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덕양구 협동어린이집 사례로 본 협동유치원 실효성
사립유치원 비리 실명 공개 이후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다”는 학부모들의 하소연이 늘고 있다. 정부가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해 유아 교육의 공공성을 높이겠다고 공언했지만 국공립유치원 공급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국공립 유치원이 확대되고 사립유치원의 공공성이 충분히 강화되기 전까지 대안으로 언급되는 방안이 ‘매입형’, ‘공영형’, ‘사회적협동조합 유치원’(협동유치원) 등이다. 매입형은 기존 사립유치원을 정부가 매입해 국공립으로 전환해 운영하는 방안이고, 공영형은 투명 경영을 조건으로 연간 5억~6억원을 지원해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매입형과 공영형은 이미 시행 중이지만 협동유치원은 아직 실제 모델이 없어 교육 전문가들은 가능성과 실효성에 주목하고 있다. 협동유치원은 학부모들이 직접 조합을 만들고 조합이 주체가 돼 유치원을 설립·운영하는 방식이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이미 전국적으로 115곳의 어린이집이 학부모들이 직접 설립한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다. 교육부는 이 모델을 유치원으로 들여 올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유치원의 다양성을 높이겠다는 목적이다. 어린이집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유치원에 이 같은 협동조합 운영 방식이 도입될 수 있을까? 또 협동유치원이 국공립과 사립 사이에서 고민하는 학부모들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실제 운영되고 있는 협동어린이집을 통해 확인해 봤다.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나무를키우는햇살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지난달 말 어린이집에서 임차한 어린이집 옆 주말농장에서 벼베기 체험을 하고 있다.
나무를키우는햇살어린이집 제공
나무를키우는햇살어린이집 제공
나무를키우는햇살어린이집 회계 장부에 어린이 급식을 위해 직접 장을 본 영수증이 첨부돼 있다. 회계 장부는 교사와 조합원인 학부모가 공동으로 관리하며 원하면 언제든지 확인이 가능하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국공립·민간 어린이집과 가장 큰 차이는 학부모들이 만든 조합이 어린이집의 설립과 운영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나무햇살어린이집 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백교(46)씨는 “교사 선발부터 재정 운영, 급식 관리 등 어린이집 운영의 모든 분야를 조합원들인 학부모들이 분담한다”면서 “모든 사안에 학부모가 직접 관여하기 때문에 비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말했다.
협동어린이집은 민간 혹은 국공립어린이집에 비해 학부모가 부담하는 비용은 높은 편이다. 햇살나무어린이집 학부모들은 조합비와 운영비 명목으로 월 40여만원씩 낸다. 하지만 그만큼 아이와 부모들이 느끼는 만족도는 더 높다. 조합에서 재정이사를 맡고 있는 윤봉열(36)씨는 “정부로부터 누리과정 지원금 및 보육료(만 2~3세 월 31만원, 만 4~5세 월 28만원)를 받는다”면서 “교사 급여와 시설 운영비, 급식비 등으로 월 1800만~2000만원 정도의 운영비가 들어가는데 부족한 돈은 학부모들이 내는 조합비로 충당한다”고 말했다. 현재 20명의 원아가 등록된 나무햇살어린이집은 3명의 교사가 3학급으로 나눠 맡고 있다. 누리보조 교사 1명, 대표교사 1명이 별도로 업무를 돕는다. 교사 1인당 원아 4명꼴이다. 영유아보육법 기준 인원(만 3세 15명, 만 4세 20명) 대비 최대 5분의1 수준이다. 윤씨는 “비용 부담은 국공립이나 민간어린이집보다 적지 않지만 교육의 질로 따지면 비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많은 장점만큼 학부모들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점은 맞벌이 비율이 높은 요즘 학부모들에게는 부담이다. 이사장 한씨는 “평균 하루 1시간 이상은 온전히 어린이집 업무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결국 아이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셈이라는 설명이다. 재정이사인 윤씨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게 부담일 수도 있지만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통해 내 아이들의 교육을 함께 한다는 점은 힘든 육아 과정에서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협동어린이집의 최고 장점으로 꼽는 것은 모든 중심이 아이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학부모들이 직접 운영하고 교육과정에도 참여하니 각각의 아이들에게 맞춤형 지도가 가능하다. 함께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쌓인 학부모 사이의 유대관계가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연결돼 아이들이 보다 넓은 사회관계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실제로 나무햇살어린이집을 찾았던 오후 4시쯤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교사들과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서로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다렸다. 엄마나 아빠가 오면 품에 안겨 황급히 집에 돌아가기 바쁜 도시의 여느 어린이집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이를 3년째 이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황은희(36)씨는 “공동육아(협동어린이집)는 아이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교육을 고민하면서 부모도 성장하는 곳”이라면서 “이전까지 혼자 불안해하면서 아이를 키웠는데 협동어린이집을 보낸 뒤부터 육아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의지할 친구(동료 조합원)가 생겼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보육과 교육에 참여하는 협동어린이집 모델이 유치원에도 잘 들어맞을까? 협동어린이집 관계자들은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제도를 마련하고 재정 등의 지원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 협동어린이집 연합인 ‘공동육아공동체교육’의 정영화 사무국장은 “보육보다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평균 20명 안팎의 협동어린이집에 비해 규모가 큰 유치원에 협동어린이집의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모든 학부모가 조합원으로 참여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등 조건에 맞게 정관을 정하고 유치원에 맞는 시스템을 찾아간다면 협동조합 유치원이 새로운 형태의 대안 유치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에 따르면 이미 서울 시내에 학부모들이 주체가 돼 협동조합을 꾸려 유치원을 설립하는 논의가 실제 진행 중인 지역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협동유치원도 지원금 받게 할 것”
유치원으로 쓸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관건이다. 정 사무국장은 “초등학교나 주민센터 등의 공간을 정부에서 조합 설립을 원하는 학부모들이 쉽게 임차해 유치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을 한다면 협동유치원의 확대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지난달 사회적협동조합이 공공기관 시설을 임차해 유치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고등학교 이하 각급학교 설립·운영규정’ 일부 개정령안을 심의·의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유치원 법적 설립 기준만 맞춘다면 내년부터라도 협동조합이 유치원을 설립할 수 있다”면서 “협동조합유치원도 공영형 유치원을 신청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확대 지원책을 펼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2018-11-07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