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 중학생들의 외침 “난민 친구 구해주세요”

청와대 앞 중학생들의 외침 “난민 친구 구해주세요”

유대근 기자
입력 2018-10-03 18:20
수정 2018-10-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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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서 온 A군 마지막 심사 앞두고 호소
“천주교로 개종…본국 추방 땐 박해 위협”
2개월간 국민청원·집회·모금 등 함께 해
“8년 전 한국 와…생각·문화 우리와 같아
여기서 모델의 꿈 이룰 수 있게 도와달라”


“그 친구는 저희와 잘 어울리는 진짜 ‘인싸’(조직의 주류인 인사이더를 뜻하는 10대 은어)예요. 친구가 이틀 뒤면 마지막 심사를 받는다니 도와주세요.”
서울 소재 한 중학교 학생 16명이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난민 신청을 한 이란 출신 친구 A군에 대한 공정한 심사를 법무부에 촉구하며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사진은 릴레이 시위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에 전달할 성명서와 A군의 편지를 낭독하는 모습.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서울 소재 한 중학교 학생 16명이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난민 신청을 한 이란 출신 친구 A군에 대한 공정한 심사를 법무부에 촉구하며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사진은 릴레이 시위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에 전달할 성명서와 A군의 편지를 낭독하는 모습.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개천절인 3일, 한산했던 청와대 앞 분수대에 앳된 10대 학생 16명이 모였다. 송파구의 한 중학교 3학년생들이었다. ‘그 친구’는 이란 출신인 A(15)군이다. 학생들이 주섬주섬 꺼내 펴든 현수막에는 ‘제 이란 친구를 난민으로 인정해 주세요’ 등이 적혀 있었다. 8년 전 한국에 온 A군은 난민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A군은 7살이던 2010년 사업하는 아버지 B(52)씨와 함께 이란 테헤란을 떠나 한국에 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한국에서 다녔다. 친구들에 따르면 A군은 이란어는 겨우 말만 할 뿐 읽을 줄도 모르고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익숙한 평범한 중3이다.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면 종교다. A군은 천주교 신자다. 아버지가 무슬림이라 이슬람 율법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무슬림이었지만 한국에서 친구들과 성당에 다니다 천주교 신자가 됐다. 어느 날 독실한 무슬림인 고모와 통화하다가 ‘네가 개종하고도 사람이라 할 수 있느냐’는 얘길 들은 뒤 연락이 끊겼다. 이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박해당할 수 있다”며 2016년 난민 신청을 했지만 ‘개종했더라도 이란 당국이 주목할 활동을 하지 않아 박해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불인정됐다. 이후 행정소송을 내 1심에서 이겼지만 2심에서 패소했다.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심리불속행 기각(2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이 없어 더 판단하지 않고 곧바로 기각하는 처분) 판결을 받았다. 이런 사연은 A군 친구가 지난 7월 11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알려졌고 3만 1000여건의 지지를 받았다.
학생들이 이란에서 온 친구 A군이 난민심사를 공정하게 받도록 해달라는 내용으로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내용. 모두 3만건이 넘는 지지를 받았다.
학생들이 이란에서 온 친구 A군이 난민심사를 공정하게 받도록 해달라는 내용으로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내용. 모두 3만건이 넘는 지지를 받았다.
A군의 친구들은 “5일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릴 난민 인정 재심사가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A군의 비자가 오는 16일 만료돼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추방당할 가능성이 있다. 친구들은 A군이 본국으로 추방되면 신변에 큰 위협을 받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인구 99%가 이슬람교도인 이란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한 이슬람교도는 배교(背敎)죄로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다.

이날 집회는 친구들이 A군과 함께 해온 2개월간 동행의 마무리였다. 국민청원 이후 7월에는 출입국·외국인청에서도 집회를 열었다. 학교 교사와 성당·교회 등에서는 500여만원을 모금해 A군에게 전달했다. 집회에 참여한 여학생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반장을 할 만큼 성격이 진짜 좋았다”면서 “부모 동의서를 받은 사람만 오늘 나올 수 있었는데 우리 부모님은 ‘친구 돕는 일이니 다녀오라’고 허락해 주셨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회장인 김지유(15)양은 “친구의 꿈이 모델인데 키도 크고 개성 있어 한국에 머물 수 있다면 멋진 모델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청와대 민원실을 통해 의견서를 전달했다. 김양은 “행정관이 ‘대통령께 잘 보고하겠다’고 해 엄청 떨렸다”며 웃었다.

조희연 서울 교육감은 학생들에게 보낸 격려문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외국 친구에 대해 어른들도 실천하기 어려운 인류애를 행동으로 보여준 같은 학교 학생들이 너무 자랑스럽다”면서 “이란 국적의 서울 학생이 서울에서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도 “A군은 가톨릭 신앙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하기에 본국으로 돌아가면 박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면서 “박해의 위협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관계 기관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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