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문학
  • 네 일을 사랑하라… 등짝 저릿, 법정 스님의 죽비

    네 일을 사랑하라… 등짝 저릿, 법정 스님의 죽비

    “세상에는 입에 맞는 떡이 그리 흔치 않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싫다, 싫어’ 마지못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요?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인생, 시시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므로 직장과 나의 인연을 깊이 살펴야 합니다. 기왕에 일을 하는 것이니 그것이 곧 내 일이라 믿고 그 일을 통해서 내 인생을 형성하고 꽃피울 수 있어야 합니다.” 법정(1932∼2010) 스님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라’를 주제로 1980년 부산 주부대학 강연 중 밝힌 내용이다. 상당수의 직장인이 이 글을 읽는 순간 죽비로 등짝을 얻어맞은 듯 저릿해하지 않을까? 어찌 몇 문장의 말로 스님의 강연을 요약할 수 있을까만, 책장을 열자마자 죽비처럼 내리꽂히는 말이라 유독 더 기억에 남을 법하다. ‘진짜 나를 찾아라’는 법정 스님이 1970~2000년대 전국 각지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법정 스님이 만든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가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발굴한 미출간 강연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예컨대 유난히 외모에 비중을 두는 요즘 사회엔 이런 가르침이 경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비싼 돈 주고 헬스클럽 다닐 필요 없어요.
  • 허술하면서도 오싹… 도시전설은 어디에서 왔을까

    허술하면서도 오싹… 도시전설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이상한 이야기에 빠져든 적이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시절에는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 같은 어린이 잡지 전성시대였다. 여름이 다가오면 이들 잡지에는 납량특집이라고 해서 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괴담들이 실렸다. 무섭지만 궁금증 때문에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내용들이었다. 당시 TV 9시 뉴스에서 다룰 정도로 전국을 강타했던 괴담이 있었다. 일명 홍콩할매귀신 괴담. 얼굴 반쪽은 할머니고 반쪽은 고양이 모습을 한 귀신이 아이들만 골라서 잡아먹는다는 내용이었다. 홍콩할매는 아이들에게 손바닥을 보여 달라고 한 다음 손금이 4자 형태로 생긴 아이들만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어 해가 떨어진 뒤 동네 골목에서 아이들을 볼 수 없을 정도였던 기억이 난다. 괴담은 한참이 지난 뒤 사그라들었다. 인터넷도 없던 때 누가 이런 괴담을 만들었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홍콩할매귀신 괴담 같은 이야기는 서구사회에도 있다. 바로 ‘도시전설’(urban legend)이다. 도시전설은 민담의 일종으로, 고도로 밀집되고 개발된 현대 도시에 있을 법한 미신이나 낭설을 말한다. 도시전설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말 사회
  • 중동분쟁 출발점은 1948년 아닌 1936년 ‘아랍 대봉기’

    중동분쟁 출발점은 1948년 아닌 1936년 ‘아랍 대봉기’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중동은 또다시 화약고가 돼 버렸다.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피해가 어마어마해지면서 국제사회의 비난도 이어지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야욕은 좀처럼 멈추질 않는다. 많은 이들이 중동분쟁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에 따른 팔레스타인 주민의 실향을 의미하는 ‘나크바’(대재앙)에서 기인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1936년부터 1939년까지 3년간 팔레스타인에서 지속된 ‘아랍 대봉기’가 그 시작점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대봉기로 유대인 500여명, 영국군과 경찰 250명 정도가 사망했다. 아랍인은 적게는 5000명, 많게는 8000명이 죽었다. 아랍 대봉기의 이면에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위임통치가 있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적 고향을 건설한다’는 1917년 밸푸어선언 이후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정착촌이 생겨나고 토지 매입도 늘었다.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은 정착촌을 지키는 무장단체 하가나, 유대인 경찰 노트림, 토지를 사들이는 유대민족기금, 임시정부인 유대인기구를 설립하는 등 이미 강력한 국가적 조직을 확립한 상황이었다. 반면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는 이에 대응할 만한 조직이 거의
  • 104세 철학자 김형석 “윤석열 대통령, 다른 사람 이야기 들어야”

    104세 철학자 김형석 “윤석열 대통령, 다른 사람 이야기 들어야”

    “윤석열 대통령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올해로 104세, ‘한국 최고령 철학자’로 통하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윤 대통령에게 건넨 조언이다. 김 명예교수는 9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김형석, 백 년의 지혜’(북이십일)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역사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윤 대통령이 독선에 빠져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명예교수는 윤 대통령이 존경하는 이로도 알려졌으며, 지난 달 윤 대통령과 만나 조언하기도 했다. 김 명예교수는 “윤 대통령이 리더이기 때문에 주장을 하면 장관들도 모두 옳다고 하면서 따라간다”면서 “그래선 안 된다. 윤 대통령은 장관이 아닌 다방면의 학자들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티타임 하면서 만나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앞길에 대해서도 “지금까지는 과오를 바로 잡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할 때다. 윤 대통령의 미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1920년생인 그는 대학을 정년 퇴임하고도 30년 넘게 저작과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뛰어난 고찰로 각계각층 전문가가 먼저 가르침을 청하는 ‘큰 어른’으
  • ‘도보다리 회동’ 비화 나올까…文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 20일 출간

    ‘도보다리 회동’ 비화 나올까…文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 20일 출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이야기를 다룬 회고록이 나온다. 8일 출판사 김영사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첫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20일 출간된다.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이 질문을 던지고 문 전 대통령이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됐으며, 원고는 문 전 대통령이 집필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룬 회고록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도보다리 회동,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남·북·미 판문점 회동 등 외교사적 변곡점을 조명한다. 이어 문 전 대통령의 외교 파트너였던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의 물밑 협상 과정과 그들에 대한 평가도 최초로 공개한다. 또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비롯해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 코로나19 방역 등 국방·보훈·방산 정책 과정의 주요 결정 배경과 그간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를 담았다. 회고록은 ‘미국의 손을 잡고’, ‘균형 외교’, ‘평화 올림픽의 꿈을 이루다’, ‘그리고 판문점’, ‘결단의 번개 회담’ 등 13장으로 이뤄졌다. 책 말미에는 ‘대담자의 변’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주요 일지를 실었다. 김영사는 “(이 책은) 외교·안보 성과
  • “너는 생각해라, 고로 AI다”

    “너는 생각해라, 고로 AI다”

    “이제는 나 말고 네가 대신 생각해라. 그런데 쟤가 생각하면, 그러니까 인공지능이 생각하면 나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데카르트의 명제가 더이상 불가능하다면, 이제 나는 누구인가.” 소설가 서이제는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상대하며 이렇게 탄식했다. 문예 전문 반(半)연간지 ‘쓺-문학의 이름으로’(문학실험실) 2024년 상권(18호)은 이렇듯 문학 평론가들과 소설가, 시인들이 생각하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사유를 모아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그 개체성과 집단성’이란 주제의 특집을 다뤘다. 인공지능은 명령어에 따라 신속하고 정확하게 답을 제시하지만 명령어 너머나 그 틈을 보지 않는다. 세계를 패턴화한 인공지능은 세상에 없는 것도 만들어 내는 능력인 할루시네이션으로 명령을 충실히 따른다. 환각, 환영이라는 의미의 할루시네이션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오류로 잘못된 답변을 생성해 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물음 자체에 어떤 의문도 갖지 않고 회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인공지능 앞에 서면 나는 왜 이리 작아지는가’라는 글에서 서이제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빠른 결과를 산출해 내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인공지능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율의 시선(김민서 지음, 창비)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말이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 가진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꽁꽁 숨겨온 상처 탓에 타인과의 눈 맞춤을 어려워하며 관계 맺기에 서툰 중학생 안율은 어느 날 독특한 아이 이도해를 만나며 자신의 세상에 균열을 느낀다. 또 겉으로는 알 수 없더라도 누구나 저마다 치열한 성장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타인의 인생을 마주하는 일은 마치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는 것처럼 거대한 울림이 된다. ‘완득이’, ‘페인트’, ‘위저드베이커리’ 등을 낳은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220쪽, 1만 3000원.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권민경 지음, 문학동네) “눈물은 나의 굿즈.” 고통받고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시인은 거리를 둔 채 ‘눈물이 굿즈’라고 소개하는 유머를 선보인다. 생생한 활력이 넘실거리는 시집은 생의 열망에 들떠 무수하게 벌이는 실수들까지 뜨겁게 끌어안는 너른 품을 보여 주며 읽는 이에게 울림과 위로를 전한다. 시인의 세 번째 시집. 152쪽, 1만 2000원. 개구리 남자(김종옥 지음, 문학과 지성사) “옮음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발견되지
  • 인공자궁에서 태어나… 가족의 의미를 묻다

    인공자궁에서 태어나… 가족의 의미를 묻다

    섹스와 번식, 재생산 그리고 가족. 영국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18 94~1963)가 일찍이 예견한 ‘인공자궁’이 점차 현실화하는 시대에 그 의미를 반드시 되물어야 할 단어들이다. 신의 고유한 권한을 넘보는 인간의 무엄함을 지적하는 것보다도 끝없이 붕괴하는 인간성을 구원하는 게 더 시급한 일일지도 모른다. 정지돈(41)의 새 소설 ‘브레이브 뉴 휴먼’은 제목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 헉슬리의 1932년작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의 오마주 혹은 패러디다. 앞서 ‘언리얼 퓨처: 22세기 서울’과 ‘가족의 방문’에 이어 인공자궁과 가족제도를 탐구한 정지돈의 세 번째 소설이다. 그는 “‘멋진 신세계’는 (소설의) 좋은 참조점이 됐지만 방향성은 반대”라고 했다. 헉슬리의 소설은 서기 2540년 생명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시대를 그린다. 모든 아기는 유전자 조작을 거쳐 인공자궁이 있는 공장에서 길러지고 태어난다. 정지돈도 이 생각을 받았다. ‘브레이브 뉴 휴먼’에서 이렇게 태어난 인간을 ‘체외인’이라고 칭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는 시점은 헉슬리가 상정한 것보다 훨씬 빠른 2040년대다. 물론 기술이 한국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을 터다. 그래도 정지돈은
  • 사기꾼들의 먹잇감은 누구인가

    사기꾼들의 먹잇감은 누구인가

    ‘흰옷을 입은 이들의 패스 횟수를 세어 보시오’라는 문장에 이어 6명의 남녀가 등장해 이리저리 움직이며 2개의 농구공을 서로 주고받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흰옷 입은 3명의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집중하느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검은색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갑자기 등장해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고 지나갔는데도. 관심 있는 것에 집중하면 다른 것을 놓치게 된다는 이 ‘투명 고릴라 테스트’ 실험은 우리의 인지 습관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 준다. 투명 고릴라 테스트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두 인지 심리학자가 낸 신간은 사람들이 왜 속는지, 그리고 사기꾼은 어떻게 사람들을 속이는지 알려 준다. 흔히들 귀가 얇은 사람, 혹은 멍청한 사람이나 사기꾼들에게 속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저자들은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속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집중’, ‘예측’, ‘전념’, ‘효율’과 같은 우리의 인지 습관 탓이다. 집중하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투명 고릴라 테스트처럼 예측 역시 잘못된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예컨대 여섯 명의 사진작가에게 한 중년 남성을 찍게 하면서 사전에 각각 다른 정보를 준 실험이 좋은 사례다. 남성이 재소자라거나 심령술사,
  • 어린이를 만날 가장 좋은 방법 ‘어린이책 읽기’

    어린이를 만날 가장 좋은 방법 ‘어린이책 읽기’

    어른은 어린이를 거쳐 왔기 때문에 어린이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동료 시민인 진짜 어린이를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지 않고, 심지어 아이와 마주치는 일조차 점점 줄어드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또 어른이 된 어린이와 지금의 어린이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아동문학 평론가이자 시인인 저자는 진짜 어린이를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어린이책 읽기를 권한다. 서평집과 에세이 그 중간쯤에 자리잡은 이 책은 어린이라는 타자를 마주할 수 있게 하는 길잡이가 된다. 작가는 어린이책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부터 2022년 출간된 윤슬빛 작가의 ‘오늘의 햇살’(문학과지성사)까지 100여편의 작품을 다룬다. “그 아이는 아홉 살인데 혼자 살고 있었다. 삐삐한테는 엄마 아빠가 없었지만 사실 그것도 아주 잘된 일이었다”라고 시작하는 삐삐 롱스타킹의 서두는 어린이의 감정과 욕망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어른의 관점에서 어린이를 가르치려 들거나 어린이를 이상화하는 ‘동심천사주의’를 거부한다. 저자는 삐삐 롱스타킹에 이르러 어린이 독자가 작품의 진정한 주인이 됐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또 ‘내 옆의 어린이와
  • [책꽂이]

    [책꽂이]

    유전자 지배 사회(최정균 지음, 동아시아) 과학책인가 하고 읽다 보면 사회학책 같은 느낌이 드는 희한한 책이다. 인간 유전체학자로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인 저자는 진화와 유전학적 관점에서 가정부터 정치, 경제, 사회 다방면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 혐오 정치, 능력주의 문화에 강펀치를 날린다. 책은 ‘이기적 유전자’를 연상케 한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에 이르면 이 책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확실하게 대체했음을 직감하게 될 것이다. 276쪽, 1만 7500원. 내 마음을 모르는 나에게 질문하는 미술관(백예지 지음, 앤의서재 ) 서점에서 미술책을 고르다 보면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이야기를 편집해 모은 것, 다른 하나는 어려운 이론과 용어로 범벅이 된 책. 이 책은 뭔가 다르다. 인생의 수많은 불쾌한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그림에 쏟아부은 뭉크에게서 결핍을 인정하는 용기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하는 식이다. 이 책은 그림 앞에 섰을 때 느끼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저자 역시 일반인들과 마찬가지 감상자로서 대신 이야기하고 답을 찾지 못했던 인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 격동의 시기에 가려진 위대한 한국 과학자들

    격동의 시기에 가려진 위대한 한국 과학자들

    여기 소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1946년 서울대 수학과에 한 젊은 교수가 있었다. 원래 물리학 전공이었지만 독학으로 수학을 공부했으며 박사 학위도 없는 ‘수학과 교수’였다. 그는 1947년 어느 날 남대문시장의 쓰레기 더미에서 우연히 국제 학술지 ‘미국수학회보’를 발견한다. 학술지를 읽다가 세계적 수학자 막스 초른의 논문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학술지 투고 방법을 몰라서 논문에 적힌 초른의 주소지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보냈다. 초른은 이 연구 결과를 보고 너무 놀라 미국수학회에 한국 젊은 수학자의 연구 결과를 보냈고 1949년 미국수학회보에 실렸다. 해방 후 국내에서 연구해 해외 학술지에 실린 한국인 첫 연구 논문이었다. 정작 한국의 젊은 수학자는 자신의 논문이 국제 저널에 실린 것을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주인공은 바로 대수학에서 ‘리 군론’을 발견한 세계적인 수학자 리림학(이임학·1922~2005)이다. 일제강점기 도쿄제국대 화학과에서 학위를 받은 뒤 지금도 세계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소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화학연구소(리켄) 연구원으로 활동했던 김량하(1901~미상)도 있다. 김량하는 세계 최초로 쌀 배아에서
  • 현실에 쓴소리 날린 ‘진정한 보수주의자’ 조지훈

    현실에 쓴소리 날린 ‘진정한 보수주의자’ 조지훈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문단의 변절 회오리에 실망해 오대산으로 들어가 청절하게 살아가던 청년 조지훈(1920~1968)은 일제가 싱가포르를 접수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암혈(岩穴)의 노래’라는 시를 짓는다. “야위면 야윌수록 살찌는 혼魂/별과 달이 부서진 샘물을 마신다./젊음이 내게 준 서릿발 칼을 맞고/창이創痍를 어루만지며 내 홀로 쫓겨 왔으나/세상에 남은 보람이 오히려 크기에/풀을 뜯으며 나는 우노라./꿈이여 오늘도 광야를 달리거라/깊은 산골에 잎이 진다.” 문학에 아둔한 이라도 나라 잃은 젊은이의 비분강개를 단박에 느낄 수 있는 시다. 조지훈 하면 청록파 시인, ‘승무’ 등 민족의 정한을 노래한 서정시인 등의 수식어가 퍼뜩 떠오른다. 관점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조지훈이 보인다. 정치·사회 현실의 벽 뒤로 숨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 말이다. ‘조지훈 평전’은 바로 그런 시각에서 시인 조지훈의 삶을 톺아본 책이다. 자유당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서고 4·19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청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던 지식인 조지훈에게 집중했다. 조지훈은 1960년 ‘새벽’이란 잡지에 ‘지조론’이란 글을 쓴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
  • 신간/독립유공자 후손이 쓴 역사서, ‘일본의 죄, 어디까지 아니?’

    신간/독립유공자 후손이 쓴 역사서, ‘일본의 죄, 어디까지 아니?’

    정부 간 관계와는 무관하게 한국과 일본 양 국민의 감정적 거리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신간 ‘일본의 죄, 어디까지 아니?’이 화제가 되고 있다. 각종 역사서와 자료들을 종합해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한눈에 볼 수 있게 일제가 저지른 죄악 100 가지를 시간 순으로 정리한 책 “일본의 죄, 어디까지 아니?”를 출판사 ‘고래가 숨쉬는 도서관’이 출간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이 쓴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해야 하는 100가지 이유’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 박찬아는 일제강점기 연통제 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르고 돌아가신 박원혁 독립지사의 손자이다. 그는 현재 한일 간 관계를 가로막는 이유는 과거의 일본이 아니라 과거를 가르치지 않는 일본의 현재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사과해야 하는 자나 사과를 받아야 하는 자 모두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상호 사과와 용서를 해야만 진정한 화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쓴 이유라고 밝힌다. 이 책은 독립유공자 딸인 할머니가 우연히 만난 초등학생들에게 일본의 죄악상을 설명하고 토론 하는 내용으로 어린이들이 읽고 이해하기 쉽게 씌여졌다. 또한 중요한 대목마다 작가의 한마디를 덧붙여 작가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 표지만 봐도 학을 떼는 벽돌책?… 이젠 만화로 쉽게 읽기

    표지만 봐도 학을 떼는 벽돌책?… 이젠 만화로 쉽게 읽기

    스피노자의 ‘에티카’, 마르크스의 ‘자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꼭 한번은 읽어 봐야 할 고전’으로 꼽히는 책들이지만 분량이 방대한 데다 펴 들었다가 집어던지기 십상일 정도로 난해하다. 이런 독자들을 위해 최근 그래픽 노블 형태로 고전을 쉽게 풀어낸 책들이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그래픽 노블로 꾸민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김영사)는 2020년 1권을 시작으로 이번에 3권이 발간됐다. 재미있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명화나 대중문화를 차용한 사실적 그림으로 두꺼운 사피엔스 원작을 읽기 부담스러웠던 사람들도 술술 읽을 수 있다. ‘인류의 통합’과 관련한 내용을 다룬 3권에는 제국, 돈, 종교를 의인화한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해 역사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을 보여 준다. ‘스피노자 에티카’(이숲)는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혀를 내두른다고 할 정도로 악명 높은 ‘에티카’를 만화로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행복에 이르는 길은 신에 대한 참된 인식에 있으며 이런 인식으로 밝혀질 수 있는 삶의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만화는 수수께끼만 같던 스피노자의 철학에 한 발 들여놓을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