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로 북촌 한옥마을 사생활 지켜라” 학점 부담 벗으니 아이디어가 터졌다

“부채로 북촌 한옥마을 사생활 지켜라” 학점 부담 벗으니 아이디어가 터졌다

유대근 기자
입력 2018-08-13 22:42
수정 2018-08-14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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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의 ‘융합기초프로젝트’

“무작정 관광객 통행을 막기보다는 한옥의 창문을 부채로 가리고 사진 촬영을 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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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서울과학기술대·한성대 합동 ‘융합기초프로젝트’에 참가한 ‘가디언즈오브북촌’ 팀의 공성호(성균관대 화학공학 3)씨가 13일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부채를 활용해 한옥 거주민의 사생활 노출을 막으면서 관광객이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있다.  성균관대 제공
성균관대·서울과학기술대·한성대 합동 ‘융합기초프로젝트’에 참가한 ‘가디언즈오브북촌’ 팀의 공성호(성균관대 화학공학 3)씨가 13일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부채를 활용해 한옥 거주민의 사생활 노출을 막으면서 관광객이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있다.
성균관대 제공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6층 강의실에는 북촌 한옥마을을 옮겨 놓은 듯한 모형이 등장했다. 서울과학기술대와 성균관대, 한성대 학생 6명으로 꾸려진 ‘가디언즈오브북촌’ 팀이 “관광객의 무분별한 사진 찍기에 몸살 앓는 북촌 한옥마을 문제를 해결할 비법을 보여 주겠다”며 가져온 모형이었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2가지다. 우선 한옥 대문에 적외선 센서를 붙여 관광객이 근접하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카메라 아이콘과 ‘X’ 표시를 공중에 쏴 사진 촬영이 안 된다는 점을 인식시킨다. 또 한옥 거주민들이 주로 창문 등 사생활 노출 위험이 있는 부분의 촬영을 꺼린다는 점에 착안해 한옥 창문 사진을 새겨 넣은 부채를 관광객에게 판매하고 부채로 창문을 가린 채 촬영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발표를 맡은 공성호(성균관대 화학공학 3)씨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로 관광객 통금시간을 정하거나 출입을 막는 방식 등을 생각했는데 관광객과 거주민 모두 선호하지 않았다”면서 “공존 해법을 찾아 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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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모습을 담은 가림용 부채.  성균관대 제공
한옥 모습을 담은 가림용 부채.
성균관대 제공
이 학생들은 성균관대·서울과기대·한성대가 공동 주최한 ‘융합기초프로젝트’ 참가자다. 대학 3곳의 재학생 69명이 꾸린 13개 팀은 5주간 구도심인 종로가 맞닥뜨리고 있는 지역 난제를 발굴해 이를 해결할 시제품을 만들었고, 이날 선보였다. 성균관대가 학생 중심의 인문·공학·예술 융합 교육 과정인 ‘C-스쿨’의 핵심 프로젝트로 2014년 처음 시작했는데 올해부터 인근의 서울과기대와 한성대까지 함께하기로 했다. 종로 지역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곧 진입할 열차의 객차별 혼잡도를 표시해 탑승객의 분산을 유도하는 ‘지하철 신호등’이나 사직동에 많은 노후 주택의 지붕 기울기와 진동을 센서로 감지해 붕괴 위험 정도를 LED로 표시해 주는 아이디어 등 참신한 발상이 많았다. 이 중 가디언즈오브북촌 팀이 대상을 받는 등 8개 팀이 수상했다.

프로젝트를 총괄한 배상훈 성균관대 대학교육혁신센터장(교육학과 교수)은 “강의실에서 교과서만 파지 말고 사회에서 겪을 법한 경험을 미리 해 보도록 하자는 취지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기업에 취업하면 학교나 전공, 성별, 나이 등 다양한 배경의 동료와 일해야 하는데 정작 대학에서는 그럴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69명의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온전히 프로젝트에 쏟아부었지만 학점은 1점도 이수받지 못한다. 배 교수는 “학점이 걸리지 않아야 상상력 가득한 작품이 나오는 역설이 있다”고 말했다. 학점이 걸리면 학생들은 출제자 의도를 파악해 ‘실패하지 않을 법한 뻔한 답’만 써낸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에는 산불 끄는 기계 아이디어를 내놓은 팀이 우승했는데 산꼭대기에 열감지 폴대를 세워 360도 회전하며 감시하고, 산불이 나면 로켓을 쏴 순간 진공상태를 만들어 진화한다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당장 상용화 가능성을 떠나 상상력을 높게 평가받은 덕택에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아이디어를 낸 학생을 인턴으로 채용하고 싶다”고 제안할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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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성균관대에서 열린 성균관대·서울과학기술대·한성대 연합 융합기초프로젝트 ‘생각을 디자인하라’ 행사에서 성균관대 4학년 윤훈상씨가 오토바이 뒷좌석에 원단을 놓을 수 있는, 천 조각으로 만든 접이식 상자 ‘천리마’(천으로 말을 달리자)를 소개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13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성균관대에서 열린 성균관대·서울과학기술대·한성대 연합 융합기초프로젝트 ‘생각을 디자인하라’ 행사에서 성균관대 4학년 윤훈상씨가 오토바이 뒷좌석에 원단을 놓을 수 있는, 천 조각으로 만든 접이식 상자 ‘천리마’(천으로 말을 달리자)를 소개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20대 초반 청년들은 특정 주제에 호기심만 느끼면 며칠 밤을 꼬박 새워 가며 해결책을 찾았다. 멘토로 참여한 교수들은 “대학의 역할은 단순히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뽑고 마는 게 아니라 교육을 통해 동기부여해 주는 것임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2018-08-1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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