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삼의 벅차오름
  • 벤치에 앉아 있는 ‘절망’이란 친구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강동삼의 벅차오름]
  • 사티의 ‘짐노페디’ 들으며… ‘안단테 칸타빌레’ 같은 산책을 하다 [강동삼의 벅차오름]

    사티의 ‘짐노페디’ 들으며… ‘안단테 칸타빌레’ 같은 산책을 하다 [강동삼의 벅차오름]

    #상속받은 돈으로 똑같은 벨벳정장 7벌을 사서 평생 입은 남자…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온 남자 매일 우산을 들고 다니지만 정작 비가 올 때는 우산이 젖지 않도록 고이 품 안에 넣고 비를 맞는 남자, 흰색으로만 된 음식을 먹었던 유별난 남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고독한 남자, 작곡가라기 보다 발명가로 불린 남자, 음악 형식이나 기법도 모두 무시해버린, 음악 역사상 최고의 괴짜 작곡가였던 남자, 카페 피아니스트로 음악사에 등장한 최초의 음악가인 남자, 르누아르의 ‘부지발에서의 댄스’ 속 여인 쉬잔 발라동을 영원히 잊지 못해 독신으로 산 남자, 상속받은 돈으로 똑같은 벨벳정장 7벌을 사서 평생 그 옷만 입었던 남자,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온 남자…. 클래식 애호가들에겐 이쯤 얘기하면 누구인지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클래식에 큰 관심이 없어도 OOO침대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을 떠올리면 낯설지만은 않을 터이다. 가구음악으로 유명한 프랑스 괴짜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다. 가구처럼 편안한 음악, 가구음악(Furniture Music)의 장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 알랭 들롱의 ‘태양은 가득히’ 처럼… “햇살이 눈부셨을 뿐이에요” [강동삼의 벅차오름]
  • 뭉크의 ‘두사람, 외로운 이들’ 처럼… 휴식같은 친구 ‘소울오름’ 처럼[강동삼의 벅차오름]

    뭉크의 ‘두사람, 외로운 이들’ 처럼… 휴식같은 친구 ‘소울오름’ 처럼[강동삼의 벅차오름]

    #사람이 아닌, 자연이 지르는 비명 뭉크의 ‘절규’ 처럼 제주의 여름은 뜨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없이 바다만 바라보는 외로운 여자,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외로운 남자.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낸 노르웨이 대표적 화가이자 판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에서 만난 ‘두사람, 외로운 이들’(1892년작)이다. 남녀는 서로 가까이 있지만, 그 거리는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2m보다 더 극복하기 힘들어 보이는 거리다. 여자는 뭉크의 첫사랑 ‘밀리’처럼 보인다. 유부녀를 사랑했던 뭉크. 그래서일까. 젊은 남녀가 불 꺼진 방에서 창밖의 불빛을 피해 커튼 뒤에서 격렬하게 나누는 ‘키스’(1892)마저 고독해 보인다. 화가 뭉크하면 떠오르는 ‘절규’.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위들이 자행되었던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후 20세기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 된 ‘절규’는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란다. 뭉크는 오슬로 피오르에 인접한 에케베르그 언덕을 산책하다가 느낀 강렬한 감정을 그려냈단다. 뭉크는 파리 유학시절인 1892년 습작노트에 ‘해질 무렵 친구 두명과 함께 나는 길을 걷고
  • 한밤중 홀로… 강가에 앉아 버림받은 기분에 젖어본 일이 있는가[강동삼의 벅차오름]

    한밤중 홀로… 강가에 앉아 버림받은 기분에 젖어본 일이 있는가[강동삼의 벅차오름]

    # 인생을 절망해보지 않고는 진실한 삶을 모른다 ‘강으로 내려가 본 적이 있는가/새벽 두 시에 홀로/강가에 앉아/버림 받은 기분에 젖어본 일이 있는가/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이미 돌아가신 어머니, 신이여 축복하소서/사랑하는 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그녀가 태어나지 말았기를 바란 적이 있는가 할렘강으로의 나들이/새벽 두시/ 한 밤중/홀로/신이시여, 나 죽고만 싶어요/하지만 나 죽은들 누가 서운해 할까’ ‘할렘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미국의 흑인시인 랭스턴 휴즈(1902-1967)의 ‘할렘강 환상곡’이란 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소개된 ‘그 시를 읽고 나는 시인이 되었네’를 읽다가 가슴을 후빈 詩다. 이 시를 소개한 천양희 시인의 말마따나 ‘인생을 절망해보지 않고는 진실한 삶을 모른다’는 말이 와 닿는다. 그의 표현처럼 뭉크의 ‘절규’같은 시 한편이 영혼을 벼락치듯 울린다. 우리는 한번쯤 강가에 서서,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에 서서, 한번쯤 서럽도록 슬프게 울음을 삼켜본 적 있다. 앞이 캄캄해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듯 해서, 그 절망의 시간 앞에서 속울음을 삼키다가 꺼억꺼억 소리내며 하얀 포말같은 거품을
  • 브레히트의 시처럼…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까’ 묻고 싶어지는 날[강동삼의 벅차오름]

    브레히트의 시처럼…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까’ 묻고 싶어지는 날[강동삼의 벅차오름]

    #영화 ‘타인의 삶’처럼… 그들이 나의 인생을 바꿨다 ‘ 9월 파란색 달이 뜬 바로 그날. 어린 자두나무 아래서. 말없이/난 그곳에서 창백한 내사랑, 그녀를 품안에 안았다 달콤한 꿈처럼/우리 머리 위 아름다운 여름하늘에는/ 구름이 한 점 떠 있었다. 그 구름을 나는 오랫동안 쳐다보았다/구름은 아주 하얗고 아득히 높아/내가 다시 올려다보았을 땐 사라지고 없었다.…(중략) 키스도, 구름이 거기 떠있지 않았더라면/벌써 오래 전에 잊어 버렸을 것이다.’ 영화 ‘타인의 삶’(플로리안 헨켈 폰 돈너스마르크 감독. 2006년作)에서 동독 비밀경찰 비즐러(울리히 뮈헤)의 굳센 신념을 흔들리게 한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 ‘마리아의 추억’의 일부다. 사람을 지칠 때까지 심문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비즐러. 도청이란 직업을 통해 사회주의 적들과 맞서야 한다는 굳센 신념을 지닌 인물이다.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제바스티안 코흐)과 그의 애인이자 인기 여배우 크리스타(마르티나 게덱)를 감시하는 중대 임무를 맡는다. 그는 모든 걸 기록한다. 민감한 대화, 은밀한 사생활까지. 그러나 그의 굳센 신념을 흔들리게 만든 서막은 브레히트 시 ‘마리아의 추억’이다.
  •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사랑도… [강동삼의 벅차오름]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사랑도… [강동삼의 벅차오름]

    #1000걸음 나아가다 999걸음 물러나는 것이 전진입니다 사물은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Objects in mirror are closer than they appear). 운전하기 위해 자동차 사이드 백미러를 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이 문구에 경직됩니다. 사고 방지를 위해 적힌 이 문구에 아찔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재차 확인합니다. 뒤차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서두르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도록 운전자를 안내하는 문구입니다. (서울시청 인근 역주행사고로 인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간혹 시속 50㎞ 이하의 인생은 느리고 재미없다고 바보같은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80㎞ 이상 질주해야 바쁜 인생 제대로 돌아간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과속은 브레이크 없는 인생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천천히 가면 조금 늦게 도착할지언정 무사히 목적지에 당신을 안내해줄 겁니다. 느림이 가져다 주는 행복이 있습니다. 스위스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인생 잠언에 나오는 문구 중 ‘1000걸음 나아가다 999걸음을 물러나는
  • 꽃잎 하나 슬며시 너에게 건넨다… “친구야, 고마워”[강동삼의 벅차오름]

    꽃잎 하나 슬며시 너에게 건넨다… “친구야, 고마워”[강동삼의 벅차오름]

    # 무뚝뚝한 남학생이 짝사랑하는 소녀에게 꾹꾹 눌러쓴 손편지처럼… 오늘은 고백해볼까 “꽃잎 하나 슬며시 너에게 건넨다, 친구야 고마워.” 병원 정기 검진때문에 모처럼 서울에 가는 길. 한 초등학교를 지나는데 현수막에 걸린 글씨가 내 가슴에 훅하고 박혔다. 어릴땐 혹시나 편지가 왔나 보려고 우체통을 들여다보곤 했었다. 그땐 막연한 기다림이 사랑인 줄은 몰랐다. 그냥 애가 타고 가슴 시리고 잠못 이루고 밤중에 썼던 편지를 다음날엔 찢어 버리곤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다시 편지를 썼다. 유치한 감성에 젖어…. 그런데 놀라운 건 지금도 무뚝뚝한 남학생이 짝사랑하는 소녀에게 꾹꾹 눌러쓴 손편지를 건넨다는 사실이다. 그날밤처럼. 새삼 사랑하는 방법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때마침 신기하게도 서울가던 날.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라는 옛 유행가 가사를 따라하듯, 또박또박 써내려간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됐다. 평소 진지해 ‘찐’ 동생으로 불리는 동생이 실없이 싱글벙글 거리며, 마치 자기가 사랑고백을 받은 것처럼, 딸이 한 남학생으로 부터 받은 편지 내용의 일부(그는 휴대폰에 저장해놓고 우울할 때 들여다보는 듯 했다)를 보여주는 것이
  • 추운 날이 되어서야 소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추사 ‘세한도’처럼 [강동삼의 벅차오름]

    추운 날이 되어서야 소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추사 ‘세한도’처럼 [강동삼의 벅차오름]

    # 그려지지 않은 여백의 절제미가 돋보이는 세한도…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를 만나다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잎이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를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제주 추사관에서 보면서 문득 유배지에서의 삶을 그려본다. 늙은 소나무 한그루, 잣나무 3그루, 그리고 허름한 집 한 채가 전부인 세한도(歲寒圖). 그러나 세월을 초월해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간결함과 시리도록 눈부신 여백이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세한도’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국보다. 완당(阮堂) 또는 추사(秋史) 김정희가 59세 되던 해인 1844년에 제주도 유배 중에 그렸다.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 외롭고 처절한 유배생활을 하던 시절에 제자였던 역관 이상적(譯官 李商迪·1804∼1856년)이 중국 연경의 소식과 귀중한 서책들을 구해 스승에게 보내곤 했다. 권세를 모두 잃고 보잘 것 없게 된 자신에게 변함없는 정성을 보내는 제자에게 보답하고자 붓을 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세한도’. 누군가 김정희를 ‘한칸 초가에 철저히 갇혀버린
  • 어쩌면… 모든 날 중 완전히 잃어버린 날은 한 번도 웃지 않은 날이다[강동삼의 벅차오름]
  • 나는 소망한다… 자신을 낮추며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되길[강동삼의 벅차오름]

    나는 소망한다… 자신을 낮추며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되길[강동삼의 벅차오름]

    #물처럼 겸손해지고 싶습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물은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게 되고,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가 됩니다. 물은 그 자체가 모양이 없습니다. 물은 상황에 따라 한없이 변하면서도 동시에 본질을 잃지 않습니다. 모두가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고 애쓰지만, 물은 자기를 낮추면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모든 곳을 적시고 채우면서 흘러갑니다. 물은 늘 겸손합니다.’ 가장 위대한 선은 물과 같다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달입니다. 15일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부처의 말씀도 이와 비슷한데 단 하루만이라도 물처럼 겸손해지고 싶습니다. 비우는 마음으로 서귀포시 상효동 선덕사로 향합니다. 선덕사는 516도로를 타고 성판악을 거쳐 서귀포에 거의 다다를 무렵, 내리막길에서 만납니다. 초입에 있는 넓은 주차장 오른쪽 오솔길로 한참 올라가면 계곡 물소리만 들리는 아주 고즈넉한 산사입니다. #210자가 불타지 않은 것 처럼… 한 자 한 자가 살아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선덕사는 1982년 조계종 3·4·6대 종정이었던 고암상언(古庵祥彦·1899~1988) 승려의 뜻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 ‘마이웨이’노래가 좋아지면… 이제 끝에 가까워진걸세[강동삼의 벅차오름]

    ‘마이웨이’노래가 좋아지면… 이제 끝에 가까워진걸세[강동삼의 벅차오름]

    #마이웨이(My Way)… 내 방식대로 계획하고 한걸음씩 나아갔다네 누군가 그러더군요. 프랭크 시나트라(1915. 12. 12~1998. 5. 14)의 ‘마이웨이(My Way)’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나이 들어간다는 증거라고요. 정말 그런가요. 난 요즘 미치도록 이 노래를 수백번 되감기를 한답니다. 카세트테이프로 들었으면 벌써 테이프가 늘어지고 씹혀서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지경이 됐을지도 몰라요. ‘And now the end is near/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My friend, I’ll say it clear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I’ve lived a life that’s full, 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And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이제 끝이 가까워졌네. 그래 내 인생의 마지막 장을 맞이하고 있다네./친구여, 이제는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다네. 내가 확신하는 이야기들을 말일세./난 지금까지 충만한 인생 살았어/할 수 있는 많은 길들을 걸어보았다네/ 그렇지만 좀더, 제일
  • 당신이 말을 멈췄을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날처럼, 봄은 부재입니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당신이 말을 멈췄을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날처럼, 봄은 부재입니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당신이 말을 멈췄을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당신이 말을 멈췄을 때 그냥, 눈물이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그때 알았습니다. 코에서도 눈물이 새어 나온다는 것을/당신이 ‘나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에 찾아온 긴 침묵/당신이 말을 잇지 못했을 때, 그 침묵이 눈물이라는 것을/그때 알았습니다. 길게 내쉬는 한숨도 눈물이라는 것을…./침을 삼키는 순간에도 눈물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두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에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그때 알았습니다. 두 손등에 젖은 땀도 눈물이라는 것을/당신이 말을 멈췄을 때, 그냥 눈물이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봄은 그날처럼, 오늘도 부재(不在)입니다’ 4월이 되면 노란 유채꽃마저 슬프고 연분홍빛 벚꽃마저 슬픕니다. 찬란해서 더욱 슬프기도 하지만 늘 이 봄을 함께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슬퍼집니다. 4·3 희생자의 무죄를 위해 힘쓰던 어느 검사가 4·3특집방송에서 ‘방송사고’를 낸 듯 침묵할 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런 헌시를 바치고 싶었습니다. 4·3평화공원 추념식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비가 그치지 않는 길에 우연히 들른 세월호 제주기억관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
  • 화난 듯 큰소리로 짧게… 바람에 실려온 그 한마디 “강 봥 왕 고릅서” [강동삼의 벅차오름]

    화난 듯 큰소리로 짧게… 바람에 실려온 그 한마디 “강 봥 왕 고릅서” [강동삼의 벅차오름]

    #‘강 봥 왕 골라(가서 보고 와서 얘기해주세요)’… 거센바람은 제주인들의 말을 짧게, 거칠게 만들었다 ‘화나지 않았는데도 화난 것처럼 큰 소리로 말하고, 툭툭 말을 토막 쳐 거칠게 내뱉는 사람들, 거친 땅, 거센 바람의 풍토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바람을 뚫고도 들리도록 목소리가 높아지고, 바람에 말끝이 날아가지 않게 연결어미가 축소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가서 보고 와서 말하라’가 ‘강 봥 왕 말하라’가 되었다. 화산도의 거친 땅과 거센 바람이 그 고장 사람들의 심성을 거칠게 만들어놓았다면, 그 거칢과 완강함에는 먼 조상에서 유전된, 유배와 망명으로 추방당한 자의 포한도 섞여 있는 것은 아닐까?’ 제주의 삼다(三多) 중 바람 때문에 정말 말이 짧아진 이유를 이제서야 알게 됐다. 현기영 작가의 ‘제주도우다’를 읽으면서 가슴을 후벼파듯 공감되는 문장이었다. 제주사투리로 말할 때마다 짧아서 좋을 때가 있었다. “기?(그래?)” 바람때문이었구나. “기(그래, 맞아)” # 3대 사찰을 다 품은 원당오름… 제주시내와 조천의 경계를 짓는 오름 원당봉으로 올라가는 내내 그랬다. 바람이 내 말을 삼켜 버렸다. 제주시 동쪽 삼양해수욕장으로 차를 몰고
  • 오름 끝은 ‘호라이즌’이다… 정말 수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강동삼의 벅차오름]

    오름 끝은 ‘호라이즌’이다… 정말 수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강동삼의 벅차오름]

    # 바닷가 아득히 먼곳을 응시하는 작품처럼… 제주 풍경의 끝엔 수평선이 있다 그는 바닷가 어느 카페에 앉아 있다. 그 카페 옥상에 앉아 바다를 보다가 수평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득히 먼곳’을 바라만 봤다. 9년째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는 남자, 9년째 석양을 바라보는 남자, 그 바닷가에 마치 삶의 흔적인양 발자국을 남기는 남자, 폭풍에 휘청이는 마른 나무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남자, 스산한 제주 바닷가 어느 박공지붕의 창고같은 집(작가는 종착점 혹은 안식처라고 생각한다)을 늘 종착지라고 여기는 남자…. 어느 비오는 날 취재차 제주시 구도심에 나갔다가 우연히 장준원(53)작가의 개인전 ‘호라이즌’(돌담갤러리)을 만났다. 그의 작품 속엔 파랗고 붉은, 혹은 핑크빛 노을들이 나온다. 색감은 화려하지만, 우울하고 황량한 지평선 혹은 수평선이 가득하다. 빗소리에 지평선이 꿈틀거리는 듯 하다. 수평선이 춤을 추는 듯 하다. 작가의 동생 진원씨의 작품소개처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번뇌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지평선을 바라보며 그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지 모른다. 정말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왜 ‘호라이즌’을 그리게 됐는지 궁금해 지난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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