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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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정치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그런 걱정을 천업으로 삼은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진경호 칼럼
  • [진경호 칼럼] 대통령이기 때문이다/논설실장

    [진경호 칼럼] 대통령이기 때문이다/논설실장

    지구 맞은편 두 명의 대통령으로부터 ‘결단’이 나왔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과 대한민국 윤석열. 마크롱 대통령은 하원 표결을 생략하고 국민연금 개혁안을 밀어붙였다. 보험료를 2년 더 내고 연금은 2년 늦게 받는 방안. 헌법의 권한을 행사했다지만 국민 70%와 야당의 반발 속에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먼 나라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제3자 변제’라는 강제동원 해법을 들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손을 맞잡았다.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후 이어져 온 대치를 끝내고 한일 양국 공동번영의 미래를 열자는 합의, 그러나 여론은 따뜻하지 않다. 두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한 이유는 자명하다. 다름 아닌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당장 욕을 먹더라도 나라와 다음 세대를 위해 대통령의 소임과 책무를 다하겠다는 것. The Buck Stops Here!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문재인 정부의 부작위(不作爲)와 퇴행이 남긴 산더미 같은 청구서들이 없었다면 해리 트루먼 전 미 대통령의 각오를 담은 저 팻말이 윤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물이 들어온 걸까. 윤ㆍ기시다 회담에 맞춰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맹렬히 노를 젓기
  • [진경호 칼럼] 챗GPT가 묻는다, ‘이재명’이 뭐냐고/논설실장

    [진경호 칼럼] 챗GPT가 묻는다, ‘이재명’이 뭐냐고/논설실장

    주말 빈 시간을 챗GPT와 보냈다. 기계와의 ‘대화’, 물론 처음이다. 기존 포털의 키워드 검색 형식을 대화형으로 바꾼 것일 뿐이라지만, 이 LLM(대규모 언어모델)이란 낯선 이름의 인공지능(AI)은 모든 영역에서 차원이 달랐다. 질문(검색이 아닌)의 맥락을 파악하는 이해력, 그에 맞게 관련 자료를 정리해 서술하는 논리력, 질문을 마치기 무섭게 답을 쏟아내는 정보력ㆍ순발력.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를 하고 한국어로 물으면 한국어로, 영어로 물으면 영어로 답했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AI와 관련한 칼럼을 써 보라 했다. “네, 어떤 주제로 쓰면 좋을까요?” 지시를 구체적으로 하라는 요구를 이런 부드러운 어법으로 했다. 대체 누가 이리 잘 가르쳐 놨나! AI와 예술의 미래에 대해 써 보라 했다. AI가 작곡하는 원리, 소설을 쓰는 방식, 그림을 구성하는 방식부터 상세히 알려 준다. 생성모델과 판별모델이 맞부닥치는 자기 검열을 통해 창작을 해 나가는 기계학습 원리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도 설명했다. ‘AI 판사’에 대해서는 어떨까. 인간 판사보다 훨씬 빠르고 일관된 판결을 내릴 가능성, 개발자의 선입견이 판결에 반영될
  • [진경호 칼럼] ‘초선 50인 성명’ 거부한 김미애/논설실장

    [진경호 칼럼] ‘초선 50인 성명’ 거부한 김미애/논설실장

    국민의힘 초선의원 48명(이튿날 50명이 됐다)이 나경원 전 의원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성명을 낸 지난 17일 저녁 국민의힘 초선 김미애 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무 힘드네요. 많이 속상합니다.” 그가 힘든 까닭보다 먼저 그가 누군지부터 말하자. 그는 단단한 사람이다. 홀로 남겨진 10대 후반을 부산 방직공장 여공으로 보냈다. 주경야독의 만학 끝에 변호사가 됐고,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힘들게 살지 않도록 하겠다며 정치에 입문했다. 뼛속까지 흙수저 정치인이다. 큰언니 딸, 작은언니 아들을 맡아 키웠고 입양한 딸을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기도 하다. 국회 앞에다 서울 거처를 마련하곤 매일 새벽 6시 걸어서 국회로 출근한다. 주말이면 지역구(부산 해운대을)로 달려가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시구 의원들과 지역 현안을 점검하고 동네 구석구석을 살핀다. 1억원 넘게 기부한 아너스클럽 회원이고, 지금도 매월 급여(세비) 30%를 뚝 떼어 기부한다. 초등학생 딸과 놀아 줄 시간이 부족한 게 늘 안타깝지만 국민이 뽑아 준 공복(公僕)이기에 촌음을 다투며 하루를 산다. 해야 하는 것, 그 이상을 한다. 그러고도 웬만해선 힘든 줄 모른다. 그런 그가 정작 초선 50명의 성명
  • [진경호 칼럼] 데카당스로 치닫는 이재명 리스크/논설실장

    [진경호 칼럼] 데카당스로 치닫는 이재명 리스크/논설실장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말 국회에서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하는 것으로 2022년 ‘집권야당’으로서의 대미를 장식했다. 6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안고, “뭘 또 주시느냐. 감사히 잘 쓰고 있다”는 말과 한국은행 띠지에 묶인 현금 3억원이 그의 육성 녹취록과 집에서 나왔으나 민주당은 그를 체포해선 안 된다며 버젓이 빗장을 걸었다. 짚을 대목이 적지 않다. 우선 검찰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제출에 대비한 이 예행 연습에 민주당 소속 의원 대다수가 동참한 점이다. 반(反)이재명 진영만 서른 명 넘는다는데 이들은 다 어디로 갔나. 비(非)문재인계인 노 의원을 친문 진영들조차 감쌌다는 건 조만간 닥칠 이재명 기소 정국을 ‘이재명 사수’의 기치로 돌파하겠다는 집단의지를 내보인 셈이다. ‘야당 탄압’이라는 프레임 아래 이 대표와 ‘한 몸’이 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1월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제한하는 혁신안을 비록 대선용으로나마 내놓은 당이거늘 누구 하나 지금의 자가당착에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조국 전 법무장관을 감싸다 정권을 내준 어제를 그들은 잊은 게 분명하다. 딱하긴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노웅래 체포안을 부결시킨 민주당을 맹비난
  • [진경호 칼럼] 윤석열의 시간/논설실장

    [진경호 칼럼] 윤석열의 시간/논설실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아는 바대로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하는 영화다. 적에게 붙잡힌 라이언 일병 한 명을 구하느라 존 밀러 대위 등 전우 8명이 희생되는, 이 셈이 안 맞는 플롯은 나라의 각 구성원들에게 국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말해 준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의 모토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와도 궤를 같이한다. 한 해 수천억원을 써 가며 전 세계 40여곳에 흩어져 있는 수십년 전 미군 유해를 발굴해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DPAA의 과업과 이미 세 아들을 전장에서 잃은 노모에게 어떻게든 막내아들만은 살려 보내려 적진에 뛰어든 동료 8명이 끝내 목숨을 잃는 희생 끝에 라이언을 구출하는 영화의 줄거리가 상징하는 가치는 오직 하나다. 국민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이라는 다인종 국가의 특수성에서 발현된 과잉 국가주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사회 소외계층의 후생복지를 향상시키지 못한다면 그 제도는 설령 사회 다수의 이익에 부합한다 해도 정의롭지 않다. ‘정의’만 40년을 판 미 자유주의 사상가 존 롤스의 말이다. 8명이 죽어 1명을
  • [진경호 칼럼] 고맙다는 말은 말라/논설실장

    [진경호 칼럼] 고맙다는 말은 말라/논설실장

    세월호가 가라앉고 엿새가 된 2014년 4월 22일. 기적의 생환을 염원하는 소망이 점점 절망의 고통 속으로 잠기기 시작할 무렵 언론매체의 보도 방향이 갈리기 시작했다. ‘선장·선원들 무서운 거짓말…박 대통령 “살인행위”’(22일자 서울신문) 등 대개의 매체가 희생자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이나 세월호 운항의 문제를 짚어 가던 상황에서 한겨레가 방향을 틀었다. 22일 ‘구조 늑장대응 청와대 책임도 크다’를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뽑더니 이틀 뒤엔 ‘무책임한 청와대 “안보실, 재난 사령탑 아냐”’를 내세웠다. 뒤에 ‘박근혜의 7시간’ 등의 변주로 이어진 ‘청와대 책임론’의 불을 지피고 나선 것이다. 26일엔 경향이 ‘총리 예고경질…책임 돌리려는 대통령’이라는 기사로 뒤따라 갔다. 반면 보수 매체들은 22일 ‘선박 부실관리한 해수부 마피아 전방위 수사’(조선), ‘청해진 오너 유병언 재산 2400억 추적’(중앙), 24일 ‘해운조합·관료들 유착증거 드러나’(조선) 등으로 세월호 참사의 초점을 해운업계의 비리에 맞춰 파고들었다. 이런 엇갈린 보도 태도는 그대로 정치권 여야의 공방으로 투영됐다. 박근혜 정부가 해운업계와 관리당국 등의 유착 비리를 파고들며 ‘적폐청산’을
  • [진경호 칼럼] 인식이 사실을 창조하는 시대/논설위원실장

    [진경호 칼럼] 인식이 사실을 창조하는 시대/논설위원실장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5년 전 써낸 ‘호모데우스’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자유의지는 정말 자신의 의지인가.’ 여기서 ‘자유의지’란 자유민주 체제를 구성하는 인간 개개인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의사를 말한다. 하라리는 답도 던졌다. ‘자유의지’라는 착각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내 몸속 유전자의 지시와 불완전한 상황 인식, 살며 켜켜이 쌓은 경험 등이 뒤엉켜 만들어 낸 욕구는 내 ‘의지’라는 것 이전에 존재하며, 이 욕구를 따르느냐 마느냐를 선택하는 것조차 또 다른 욕구의 산물일 뿐이라는 얘기다. 자유의지에 대한 그의 장황한 설명은 개개의 인간을 욕망의 덩어리로 깔아뭉개자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 아래 근현대사의 중심 테제로 자리한 자유민주주의와 그 바탕이 되는 ‘인간의 합리성’은 지극히 의심받아 마땅하다는 얘기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고, 다중의 선택은 옳다는 명제가 과연 타당한가를 묻는 것이다. 넘쳐 나는 정보에 허우적대며 참과 거짓을 가리기 힘들어진 지금의 우리는 세상을 읽는 한 가지 편리한 방식을 고안했다. 인식이 사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내 욕구에 어긋나는 사실은 거짓이고, 내 욕망에 부합하는 인식이 참이다. ‘탈진실’의
  • [진경호 칼럼] 이준석의 헤어질 결심/수석논설위원

    [진경호 칼럼] 이준석의 헤어질 결심/수석논설위원

    37세 청년 중진 이준석에게선 종종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묻어난다. 그의 말이 그렇다. “저거 곧 정리됩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 자신과의 통화에서 나온 이준석의 말이라고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폭로한 내용이다. 윤석열 후보를 ‘저것’이라 한 것인지는 차치하고, 지금과 앞날을 단정하는 말투에 한 치의 여백이 없다. 지난해 12월 당무를 거부하며 제주도로 가서는 “실패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의원님들이 이준석의 복귀를 명령하신다면 어떤 직위로든 복귀하겠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론 절대 대선에 필요한 젊은층 지지를 같이 가져가진 못한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일 것이다.”(1월, 국민의힘 의원총회) 유아독존(唯我獨尊)이란 말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그 말에 ‘싸가지’가 있든 없든 거짓만 아니라면 어떠랴. 한데, 그렇지가 않다. 2019년 3월 바른미래당 청년정치학교 회식 자리. 최고위원 이준석은 “캠프에 기자가 없다고 자랑을 해. 안철수 그 병신이…. 내 최고의 적은 안철수”라고 했다. 첫 폭로가 있었고, 이준석은 잡아뗐다. 녹취록이 공개됐다. 빼도 박도 못 하게 된 이준석은 말을 바꿨다. “사석에서 한 말이라
  • [진경호 칼럼] 우파 정부의 착각/진경호 수석논설위원

    [진경호 칼럼] 우파 정부의 착각/진경호 수석논설위원

    우파 정부의 고질적 착각의 하나는 “내가 잘하면 된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면 결과는 좋을 것’이라는 믿음, ‘언젠가는 국민이 충정을 알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이 ‘된다’가 포괄하는 영역의 핵심을 이룬다. 민주화 이후 평가 순위의 끝자락을 단골로 차지했던 이명박 정부가 그랬고, 헌정사 첫 탄핵의 박근혜 정부가 그랬다. 그런데 이들 정부의 믿음이 이들 정부가 맞닥뜨린 현실과 일치했던가. 아니다. ‘나라를 위한 충정과 실력만큼은 으뜸’이고 ‘이를 국민들이 알아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무장한 두 정부의 공통점 하나가 집권 직후 지지율 추락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소고기 파동’이라는 사건을 제외하면 인사 잡음 등이 지지율 하락의 요인이다. 물론 인사 잡음으로 따지면 상대적 좌파라 할 노무현·문재인 정부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노·문 정부는 인사 논란에 따른 지지율 폭락은 겪지 않았다. 외려 문 전 대통령은 지지율 80%로 치솟았고, 노 전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에 직면했던 건 주로 본인의 좌충우돌 발언과 정책에 기인한다. 버금가는 잘잘못 앞에서 상대적 좌파 정부는 무탈하고 우파 정부는 휘청거리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겠다. 정치환경 측면에서 보
  • [진경호 칼럼] 김건희에 내조를 강요할 권리는 없다/수석논설위원

    [진경호 칼럼] 김건희에 내조를 강요할 권리는 없다/수석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취임 40일. 뉴스 한켠에 그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섰다. 포털 검색량에서 종종 남편을 제치는가 하면 SNS ‘언급량’도 웬만한 여야 중진들을 크게 웃돈다. 뉴스량도 마찬가지다. 기자가 빅카인즈(뉴스분석시스템)로 꼽아 보니 취임 닷새 뒤인 지난달 15일부터 지난 19일까지 35일간 신문·방송 등 54개 매체의 ‘김건희’ 뉴스는 2895건에 이른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취임 후 같은 기간 보도는 817건. 김건희 여사는 ‘유쾌한 정숙씨’를 4배 가까운 격차로 제쳤다. 뉴스의 질도 다르다. ‘<청와대 통신> “여보, 말조심 좀 해요”’(권양숙), ‘화채 한 그릇에 담긴 김정숙 여사의 마음’…. 과거 취임 초 영부인 기사는 이랬다. 새 정부 허니문 때라지만 낯간지럽다. 지금은 어떤가. 봉하마을 방문에 지인을 대동하면서 비선 논란이 터졌고, 의상 협찬 논란은 형사고소로 이어졌다. 뭐 하나만 걸려 봐라. 한껏 당겨진 시위마냥 진영과 정파의 긴장감이 팽팽하다. 더불어민주당 반응이 재밌다. “내조에 전념한다지 않았냐”고 볼멘소리를 낸다. 아예 그를 보좌할 제2부속실을 두라(고민정 의원)고도 한다. 여당보다 더 걱정이다. “찾아뵙
  • [진경호 칼럼] 부엉이바위의 그늘/수석논설위원

    [진경호 칼럼] 부엉이바위의 그늘/수석논설위원

    ‘노무현은 죽을까’. 13년 전 2009년 5월 21일 이 자리에 쓴 칼럼 제목이다. 그 이틀 뒤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해 봉하산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칼럼은 졸지에 그의 죽음을 예고한 ‘데스노트’가 됐다. “며칠 뒤면 전직 대통령 구속 3탄이 나오거나 말거나 한다. 검찰은 노무현을 구치소에 넣을까. 그럼 어찌 될까. ‘노무현’은 죽을까”로 시작된 칼럼은 그러나 노무현의 죽음을 앞서 말한 게 아니다. 권력의 부패를 끊고 전임 정권에 대한 단죄라는 질곡의 정치사가 끝나기를 바라는 염원이었다. 그러하지 못하면 정치 보복 논란 속에 나라가 적의(敵意)로 가득한 진영 대결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의 묵시였다. 모두가 아는 대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오늘 우리의 불행한 정치는 그날, 2009년 5월 23일 부엉이바위 아래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자리에서 싹을 틔웠다. 노무현 불법대선자금의 실체와 이에 대한 사법 심판이라는 법치가 땅에 묻힌 대신 ‘누가 노무현을 죽였느냐’는 절규와 원망, 분노가 움을 텄다. 세상은 삽시간에 내 편과 네 편, 선과 악만 존재하는 땅이 됐고 이렇게 둘로 나뉜 세상 속에서 노무현의 뒤를 이은 대통령 둘이 줄줄이 영
  • [진경호 칼럼] 송영길, 비루하다/수석논설위원

    [진경호 칼럼] 송영길, 비루하다/수석논설위원

    대학 1학년 말, 짱돌을 내려놨다. 선배들이 건넨 운동권 바이블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이 여러 구석에서 눈에 걸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질문과 이견을 불허하는 선배들의 독선에 숨이 막혔다. 군사독재 타도, 민주화를 외치는데 정작 하는 행동은 군부정권을 빼박았고 민주하고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까라면 까!’라는 윽박으로 자기 모순과 무지, 위선을 덮었다. 군사정권 타도라는 대의 앞에서 말바꾸기, 언행 불일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를 삼는 게 문제였다. 엄혹했던 1980년대 중반, 잘나가던 학생 운동권 지도부가 김민석, 송영길, 우상호, 윤호중 등등이다.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 ‘백골단’ 수백이 죽치고, 걸핏하면 최루탄이 강의실로 날아들던 그때, 이들은 ‘구국의 영웅’이었다. 주요 대학 총학생회장 등을 꿰차고 앉아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 그러나 스크럼 맨 앞줄에서 짱돌 하나라도 던져 본 586들은 안다. 그들은 앞장선 게 아니라 앞세워졌다는 것, 그들 뒤에 정말 투쟁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따로 있다는 것, 대개의 586들은 기억한다. 1987년 6·29 선언과 함께 찾아온 민주화는 ‘잡혀 가도 좋을 간판들’이 이뤄 낸 게 아니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
  • [진경호 칼럼] 오늘, 우리의 절반이 운다/수석논설위원

    [진경호 칼럼] 오늘, 우리의 절반이 운다/수석논설위원

    전쟁 같은 20대 대선을 상징하는 기호는 단연 ‘40%’다. 가는 대통령과 오는 대통령이 모두 이 40%로 수렴된다. 19대 대통령 문재인이 마냥 흐뭇해하는 임기말 국정 지지도가 40% 어름이고, 내일 새벽 가려질 차기 대통령의 득표율도 40%대를 넘어 50%를 넘기긴 어려워 보인다. 절반에 못 미치는, 불행하고 불길한 수치다. 극단의 분열과 배격이 뒤엉킨 우리 정치의 폭력성과 불안정성은 결국 이 ‘40%’를 연원으로 한다. 40%의 독식과 독주…. 60%의 갈라진 다수가 40%의 뭉친 소수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민주정치 체제의 이 반민주적 모순 구조 속에서 우리는 5년을 보냈고 새 5년을 맞는다. 부동산 정책 실패, 빈부격차 심화, 저출산 악화, 연금개혁 외면, 코로나 방역 실패 등 책잡힐 일이 수두룩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말 지지도 40%의 미스터리를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10개의 ‘비결’로 촘촘하게 짚었다. ‘편가르기 정치’, ‘정권비리 은폐 시스템 구축’, ‘긍정 이미지 정치’…. 이들 꺼풀을 하나씩 벗기고 들어가면 결국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는 ‘진영’을 만나게 된다. 그를 대통령에 앉힌 41.1%의 ‘집토끼’가 여전히 임기말 지지도 40%를 떠
  • [진경호 칼럼] 대선 담론, 정치세력 교체다/수석논설위원

    [진경호 칼럼] 대선 담론, 정치세력 교체다/수석논설위원

    20대 대통령 선거를 두고 소설가 장강명은 “우리는, 그냥 다 시시해졌다”고 했다. 명색이 대선인데 시대를 관통하는 담론이 없다는 얘기다. 그의 탄식처럼 40일 남은 대선에 담론 따윈 없다. 하다못해 이명박의 한반도 대운하, 박근혜의 경제 민주화 같은 대형 공약도 없다. 비전과 공약에 관한 한 이재명과 윤석열, 앞서가는 두 후보는 낮은 데로 임하기 바쁘다. 탈모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건강보험 적용…” 운운하며 옆구리를 슬쩍 찌르는가 하면 여기 가선 “둘레길 만들겠다”, 저기 가선 “주차장 짓겠다”고 한다. “구의원 선거 나왔냐”는 조롱, 개의치 않는다. 입 발린 소리에 여념이 없다 보니 공약도 기꺼이 나눠 쓴다. 이들의 공약(共約)을 꼼꼼히 세어 본 한 매체는 그 수가 열여섯이라고 전했다. ‘병사월급 200만원’, ‘암호화폐 수익 과세 5000만원부터’ 등등. 누가 먼저 내놨든 상관없다. 받고 더블~! 공약에 관한 한 둘은 이미 원팀이다. 담론의 실종과 초록동색 도토리 공약의 약진…. 20대 대선, 참 저렴해 보인다. 그러나 한꺼풀 걷어 내면 그런 소리, 쉽게 할 일이 아니겠다. 무엇보다 정치적 변방이던 2030세대가 역사상 처음으로 표심을 주도하는 선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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