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논란과 현실 Q&A
“혁신학교는 토론식 수업을 통해 글로벌 인재를 키울 수 있는 우리 교육의 미래.”(혁신학교 찬성)“혁신학교는 아이들의 학업 성적을 떨어뜨리고 대학입시에 불리한 보여 주기식 제도.”(혁신학교 반대)
최근 교육계와 학부모들이 바라보는 혁신학교에 대한 시선은 극과 극의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뉜다.혁신학교는 9000가구에 달하는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입주 예정 주민들이 단지 내 가락초와 해누리초·중학교의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고 서울교육청이 결국 혁신학교 지정을 1년 유보하기로 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혁신학교를 도입하려는 쪽에서는 혁신학교에 우리 교육의 미래가 달렸다고 하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대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진보 교육감들의 보여 주기식 제도라고 맞선다. 혁신학교는 어떤 제도이고, 실제로 많은 학부모들이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지, Q&A를 통해 정리해 봤다.
폐교 위기에서 ‘공교육 개혁 모델’이 돼 혁신학교의 모태로 평가받는 경기 광주시 남한산초등학교의 특별활동 수업 모습(왼쪽)과 혁신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입주 예비 학부모들의 집회 모습(오른쪽). 혁신학교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보여 주고 있다.
연합뉴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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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는 2009년 김상곤 당시 경기교육감이 13개 학교에 처음 도입했다. 누구보다 교육 소식에 밝은 학부모들이 스스로 입소문을 내 혁신학교를 찾았고, “그 학교에 가면 학교에 적응 못하는 아이들도 쉽게 적응한다더라” 등 혁신학교는 학부모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전국으로 확대됐다. 2018년 기준 혁신학교 수는 경기 541개, 서울 189개 등 전국 1525개교다. 전국 1만 1636개 초·중·고교의 13.1%다. 혁신학교 수가 가장 많은 경기와 서울의 비율은 각각 22.9%(2362개교 중 541개교), 18.2%(1308개교 중 189개교)다.
혁신학교가 일반학교와 가장 큰 차이점은 수업 방식이다. 일반고 수업이 교과서와 교재 등을 활용해 교사가 내용을 알려주고 학생들이 듣고 이해하는 방식이라면 혁신학교는 교과 과정 내 특정 주제 등에 대해 학생들이 조별 토론을 진행하고 이에 대한 결과를 바탕으로 평가를 한다. 교육청에서 혁신학교에는 수업 방식의 자율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토론 수업 비율 등은 학교마다 다르다.
→혁신학교에 가면 정말 대학에 가기 어렵나?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지만 아직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학부모들은 “대입에 불리하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자율성이 강조된 토론 위주의 수업을 하다 보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학교 내신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대입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서는 각 입장에 따라 상반된 연구결과가 모두 있다.
지난달 19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혁신학교 학생은 국어·수학·영어 3과목을 기준으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진학 이후 성적 상승폭이 일반학교 출신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학교가 학생들 성적 향상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실시한 ‘2016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혁신학교 고교생 중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11.9%로 전국 고교 평균 4.5%보다 2배 이상 높았다. 혁신학교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일반학교에 비해 낮다는 통계 결과다.
교육부에서는 혁신학교가 상대적으로 일반학교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낮은 이유가 도입 초기 교육 여건이 취약한 지역을 중심으로 혁신학교 지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혁신학교에 원래부터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학업성취도가 낮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현재 서울에서 학업 성적이 상대적으로 높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혁신학교 수는 16곳으로 전체 158곳 중 10.1%에 불과하다. 고등학교는 송파의 잠일고 1곳뿐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아니다. 환영받는 곳도 있다. 2009년 혁신학교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 혁신학교는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쪽이었다. 자유로운 수업 방식 덕분에 초등학교처럼 단체생활을 처음 겪는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학교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번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긍정적 평가는 지금도 일부 유효하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입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학교 수업 참여도를 높이고 적응을 빨리 할 수 있는 혁신학교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2014년 당시 경기 성남 판교동의 혁신학교 보평초·중학교를 배정받을 수 있는 지역인 ‘동판교’가 그렇지 않은 ‘서판교’보다 같은 면적의 아파트 매매가가 2억 이상 더 비쌀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현재도 같은 면적의 동판교 지역 아파트는 서판교 대비 2억~3억원 더 비싸다. 일부 학부모들은 지금도 “혁신학교가 수업 커리큘럼이 더 충실하고, 아이들도 수업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며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초·중·고교 혁신학교는 어떻게 다른가?
-학교 운영과 수업 방식 등에서 더 많은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혁신학교의 기본 원칙은 초·중·고교 모두 같다. 다만 학부모 선호도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대입의 영향이 커지게 되는 중·고교로 올라가면 기피 현상도 커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혁신학교는 초등학교에 많다. 서울의 경우 총 213개 혁신학교 중 74.1%인 158곳이 초등학교다. 중학교는 40곳, 고교는 15곳에 그친다. 다만 송파 헬리오시티의 경우 초등학교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해 기존 경향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송파 헬리오시티의 경우 강남 지역이라는 특수성이 있고, 젊은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집값 하락에 대한 불안감이 영향을 미치는 등 진보 교육감의 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저항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은 왜 혁신학교를 늘리려는 건가. 혁신학교는 얼마나 늘어날까?
-혁신학교는 진보 교육감들의 ‘대표 상품’으로 불릴 만큼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경기도가 처음 도입한 뒤 서울과 전북·전남·대구 등 지역에 관계없이 앞다퉈 도입됐다.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확대되던 혁신학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과제로 ‘혁신학교의 우수사례 발굴 및 성과 확산’이 포함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관리되기 시작했다.
전체 17개 시·도 중 14곳의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모두 혁신학교 확대를 내세우고 있다. 서울교육청은 올해 업무계획에서 현재 199개교(2018년 12월 기준)의 혁신학교를 230개교로 늘릴 방침이다. 서울교육청은 혁신학교가 성적 줄세우기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의 소질과 소양을 향상시키는 교육을 추구하기 위한 학교 모델로 보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은 지난 3일 “혁신학교 등 혁신교육 정책이 성공적으로 확산해 왔다”면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이는 ‘성공에 따른 새로운 도전’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에서는 혁신학교 확대가 아닌 성과 확산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혁신학교 지정 확대 등은 각 시·도교육청에서 자율적으로 정할 일”이라면서 “교육부에서는 우수사례를 발굴하고 성과를 확산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학교는 어떤 길로 가야 하나?
-전문가들은 혁신학교의 긍정적 효과는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양적 확대보다 내실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토론의 훈련 등을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혁신학교의 기능은 중요하다”면서 “다만 교육 정책이란 학생과 학부모 등 수요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 효과가 나타나는데, 현재와 같이 혁신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믿음을 완전히 얻지 못한 상황이라면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혁신학교가 처음 도입된 이후 학교 내 의사 소통 문화나 학생 중심의 학교 운영, 업무 정상화 등에서 분명 성과가 있었고 교육당국도 이러한 성과를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이제는 교육과정과 수업 등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내는 데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불필요한 학교의 행정업무를 줄이고 교사들이 교육과정과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2019-01-09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