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화가 황주리와 패션 ‘컬래버’/문소영 논설위원

[씨줄날줄] 화가 황주리와 패션 ‘컬래버’/문소영 논설위원

입력 2015-03-22 23:52
수정 2015-03-23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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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은 줄여서 ‘컬래버’(collabo)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컬래버’를 호명할 때는 제2차 세계전쟁 때 독일 나치 정부에 협력했던 내통자나 부역했던 배신자들을 말한다. 주로 프랑스에서 사용했다.

현대에서 거론하는 ‘컬래버’는 긍정적이고 예술적이다. 예술가나 연예인들이 의류·도자기 등의 브랜드와 협력하거나, 다른 두 개 이상의 분야가 다른 브랜드끼리 공동 작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컬래버’는 2000년대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예술가나 연예인,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한정판’(리미티드) 제품들은 불티나게 팔렸다. 값비싼 상품에 예술적 감성이 덧붙여지면 다른 경쟁 제품과 차별화되기 때문이다.

‘컬래버’를 주도했던 대표적 회사가 루이비통이다. 갈색의 모노그램 가방이 더이상 젊은 고객에게 소구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루이비통은 2001년 벽면 낙서처럼 보이는 그라피티 작가인 스티븐 스프라우스와 협업해 ‘그라피티’ 컬렉션을 선보였다. 변화의 조짐을 보고 2003년에는 일본의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멀티 컬러 모노그램’을, 2005년에는 ‘채리 모노그램’을 각각 내놓았다. 이후 무라카미 다카시는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루이비통은 2012년에도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여성작가 구사마 야요이와 ‘물방울 컬렉션’을 내놓았다. ‘아트 컬래버’ 덕분에 루이비통은 보수적이고 고루한 이미지를 떨쳐내고서 경쟁자인 구찌를 2003년부터 압도했다. 또 고가 상표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게 됐다. 국내 기업들은 예술가와의 컬래버가 그렇게 많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몇몇을 제외하고 황무지에 가깝다.

화가 황주리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지금 (서울 삼성동)코엑스에서 제 그림 이미지로 이영주 패션디자이너가 컬래버 패션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림 옷을 입고 워킹도 해요ㅡ하하!”라며 글을 올려 미술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현장에서 자신의 작품이 프린트된 화려한 코트를 입고 찍은 ‘셀카’도 직접 올렸다. 황 작가의 그림 ‘불독 베티’가 티셔츠로 살아나고, 최근 작품인 ‘식물학 시리즈’의 각종 모티브가 고급 맞춤복이 돼 9등신의 모델들이 입고 활보하는 동영상을 보니 아트 컬래버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신선하게 느껴진다. 황 작가의 ‘식물학 시리즈’는 2013년에도 여행가방 브랜드인 샘소나이트와도 아트 컬래버 상품으로 나왔지만 생생한 현장의 느낌은 덜 하다. 황 작가는 “패션의 아트 컬래버는 생각보다 훨씬 활기 있게 작품들이 활용됐다”며 만족했다. 순수예술을 전시장에서만 본다는 관습이 깨지고 있는 시대에 더 많은 작가와 더 많은 영역에서 컬래버가 이루어지고, 패션이나 생활 소품에서도 예술이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2015-03-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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