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가 진보·보수의 기준”…새 교과서 집필자는?

“‘삼국사기’가 진보·보수의 기준”…새 교과서 집필자는?

입력 2015-11-06 11:02
수정 2015-11-0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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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몽룡 “초기 기록 신봉해야”…신형식 ‘계량사학’으로 접근

고려 인종 23년(1145)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다.

고구려 10권, 백제 6권, 신라와 통일신라 12권 등 본기 28권, 문물과 제도에 대해 서술한 지(志) 9권, 표 3권, 열전 10권으로 구성되며, 삼국시대 초기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천년의 역사를 정리했다.

삼국사기는 고대사를 공부하는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지만, 초기 기록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학자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논리적으로 허술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의 뿌리는 구한말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19세기말 광개토왕비가 발견된 뒤 비문과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거짓으로 몰아붙였다.

이후 한국 사학계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를 위시한 주류 사학계에서 이러한 가치관을 받아들였고, 이는 지금까지 재야 사학계가 식민사관의 그림자라고 비판하는 빌미가 됐다.

지난 4일 국정 역사교과서 상고사 부분의 대표 집필자로 정해진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종욱 서강대 석좌교수와 함께 ‘삼국사기 초기 기록 신봉론자’로 명성이 높다.

그는 이날 필자로 알려진 뒤 한 인터뷰에서 “삼국사기를 믿으면 진보, 믿지 않으면 보수라고 보는 데 나는 삼국사기를 믿는 사람이다”라면서 “삼국사기 기록을 충실히 인용할 것”이라고 집필 방향을 밝혔다.

최 명예교수는 1970∼1980년대 발굴된 경주 조양동 유적과 서울 풍납토성, 몽촌토성 등을 근거로 서기 250∼300년에 들어서야 한반도에 삼국이 형성됐다는 ‘원삼국론’에 반대했고, 역사적 자료로 삼국사기를 제시했다.

그는 “중심 연대가 기원 전후로 거슬러 올라가는 풍납토성과 조양동 유적은 백제와 신라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만들었다는 말인가”라며 주류 사학계와 대립했다.

따라서 일부 누리꾼들이 단지 ‘이병도의 제자’이기 때문에 최 명예교수가 친일 교과서를 쓸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그의 학문적 성과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역사교과서의 고대사 단원을 담당할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삼국사기를 계량사학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인물이다.

그가 2011년 발간한 ‘삼국사기의 종합적 연구’를 살펴보면 ‘삼국사기 본기 내용의 계량적 분석’과 ‘삼국사기 본기 기사 내용의 개별적 검토’라는 장이 있다. 삼국사기 기사 내용을 천재지변, 외교관계, 전쟁기사로 나눠 숫자로 접근한 것이다.

신 명예교수는 이러한 계량적 방법을 통해 삼국의 국가적 성립이 3∼4세기라는 통설과 김부식이 사대주의자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또 삼국사기 본기를 조사해 천문과 기상이변 관측 기록이 전체 분량의 27.4%를 차지한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고대사를 전공한 한 사학자는 “신형식 교수와 최몽룡 교수는 모두 삼국사기를 중시하는 측면이 있지만 대하는 방법은 조금 다르다”면서도 “신 교수는 계량사학이라는 연구 방법론을 도입했고, 최 교수는 젊은 사학자들과는 달리 지금도 초기 기사를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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