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선언이 나온 1987년 이맘때의 일이다. 민주화 요구 시위가 한창일 무렵, 서울 남대문시장은 시위장소로 둘도 없는 요새와도 같은 곳으로 통했다. 경찰은 시장입구에서 구호를 외쳐대는 대학생 시위에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했다. 시장 통로가 사방으로 뚫려 있는 구조여서 경찰은 도망 치는 시위대를 잡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물러나기 일쑤였다. 당시 게릴라성 시위가 거의 유일하게 통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인터넷이 일상화되기 전의 오프라인 집단행위의 한 행태다.
최근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와 장소라는 현실세계가 결합된 형태의 놀이문화가 속속 등장해 눈길을 끈다. 10여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플래시 몹’(Flash mob)이 이 같은 유희문화의 시초로 꼽힌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일순간 모여 나름의 ‘의미 있는’ 행동을 하다 목적을 달성하면 곧 사라지는 행위를 일컫는다. 3년 전 스위스에서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이 갑자기 길가에서 쓰러져 지나던 시민들을 놀라게 한 해프닝이 그 한 예다. 하지만 대부분 정치적인 목적 없이 즐긴다는 측면이 강하다. 우스꽝스럽고 황당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같은 사례로 ‘플레이 태그’(Play tag)란 것도 있다. 이는 어릴 적 골목길에서 놀던 술래잡기 놀이의 일종이다. 사전에 약속된 놀이를 일정 시간 함께 즐기는 행위로, 플래시 몹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요즘 이와 비슷한 ‘립 덥’(Lip dub)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립싱크(Lipsync)와 더빙(Dubbing)을 합친 말로, 여러 명이 특정 음악에 입을 맞추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재미를 이끌어내고 단결력을 과시한다. 단체놀이이지만 참가자 개개인이 개성을 뽐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층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역동적이고 재기발랄한 것이 특징이다. 최근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이 ‘립 덥 공모전’을 열어 새삼 입소문을 타고 있다. 대학가에서도 중고생들을 상대로 한 입시설명회 등에서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펀(Fun)이 가미된 놀이문화는 평소 조직력이 없다는 점이 이채롭다. SNS 등으로 무장한 도깨비 같은 군중이 느닷없이 나타나 집단 에너지를 표출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화에 대해 저항적인 메시지보다는 유희 그 자체에 주목한다.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특정한 사람들이 적막을 깨뜨리는 바이올린을 켠다면 따분한 현대인의 일상에 비타민 같은 활력을 불어넣는 일 아닌가. 세상은 변하게 마련이다. 손안의 인터넷을 내던지고 외곽을 기웃거리는 색다른 현실. 인간의 놀이는 어디까지 진화할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최근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와 장소라는 현실세계가 결합된 형태의 놀이문화가 속속 등장해 눈길을 끈다. 10여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플래시 몹’(Flash mob)이 이 같은 유희문화의 시초로 꼽힌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일순간 모여 나름의 ‘의미 있는’ 행동을 하다 목적을 달성하면 곧 사라지는 행위를 일컫는다. 3년 전 스위스에서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이 갑자기 길가에서 쓰러져 지나던 시민들을 놀라게 한 해프닝이 그 한 예다. 하지만 대부분 정치적인 목적 없이 즐긴다는 측면이 강하다. 우스꽝스럽고 황당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같은 사례로 ‘플레이 태그’(Play tag)란 것도 있다. 이는 어릴 적 골목길에서 놀던 술래잡기 놀이의 일종이다. 사전에 약속된 놀이를 일정 시간 함께 즐기는 행위로, 플래시 몹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요즘 이와 비슷한 ‘립 덥’(Lip dub)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립싱크(Lipsync)와 더빙(Dubbing)을 합친 말로, 여러 명이 특정 음악에 입을 맞추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재미를 이끌어내고 단결력을 과시한다. 단체놀이이지만 참가자 개개인이 개성을 뽐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층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역동적이고 재기발랄한 것이 특징이다. 최근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이 ‘립 덥 공모전’을 열어 새삼 입소문을 타고 있다. 대학가에서도 중고생들을 상대로 한 입시설명회 등에서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펀(Fun)이 가미된 놀이문화는 평소 조직력이 없다는 점이 이채롭다. SNS 등으로 무장한 도깨비 같은 군중이 느닷없이 나타나 집단 에너지를 표출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화에 대해 저항적인 메시지보다는 유희 그 자체에 주목한다.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특정한 사람들이 적막을 깨뜨리는 바이올린을 켠다면 따분한 현대인의 일상에 비타민 같은 활력을 불어넣는 일 아닌가. 세상은 변하게 마련이다. 손안의 인터넷을 내던지고 외곽을 기웃거리는 색다른 현실. 인간의 놀이는 어디까지 진화할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2013-06-07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