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박물관 옆 미술관 시대/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박물관 옆 미술관 시대/서동철 논설위원

입력 2013-11-14 00:00
수정 2013-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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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의 청계산 자락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한 것은 1986년이었다. 휴식공간이라면 아늑한 환경에 훌륭한 시설이지만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현대미술관으로는 무리한 입지였다. 현대미술관이란 그저 평생에 한두 차례 소풍 삼아 가보면 되는 곳 아니겠느냐는 인식이 ‘동물원 옆 미술관’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런 현대미술관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서울관을 마련하고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관람객을 맞기 시작했다. 길 건너 경복궁의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로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잇는 마름모꼴의 ‘내셔널 뮤지엄 벨트’가 완성된 것이다. 미술인들은 이제 과천 미술관 건립 주체들에게 비난을 거두는 것은 물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그들이 처음부터 적절한 입지에 미술관을 지었다면 서울관과 과천관이라는 두 개의 미술관은 없었다.

현대미술관 서울관은 2000년 고도(古都)에서도 전통과 현대가 가장 극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미술관을 중심으로 경복궁과 현대적인 문화가 중심을 이루는 삼청동 거리, 북촌 한옥마을,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 현대적 공연예술의 메카인 세종문화회관을 중심으로 하는 광화문광장이 둘러싸고 있다. 서울관은 그 자체가 조선시대 언론의 역할을 수행한 사간원과 왕실 친·인척을 관리한 종친부가 있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군 정보기능을 맡은 국군기무사령부가 들어서면서 정독도서관 마당으로 옮겨졌던 종친부 건물은 이번에 제자리에 복원됐다. 서울관 전면의 벽돌건물은 일제강점기 경성의전부속병원으로 지어졌다. 해방 이후에는 수도육군병원으로 쓰였고 1979년 10·26사태 당시 총상을 입은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으로 후송하는 동안 숨을 거뒀다.

이렇게 서울관에는 종친부, 수도육군병원, 새로 지은 미술관 건물이 공존한다. 서울관 개관의 의미는 바로 역사적 공간에 예술을 매개로 하는 미래의 개척이라는 새로운 임무가 더해진 데 있다. 서울관은 따분하고 어려운 미술관이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는 열린 미술관을 표방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미술을 적극 소개하면서 작가들이 세계 미술과 협업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도 밝혔다. 옳은 방향이지만 실제로 관람객이나 미술인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전시와 연구, 사업으로 현실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토록 염원하던 도심 미술관을 미술인들이 어떻게 도심 미술관답게 운영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현대미술관이 도심에 자리 잡고도 ‘그들만의 미술관’에 머물며 평범한 시민과 소통에 실패한다면 과천에 있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3-11-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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