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성스러움” “그림 외엔 자식 없다”… 뭉크 어록, 마음 훔쳤다

“일상의 성스러움” “그림 외엔 자식 없다”… 뭉크 어록, 마음 훔쳤다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입력 2024-06-24 01:02
수정 2024-06-24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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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전 빛내는 또 하나의 감동

작품만큼 관람객들에 큰 사랑
사진 찍어 기념·블로그 감상평

큐레이터인 디터 부흐하르트
작가 노트·일기서 엄선해 배치

관습 거부하는 화풍·고독한 삶
그 속의 통찰 절절하게 와닿아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을 기념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가 지난 22일 개막 한 달을 맞은 가운데 뭉크의 작품은 물론 뭉크의 어록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3일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에 올라온 전시 후기를 살펴보면 관람객들은 뭉크의 작품 못지않게 그의 어록을 사진으로 찍어 기념했다. 뭉크 어록은 전시를 기획한 디터 부흐하르트 큐레이터가 뭉크의 작가 노트, 일기 등에서 엄선했으며 배치도 직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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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창간 120주년을 기념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에 배치된 뭉크의 어록들이 그의 작품 못지않게 관람객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사진은 섹션1에 있는 뭉크의 어록은 뭉크 작품의 기조를 보여 준다.  홍윤기 기자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을 기념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에 배치된 뭉크의 어록들이 그의 작품 못지않게 관람객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사진은 섹션1에 있는 뭉크의 어록은 뭉크 작품의 기조를 보여 준다.
홍윤기 기자
“나는 자연으로부터 그리지 않는다. 나는 그 영역으로부터 그림을 얻는다.”

“더는 남자가 책을 읽고 여자가 뜨개질하는 장면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숨쉬고, 느끼고, 고통받고, 사랑하는, 살아 있는 인간을 그릴 것이다. 당신은 그 일상의 성스러움을 이해해야 하며, 이 일상에 대해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처럼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해야 한다.”

섹션1과 섹션2에 있는 이 어록들은 일종의 ‘선언’과 같다. 뭉크는 당시 그림의 주요한 주제가 됐던 틀에 박힌 자연과 실내 풍경 묘사를 거부했다. 그는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10대부터 실제로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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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의 의미를 알 수 있는 키스(1892). 홍윤기 기자
어록의 의미를 알 수 있는 키스(1892).
홍윤기 기자
‘키스’(1892)가 대표적이다. 뭉크의 ‘생의 프리즈’ 시리즈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모티프로 꼽히는 이 작품은 남녀의 시각적 융합을 ‘완전한 방황의 순간’으로 묘사한다.

배우 겸 화가 박신양은 최근 뭉크의 어록을 본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그 일을 수행해 낸 뭉크에게 나는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 당신을 볼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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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11과 섹션12 사이에 있는 어록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며 삶과 죽음, 사랑, 불안과 고독 등 인간의 심오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뭉크의 생애를 되짚어 보게 한다.  홍윤기 기자
섹션11과 섹션12 사이에 있는 어록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며 삶과 죽음, 사랑, 불안과 고독 등 인간의 심오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뭉크의 생애를 되짚어 보게 한다.
홍윤기 기자
“나는 내 그림들 이외는 자식이 없다.”

섹션11에서 섹션12로 넘어가는 길목에 적힌 이 어록은 뭉크의 생애를 되돌아보게 한다. 뭉크는 1863년 태어나 1944년 사망할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았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을 목격했으며 남동생과 아버지의 죽음도 경험했다. 여성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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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뼈가 있는 자화상(1895). 홍윤기 기자
팔뼈가 있는 자화상(1895).
홍윤기 기자
200점에 달하는 뭉크의 자화상에서 그의 삶에 녹아 있던 불안부터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까지 엿볼 수 있다. 이 중 석판화로 제작된 ‘팔뼈가 있는 자화상’(1895)은 뭉크의 이런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정면을 응시하는 얼굴은 어떤 감정도 전달하고 있지 않으며 툭 놓여진 팔뼈는 삶의 덧없음과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의식을 보여 준다.

“내 그림에는 약간의 햇빛과 흙먼지, 그리고 비가 필요하다.…(중략)…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내 그림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거나 오일을 덧칠하려고 할 때 너무도 초조해진다. 약간의 흙먼지와 몇 개의 구멍은 그림의 완성도를 더할 뿐이다.”

전시의 마지막 ‘프리즈 오브 라이프 인 퍼즐’ 코너에 있어 자칫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지만 이 말은 이번 전시를 포괄한다.

뭉크는 ‘로스쿠어’라고 불리는 방식을 통해 물감층을 파괴하고 표면을 긁어내며 작품을 비와 눈에 노출하거나 사진, 무성 영화의 프레임을 자신의 작품에 적용했다.

실제로 양면 회화인 ‘난간 옆의 여인’(1891), ‘목소리’(1891)는 날씨에 자연스럽게 노출해 작품의 노화 과정을 그대로 담은 작품이다.‘붉은 집’(1926~ 1930) 역시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새 배설물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그림 표면 전체에 작은 곰팡이 반점이 남아 있다. 이런 부패의 과정을 시각적 표현의 일부, 작품의 일부로 생각한 뭉크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부흐하르트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뭉크의 비전통적인 회화적 표현주의와 물질성에 대한 극단적인 실험에 초점을 맞춰 작품 세계를 깊이 탐구했다”며 “관습을 거스르는 뭉크는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장 뒤뷔페, 잭슨 폴록과 같은 작가들과 함께 전위적인 모더니즘 역사를 쓴 중요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2024-06-2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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