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취업·예술의 길 가려는 고3, 직업위탁학교 문 두드리세요

뒤늦게 취업·예술의 길 가려는 고3, 직업위탁학교 문 두드리세요

박재홍 기자
박재홍 기자
입력 2019-04-09 17:22
수정 2019-04-10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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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등 6곳
조리·뮤지컬·드론 등 전문적 과정 운영
추가 요금 없어… 작년 1만 4514명 참여
민간 학원, 학생 절반 교육… 환경은 열악
‘문제아’ 편견·특성화고와 차별성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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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조리아트과를 수료한 박기원씨가 지난 4일 학교 조리실에서 조리복을 입고 활짝 웃고 있다. 박씨는 올해 대림대 글로벌외식조리학부에 합격한 동시에 일학습병행제로 63빌딩 중식당 ‘백리향’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조리아트과를 수료한 박기원씨가 지난 4일 학교 조리실에서 조리복을 입고 활짝 웃고 있다. 박씨는 올해 대림대 글로벌외식조리학부에 합격한 동시에 일학습병행제로 63빌딩 중식당 ‘백리향’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고3이던 지난해 1학기 초 처음으로 본 한식 자격증 실기에서 떨어졌어요. 요리학원을 다니던 고2 시절이었다면 멘탈이 나가서 쉽게 포기했겠지만, 그러지 않았아요. 함께 요리사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저와 친구들의 합격을 바라는 선생님들이 계셨기 때문이죠.”

박기원(19)씨는 고3 한 해 동안 남들은 1년에 하나 따기도 어렵다는 한식·양식·중식 자격증 3개를 모두 취득했다. 현재 일학습병행제를 통해 주중에는 대림대 글로벌외식조리학부에서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여의도 63빌딩 중식당 ‘백리향’에서 주방 막내로 일한다. 지난 4일 대학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왔다는 박씨를 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에서 만났다. 그는 “대학에 다니면서 영어 공부도 같이 해 기회가 된다면 훗날 해외에서도 일해 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박씨는 올해 2월 성남고를 졸업했지만 동시에 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를 수료했다. 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는 취업이나 예술 등의 분야로 진로를 찾고 싶은 일반고 학생들에게 고3 시기 1년 동안 전문 분야를 교육하는 직업위탁학교다. 서울교육청은 직업위탁학교 6곳(서울산업정보학교·아현산업정보학교·종로산업정보학교·서초문화예술정보학교·은평문화예술정보학교·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시설 좋고 선생님들 관심도 받아 의욕 생겨”

박씨는 원래 축구선수를 꿈꿨다. 그러다 고1 때 부상으로 축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위해 일반고인 성남고로 전학했다. 축구에 몰두하며 그간 하지 않았던 공부를 다시 하려니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것이 어릴 적 관심이 남달랐던 요리였다. 고2 때 요리학원에 등록해 방과 후 집 근처 학원에서 매일 두 시간씩 공부했다. 수업료도 석 달에 400만원 정도로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루 두 시간만 공부하는 요리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자격증은 따지 못하고 3학년 진학을 앞두게 됐다. 박씨는 “학교에서 직업위탁학교가 있다는 소개를 받고 조리학과가 있다는 말에 고2 때인 2017년 11월 말 추가 모집에 지원했다”면서 “처음엔 고3이니 일단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이었지만, 위탁학교에 오고 나니 시설도 요리학원과 다름 없었던 데다 학원에서는 받지 못했던 선생님들의 기대와 관심까지 받아 ‘제대로 해보자’는 의욕이 생겼다”고 말했다.

박정희 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장은 “학생들이 처음 입학하면 두 달 동안 모든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그룹 상담을 실시해 아이들의 진로에 대한 생각을 듣는다”면서 “뒤늦게 자신의 진로를 찾아 어려운 결정을 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자존감을 세워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는 박씨가 졸업한 조리아트과를 비롯해 드론운영, 제과제빵, 디저트아트, 뮤지컬, 방송댄스, 실용음악 등 7개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안영호 교감은 “학과별로 전문 전담 교사를 두고 실기 중심의 수업을 진행한다”면서 “수료 후 바로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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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학교 뮤지컬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이 뮤지컬 ‘빨래’에 나오는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같은 학교 뮤지컬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이 뮤지컬 ‘빨래’에 나오는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뮤지컬·실용음악·방송댄스과가 취업보다 대학 진학 비율이 높은 경우다. 이날 기자가 참관한 뮤지컬과 수업도 실기로 진행됐다. 현재 대학로에서도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빨래’의 한 대목을 이 학교 박수민(18)양이 연기하자 함께 수업에 참여한 친구들과 교사가 진지한 눈빛으로 감상한 뒤 저마다의 평가를 전달했다.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은 전면 거울과 음향 시설 등이 갖춰져 있어 실제 뮤지컬 연습실과 다름없었다. 김태현 뮤지컬과 교사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수업이 늘 생기가 넘친다”면서 “오는 7월 전교생을 대상으로 공연을 한 뒤 노인복지관 등 지역에서도 일반인 대상으로 공연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는 서울교육청이 운영하는 직업위탁학교 중 유일하게 드론운영과를 운영한다. 드론운영과는 학생들이 초경량비행장치조종사와 드론항공촬영사, 그리고 3D프린터 운용기능사 자격증 등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 대에 1000만원 이상 하는 농업용 드론부터 일반 드론까지 다양한 장비를 갖추고 전용 비행장도 만들어 놨다. 이효진 드론운영과 교사는 “드론을 응용한 산업 분야 외에도 ‘드론축구’ 등 스포츠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드론축구란 충격이 흡수되는 특수 장치를 둘러싼 드론을 조종해 상대 골대에 공을 넣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스포츠다. 올해 입학한 학생 7명은 오는 9월 광주에서 열리는 드론축구대회에도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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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운영과 김유빈 학생이 특수 장치에 둘러싸인 드론을 조종하며 드론축구를 연습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드론운영과 김유빈 학생이 특수 장치에 둘러싸인 드론을 조종하며 드론축구를 연습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고졸 취업 희망하는 일반고 재학생 가르쳐

박씨 사례와 같은 일반고 직업위탁교육은 교육부가 고교 졸업 후 취업을 희망하는 일반고 3학년 학생들에게 직업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특성화고가 아닌 일반고에 입학했지만, 고교 졸업과 함께 취업을 희망하거나 예술 등의 분야로 진로를 정한 학생들이 대상이다. 고2 2학기에 필요한 학생들에게 직업위탁교육 사실을 알리고 지원서를 내면 학생부 등을 바탕으로 선별해 학생을 선발한다. 선발되면 월요일은 기존 학교로 등교하고, 화~금에는 직업위탁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 본 소속 학교 학비만 내면 추가 수업료는 내지 않아도 된다.

직업위탁학교 수요는 증가 추세다. 일반고 진학 후 직업교육에 참여하길 원하는 학생수는 2012년 7385명이었다가 2014년 1만 532명을 기록하며 처음 1만명을 넘었고, 2018년에는 1만 4514명까지 증가했다. 2015년에는 고용노동부와 직업능력개발 훈련과정 내 일반고 특화과정(일반인과 분리한 별도반) 운영도 신설했다.

●교육청 운영 학교 수료자 23.4%… 확충 필요

직업위탁교육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뒤늦게 적성을 찾아 맞춤형 교육을 받고 취업 혹은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와 같이 직업위탁학교를 교육청에서 직접 운영하기도 하지만, 민간 학원에서 위탁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일반고 직업교육 위탁과정 교육을 받은 학생 1만 4514명 중 절반이 넘는 7925명(54.6%)이 민간 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민간 학원의 경우 교육청이 직접 운영하고 정규 교사를 편성하는 직업위탁학교에 비해 교육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다. 서울의 경우 전국에서 가장 많은 6곳의 직업위탁학교를 직접 운영하고 있지만, 다른 교육청의 경우 1~2곳에 불과하다. 교육청 운영 직업위탁학교 수료생 수는 3408명(2018년 기준)으로 전체 수료자의 23.4%에 그친다.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직업위탁학교 확대 방안은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직업위탁학교가 일반고에서 성적이 떨어지는 ‘문제아’들이 모이는 곳 아니냐는 편견도 여전하다. 이봉용 서울교육청 진로직업교육과 장학사는 “직업위탁학교에는 일반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과 진로의 방향만 다를 뿐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면서 “개개인의 사정으로 인해 고교 졸업 후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나 자신의 진로를 조금 늦게 정한 아이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입학 때부터 취업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는 특성화고와의 차별성을 찾는 것도 해결 과제다. 서울교육청이 운영하는 직업위탁학교 6곳의 2018년 수료생 취업률은 15.4%(2134명 중 329명)로 같은 해 특성화고 취업률 65.1%에 크게 못 미친다. 교육부 관계자는 “직업교육 위탁 과정은 취업을 목표로 하는 일반고 학생들을 위한 대안적 성격이 강하다”면서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위해서는 특성화고 등 직업계고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올해 1월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을 통해 특성화고 내에 일반고 학생 대상 직업교육 위탁 과정을 개설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직업위탁학교의 교육 체계에 특성화고의 전문성을 활용하기 위한 취지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① 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조리아트과를 수료한 박기원씨가 지난 4일 학교 조리실에서 조리복을 입고 활짝 웃고 있다. 박씨는 올해 대림대 글로벌외식조리학부에 합격한 동시에 일학습병행제로 63빌딩 중식당 ‘백리향’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 ② 같은 학교 뮤지컬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이 뮤지컬 ‘빨래’에 나오는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다. ③ 드론운영과 김유빈 학생이 특수 장치에 둘러싸인 드론을 조종하며 드론축구를 연습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2019-04-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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