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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자폭형 드론

    [씨줄날줄] 자폭형 드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난 새로운 특징을 하나 꼽자면 무인기(드론) 공습이 본격화한 점이다. 특히 군사·경제적 열세인 우크라이나가 대대적인 드론 공격을 퍼붓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21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는 여러 대의 드론 공습을 받았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이후 각종 미사일은 물론 F-16 전투기까지 지원받고 있다. 그럼에도 주요 무기에 러시아 본토 공격 제한 조건이 붙어 있어 운용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반면에 러시아는 미사일과 항공기를 이용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등 주요 도시와 군사 거점에 무차별적 공격을 이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찾은 탈출구가 드론이다. 위력이 강하면서 비용이 저렴한 ‘가성비’ 때문이다. 드론은 적 레이더에 잘 탐지되지 않는 데다 인공지능(AI)까지 탑재돼 공격 효율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오픈소스 정보 웹사이트인 오릭스 집계에 따르면 2022년 전쟁 발발 이후 올해 4월까지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에서 각각 전차 796대와 2900여대가 파괴됐는데 이 중 상당수가 자폭 드론에 의한 피해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자체 생산해 투입한 ‘스위치 블레이드 600’ 드론은 적의 전차를 스스로 찾아가 공중에서
  • [씨줄날줄] AI교과서 논쟁

    [씨줄날줄] AI교과서 논쟁

    인공지능(AI)은 교육에 기회일까, 재앙일까. 지난해 챗GPT가 나오면서 사고력 저하를 우려해 미국 뉴욕시 교육부는 모든 공립고에 챗GPT 사용을 금지했다. 홍콩대, 파리정치대 등도 같은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AI가 학생 사고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면서 수업에 활용하는 대학들도 적지 않다. 교육부가 내년부터 도입하는 AI디지털교과서를 두고서도 이런 시각 차이가 있다. AI교과서는 학습자의 학습 스타일과 수준별로 맞춤형 교육 콘텐츠를 제공한다. 초 3~4년, 중 1년, 고 1년생이 영어, 수학, 정보 교과를 배울 때 기존 교과서와 함께 사용하게 된다. 정부는 AI교과서 사용으로 맞춤 학습을 기대한다. 현재 공교육에선 학습 능력이 제각각인 학생들이 같은 교과서로 배우는 방식이다. 기초학력 미달자에 대한 보충이나 심화학습 요구는 방과후학교나 사교육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정식 수업에서부터 AI교과서를 활용하면 학생들의 학업 능력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반론이 만만찮다. 학생의 사고력, 창의력을 떨어뜨리고 경제적 수준 차이에 따라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이런 이유로 AI교과서 도입 유보를 촉구하는 국회의 국민청원
  • [씨줄날줄] 냉동 난자

    [씨줄날줄] 냉동 난자

    이십여년 전에는 늦둥이가 큰 화제였다. 팝스타 마돈나와 영화배우 킴 베이신저, 샤론 스톤, 지나 데이비스 등이 마흔 살을 넘긴 출산으로 외신을 달궜다. 남성 톱스타들은 잊힐 새도 없이 ‘기록’을 갈아치웠다. 배우 앤서니 퀸은 81세 때 딸을 얻어 세상을 놀래켰다. ‘늦둥이 역사’로 말하자면 공자를 빼놓을 수 없다. 공자의 아버지는 딸 아홉에 아들 하나를 두고도 70세 넘어 증손자뻘의 공자를 얻었다. 모두 고릿적 얘기들이 됐다. 우리나라 평균 초혼 연령은 2022년 기준으로 남성 33.7세, 여성 31.3세. 평균 초산 연령은 32.6세로 갈수록 늦어진다. 국제산부인과연맹(FIGO)과 세계보건기구(WHO)의 노산(老産) 기준은 35세. 이 기준이 제시된 것이 1958년이니 기대수명 연장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취업과 결혼이 늦어지면서 난임 가정이 늘고 있는 추세다. 난임과 노산을 걱정하는 20~30대 여성들 사이에 ‘난자 냉동’ 시술이 유행이다. 여러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미루더라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건강한 난자를 보존해 두려는 생각에서다. 난자 채취 비용은 300만원 정도. 난자은행에 보관하는 비용은 한 해 20만~30만원이다. 전국 의료
  • [씨줄날줄] 슈거 하이

    [씨줄날줄] 슈거 하이

    설탕이 몸에 좋지 않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본능이라는 말도 있듯 단맛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렵다. 설탕을 먹었을 때 쓴맛은 느끼지 못하고 행복하고 황홀한 느낌이 드는 일시적 흥분 상태를 ‘슈거 하이’(sugar high)라고 한다. 문제는 이런 일시적 흥분 상태가 한두 시간밖에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올라갔던 혈당이 떨어지면 저혈당 증세로 피곤하고 우울한 감정까지 온다고 한다. 경제에서도 슈거 하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경제용어로는 백악관 경제자문관을 지낸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제프리 프랑켈 교수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엔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 감세 등으로 인해 경기가 근본적인 개선 없이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길게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 차례에 걸친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에 따른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의 시대를, 짧게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시절 감세와 재정지출로 인한 경제 호황기를 사례로 들 수 있다. 트럼프의 감세 효과는 수치로도 확인됐다. 트럼프가 집권한 첫해인 2017년 미국 경제성장률은 2.4%였지만 2018년에는 2.9%를 기록했다. 2019년 4월 미
  • [씨줄날줄] 내신 국가평가

    [씨줄날줄] 내신 국가평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5·31 교육개혁 방안의 하나가 내신 절대평가였다. 성취 기준에 따른 평가가 교육 본질에 맞다는 당위성이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내신 부풀리기’였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내신 신뢰도 향상을 위해 9등급 상대평가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 체제는 문재인 정부까지 이어졌다. 이후 윤석열 정부 들어 교육부가 지난해 5등급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병기하는 방식을 내년부터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교육 평가방식마저 정권 이념에 따라 바뀌는 것이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래서 등장한 기구가 2년 전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다. 정권의 이념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는 중장기 교육정책을 세우겠다는 뜻이다. 그제 국교위 산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회에서 수능과 내신 절대평가, 내신의 외부기관 평가를 골자로 하는 교육발전안이 나왔다. 내부 검토 안으로 교육위의 확정안은 공청회 등을 거쳐 내년 3월 나온다. 주목되는 점은 내신의 외부 평가 방안이다. 현재 학교별 평가를 수능 모의고사를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평가와 병행하자는 것이다. 현 시스템에서 절대평가를 하면 내신 부풀리기에 특목고 등의 경우 모든 학생이 1등급을 받
  • [씨줄날줄] 히트플레이션

    [씨줄날줄] 히트플레이션

    ‘금(金)사과’, ‘금대파’에 이어 이제 ‘금배추’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배추 한 포기가 어제 6900원(소매가)에 거래됐다. 열흘 사이 1000원이나 올랐다. 개학으로 인한 급식 수요가 더해지면 더 오를 수 있다. 배추는 날이 더우면 속이 차오르지 않아 수확이 어렵다. 한국은행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의 물가상승분 중 10% 정도는 고온 등 이상기후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폭염으로 농산물 작황이 나빠져 물가가 오르는 ‘히트플레이션’(열+인플레이션) 비중이 10%에 이른다는 얘기다. 폭염으로 인한 작물 피해가 전 세계적 현상이라 원자재를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더욱 힘겨울 수 있다. 폭염은 물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멀쩡했던 수확물이 이송 중 폭염 때문에 시들고 부패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노동시간도 줄어든다. 국제노동기구는 폭염으로 2030년까지 매년 전 세계 총노동시간의 2% 이상이 손실될 것으로 봤다. 특히 농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폭염 등 이상기후는 이제 상수다. 지난해 여름은 1880년 기상 관측 이후 가장 더웠는데 올여름은 더 덥다. 결국 적응해야만 한다. 시장조사기관들은 식료품을 적정
  • [씨줄날줄] 코로나19 치료제 확보 전쟁

    [씨줄날줄] 코로나19 치료제 확보 전쟁

    4년 전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 온 국민이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렸다. 약국 앞은 마스크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이 펼쳐졌다. 30분 넘게 줄을 선 대가로 받아든 건 KF94 마스크 2장. 평상시라면 1장당 200~300원이던 걸 1500원을 줘야 했다. 그나마 ‘배급’이 끊겨 허탈하게 돌아서던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구입 불편을 덜기 위해 출생연도 끝자리 번호에 따라 지정된 요일에만 살 수 있는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기도 했다. 마스크뿐만이 아니다. 세계 유명 제약사들은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은 치료제·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기까지 전 세계에서 700만여명이 감염돼 목숨을 잃었고, 한국에서도 3만 4000여명이 숨졌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이 그후 감염병 예방과 대응체계 개선에 나섰다. 우리 보건당국도 지난해 ‘감염병으로부터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향한 4개 추진 전략과 16개 핵심 과제를 설정했다. 하지만 그런 준비가 ‘탁상공론’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해 재유행 조짐이 보이는데 병원과 환자들은 치료제를 구하지 못해 속수무
  • [씨줄날줄] 흔들리는 구글 제국

    [씨줄날줄] 흔들리는 구글 제국

    휴렛팩커드,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월트디즈니의 공통점이 뭘까. 모두 차고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혁신의 역사는 차고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다. 1998년 9월 7일,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구글을 창업한 장소 역시 인텔 직원이었던 수전 워치츠키의 차고였다. 브린과 페이지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워치츠키가 차고를 빌려주고 창업을 도왔다. 최근 폐암으로 사망한 그는 구글의 유튜브 인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뒤 2014년부터 유튜브 최고경영자(CEO)로 유튜브 전성기를 이끌었다. 워치츠키는 ‘구글의 어머니’로 불린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브린과 페이지는 원래 구글을 창업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에 다니던 두 사람은 창업보다는 학업에 전념하고자 했다. 당시 구글 서비스는 스탠퍼드대의 도메인을 이용했는데, 학교 네트워크를 마비시키는 일까지 발생하자 팔아넘기기로 했다. 두 사람은 구글을 당시 검색엔진의 최강자였던 알타비스타에 100만 달러에 판매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야후도 제안을 거절했다. 그때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 창업자 앤디 벡톨샤임이 구글 서비스의 가치를 알아보고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즉
  • [씨줄날줄] 난카이 대지진과 한반도

    [씨줄날줄] 난카이 대지진과 한반도

    제주 읍지(邑誌)인 ‘증보 탐라지’는 1707년(숙종 33)의 지진해일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기상용어로 쓰이는 지진해일(地震海溢)이라는 표현이 있어 기상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 지진해일은 특정한 용어라기보다 문장 속에서 ‘땅이 울리고 바다가 넘쳤다’는 서술적 표현으로 등장하곤 한다. ‘탐라지’는 제주목사 이원진(1594~1665)이 개인적으로 펴낸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읍지다. 이것을 바탕으로 후임 제주목사 윤시동(1729~1797)이 제주의 역사, 지리, 풍속을 자세히 다루어 펴낸 관찬(官撰) 읍지가 ‘증보 탐라지’다.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이마니시 류가 반출한 것을 후손이 1960년 일본 덴리대학에 기증했다고 한다. 제주의 해일은 호에이 대지진 때문이었다. 일본열도 동남쪽의 도카이(동해)~도난카이(동남해)~난카이(남해) 해곡(海谷)의 단층이 동시에 파열돼 일어난 유일한 지진이다. 후지산이 마지막으로 분화한 것도 이때다. 일본 기상청이 ‘난카이 해곡 지진 임시 정보’를 발표한 이후 일본열도에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8일 미야자키의 규모 7.1 지진 이후 100∼150년 간격으로 일어나는 난카이 대지진의
  • [씨줄날줄] 그늘막 차별

    [씨줄날줄] 그늘막 차별

    세상을 바꾸는 혁신은 종종 우연히 떠오른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에서 시작된다. 2020년부터 3년간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그랬다. 한국에서 처음 발명된 ‘드라이브스루’(drive thru) 검사 방식은 해외 언론이 극찬하며 미국과 영국·독일·벨기에·덴마크 등 전 세계가 도입했다. 최초 제안자인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김진용 과장은 의료인과 환자, 보호자를 안전하게 검사하면서도 진료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고속도로 교차로와 분기점에 그려진 녹색 또는 분홍색의 긴 띠, 색깔 유도선은 누가 발명했을까. 윤석덕 한국도로공사 차장이다. 영동고속도로 안산 분기점에서 차선을 혼동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초등학생도 알 수 있게 대책을 만들어 오라는 지사장의 지시로 고민한 결과다. 도로 위 색깔 표시에 제약이 많았지만 2011년 5월 안산 분기점에 유도선이 처음 도입된 뒤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서울시가 주행 유도선이 그려진 교차로의 전후 교통안전을 비교한 결과 사고위험도가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고 한다. 최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횡단보도 앞 그늘막은 필수시설이 돼 가고 있다. 이 그늘막을 처음으로 발명한
  • [씨줄날줄] 손타쿠(忖度)

    [씨줄날줄] 손타쿠(忖度)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지역구 도로사업을 내가 손타쿠했다.” ‘손타쿠’는 중국 고전 시경에 나오는 촌탁(忖度)의 일본어 발음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서 안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아랫사람이 알아서 일을 처리한다는 뜻으로 변질됐다. 우리말로 풀어 쓰면 ‘알아서 기기’쯤이다. 2019년 4월 ‘아베 손타쿠’ 발언을 한 국토교통성 부대신(한국의 차관급)은 며칠 버티다가 결국 사퇴했다. 잘 쓰이지 않았던 손타쿠는 2017년 일본의 유행어가 됐다. 재무성이 아베 전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명예교장으로 있던 사립학원에 국유지를 헐값에 매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당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손타쿠가 정부와 민간 부문에서 횡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일본인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 썼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을 손타쿠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30년 지기의 당선을 보는 게 소원’이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뜻을 헤아려 청와대 참모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혐의다. 지난해 11월에야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우리은행이
  • [씨줄날줄] 건국절 논란

    [씨줄날줄] 건국절 논란

    오는 15일은 79주년 광복절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을 자축하는 날이다. 정부는 독립기념관 개관(1987년),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1995년) 등 광복절마다 자유독립의 의미를 되새기는 정치적 행사를 해 오고 있다. 그런데 올해 광복절을 앞두고 건국절 논란이 일면서 광복회가 정부의 기념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뉴라이트 인사로 평가받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이 계기였다. 독립유공자 후손인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 10일 “정부가 근본적으로 1948년 건국절을 추구하려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광복회는 광복절 행사에 나갈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더불어민주당도 김 관장 임명 취소를 요구하며 정부 주관 기념식 불참을 선언했다. 건국절 논란은 대한민국 건국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일인 1919년 4월11일로 할 것인지, 1948년 8월 15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보수·진보 진영 간 논쟁이다. 2006년 뉴라이트 계열이던 이영훈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자고 주장하면서 촉발됐다. 이후 2008년 이명박 정부는 국무총리 산하 대한민
  • [씨줄날줄] 긱워커와 N잡러

    [씨줄날줄] 긱워커와 N잡러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이 2019년 내놓은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택배노동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작에 올랐다. 성실한 가장이지만 은행의 부도로 갑자기 직장을 잃은 주인공 리키는 택배회사에 취직해 쉬는 날 없이 하루 14시간, 주 6일을 일한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짐칸에 페트병을 싣고 다니지만 삶은 점점 더 엉망이 돼 가는 현실에 절망감만 쌓인다. 영화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긱워커(Gig Worker)의 불안정한 노동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긱워커는 단기 일자리를 뜻하는 긱(gig)과 근로자를 의미하는 워커(worker)의 합성어로, 배달 라이더처럼 한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짧게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임시노동자를 뜻한다. 긱은 일시적인 일을 뜻하는데, 1920년대 미국의 재즈클럽에서 즉석에서 섭외한 연주자를 긱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일본에서는 정규직을 대신하는 임시직을 뜻하는 용어가 1980년대부터 등장했다. 일본은 1960~70년대에 연간 8%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어 가는 황금기를 보냈다. 하지만 1·2차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일본의 고도성장기는 막을 내렸고,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엔화의 강
  • [씨줄날줄] 압록강 행진곡

    [씨줄날줄] 압록강 행진곡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군이 부르던 ‘압록강 행진곡’의 일부다. ‘압록강을 건너고 백두산을 넘어서’ 회복해야 하는 땅은 당연히 한반도다. 나라 밖에서 나라 안으로 ‘진격’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유일한 노래일 것 같다. 작곡자는 한국광복군 중교(中校·중령) 한형석(1910~1996)이다. 의사인 그의 아버지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중국혁명군 구호의장(救護醫長)이 됐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형석도 예술대학을 졸업한 뒤 항일 가곡과 군가를 독립군과 중국군에 보급하는 데 힘썼다. 1940년 창설된 한국광복군 총참모장 이범석은 “조국은 우리의 피로 찾아야 한다”며 ‘국기가’(國旗歌)를 썼다. 당시 광복군 예술부장이던 한형석은 이범석의 가사로 군가를 만들었다. 그의 독립군가는 ‘광복군 제2지대가’, ‘조국행진곡’, ‘아리랑행진곡’으로 이어졌다. 특히 한국인의 독립투쟁을 줄거리로 만든 항전가극 ‘아리랑’은 우리말 가사였음에도 순회공연이 이루어진 지역에선 중국인 주민들까지 ‘아리랑’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였다고 한다. 한형석은 중국 최초의 아동극장을 창설하기도 했다. 최초의 종합가극 ‘리나’는 나라를 잃은 폴란드 음악
  • [씨줄날줄] 샤워실의 바보

    [씨줄날줄] 샤워실의 바보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 ‘선택할 자유’에서 샤워실의 바보란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샤워실에서 물을 틀 때 따뜻한 물이 빨리 나오도록 수도꼭지를 온수 방향으로 돌렸다가 너무 뜨거운 물이 나오면 재빨리 찬물 쪽으로 돌리고, 반대로 너무 차가운 물이 나오면 온수 방향으로 돌리는 모습을 빗대 정부의 ‘널뛰기식 대응’을 비판할 때 쓰인다. 샤워실의 바보는 주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통화정책을 비난할 때 활용된다. 연준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1%였던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단박에 낮췄다. 이후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왔으나, 제롬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일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2021년부터 물가가 치솟자 당황한 연준은 한 번에 0.5% 포인트를 올리는 ‘빅스텝’과 0.75% 포인트를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반복한 끝에 현 수준(5.25∼5.50%)을 1년간 유지해 왔다. 한데 상황이 급변했다. 연준의 이코노미스트였던 클라우디아 샴 박사가 2019년에 만든 ‘샴의 법칙’이 발동되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증폭됐다. 샴의 법칙은 최근 3개월 실업률 평균치가 직전 1
  • [씨줄날줄] 활의 나라

    [씨줄날줄] 활의 나라

    파리올림픽에서 한국은 양궁 종목에 걸린 금메달 5개를 모두 휩쓸었다. 기자회견에서는 “한국이 이렇게 양궁을 잘하는 이유가 뭐냐. 고구려 시대부터 활쏘기를 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외국기자의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삼국사기’는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을 두고 “겨우 일곱 살이었을 때부터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었고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을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 했으므로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다”고 적었다. 고구려의 무용총 벽화에는 전사가 말을 탄 채 몸을 뒤로 돌려 화살을 쏘는 고급 기술인 이른바 파르티안사법(射法)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후삼국의 일원이었던 후고구려, 곧 태봉의 궁예(弓裔)도 이름부터 ‘활의 후예’라는 뜻이다. ‘삼국사기’ 궁예열전에는 “신라 말기 선종은 어지러운 때를 타서 백성을 모으면 뜻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죽주적괴 기훤에게 투탁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선종은 궁예, 죽주는 안성 죽산 일대다. 태봉시대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안성 기솔리 궁예미륵의 입술은 화살을 장전한 활의 모습으로 조각됐다. 고려가 여진 정벌을 위해 설치한 별무반에는 사궁(射弓), 경궁(梗弓), 강노(剛弩) 등 활과 관련된 병종(兵種)만 3개
  • [씨줄날줄] 표현의 고유성

    [씨줄날줄] 표현의 고유성

    ‘황무지’의 시인 TS 엘리엇은 종종 표절의 눈총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인유를 즐겼기 때문이다. 그런 비판에 엘리엇은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남의 것을 쥐도 새도 모르게 흡수할 수 있는 게 위대한 시인이라는 얘기다. 흔적 없이 흡수한다는 것은 창작자들이 나만의 표현과 문장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작가들은 ‘아무도 안 써 본 슬프고 진한 어휘’를 추구한다”고 했다. 표절 시비는 이런 고유성을 획득한 표현을 두고 벌어진다. 우리 문단의 가장 시끄러웠던 베끼기 논란은 소설가 신경숙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의 번역본에 있는 ‘기쁨을 아는 몸’이라는 독특한 표현이 그녀의 작품에 그대로 등장해서다. 최근 ‘롱블랙’이라는 유료 구독 서비스 업체가 회원들에게 보내는 뉴스레터에 김영하 작가의 글귀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인생의 난제가 풀리지 않을 때면 달아나는 것도 한 방법이죠.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일 겁니다’가 문제의 대목으로, 김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 나오는 ‘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 [씨줄날줄] 조선통신사

    [씨줄날줄] 조선통신사

    통신사란 일반적으로 조선 국왕이 일본 실권자인 막부의 쇼군(將軍)에게 보낸 사절단을 말한다. 하지만 일본에 파견된 국가 차원의 사절단을 통신사라 부른 사례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다. 고려가 1375년(우왕 1) 무로마치 막부에 왜구의 횡포를 막아 달라고 요청하는 사절을 보낸 것이 사료에 나타난 첫 통신사다. 조선 전기 통신사는 쇼군의 즉위를 축하하거나 사망에 조문하면서 그들의 국정을 탐지하는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 황윤길과 김성일의 사행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통일을 축하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적정 탐색이 주목적이었다. 임진왜란 직후 포로 송환을 요구하는 사행은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였다. ‘신뢰로 소통한다’는 뜻의 ‘통신’(通信)이라는 표현을 피했다. 조선은 ‘일본의 상국(上國)’을 자처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 하야시 라잔은 ‘조선은 예부터 일본 서쪽 번(藩·제후의 영지)으로 그 사절은 원인(遠人·변방인)’이라 했다. 글의 제목부터 ‘조선통신사 내공기(來貢記)’이니 회답겸쇄환사를 포함한 통신사를 ‘조공을 바치러 온 사절단’으로 인식했다. 이런 분위기가 일본에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평화롭게 교류를 이어 간 18세기 조
  • [씨줄날줄] 동교동 DJ 사저

    [씨줄날줄] 동교동 DJ 사저

    김대중(DJ)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별세 전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으로 사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저 매각 땐 그 대금의 3분의1은 김대중기념사업회를 위해 쓰고 나머지를 3형제가 3분의1씩 나누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동교동 사저가 후손들에 의해 소모되지 않고 의미 있게 쓰이도록 꼼꼼히 챙긴 것이다. DJ가 반세기 정치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동교동 사저는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안방정치’의 대표적 장소다. 5·16 쿠데타가 일어난 1961년 입주한 뒤 미국 망명과 영국 유학, 2년여의 일산 사저 거주, 대통령 재임 기간을 빼곤 줄곧 살았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와 함께 야당 정치사의 ‘산실’로 불리는 이유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군사독재 시절 55차례나 가택연금을 당하면서 동교동계 인사들은 동교동 사저를 ‘동교 교도소’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여사 별세 후 동교동 사저를 두고 상속 분쟁이 벌어지는 등 유언 실행은 순탄치 않았다. 이 여사가 낳은 3남 김홍걸 전 의원이 유일한 법적 상속인임을 내세워 사저 상속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2021년 이 여사 2주기를 맞아 김 전
  • [씨줄날줄] 날개 단 K치킨

    [씨줄날줄] 날개 단 K치킨

    지난해 한 조사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한식으로 치킨이 첫손에 꼽혔다. 그다음이 라면, 김치였다. 소셜미디어에 한국 치킨에 대한 각 나라 사람의 리뷰가 넘쳐나고, 한국을 찾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치맥 체험은 빠질 수 없는 코스다. 미국에서 유래한 프라이드치킨이 이제 대표 한국 음식이 돼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뭘까. ‘많아지면 달라진다’(More is Different)는 자연계 구조를 설명하는 과학 이론은 한국 치킨에도 해당될 법하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현재 약 640여개. 치킨에 이토록 진심이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업자가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니 차원이 다른 ‘한국식 치킨’이 탄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글로벌 브랜드인 KFC로 대변되는 미국인들의 ‘K치킨 홀릭’은 대단하다. ‘미식의 도시’ 중 하나인 뉴욕에 대규모 한국식 치킨 레스토랑이 생기는 등 날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여세를 몰아 한국관광공사와 치킨 외식업계 맏형 BBQ가 어제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원바이트투코리아 캠페인’(One Bite To Korea Campaign)을 열었다. 방문객 5000명이 무료로 한국 치킨의 바삭함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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