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캐슬’이 한국 교육현실에 던진 물음표
“‘저렇게까지 서울대에 가고 싶을까’라며 욕하고 시작했다가 마지막엔 사교육에 올인해 시험지까지 빼돌리고도 서울대에 가고 싶다고 울부짖는 한서진(염정아 분)과 강예서(김혜윤 분)를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섬뜩했어요.” 평범했다고 생각하는 서울 강북의 한 가정에서 자란 김모(34·여)씨는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며 오로지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던 고교 시절이 떠올랐다고 했다. 김씨는 드라마 속의 예서처럼은 아니지만 학원도 가고 과외도 받으며 ‘인서울’ 대학 진학에 성공해 졸업 후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는 예서의 모습에서 왜 남들을 이기고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공부만 했던 자신이 겹쳐 보였다고 회상했다.사진 JTBC
하지만 교육계 전문가들은 ‘스카이캐슬’을 통해 제기된 우리 사회와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개선과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가 현 교육 제도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을 적극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 JTBC
지난해 교육부가 대입 제도 개편과 함께 정시를 일부 확대하기로 결정한 뒤 수그러들었던 ‘학종 폐지, 정시 확대’가 다시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정시확대추진학부모모임은 “‘스카이캐슬’을 보고 욕하면서도 입시 컨설팅 문의는 더 늘었다는 사실은 현실이 ‘스카이캐슬’보다 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면서 “학생부종합 전형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종 폐지론자들은 ‘스카이캐슬’이 사교육과 학교 성적 비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문대에 가려는 현실을 꼬집었다며 정시를 늘려야 한다고 한다. 수능 중심의 정시가 확대된다면 드라마와 같은 비리가 끼어들 여지가 줄어든다는 논리다. 이기정 미양고 교사는 “학종은 학교 내 친구들끼리 경쟁하도록 부추겨 ‘스카이캐슬’에서 보여 준 다양한 폐해들이 현실에서도 나타날 것”이라면서 “학종은 점차 줄이고 정시나 논술 등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스카이캐슬’이 보여 준 근본 문제가 ‘줄세우기식 입시 제도’라는 부분에선 대부분의 의견이 일치했다. 민경찬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스카이캐슬’에서 보여 주는 현실이 진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사교육업계 사람들”이라면서 “현실의 일부를 소재로 차용, 과장해 보여 주는 드라마를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본부 공동대표는 “드라마 속 학부모들의 욕망 구조를 들여다보면 우리 교육의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면서 “아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을 부모가 떠먹여 주려는 잘못된 교육관이 결국은 아이를 몰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 공동대표의 지적은 드라마 속에서 대학병원 교수이자 예서 아빠인 강준상(정준호 분)을 통해 드러난다. 준상은 드라마에서 어머니 윤여사(정애리 분)를 향해 “저를 나이 쉰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놈으로 만들었다”며 절규했다. 10대 마마보이 입에서나 나올 법한 이 대사는 이 드라마의 지향점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나이 쉰이 되도록 인성을 갖추지 못한 강준상이나 품위를 지키다가도 불리하면 “아갈머리를 확 찢어버릴까 보다”라고 육두문자를 서슴지 않는 한서진에게 공감을 보냈다. 서울대 입학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른 인물들을 이상하다 여기며 상식적인 행동을 보인 이수임(이태란 분) 가족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됐다.
‘스카이캐슬’ 주인공들의 목표는 명문대 입학이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에 대학의 모습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민 명예특임교수는 대학이 바뀌어야 교육이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대학은 스스로 대입 구조를 만들고 학생들이 그 틀을 향해 달려가도록 만들었다”면서 “교육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대학들 스스로가 대입 과정의 잘못된 점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교육의 변화는 대학 스스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철학을 고민하고 큰 담론을 통해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스카이캐슬’에서 공부 못하는 아들을 둔 진진희(오나라 분)는 아들 수한(이유진 분)이 함께 자고 싶다고 침실로 찾아오자 품에 안고 함께 잠든다. 진희는 “예서 엄마가 롤모델이었지만 대학을 위해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라고 생각하다가도 “수한이가 고3이 돼도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걱정한다. 윤 교수는 “결국 ‘스카이캐슬’에서 공부하라 잔소리는 하지만 아이의 말을 가장 잘 들어주는 진희가 작가가 말하는 우리 교육이 갈 길이 아닌가 한다”면서 “그럼에도 아들의 고3을 걱정하는 모습은 현실의 한계점을 보여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고3들이 쉬는 시간에는 웃고 장난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과거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면서 “이 아이들에게 입시 지옥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서는 교육 당국만이 아닌 교사와 학부모, 학교와 사회가 모두 함께 입시 제도 개선에 대해 적극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19-01-30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