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갈 길 먼 배상 문제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수사는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지만 피해배상 문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검찰이 집계한 살균제 피해자 가운데 가장 많은 73명의 사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가 배상안을 발표했지만 피해자들은 돈보다 진정한 사과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이는 지난달 18일 ‘1차 사과·보상 설명회’에서 제시한 1억 5000만원보다 크게 증가한 금액이다. 당시 옥시 측은 한국 법원이 교통사고·산업재해 사망 시 위자료 기준액을 1억원으로 정한 것을 고려해 이보다 높게 책정했다고 설명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김덕종(40) 옥시 피해보상 협상단 대표는 “위자료 금액도 기대 수준에 훨씬 못 미칠뿐더러, 여전히 대상을 1·2등급 피해자로 한정하는 등 지난번과 비슷한 ‘생색내기’용 배상안을 들고 왔다”며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은 채 ‘이번이 마지막 협상이니 받아들이기 싫으면 개별 소송하라’는 게 사죄의 태도냐”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최재홍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바로 합의할 것으로 생각하기보다 협상 차원에서 하한선을 던져 놓고 반응을 보면서 금액을 흥정하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크다”며 “옥시 측의 반응에 사과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 피해자들이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형사소송에서는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했는지 여부가 양형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배상 움직임을 보이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김보람 법무법인 평원 변호사는 “옥시 측에서 위자료를 지급하려고 나서도 피해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안만으로 법원에서 피해구제노력을 했다고 인정받기는 힘들다”며 “옥시 측에서도 피해자들의 수용 여부가 신경이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무엇보다 단계별 차등 없이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후유증이나 추가 피해에 대해서도 폭넓은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옥시 측은 다음달에 배상안을 확정하고 올해 안에 배상을 마무리한다는 입장이다. 향후에도 배상을 둘러싼 진통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옥시 외에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다른 기업들은 아직 특별한 배상 움직임이 없다. 최 변호사는 “나머지 가해기업들은 지금 옥시 뒤에 숨어서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라며 “검찰 수사는 끝나가지만 피해자들은 배상을 위한 긴 싸움에서 이제 겨우 한걸음 내딛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2016-06-28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