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욘 라베 & 신들러/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욘 라베 & 신들러/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입력 2014-04-01 00:00
수정 201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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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7월 노구교 사건이 도화선이 돼 중·일 전쟁이 발발했고 일본군은 상하이를 무너뜨리고 단번에 난징을 점령했다. 난징은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다. 그때가 12월 13일이었고 장개석 정부는 한커우를 거쳐 충칭으로 옮겨가 버렸다. 중국 정부와 군이 물러간 난징에는 주민들이 무방비로 남아 있었다. 일본군 5만여명은 약 두달 동안 인간의 탈을 쓰고는 할 수 없는, 인류역사상 가장 잔학한 만행을 저질렀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후 오늘에 이르러 처음으로, 병사들이 웃는 얼굴로 어린아이를 공중으로 던졌다가 떨어져 내려오면 날카로운 총검의 끝으로 받아내고는 그것을 스포츠라 부르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중국의 작가 린위탕(林語堂)은 이렇게 썼다. 1946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는 13만여명이 살해됐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30여만명, 또는 그 이상이 처참한 살육을 당했다.

독일 또한 잔인한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는데, 논란은 있지만 신들러는 유대인 1200여명을 죽음에서 구해낸 인물이다. 논란이란, 신들러는 단지 값싼 임금 때문에 그들을 고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신들러 부인이 직접 출연한 영화 ‘쉰들러리스트’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어쨌든 신들러는 유대인들을 살렸고 그들을 구하려고 거금을 쓰기도 했다. 난징대학살 당시 ‘중국판 신들러’가 있었다. 그가 욘 라베(1882~1950)다. 독일 기업 지멘스의 간부이자 나치당원으로 난징에 머물고 있던 욘 라베는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탈출하려다 울부짖는 중국인들을 두고 떠날 수 없어 탈출을 포기한다. 그는 난징의 일부 구역을 안전지대로 만들고 자기 집에 중국인들을 수용했다. 그 과정에서 사재도 탕진했다. 일본도 독일이 동맹국이었기 때문에 안전지대를 침범하지 못했다. 20만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그의 도움을 받아 탈출해서 살아남았다.

결국, 욘 라베는 일본군에 의해 추방됐고 독일에서는 동맹국의 적국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난징 시민들은 은혜를 잊지 않고 성금을 모아 무일푼으로 살던 욘 라베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욘 라베는 중국에서는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고 있다. 2009년에는 그의 선행이 영화화됐다. 난징대학살 기념관 옆에는 동상도 서 있다. 몇년 전에는 중국 네티즌들이 ‘중국과 가장 친한 친구’ 10명을 뽑았는데 그중에 욘 라베도 들어 있다. 엊그제 독일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주석이 일본의 난징대학살을 맹비난하고 욘 라베에 대해서는 감사의 표시를 했다. ‘前事不忘 后事之師’. 난징기념관에 걸린 문구처럼 과거는 잊지 말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을 일이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2014-04-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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