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필리핀 교사 교류 현지 수업 르포
“팥빙수는 할로할로, 갈비탕은 불랄로, 갈비찜은 아도보. 으쓱으쓱~ 세임푸드(same food).”지난 23일 필리핀 케손의 멜렌시오 카스텔로 초등학교.
1층에 자리한 5학년 마후세이반(1등급) 교실에서 학생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센 비가 내리고 학교 옆 골목에선 오토바이를 개조한 운송 수단인 트라이시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지나갔지만 30여명의 학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박재연 포항장기초 교사와 함께 우리 동요인 ‘곰 세 마리’를 개사한 노래 후렴구를 율동을 하며 따라 했다.
노래가 끝난 뒤 박 교사가 한국과 필리핀의 음식 사진을 칠판에 섞어 붙이자 학생들은 맛이 비슷한 음식끼리 짝을 지었다.
멜렌시오 카스텔로 초등학교의 한 학생이 박재연 포항장기초 교사가 진행한 수업에서 한국 음식 사진을 칠판에 붙이고 있다.
박 교사는 교육부와 유네스코 산하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이하 아태교육원)이 주관하는 ‘다문화가정 대상 국가 교사 글로벌화 지원사업’에 선발돼 필리핀으로 파견됐다. 다문화가정 학생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이들에 대한 교사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2012년부터 시작돼 올해 3회 차를 맞았다. 선발된 교사는 필리핀에서 4개월 동안 체류하며 일주일에 15시간씩 현지 학생들을 상대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 자신의 전공과목 등을 가르친다. ‘교류’라는 명칭을 갖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 교사들을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나라에 보내 지원하는 ‘한국형 공적개발원조(ODA)’ 성격이 짙다. 올해 9월까지 필리핀에 20명이 파견된 것을 비롯해 몽골 25명, 인도네시아 15명, 말레이시아 12명 등 4개 나라에 모두 72명의 한국 교사가 파견됐다. 또 4개국에서 72명의 현지 교사를 국내로 초청해 현재 47명이 우리 초·중·고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사들은 낯선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우리 문화를 알리고 현지 문화를 체득하고 있다. 마닐라 인근 칼로오칸의 엠비 아시스티오 고교에 파견된 김소영(56) 전남 순천팔마중 교사는 “명예퇴직 여부를 고민하던 차에 프로그램을 알게 돼 지원했다”며 “순수한 필리핀 학생들을 만나 교사로서 잃었던 열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닐라 인근 마리키나의 헤이츠 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박병찬(56) 강원 횡성 둔내고 교사는 “한국의 교사가 필리핀 현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는 흔치 않다”며 “교사들이 자신의 교수법을 점검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교사들의 방문 자체가 한국어나 한국 문화에 목 마른 현지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헤이츠 고교의 크리스털(16)은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안 됐지만 한글 읽기·쓰기가 능숙했다. 연음법칙 등 문법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K팝을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보는데 한국인 교사에게 체계적으로 한글을 배워 실력이 빠르게 좋아졌다”고 기뻐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필리핀 교사들도 긍정적인 반응이다. 2012년 경기 김포 마송중앙초등학교에 파견돼 영어와 필리핀 문화를 가르쳤던 마닐라 인근 발렌수엘라의 와왕플로 초등학교 교사 제니(29)는 “한국에서 자란 필리핀 학생 중에는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사례가 많았다”며 “교사 교류를 통해 그들의 사정을 알게 됐고 정체성을 찾아 주는 데 노력했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의 반응이 좋은 만큼 필리핀 당국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 루즈 알메다 필리핀 수도권 지역 교육청(NCR) 교육감은 중간 점검차 방문한 교육부 및 아태교육원 관계자들에게 “내년에는 5명 정도의 교사를 더 보내 줬으면 좋겠다”며 “한국의 교사들이 필리핀에 수월하게 입국할 수 있도록 서류 절차 등을 간소화하는 ‘원스톱’ 서비스 등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마닐라·케손(필리핀)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4-10-2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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