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잡스의 영혼/정기홍 논설위원

[씨줄날줄] 잡스의 영혼/정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3-09-16 00:00
수정 201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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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애플이 신제품 ‘아이폰4’를 출시하면서 내놓은 광고 콘셉트는 도발적이었다. “당신은 이미 이 제품의 사용법을 알고 있다.” 이 문구에서는 사용법이 너무 쉬워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당시 세계 휴대전화 시장은 애플의 새로운 기기 출시에 혼을 빼앗기고 있을 때였다. 이 호언은 시장에서 그대로 적중해 또 한 번 애플의 혁신에 환호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0일 애플은 후속작인 ‘아이폰5S·5C’를 세계시장에 공개했다. 5S는 고급 시장을 겨냥했고, 5C는 중저가 모델이다. 하지만 시장은 그저그런 제품으로 평가절하한 채 실망감을 넘어 허탈해하고 있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스티브 잡스의 영혼이 새 아이폰과 함께 애플을 빠져나갔다”고 혹평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애플 본사의 벽에서 잡스 사진을 떼도 좋을 것 같다”며 애플에 ‘잡스의 혁신’은 없다고 단언했다. 2007년(한국은 2009년)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이후 6년 만의 최악의 평가다. 어느새 ‘애플 제국’은 자신이 아이폰의 모방품으로 비아냥거렸던 경쟁사 제품에 시장을 넘기면서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애플은 왜 맥없이 무너지는가. 애플의 추락 이유는 유라시아를 지배했던 몽골에서 찾을 수 있다. 800여년 전 몽골의 칭기즈칸은 유목민의 기마술로 가장 빠르게, 그리고 잔인하게 대륙을 정복했다. ‘몽골 군대는 소문보다 먼저 들이닥친다’는 데서 보듯 속도의 위용은 대단했다. “21세기는 새로운 유목사회”라고 진단한 GE의 전 회장 잭 웰치도 유목민의 속도감에서 그 의미를 찾았을 정도다. 하지만 몽골은 폐쇄정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중국의 주류 민족인 한족을 천대하면서 반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애플도 온라인제국을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하무인 격이었다. 폐쇄적 경영은 혁신을 등졌고, 곳곳에서 저항에 부닥치면서 서비스 경쟁에서 밀려났다. 잡스의 혁신은 ‘존재하는 것’과 ‘남의 것’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그의 사후 조직은 혁신의 날카로움을 잃어버렸다.

첨단의 시대엔 물리적으로 강한 자도, 지적인 자도 적응이 빠른 자에겐 이기기 어렵다. 잡스가 췌장암으로 사망한 지 2년. ‘잡스의 혁신 정신이 애플의 근간이 돼 영원히 남을 것’이라던 애플의 예상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 애플의 ‘비밀주의’도 유효하지 않다. 애플의 지난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31.7%)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잡스의 영혼을 잃은 애플도 언젠가 모토로라가 구글에, 노키아 휴대전화 부문이 MS에 팔린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를 일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3-09-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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