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이라도 더 도울 걸”...이태원 참사 2주기에도 여전한 상흔

“한명이라도 더 도울 걸”...이태원 참사 2주기에도 여전한 상흔

김우진 기자
김우진 기자
입력 2024-10-28 15:10
수정 2024-10-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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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2주기 맞은 상인 인터뷰
“활기 되찾았지만 참사 골목은 여전히 아파”
생존자 도운 상인들 “더 돕지 못해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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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참사 현장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그레이스 라셰드의 어머니 존 라셰드 씨가 추모하고 있다. 2024.10.28 공동취재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참사 현장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그레이스 라셰드의 어머니 존 라셰드 씨가 추모하고 있다. 2024.10.28 공동취재


159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거리에 유행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이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에 멈춰 섰다. 2년 전 참사가 발생한 이곳을 지날 때면 묵념하고 목소리를 낮췄다. 골목 한쪽에는 국화 다발, 희생자의 사진, 보라색 리본, 봉지를 열어둔 과자와 소주 등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2년 전 참사는 이곳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의 기억에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참사 현장 인근 호프집에서 일하는 이승욱(50)씨는 “이제 많은 사람이 이태원을 찾아 매출도 오르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이 길을 지날 때면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날 것 같다. 이 골목은 다들 들어오길 망설이는 곳”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국화 한 송이를 골목 바닥에 내려놓고선 가게로 돌아갔다.

이날 서울신문과 만난 남인석(82)씨, 오은희(44)씨도 그날을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서 의류·잡화점을 운영한 남씨는 가게 문을 열어 생존자들에게 쉴 곳을 제공했고, 오씨는 참사 이후 현장을 수습한 경찰관과 소방관 등을 위해 무료로 음료를 나눠줬다. 두 사람은 “한 명이라도 더 도와주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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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가 일어난 골목에서 12년간 의류잡화점을 운영하던 남인석(82)씨는 이젠 그곳을 떠나 인근 녹사평역에 자리를 잡았다. 2024.10.28 김우진 기자
참사가 일어난 골목에서 12년간 의류잡화점을 운영하던 남인석(82)씨는 이젠 그곳을 떠나 인근 녹사평역에 자리를 잡았다. 2024.10.28 김우진 기자


참사 당일 남씨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하고 가게 문을 연 건 오후 10시쯤이었다. 무릎이 까지고 신발이 벗겨진 이들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살려달라”고 외쳤고, 남씨는 당장 밖으로 나섰다. 소방과 경찰이 인파에 막혀 골목으로 진입하지 못하자 남씨는 뒷길을 안내하기도 했다. 그렇게 밤을 새워 참사 현장을 지켰다.

남씨는 “그날 이후로 ‘살려주세요’라는 비명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며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할 때부터 무언가 조처를 했으면 어땠을까, 그날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한 명이라도 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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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골목 빌보드 옆에 희생자 박 율리아나씨 사진이 담긴 액자가 놓여있다. 2024.10.28 김우진 기자
28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골목 빌보드 옆에 희생자 박 율리아나씨 사진이 담긴 액자가 놓여있다. 2024.10.28 김우진 기자


오씨도 ‘후회’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입 밖으로 꺼냈다. 오씨도 참사 당일 닫혔던 가게 문을 열어 생존자 40명을 돌봤고, 참사 이후 일주일간 현장을 수습하는 경찰관과 소방관에게 무료 음료를 제공했다. 오씨는 “도로가 사람들로 가득 차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며 “카페로 들어오는 분들만 챙겼는데 지금까지도 직접 나가서 돕지 못한 게 가슴에 남는다”고 전했다.

오씨는 참사 이후 한 젊은 남성이 소방관과 경찰관에게 주겠다며 커피를 잔뜩 사 가는 모습을 봤다. 오씨는 “대학생이던 아르바이트생들도 현장을 수습하는 분들을 위해 집에서 먹을거리를 잔뜩 챙겨왔었다”며 “어른인 제가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참사 현장을 가까이 가면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오씨는 “살아남은 이들이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하는 그런 일 아니겠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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