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암 덩어리도 막지 못한 엄마의 학구열

고약한 암 덩어리도 막지 못한 엄마의 학구열

입력 2015-02-25 00:24
수정 2015-02-2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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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 방송대 졸업 57세 이지연씨

“암(癌) 따위가 배움의 열망을 꺾을 순 없죠.”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조그마한 슈퍼를 30여년간 꾸려온 이지연(57·여)씨는 24일 꿈을 이뤘다. 한국방송통신대 교육학과를 4년 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꿈에 그리던 학사모를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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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이겨 내고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한 이지연씨가 24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 앞에서 주먹을 쥐며 활짝 웃고 있다.
암을 이겨 내고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한 이지연씨가 24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 앞에서 주먹을 쥐며 활짝 웃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인 딸은 평생 배움에 대한 갈증을 안고 살던 엄마에게 2011년 학비를 내밀며 방송대 진학을 권했다.

이씨는 “늘 대학을 나오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다 보니 후순위로 밀리곤 했다”며 “딸을 비롯한 가족의 도움이 있었기에 배움의 뜻을 이어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방송대 합격 후 이씨는 ‘무섭게’ 공부했다. 슈퍼 운영은 물론 통장으로 일하면서도 항상 학기 시작 전 교재를 구입하고, 모든 과목을 미리 공부한뒤 학기를 시작했다. 평점 3.4점(4.3점 만점)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평생교육사(평생교육 프로그램의 요구분석·개발·운영·평가·컨설팅을 진행하는 국가자격증) 2급도 취득했다.

고비도 있었다. 2013년 1월과 3월 각각 유방암과 위암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유방암은 다행히 초기였지만, 위암은 2기에서 3기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며 “워낙 긍정적인 성격을 가져서 ‘나을 수 있다’고 스스로 다독였다”고 회상했다.

네 차례에 걸쳐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받은 탓에 머리가 모두 빠지고, 위의 3분의2를 잘라 내는 큰 수술을 받으면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씨는 “휴학을 하게 되면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 어려울 것 같아 포기할 수 없었다”며 “제때 졸업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어 투병 중 나약해지기 쉬운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씨에게 또 다른 꿈이 생겼다. 그는 “두 차례 암도 이겨 낸 만큼 앞으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교육학과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구연동화 강사’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웃었다.

글 사진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2015-02-2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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