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경호원의 이미지가 깊게 각인된 것은 1981년 3월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암살 시도가 있었을 때다. 워싱턴 시내 한 호텔에서 노동계 지도자들과 오찬을 하고 나오는 레이건 대통령에게 존 힝클리라는 청년이 권총을 발사하자 일제히 경호원들이 총을 빼들고 달려들어 범인을 진압했다. 말쑥한 양복 차림에 콧수염을 기른 경호원이 기관총을 들고 사방을 경계하며 뭔가를 외치는 장면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그와 동시에 다른 경호원은 레이건 대통령을 짐짝처럼 거칠게 전용차 뒷좌석으로 밀어넣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대통령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경호원들은 야수와 같이 거칠어지며, 심지어 그 대상엔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 장면이었다.
그런 경호실의 ‘위력’이 10일(현지시간) 백악관 인근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다시 연출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몇 걸음 옆에 서 있던 경호원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통령님, 지금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잘 안 들린 듯 트럼프 대통령은 “뭐라고요?”라고 되물었다. 이에 경호원은 “나가야 합니다”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군말 없이 바로 경호원들을 따라 나갔다. 말 많고 따지기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도 순한 양처럼 만드는 게 백악관 경호실이다.
북한과 휴전 상태인 한국 대통령의 경호도 삼엄하다. 2019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 칠성종합시장을 방문했을 때 인파 속에서 한 경호원이 외투 속에 기관총을 쥔 모습이 사진에 찍혀 논란이 된 바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경호시범을 보다가 눈물을 흘린 일이다. ‘탕!’이라는 한 발의 모의 총성이 울리자 경호원들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일제히 대통령을 향해 몸을 날리는 모습을 보고 그 숭고함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경호원 중 누가 더 행복할까를 묻는 질문은 우문일 것이다. 다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던지는 직업의 무게는 세상의 어떤 직업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carlos@seoul.co.kr
2020-08-1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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