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팽목항 하늘나라 우체통/정기홍 논설위원

[씨줄날줄] 팽목항 하늘나라 우체통/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4-07-26 00:00
수정 2014-07-26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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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단상을 논할 때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을 더러 떠올린다. ‘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근자에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이를 기리려고 그가 태어나 수천통의 편지를 보냈다는 통영우체국(현 통영중앙우체국) 이름을 청마우체국으로 바꾸려 했고, 생을 마친 곳인 부산 동구의 산복도로가에는 ‘유치환의 우체통’을 설치하기도 했었다.

편지에 그리움과 애틋함을 담은 작품은 이것 말고도 더 있다. 1990년대 말 고 최진실씨가 주연했던 영화 ‘편지’는 뇌종양을 앓는 남자가 죽은 뒤 홀로 남게 될 아내에게 전할 사랑 이야기를 편지로 담아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약혼자가 있는 한 여성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친구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당시 이 소설을 읽은 독일 청년들이 잇따라 자살해 ‘베르테르 효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굳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베트남에 파병된 외아들이 전사한 소식을 알린 것도, 10대 까까머리 사내와 단발머리 처녀 간 사랑과 이별을 전한 것도 편지였다.

편지가 인터넷에 밀려 존재 가치를 잃은 시대다. 길 모퉁이에 홀로 자리하며 편지를 기다리던 우체통도 하나씩 자리를 내주고 있다. 기다림과 반가움의 정서마저 사라지는가 해서 아쉽다. 우체통은 1993년 5만 7000개를 최고점으로 줄곧 줄면서 지금은 2만개를 밑돌고 있다. 그 자리를 소식을 받는 데 1년쯤 걸린다는 ‘느린 우체통’으로 채워지는 게 다행스럽다. 서울 조계사 옆의 우정총국우체국 입구를 포함해 수십개에 이른다. 전북 군산의 금강철새조망대 ‘철새우체통’은 가창오리가 나타나는 10월 말에 한 번만 편지를 배달한단다. 이색 우체통이 있는 우체국도 있다. 핀란드에는 ‘산타우체국’이,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엔 유리로 만든 ‘수중우체국’이 영업 중이라고 한다.

세월호 사고 100일을 맞아 진도 팽목항에 ‘하늘나라 우체통’이 설치됐다. 유가족이 편지를 넣으면 상담사가 위로의 답장을 보내고 방문객이 쓴 위로 편지는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전달된다. 우체통은 이처럼 나를 털어놓으면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꼭 ‘하늘나라 우체통’이 아니라도 우체통에 사연을 넣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답장이 없으면 어떤가. 가슴 답답한 세상에 대수는 아닐 것이다. 어느 미래학자가 우리 생애에 사라질 9가지 중 가장 빠른 것이 우체통이라고 했지만 ‘정(情)의 메신저’를 담은 우체통은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4-07-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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