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진보의 싸가지 논쟁/문소영 논설위원

[씨줄날줄] 진보의 싸가지 논쟁/문소영 논설위원

입력 2014-09-04 00:00
수정 2014-09-04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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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책 ‘싸가지 없는 진보’가 입길에 오르고 있다. 진보가 싸가지를 장착하지 않으면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인터뷰도 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진보의 아이콘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싸가지가 문제가 아니라 대중에게 할 말이 없다는 것이 문제로, 진보·개혁이 도덕 재무장 운동도 아니고”라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진보의 의제를 모두 빼앗겼다”면서 “분배의 측면에선 복지와 경제민주화, 성장의 측면에선 창조경제 등이 모두 새누리당에 의해 소모되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1987년 민주화 이후로 대중의 욕망을 사로잡지도 못하고, 통일은 북한의 변화가 없는 이상 개성공단이 최대치”라고 했다. 국민이 진보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무능인가, 예의 없는 태도인 싸가지가 없기 때문인가가 논란이 된 것이다.

강 교수의 ‘싸가지 논쟁’은 진보 진영에서 새로운 논제는 아니다.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던 부산시장 후보 김영춘 전 국회의원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두고 “맞는 말을 참 싸가지 없게 한다”고 비판했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도 싸가지 없게 말하면 대중이 수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2004년 유시민 국회의원의 TV토론을 지켜봤던 사람들은 그 지적을 금세 이해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유아독존 식의 토론을 보면서 건방지고 혼자 잘난 척하는 진보의 졸렬함에 기함한 탓이다. 현재 ‘싸가지 없다’는 ‘예의 없다’거나 ‘겸손하지 않다’, ‘재수 없다’ 등 태도의 문제로 이해된다. 그러나 ‘싸가지 없다’의 본뜻은 훨씬 심각하다. ‘싸가지’는 ‘싹수’라는 의미의 강원도와 전라도의 방언이다. 싹수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의미하는데, 본질적으로 새싹과 관련 있는 말이다. 즉 ‘싸가지 없다’는 말은 씨를 심었는데 새싹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니까 인생의 미래가 없고 전망도 없다는 의미다.

강 교수가 우리 사회 진보의 미래도 전망도 없다는 극단적인 의미로 ‘싸가지 없는 진보’를 쓰진 않았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소통)에서 말투와 선정된 단어, 음성 등 아주 사소한 것들이 상대방을 설득할 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생각하면 ‘진보는 싸가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지적은 올바르다. 게다가 정부와 싸우는 과정에서 들끓는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으면 그것을 꼬투리 잡아서 흠으로 만드는 ‘보수적’인 사회이니, 강 교수의 ‘진보라면 싸가지 장착’은 진리일 수 있다. 그러나 진보가 집권을 꿈꾼다면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2014-09-0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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