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 뭉쳐도 어려운 난세. 오늘도 갈라져 우리는 싸운다. 어떤 일이든 어김없다. 통합의 외침은 외침일 뿐. 상생(相生) 아닌 상극(相剋)이다.
이념. 우리 모두에게 구천을 떠도는 망령 같은 존재다. 원혼에 사로잡힌 듯 한풀이를 하는 이념 추종자들이 많다. 숙명일까, 업보일까.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념의 굴레. 21세기도 십수 년째, 미련한 한국의 현실이다.
전쟁 후 수십 년간은 이념 타령 자체가 불온이며 불충(不忠)이었다. 군부가 퇴장하자 좌우충돌은 격렬해졌다. 반으로 쪼개져 삿대질을 해댔다. 그리고 지난 1년. 쫓고 쫓기는 이념의 아귀다툼은 더욱 치열해졌다. 사사건건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며 눈을 부라린다.
최근의 세 가지 판결에 대한 반응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김용판·강기훈씨, 그리고 부림사건. 그저 입맛대로다. 어떤 판정도 불리하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치졸함이다. 물론 신뢰할 만한 사법부라는 전제는 따른다.
홍어니 일베충이니 좌좀이니, 이념과 지역감정에 매몰된 자들은 그렇게 편을 가른다. 우리에겐 편 가르기, 파벌의 유전자가 있다. 유전자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그래서 슬프다. 유전병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뿌리는 조선의 성리학자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나뉘어 싸웠던 선조들이다. 학연과 지연의 근원이다. 성리학의 이념 논쟁이 학문의 발전을 이뤘을지 모르지만 민심은 피폐했다. 학파 간 대립은 사색당파의 씨앗이 되었다. 씨앗이 발아하여 맺은 열매는 땅과 사람을 동서남북으로 찢은 분열의 독과(毒果)였다.
안현수 선수와 관련한 파벌 싸움은 새삼스럽지 않다. 무슨 학파의 후예인 양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패거리를 지어온 문화가 노출된 한 예일 뿐이다. 학계와 예술계, 체육계, 관계 어느 곳이 과연 파벌에서 자유스러운가. S대와 H대의 미대, S대와 K대의 법대만이 사례가 아니다. 철도 마피아나 원전 마피아도 학교 파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연과 지연이 어우러진 파벌은 더욱 가관이다. 실력은 뒷전, 연줄로 옭아매어 밀어주고 끌어주며 거대한 세력으로 이상(異常) 성장을 한다. 정치적 이념과 연결되면 파벌은 정파가 된다. 건전한 정파는 균형잡힌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지만 학연·지연을 뿌리로 하는 정파는 결코 순수할 수 없다.
이념의 극한 대립, 만연한 파벌이 주는 해악은 자못 크다.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를 눌러야 하는 탓에 페어플레이가 없다. 나는 무조건 선이고 상대는 무조건 악이다. 능력이 무시되고 파벌이 설치는 세상에서 정의는 짓밟힌다. 불의만 날뛴다.
두 해악은 경쟁력의 발목을 잡을 것임에 틀림없다. 남북 분단의 상황에 겹쳐진 내부 분열, 그런 사분오열로 주변국을 이길 순 없다. 흑묘백묘론을 들먹이다간 배부른 돼지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검은색과 흰색이 뜻을 같이해도 돌파할 수 없을 만큼 세계는 급변하고 있고 경쟁은 치열하다.
열강들 틈에 끼어 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망국의 운명을 맞았던 100년 전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물리적 침략만 없을 뿐 소리 없는 전쟁은 시작됐다. 중국은 막강한 인구와 영토를 배경으로 세계의 리더로 부상하는 중이다. 이미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빼앗긴 일본은 권토중래를 외치고 있다.
썩은 정치와 부패한 공무원에 대한 절반 이상의 책임을 이념 갈등과 파벌 문화가 져야 한다. 장삼이사들이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문제다. 어느 학교를 나왔고 고향은 어딘지를 먼저 묻는다. 실력은 순위가 떨어진다.
바깥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으로 헐뜯고 싸우는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받들기 싫다는 한국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안현수처럼 떠난다. 그들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맹목적인 편 가름과 다툼은 당장 그쳐야 한다.
sonsj@seoul.co.kr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전쟁 후 수십 년간은 이념 타령 자체가 불온이며 불충(不忠)이었다. 군부가 퇴장하자 좌우충돌은 격렬해졌다. 반으로 쪼개져 삿대질을 해댔다. 그리고 지난 1년. 쫓고 쫓기는 이념의 아귀다툼은 더욱 치열해졌다. 사사건건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며 눈을 부라린다.
최근의 세 가지 판결에 대한 반응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김용판·강기훈씨, 그리고 부림사건. 그저 입맛대로다. 어떤 판정도 불리하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치졸함이다. 물론 신뢰할 만한 사법부라는 전제는 따른다.
홍어니 일베충이니 좌좀이니, 이념과 지역감정에 매몰된 자들은 그렇게 편을 가른다. 우리에겐 편 가르기, 파벌의 유전자가 있다. 유전자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그래서 슬프다. 유전병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뿌리는 조선의 성리학자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나뉘어 싸웠던 선조들이다. 학연과 지연의 근원이다. 성리학의 이념 논쟁이 학문의 발전을 이뤘을지 모르지만 민심은 피폐했다. 학파 간 대립은 사색당파의 씨앗이 되었다. 씨앗이 발아하여 맺은 열매는 땅과 사람을 동서남북으로 찢은 분열의 독과(毒果)였다.
안현수 선수와 관련한 파벌 싸움은 새삼스럽지 않다. 무슨 학파의 후예인 양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패거리를 지어온 문화가 노출된 한 예일 뿐이다. 학계와 예술계, 체육계, 관계 어느 곳이 과연 파벌에서 자유스러운가. S대와 H대의 미대, S대와 K대의 법대만이 사례가 아니다. 철도 마피아나 원전 마피아도 학교 파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연과 지연이 어우러진 파벌은 더욱 가관이다. 실력은 뒷전, 연줄로 옭아매어 밀어주고 끌어주며 거대한 세력으로 이상(異常) 성장을 한다. 정치적 이념과 연결되면 파벌은 정파가 된다. 건전한 정파는 균형잡힌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지만 학연·지연을 뿌리로 하는 정파는 결코 순수할 수 없다.
이념의 극한 대립, 만연한 파벌이 주는 해악은 자못 크다.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를 눌러야 하는 탓에 페어플레이가 없다. 나는 무조건 선이고 상대는 무조건 악이다. 능력이 무시되고 파벌이 설치는 세상에서 정의는 짓밟힌다. 불의만 날뛴다.
두 해악은 경쟁력의 발목을 잡을 것임에 틀림없다. 남북 분단의 상황에 겹쳐진 내부 분열, 그런 사분오열로 주변국을 이길 순 없다. 흑묘백묘론을 들먹이다간 배부른 돼지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검은색과 흰색이 뜻을 같이해도 돌파할 수 없을 만큼 세계는 급변하고 있고 경쟁은 치열하다.
열강들 틈에 끼어 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망국의 운명을 맞았던 100년 전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물리적 침략만 없을 뿐 소리 없는 전쟁은 시작됐다. 중국은 막강한 인구와 영토를 배경으로 세계의 리더로 부상하는 중이다. 이미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빼앗긴 일본은 권토중래를 외치고 있다.
썩은 정치와 부패한 공무원에 대한 절반 이상의 책임을 이념 갈등과 파벌 문화가 져야 한다. 장삼이사들이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문제다. 어느 학교를 나왔고 고향은 어딘지를 먼저 묻는다. 실력은 순위가 떨어진다.
바깥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으로 헐뜯고 싸우는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받들기 싫다는 한국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안현수처럼 떠난다. 그들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맹목적인 편 가름과 다툼은 당장 그쳐야 한다.
sonsj@seoul.co.kr
2014-02-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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