0.047마이크로시버트(μ㏜)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서울(0.11μ㏜)의 절반 수준이다. 그럼 왜 이렇게 사고 수습이 늦을까. 성격 급한 한국인 같아서는 특공대라도 동원해 당장 원전 주변을 말끔히 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더디기만 한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는 폭발한 원자로를 콘크리트로 묻어 버리는 걸로 사고를 수습했다. 사고 당시 옛
  • [특파원 칼럼] “독도? 폭파해 버리지 뭐”/김상연 워싱턴특파원

    [특파원 칼럼] “독도? 폭파해 버리지 뭐”/김상연 워싱턴특파원

    수년 전 미국 워싱턴DC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된 인사를 환송하는 비공식 식사모임이 열렸다. 한·미 정부 관계자와 민간인 등이 참석했다. 당연히 화제는 ‘한국’에 맞춰졌고, 한·일 관계로까지 옮겨졌다. 독도 문제 해법을 놓고 저마다 의견을 피력하는 가운데 한 미국 인사가 웃으면서 “독도를 폭파해 버리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텐데….”라고 말했다. 농담조 발언에 좌중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그 순간 한 한국계 민간인이 벌떡 일어나 “독도가 한국인들한테는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데, 당신들은 그렇게 농담처럼 말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화기애애했던 만찬석상은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붙었다. 한국인에게 독도나 일본군 위안부 등은 죽고 사는 문제처럼 절박하지만, 미국 사람들한테는 아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아시아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다. 중국이 급부상하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인들이 주로 관심을 갖는 해외는 중동, 유럽, 중남미 등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 중시’ 독트린까지 발표했음에도, 미국 언론 보도의 대부분은 시리아, 이란 등 중동에 할애되고 있다. 그러니 아시아 한 귀퉁이의 이름도 생소한 작은 섬에 눈길이 갈 리 없다. 미
  • [특파원 칼럼] 문화 충격/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문화 충격/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샤오저우(小周)!” 중국에선 가까운 아랫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 성 앞에 작을 소(小)자를 붙인다. 상대방의 성이 주(周)라면 ‘샤오저우’로 부른다. 우리의 ‘주군(君)’ 혹은 ‘주양(孃)’ 같은 표현이다. 베이징 시정부의 한 여성대변인이 ‘샤오저우’라고 호칭해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공적인 자리에서 딱 두 번 식사를 한 게 인연의 전부인 사람이다. 중국인 기자들을 만나 “매우 불쾌했다.”고 얘기하자 그들은 한결같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꾸로 나이 많은 기자가 자신보다 어린 대변인에게 ‘샤오X’라고 불러도 되겠느냐고 묻자 기겁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우리와 다른 언론 체제를 가진 중국에선 관료인 대변인과 언론인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대변인이 기자에게 ‘주양’이라는 호칭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반대 상황은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문화와 전혀 다른 질서를 맞닥뜨릴 때 겪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컬처 쇼크(문화 충격)라고 부른다. 문화 간 의사소통(intercultural communication)의 대표적인 이론 중 하나로 인류학자 칼레르보 오베르그가 1954년 처음 소개했다. 컬처 쇼크의 크기는 이
  • [특파원 칼럼] 일본, 이제는 가슴보다 머리로 대하자/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본, 이제는 가슴보다 머리로 대하자/이종락 도쿄특파원

    폭풍이 지나간 듯한 느낌이다.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폭풍우가 잦아진 뒤에 느꼈을 공허감이랄까, 그런 기분을 느끼는 요즘이다. 지난 2년 동안 그렇게 좋았던 한·일 관계가 한순간에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2년 전 특파원으로 갓 부임했을 때 도쿄대의 한 교수와 한·일 관계를 토론한 적이 있다. 그 교수는 불행한 과거사를 안고 있는 두 나라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무엇이 제일 중요하겠냐고 물었다. 문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양국민 500만명이 서로 오가는 시대를 맞아 상대방 국민들이 서로의 문화를 느끼면 이해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일본 국민들에게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한국이 정치·안보적으로도 일본인에게 가깝고 소중한 나라라는 인식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교수는 정치라고 답했다. 양 국민들이 아무리 서로를 잘 이해하려 해도 독도나 교과서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이 있을 때는 다시 냉각 국면으로 전환돼 어렵사리 쌓아온 우호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는 반론을 폈다. 결론적으로 지난 2년간은 내 대답이 맞았고, 최근 20일 동안은 도쿄대 교수의 생각이 정답이었다. 그러면 이제
  • [특파원 칼럼] 서울 vs 서우얼(首爾)/주현진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서울 vs 서우얼(首爾)/주현진 베이징특파원

    ‘서울신문’은 중국어로 ‘서우얼신원’(首爾新聞)이라고 부른다. 베이징(北京)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소속사를 소개할 때마다 ‘서우얼’이란 두 글자에 반감을 나타내는 중국인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불만을 갖는 이유는 간단하다. “왜 멀쩡한 한청(漢城)을 서우얼로 고쳐 부르느냐.”는 것이다. 중국에서 서울을 서우얼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무렵이다. 그전에는 한성(漢城)의 중국식 발음인 ‘한청’으로 통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재직 당시 서울의 중국어 표기인 한청이 서울의 발음과 달라 혼선을 초래한다며 서우얼로 불러 줄 것을 중국 정부에 요청해 서울의 중국식 이름이 바뀐 것이다. 서울신문사의 중국 이름도 그 이듬해부터 ‘서우얼신원’으로 변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중국인들이 서우얼이란 이름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적지 않은 중국인들은 한국이 수도의 이름을 근자에 한청에서 서우얼로 바꾼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즉,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한 반감으로 기존의 중국식 명칭을 버리고 한국식 이름을 새로 만들어 수도 이름을 서우얼로 바꿨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지난 2005년 서우얼로
  • [특파원 칼럼] 오바마 대통령께/김상연 워싱턴특파원

    [특파원 칼럼] 오바마 대통령께/김상연 워싱턴특파원

    독일은 과거사를 무릎 꿇고 사죄했는데 일본은 왜 제대로 사과하지 않을까. 일본인의 천성이 용렬한 탓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전후 처리에 그 원인이 있다. 일본의 항복을 홀로 받은 미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근간인 ‘천황제’를 존속시켰고 그에 따라 일본 기득권층은 거의 온전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 일왕을 위시한 정치권 주류가 제국주의 일본을 이끌던 자들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에 이들은 “과거가 잘못됐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독일에 총통제가 존속해 아돌프 히틀러의 아들이 총통으로, 나치의 자손들이 정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결국 미국이 일본 제국주의를 제대로 청소하지 않았기에 일본이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는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일본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느라 많은 피를 흘린 미국은 왜 복수심을 접고 일본의 ‘앙시앵 레짐’(옛 체제)을 존속시켰을까.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사고하는 미국 특유의 실리주의 때문이다. 공산국가 소련의 세력 팽창을 우려한 미국은 일본을 뒤집어엎어 카오스 상태로 만드는 것보다는 말 잘 듣는 일왕을 수족 삼아 일본을 대(對)소련 방어기지로 활용하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을 하게
  • [특파원 칼럼] 일본경제, 우습게 봤다간?/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본경제, 우습게 봤다간?/이종락 도쿄특파원

    일본에서 지내면서 가장 흥미로운 일은 한국인들만큼 일본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없다는 점이다. 한때 나라를 강제병합당한 분풀이 탓도 있겠지만 이상하리만치 대부분의 한국인은 일본에 자신 있어 한다. 몇년 전부터 한국의 전자와 반도체, 자동차, 조선업계가 일본 기업을 앞서면서 일본 경제를 얕보는 경향은 더욱 늘고 있다. 특히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은 끝났다.”라고 말하는 한국인들도 종종 만났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도 일본 경제의 쇠퇴를 일반화하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그러면 과연 일본은 끝났는가. 기자의 답은 단연코 ‘아니다’다. 세계 최강의 부품, 소재업 등이 버티고 있는 일본 경제는 아직 건재하다. 오히려 일본 경제를 우습게 봤다간 큰코 다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최근 ‘데프레(디플레이션)의 정체-경제는 인구의 물결로 움직인다’라는 책을 읽었다. 일본 정책투자은행을 거쳐 현재 일본종합연구소 연구원인 모타니 고스케의 저서다. 저자는 일본 경제가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혹평을 듣고 있지만 아직도 건재하다고 주장한다. 2009년 세계 동시 불황에도 감소하지 않는 일본 금융자산,
  • [특파원 칼럼] 韓中수교 20년에 보는 ‘역사 갈등’/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韓中수교 20년에 보는 ‘역사 갈등’/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한국에서도 단오절을 지내죠? 주로 뭘 하나요?” 지난 단옷날(6월 24일) 즈음 홍콩 언론사에 근무하는 한 중국 본토인 기자가 건넨 질문이다. 베이징(北京)시 신문판공실이 외신 기자들(홍콩, 타이완, 마카오 포함)을 베이징의 관광 명소인 이화원으로 초청해 경주용 배인 용주(龍舟) 타보기, 나뭇잎으로 싸서 찐 찹쌀밥인 쫑즈(?子) 만들기 등 단오 풍습을 체험하는 행사를 통해 단오가 중국의 전통 명절임을 각인시키는 자리였다. 행사의 취지는 물론 중국 기자의 질문에도 한국에 단오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불편한 심기가 여실히 묻어 있었다. 실제로 적잖은 중국인들에게 단오란 초나라 충신 굴원(屈原)을 기리는 데에서 유래한 전통 명절이라기보다 반한(反韓) 감정을 자극하는 초강력 기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8월부터 1년간 베이징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데, 그때 함께 공부했던 중국 대학원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한국 문화에 대한 질문 중 하나 역시 단오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유래한 한국 고유의 명절은 도대체 뭐가 있느냐.’는 공격적인 이슈로 이어질 만큼 강릉단오제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한국을 중국 문화의 약탈범 정도로 여기는 인식
  • [특파원 칼럼] “나는 게이입니다”/김상연 워싱턴특파원

    [특파원 칼럼] “나는 게이입니다”/김상연 워싱턴특파원

    “나는 동성애자(게이)입니다.” 그의 입에서 이 말이 알몸으로 튀어나왔을 때 나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지난 1월 6일 낮 로스앤젤레스(LA)에서였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리처드 그러넬(45) 전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 대변인은 세상의 모든 엄마가 좋아할 것만 같은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인터뷰의 초점은 그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임기 8년 동안 유엔에서 경험한 한반도 안보 문제에 맞춰졌다. 그러넬의 사무실에서 단둘이 마주보고 진행된 인터뷰가 중반쯤 이르렀을 때였다. 나는 그가 ‘모셨던’ 존 볼턴 당시 주유엔 미국대사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정말로 극우 보수 성향인가를 물었다. 그러넬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 뒤 볼턴이 유연한 사고의 인물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게 ‘커밍아웃’했다. 그는 “나는 동성애자다. 그런데 볼턴은 그런 나는 물론 내 파트너(애인)에게도 아주 다정하게 대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나는 동성애자”라고 말한, 내가 난생 처음 맞닥뜨린 그 순간 내 입에서는 그만 “정말요?”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인터뷰 시간 내내 나는 인터뷰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실례일 것
  • [특파원 칼럼] 박찬호가 위대한 이유/이종락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박찬호가 위대한 이유/이종락 도쿄 특파원

    한국과 일본의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되면서 저녁마다 챙기는 일이 있다. 오릭스 버펄로스의 이대호 선수의 성적을 매일 체크하는 것 이외에 한화 박찬호 선수 관련 소식을 검색하는 버릇이 생겼다. 지난해 오릭스에서 부진한 성적을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간 박찬호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기자가 박찬호의 ‘광팬’이 된 건 18년 전이다. 박찬호가 1994년 1월 11일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에 입단하면서부터다. 기자와 같은 486세대들 중에는 박찬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가 시작되면서 이 나라에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박찬호에게 많은 위안을 받고 다시 희망을 꿈꿨기 때문이다. 전날 아무리 과음을 해도 박찬호 경기가 있는 새벽 4~5시에는 놀랍게도 벌떡 일어나 경기를 함께했다. 이기면 덩달아 신나고, 타자들에게 뭇매를 맞으면 하루 종일 찜찜함을 떨치지 못했다. 1997년과 2000년에는 미국 출장 길에 LA 스타디움도 들렀다. LA 특파원 선배 소개로 로열박스에 있는 기자석에 앉아 박찬호의 쾌투를 지켜본 건 영원히 간직할 소중한 추억이다. 그런 박찬호가 지난해 메이저리그 생활을 정리하고 오릭스 구단에
  • [특파원 칼럼] 서울로 간 임사부/주현진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서울로 간 임사부/주현진 베이징특파원

    ‘서울로 간 임사부.’(林師傅在首爾) 한국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인기 중국 드라마 제목이다. 중국 사천(四川)요리의 달인 임사부가 우연히 서울에서 폐업 위기에 처한 중식당을 구해 중식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사랑도 이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드라마보다 드라마가 중국인의 업그레이드된 ‘문화적 자신감’을 보여 준다고 극찬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칼럼(3월 29일 자)이다. 칼럼은 우선 1989년 ‘뉴욕으로 간 베이징인’의 주인공이 중국을 버렸던 것과 달리 2012년판 임사부는 서울의 풍요로운 물질생활이 아닌 사천요리를 전파하기 위해 서울에 남기로 했다는 점에서 드라마 속 중국인의 ‘문화적 자신감’ 변천사를 읽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 등 동남아 국가의 방송에서 황금시간대에 방영될 정도로 잘 팔리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다시 말해 이제 중국도 자국의 황금시간대에 주로 한국 드라마를 틀던 관행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 방송의 황금시간대에 편성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수준이 됐다며 ‘문화적 자신감’을 가져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사실과
  • [특파원 칼럼] 펜타곤 화장실/김상연 워싱턴특파원

    [특파원 칼럼] 펜타곤 화장실/김상연 워싱턴특파원

    “어디 가십니까?” “화장실에 좀….” “이쪽으로 오시죠.” 미국 국방부 브리핑을 들으러 펜타곤에 가는 외국 기자들은 달갑지 않은 ‘VIP 예우’를 받는다. 브리핑룸에서 잠시라도 밖으로 나올라치면 문 앞을 지키고 선 초급장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뭘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스토커처럼 옆에 바짝 따라붙는다. 가족이나 친구한테도 그리 밝히고 싶지 않은 행선지, 화장실에 갈 때도 예외가 아니다.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을 법한 장교는 기자가 화장실 안에서 볼일을 마칠 때까지 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러니 불안해서 볼일을 제대로 보기 힘들다. 펜타곤에서의 볼일은 정말 ‘못 볼일’이다. 펜타곤 건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면 바로 가까운 출입구가 있지만 기자들은 셔틀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외딴 출입구로 가야 한다. 거기서 공보팀에 전화를 하면 장교가 나와 신분을 확인한 뒤 건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현관에서 다시 2종류 이상의 신분증을 제시하고 검색대를 통과해야 임시 출입증이 주어진다. 사실 그 출입증은 무용(無用)하다. 펜타곤에 체류하는 내내 인솔 장교가 동행
  • [특파원 칼럼] 한류가 위험하다/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한류가 위험하다/이종락 도쿄특파원

    얼마 전 한국 탤런트의 일본 팬클럽 회원 몇 명이 기자의 도쿄 사무실을 찾아왔다. 지난 2010년 도쿄에서 일본 팬클럽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는 팬클럽 간부들이다. 이들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돼 한국 언론이 영리만을 추구하는 일부 한국 연예인 매니저먼트의 행태를 비판해 주길 요청했다. 이들의 주장은 이랬다. 이 탤런트는 군인으로 복역하면서 전역을 며칠 앞두고 있었는데 소속 매니지먼트 회사가 CD와 DVD 세트를 만들어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것이다. 관련 자료를 내놓은 이들은 주일본 한국대사관에도 자신들의 뜻을 전하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에 대해 매니지먼트 회사는 “소속 연예인이 군 전역 이전에 판매한 적이 없다.”며 “공식 회원 팬들도 아닌 사람들이 잘못된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들어 한류 스타들을 둘러싼 이런저런 잡음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5~10년 전에 일본에 근무하다가 다시 일본을 찾은 주재원들은 최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류 현상을 두고 ‘혁명적인 상황’이라고까지 한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관계에서 지금처럼 일본인이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 음식에
  • [특파원 칼럼] “질문은 팩스로 보내세요”/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질문은 팩스로 보내세요”/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미국에 도착하는 시간이 중국 시간으로 정확히 몇 시인지 알고 싶은데요.” “질문은 팩스로 보내세요.” “….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아니에요. 모든 질문은 팩스로 보내 주셔야 합니다.” “팩스로 질문을 보내면 답은 꼭 해 주시나요?” “그건 확답 드릴 수 없어요.” 지난 13일 오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외교부 신문사(司·우리나라의 ‘국’에 해당) 관계자와의 전화 통화 내용이다. 외국 언론과의 대화 내용은 근거로 남겨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답변을 뭉개기 위한 절차인지는 모르겠으나 ‘명성’대로 베이징의 취재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느끼게 해 주는 순간이었다. 국내 언론사들은 주로 미국 워싱턴,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 등 주요 지역에 특파원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 베이징은 굴기(?起·우뚝 섬)하는 중국의 국격과 달리 ‘특파원의 무덤’이라는 끔찍한 별명을 갖고 있다. 중국에선 취재는 고사하고 현지 언론에서조차 우리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뉴스나 해설을 제공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김정일 방중’ 같은 세계적인 뉴스에 대해 외교 관례를 이유로 김정일이 베이징을 떠난 뒤에야 정식으로 발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 [특파원 칼럼] 어느 미국 할머니의 질문/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어느 미국 할머니의 질문/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지난달 10일 미국 뉴햄프셔주 내슈아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아침 나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현장을 취재하러 한적한 마을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 들어섰다. 거의 백인 일색인 이 동네 투표소에 웬 동양인이 불쑥 나타나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니 책상에 앉아 있던 할머니 중 한 분이 대뜸 “누구냐.”고 묻는 건 당연했다. 70대로 보이는 할머니는 투표진행 자원봉사자인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온 특파원”이라는 대답에 얼굴에서 경계심을 지운 할머니는 이내 “북한에 20대 젊은이가 우두머리로 등장했는데, 한국인들은 그런 상황을 얼마나 위험하게 보느냐.”, “3대 세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을 물었다.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거푸 질문을 쏟아내는 할머니의 표정은 내 의견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측은함과 노여움이 절반씩 섞인 오묘한 얼굴이었다. 말하자면, 한국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과 북한의 3대 세습을 경멸하는 심경이 얼굴에 잔뜩 반죽돼 있는 듯했다. 그 전날 저녁 내슈아의 한 중학교 강당 유세장에서 만난 60대 할아버지의 표정은 아예 험악했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응원하러 왔다는 그는 다짜고짜 “그 토마토를 어떻게 생각하느
  • [특파원 칼럼] 일본 젊은이들 왜 분노하지 않을까/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본 젊은이들 왜 분노하지 않을까/이종락 도쿄특파원

    기자의 사무실은 일본의 입법·사법·행정부가 몰려 있는 도쿄 시내 가스미가세키의 도쿄신문 5층에 있다. 이 신문사 직원들은 만 60세에 은퇴하지만 본인이 원하면 65세까지 일할 수 있다. 물론 급여는 절반으로 깎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자 출신 은퇴자들의 연봉이 보통 1500만엔(약 2억 2245만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으로 깎여도 61세부터 65세까지 매년 1억 110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 도쿄신문은 한국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매년 노사 간 단체협상을 갖는다. 지난해 노사 간 최대 쟁점은 퇴직 이후 생활자금 지급 문제였다. 노동후생성이 65세 고령 인구가 3000만명에 육박하자 후생연금(한국의 국민연금)의 지급 개시 연령을 68∼70세로 상향 조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비책이다. 노조는 65세에 은퇴한 뒤 후생연금 지급이 실제로 이뤄지는 시기까지 회사에 생활자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회사가 단호히 거절해 노사 간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50줄만 넘으면 아무런 대책 없이 회사를 나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입이 딱 벌어지는 얘기다.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부러운 대상이 노인들이다. 노인 세대는 고실업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 비해
  • [특파원 칼럼] 37개월간의 ‘베이징 스크랩북’/박홍환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37개월간의 ‘베이징 스크랩북’/박홍환 베이징특파원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여파로 전 세계가 패닉 상태에 빠져 있던 2008년 12월 15일, 첫발을 디딘 베이징의 하늘은 ‘그레이징’(Grayjing·Smoggy Beijing)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잿빛이었다. 그 후 37개월, 귀국을 한 달여 앞둔 베이징의 하늘은 여전히 맑지 않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베이징은 3년여 전처럼 희뿌연 안개에 싸여 있다. 속을 들여다보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심장부를 향해 눈을 부릅떠 보지만 한꺼풀 얇은 막이 시야를 흐린다. 아쉽지만 이대로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할 판이다. 하지만 베이징에서 보낸 3년이 고스란히 헛수고는 아니었던 듯도 하다. 중국의 커가는 힘을 실감했다. 중국의 고민을 읽었다. 세계의 걱정을 목도했다. 북한문제 등 우리와의 미묘한 관계도 놓치지 않았다. 그걸 가다듬어 세상에 전했다. 사실 중국의 커가는 힘은 대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유일한 ‘버팀목’답게 4조 위안 경기부양책으로 세계경제의 몰락을 한 몸으로 막아낸 중국은 세계질서의 새틀을 짜겠다며 목청을 높였다. 2009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원자바오 총리가 “미국이 금융위기의 진원지”라며 중국의 힘을 만천하에 과시한 것이 신호탄이었
  • [특파원 칼럼] 우울한 크리스마스/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우울한 크리스마스/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마이크 설리번(54). 집 근처 공원에서 조깅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된 아저씨다. 그는 매일 아침 9시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출근을 한다. 침실에서 거실 컴퓨터 앞으로. 그는 석달 전 컴퓨터 시스템 판매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그 후 평일엔 하루종일 인터넷으로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는 그는 “직업(job)을 찾는 일이 내 정규직업(full time job)이다.”라고 말한다. 얼핏 농담같이 들려 웃을 뻔하다 그의 진지한 표정에 화들짝 놀라 거둬들였다. 그는 지난해 허리 수술을 받는 바람에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거의 다 까먹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달 안에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파산할 위기라고 했다. 린다 하딩(27). 동네 교회에서 식사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우연히 앉게 됐다. 그녀는 직장이 4개나 된다. 모두 ‘비정규직’이다. 지난해 작은 출판회사에서 해고된 뒤 생계의 벼랑 끝에 몰린 그녀는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수집’했다. 리버티대학에서 영문학 석사까지 공부한 그녀는 지금 어학스쿨 2곳에서 파트타임 강사를 하는 한편 한 아시아계 부부에게 영어 개인교습도 하고 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맞벌이 가정의 가정부로 일한다. 정규직업이 생기면 어떤 일을 가
  • [특파원 칼럼] 정말 먹을 수 있나요?/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정말 먹을 수 있나요?/이종락 도쿄특파원

    며칠 전 일본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한국 학부형이 분노한 사연을 들었다. 학교 측으로부터 아이들의 급식에 방사능 검사를 통과한 후쿠시마 채소를 사용할 것이라는 통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먹거리에 대한 우려가 커질 대로 커져 있는 상황에서 학교 측의 방침을 이해할 수 없었단다. 즉시 전화를 걸어 학교 측에 후쿠시마현에서 생산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아이들에게 제공할 경우 급식을 거부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이 학부형의 항의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부터 일본 학부형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그러잖아도 급식에 후쿠시마현 채소를 사용한다는 게 꺼림칙했는데 자신들을 대신해 항의를 해 줘서 고맙다는 말들을 해 왔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에서 먹거리에 대한 공포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평소 남을 의식해 드러나는 행동을 잘 하지 않는 일본인들도 학교 급식 대신 자녀들에게 도시락을 손에 들려 보내는 학부형들이 늘고 있다. 원전 사고 이후 생수 판매율도 급증했다. 많은 사람들이 음료용은 물론 생수로 밥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생수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한국 생수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생수 등 음료수의 경우
  • [특파원 칼럼] 미국이 돌아온다는데/박홍환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미국이 돌아온다는데/박홍환 베이징특파원

    미국이 거세게 중국을 몰아붙이고 있다. 올 초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극진하게 대접하며 양국 간의 갈등을 해소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웃는 얼굴은 이미 사라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에 “게임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윽박지르는가 하면 “인권을 존중하라.”고 힐난하고 있다. 중국 포위 전략도 구체화했다. 베트남전 이후 처음으로 호주의 태평양 연안 군사기지에 미 해군을 주둔시키기로 했고, 아시아에서 국방비 삭감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한국,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인도, 필리핀 등에 군사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몽골, 베트남 등과의 군사 협력도 본격화했다. 경제적으로는 또 어떤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아·태 FTA) 구상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아·태지역을 미국 안보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며 ‘아시아 복귀’를 선언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비장한 얼굴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중무장한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연상시킨다. 이쯤 되면 중국도 한바탕 퍼부을 만하지만 예상외로 조용하다. 피해 가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변 지역에 대한 미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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