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강동삼의 벅차오름
  • ‘마이웨이’노래가 좋아지면… 이제 끝에 가까워진걸세[강동삼의 벅차오름]

    ‘마이웨이’노래가 좋아지면… 이제 끝에 가까워진걸세[강동삼의 벅차오름]

    #마이웨이(My Way)… 내 방식대로 계획하고 한걸음씩 나아갔다네 누군가 그러더군요. 프랭크 시나트라(1915. 12. 12~1998. 5. 14)의 ‘마이웨이(My Way)’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나이 들어간다는 증거라고요. 정말 그런가요. 난 요즘 미치도록 이 노래를 수백번 되감기를 한답니다. 카세트테이프로 들었으면 벌써 테이프가 늘어지고 씹혀서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지경이 됐을지도 몰라요. ‘And now the end is near/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My friend, I’ll say it clear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I’ve lived a life that’s full, 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And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이제 끝이 가까워졌네. 그래 내 인생의 마지막 장을 맞이하고 있다네./친구여, 이제는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다네. 내가 확신하는 이야기들을 말일세./난 지금까지 충만한 인생 살았어/할 수 있는 많은 길들을 걸어보았다네/ 그렇지만 좀더, 제일
  • 당신이 말을 멈췄을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날처럼, 봄은 부재입니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당신이 말을 멈췄을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날처럼, 봄은 부재입니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당신이 말을 멈췄을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당신이 말을 멈췄을 때 그냥, 눈물이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그때 알았습니다. 코에서도 눈물이 새어 나온다는 것을/당신이 ‘나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에 찾아온 긴 침묵/당신이 말을 잇지 못했을 때, 그 침묵이 눈물이라는 것을/그때 알았습니다. 길게 내쉬는 한숨도 눈물이라는 것을…./침을 삼키는 순간에도 눈물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두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에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그때 알았습니다. 두 손등에 젖은 땀도 눈물이라는 것을/당신이 말을 멈췄을 때, 그냥 눈물이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봄은 그날처럼, 오늘도 부재(不在)입니다’ 4월이 되면 노란 유채꽃마저 슬프고 연분홍빛 벚꽃마저 슬픕니다. 찬란해서 더욱 슬프기도 하지만 늘 이 봄을 함께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슬퍼집니다. 4·3 희생자의 무죄를 위해 힘쓰던 어느 검사가 4·3특집방송에서 ‘방송사고’를 낸 듯 침묵할 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런 헌시를 바치고 싶었습니다. 4·3평화공원 추념식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비가 그치지 않는 길에 우연히 들른 세월호 제주기억관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
  • 화난 듯 큰소리로 짧게… 바람에 실려온 그 한마디 “강 봥 왕 고릅서” [강동삼의 벅차오름]

    화난 듯 큰소리로 짧게… 바람에 실려온 그 한마디 “강 봥 왕 고릅서” [강동삼의 벅차오름]

    #‘강 봥 왕 골라(가서 보고 와서 얘기해주세요)’… 거센바람은 제주인들의 말을 짧게, 거칠게 만들었다 ‘화나지 않았는데도 화난 것처럼 큰 소리로 말하고, 툭툭 말을 토막 쳐 거칠게 내뱉는 사람들, 거친 땅, 거센 바람의 풍토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바람을 뚫고도 들리도록 목소리가 높아지고, 바람에 말끝이 날아가지 않게 연결어미가 축소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가서 보고 와서 말하라’가 ‘강 봥 왕 말하라’가 되었다. 화산도의 거친 땅과 거센 바람이 그 고장 사람들의 심성을 거칠게 만들어놓았다면, 그 거칢과 완강함에는 먼 조상에서 유전된, 유배와 망명으로 추방당한 자의 포한도 섞여 있는 것은 아닐까?’ 제주의 삼다(三多) 중 바람 때문에 정말 말이 짧아진 이유를 이제서야 알게 됐다. 현기영 작가의 ‘제주도우다’를 읽으면서 가슴을 후벼파듯 공감되는 문장이었다. 제주사투리로 말할 때마다 짧아서 좋을 때가 있었다. “기?(그래?)” 바람때문이었구나. “기(그래, 맞아)” # 3대 사찰을 다 품은 원당오름… 제주시내와 조천의 경계를 짓는 오름 원당봉으로 올라가는 내내 그랬다. 바람이 내 말을 삼켜 버렸다. 제주시 동쪽 삼양해수욕장으로 차를 몰고
  • 오름 끝은 ‘호라이즌’이다… 정말 수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강동삼의 벅차오름]

    오름 끝은 ‘호라이즌’이다… 정말 수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강동삼의 벅차오름]

    # 바닷가 아득히 먼곳을 응시하는 작품처럼… 제주 풍경의 끝엔 수평선이 있다 그는 바닷가 어느 카페에 앉아 있다. 그 카페 옥상에 앉아 바다를 보다가 수평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득히 먼곳’을 바라만 봤다. 9년째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는 남자, 9년째 석양을 바라보는 남자, 그 바닷가에 마치 삶의 흔적인양 발자국을 남기는 남자, 폭풍에 휘청이는 마른 나무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남자, 스산한 제주 바닷가 어느 박공지붕의 창고같은 집(작가는 종착점 혹은 안식처라고 생각한다)을 늘 종착지라고 여기는 남자…. 어느 비오는 날 취재차 제주시 구도심에 나갔다가 우연히 장준원(53)작가의 개인전 ‘호라이즌’(돌담갤러리)을 만났다. 그의 작품 속엔 파랗고 붉은, 혹은 핑크빛 노을들이 나온다. 색감은 화려하지만, 우울하고 황량한 지평선 혹은 수평선이 가득하다. 빗소리에 지평선이 꿈틀거리는 듯 하다. 수평선이 춤을 추는 듯 하다. 작가의 동생 진원씨의 작품소개처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번뇌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지평선을 바라보며 그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지 모른다. 정말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왜 ‘호라이즌’을 그리게 됐는지 궁금해 지난 14일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 그리고 기다림의 풍경과 마주하다[강동삼의 벅차오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 그리고 기다림의 풍경과 마주하다[강동삼의 벅차오름]

    # 코로나시대의 사랑?… 적당한 거리두기는 사랑을 오래 지속시킨다 사람은 정말 무엇으로 사는 걸까.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을 남긴 세계적인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9.9~1910.11.20)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에서 ‘사랑’으로 산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단편소설 주인공 시몬의 집에 머무는 미하일(천사)을 통해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저는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 마음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후,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1829년 귀족(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톨스토이는 기차여행 중 감기에 걸렸고 이는 곧이어 폐렴으로 번지자 작은 간이역 아스타포브의 역장 집을 빌려 몸져누웠다가 1910년 11월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진리는… 나는… 사랑한다…”였다고 합니다. 예전 ‘코로나시대의 사랑’을 생각해봅니다. 사랑하는 당신과의 적당한 거리두기가 새삼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 “하쿠나 마타타”… 그래요, 걱정 말아요, 다 잘될거예요[강동삼의 벅차오름]

    “하쿠나 마타타”… 그래요, 걱정 말아요, 다 잘될거예요[강동삼의 벅차오름]

    #많이 웃는 자가 행복하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 많이 웃는 자가 행복하고, 많이 우는 자는 불행하다. 건강한 사람은 낙천적인 사람이 많다. 웃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잘 웃는 것도 타고 나는 기질에 속한다. 건강은 인간의 주관적인 자산인 고상한 성격, 뛰어난 두뇌, 낙천적 기질, 명랑한 마음에 함께 속한다. 최근 서점가를 강타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저자 강용수)’에 나오는 조언이다. 요즘 이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여창수 제주도 대변인이다. 그는 최근 얼굴색이 환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소 경직되고 낯빛이 어두웠던 그는 밝은 표정으로 기자실에 나타나 편안한 모습을 내비쳤다. 기쁨 바이러스가 번져나갔다. 요즘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었더니, “하쿠나 마타타”라며 도 닦는 말을 한다. 1994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온 킹’에 나오는 대사였다. 스와힐리어로 ‘하쿠나 마타타(근심걱정하지마)’라는 주문을 외우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인생철학이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사실 그는 오영훈 도지사가 힘든 역경 속에서도 긍정 마인드로 도정을 이끄는 모습을 보며 깨닫는 바가 많단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닮고
  • 당신을 지탱하는 힘은… ‘일상의 기적’처럼 51억의 비싼 두다리입니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당신을 지탱하는 힘은… ‘일상의 기적’처럼 51억의 비싼 두다리입니다[강동삼의 벅차오름]

    #일상의 기적이란… 숨 쉴 수 있는 기쁨이고 두발로 세상을 활보할 수 있다는 기쁨인 것을… 호남주재 동료기자가 뜬금없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박완서(1931.10. 20~ 2011. 1. 22)의 ‘일상의 기적’이란 글을 링크해왔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평소 그답지 않게 센티멘털해져 있나 싶어 안부를 물었더니 되레 내게 스트레스를 풀라며 읽기를 권유합니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마치 나이 먹으면 누구나 한번쯤 느꼈을 법한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입니다. 이 글의 백미는 아침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새삼 감사한 일임을 일깨웁니다. 작가는 ‘안구 하나 구입하려면 1억이랍니다. 눈 두개를
  •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에 안 보이는 법… ‘어린왕자 같은 섬’ 비양도[강동삼의 벅차오름]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에 안 보이는 법… ‘어린왕자 같은 섬’ 비양도[강동삼의 벅차오름]

    # 섬으로 가는 배를 탈 때마다 생각나는 소설 ‘시핑뉴스’처럼 비양도를 묘사하자면… 섬으로 가는 길은 늘 두려운 멀미로 아찔하다. 거칠고 성난 파도에 울렁울렁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배(船)를 타야 하는 곤욕, 그 현기증 나는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추자도를 가는데 심술난 파도에 배가 널뛰기하는 바람에 영혼이 집나간 듯 혼쭐났다. 이러다 배가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는게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그 굴절된 기억이 뇌리에 박혀서인지 섬 여행을 할 때마다 항상 주저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도 함께 오버랩된다. 겨울 폭풍우를 만나는 배를 탈 때마다 어떤 이미지와 함께 겹쳐지는 애니프루의 소설 ‘시핑뉴스(The Shipping News)’다. 우리에겐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더 알려진 작가의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주인공 쿼일이라는 남자는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뉴욕북부의 황량한 동네를 전전하며 자랐다. 피부는 두드러기로 뒤덮이고 어마어마한 대식가로 ‘얼뜨기, 뚱땡이, 악취폭탄, 코찌찔이, 방귀뚱보…’ 였다. 처음 자의식에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을 ‘멀리에 있는 존재’라고 여겼다. 가족들은 근경에 있었고, 자신만 저 끝의
  • 새해 버킷리스트는 ‘죽을만큼 버티기’… 궁서체를 닮은 설국 앞에 서다[강동삼의 벅차오름]

    새해 버킷리스트는 ‘죽을만큼 버티기’… 궁서체를 닮은 설국 앞에 서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너는 마치 한글서체 가운데 가장 고전적인 궁서체를 닮았다. 마치 갓 쓰고 한복 입고 수염을 허옇게 기른 남성이 다소 고리따분하게 도덕윤리를 가르치는 조선시대에 살던 사람 같은, 젊은이들에겐 다소 외면받는 궁서체 같은 사람. 붓글씨 쓰던 과거로 돌아가듯, 원칙적이고, 각 지고, 고지식한 사람, 재미라곤 일도 없고 개그감도 떨어져 철 지난 유머를 쓰는 사람,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 처럼, 고구마 몇개 먹은 듯한 사람, 고집불통의 남자,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 속 까칠한 ‘오베라는 남자’를 닮았다. 너에게 가는 길은 그런 궁서체처럼 예스럽고 까칠하지만 솔직담백한 오베같은 사람을 만나는 기분이다. 너에게 다가갈수록 세상에는 흑과 백만 있는 듯, 눈이 허리까지 쌓여 있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듯, 순백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람 발길이 드문 그늘진 모퉁이에만 잔설이 남아있을 정도로 녹아내린 도심과 달리, 제설차가 내 키보다 더 큰 언덕을 이룰 만큼의 폭설을 치워 통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오베라는 남자처럼 까칠하지만 너무 솔직한, 너무 고전적인 산 어리목 주차장에는 등산객들이 설국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한라산의 설경을 기필코 보겠다는 집념으로
  • 크리스마스엔 진실만 말해요… “나의 행복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 [강동삼의 벅차오름]

    크리스마스엔 진실만 말해요… “나의 행복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 [강동삼의 벅차오름]

    “크리스마스에는 진실만을 말해야 해요.(christmas you tell the truth.)” 친구 결혼식에서 신부 줄리엣(키이라 나이틀리)만 비디오카메라에 담았던 마크(앤드류 링컨)가 스케치북으로 줄리엣에게 고백하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리처드 커티스 감독. 2003년作)의 장면은 크리스마스 사랑고백의 백미로 꼽힌다. ‘고요한 밤’ 캐롤송이 깔리면서 마크가 줄리엣에게 고백한다. “내게 당신은 완벽해요. 가슴 아파도 당신을 사랑할거예요. (미라 사진을 보여주면서) 당신이 이렇게 될 때까지(To me, you are perfect. and my wasted heart will love you. util you look like this... ” 뒤돌아서는 마크에게 달려가 그녀가 키스를 해주자 마크는 독백을 한다. “충분해. 지금은 이걸로 충분해(enough, enough now)”. #소중한 것은 늘 우리 가까이, 우리 곁에 있다… 한라수목원처럼 크리스마스때만 되면 생각나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처럼 크리스마스때 가족과 함께 하면 어울릴만한 오름이 있다. 제주시내 한복판에 있는 한라수목원 앞에 있는 광이오름이다. 제주시민들은 시내에 한라수목원이 있는
  • 화려한 날은 갔지만… ‘쓸모없는’ 인생도 아름답다[강동삼의 벅차오름]

    화려한 날은 갔지만… ‘쓸모없는’ 인생도 아름답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보잘 것 없음’에 대한 초라함, ‘버림받음’에 대한 쓸모없어짐, 뒷방 늙은이 신세 같은 서글픔, 누군가의 빛에 가려진 그림자의 공허함….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산 52-1 정물오름에서 만난 ‘정물’을 보는 순간 드는 지리멸렬한 상념이다. 우물처럼 움푹 패인 곳엔 탁한 연못같은 물이 고여 있다. 돌담으로 동그랗게 둘러싸여 있지만, 돌담 위엔 허물어지지 않게 견고한시멘트가 발라져 있다. 정물에 걸린 푸른 하늘과 구름은 탁하지 않다. 조금 있으려니 구름만 홀로 어디론가 떠나갔다. 마치 가수 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 노랫말처럼 한때는 찬란한 나날을 보냈을지 모를 정물이었다. ‘멀어져 간다. 나의 꿈도 간다. 잡을 수 없는 푸르른 날 모두 사라져 간다. 흩어지는 구름이 되어 간다. 눈부신 기억들은 모두 반짝이는 불빛이 되어 화려한 날’은 간다. #이시돌목장 초기의 중요 식수원이었던 곳…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제주도 서부지역의 중산간지대 해발 348m, 해안선 직선거리 11㎞에 위치한 이 정물샘은 4·3 당시 피난자와 6·25전쟁시 국군 훈련병들, 금악리와 인근마을 주민 특히 이시돌목장 초기에 중요한 식수원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강수량이 많고
  •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은빛 억새바다, 지금 가면 끝내줘요”[강동삼의 벅차오름]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은빛 억새바다, 지금 가면 끝내줘요”[강동삼의 벅차오름]

    오르지 않아도 되는 오름이 있었다. 오름인 줄 모르고 지나치던 관광명소다. 오름인 듯, 아닌 듯 하지만, 분명 오름이다. 출입처에 함께 있던 Y뉴스 기자와 C일보 기자가 미리 각본을 짠 듯 “지금 가면 끝내줘요”라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지금처럼 억새물결이 절정인 늦가을에 가면 좋은 오름이란다. 제주의 늦가을은 은빛으로 출렁이는 억새 들녘에서 가장 먼저 온다. 황혼에 접어든 남자의 머릿결처럼 희끗희끗하다. 염색으로도 감출 수 없어 포기한 회갈색. 핑크빛으로 물든 핑크뮬리가 자태를 뽐내어도, 제주의 억새오름의 빛나는 은빛 물결 앞에선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그 억새물결을 산굼부리(조천읍 비자림로 768)에서 만난다면 더욱 그렇다. # 말론 브랜도의 회색빛 머릿결처럼 헝클어진 억새물결 마치 영화 ‘대부’(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비토 클레오네의 역을 맡아 열연(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지만 거절)한 말론 브랜도(1924.4.3~2004. 7. 1)의 머릿곁 같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가 블랙수트에 빨간 장미를 꽂고 올백 머리를 했을 때의 장면보다 늦가을 스산한 정원에서 손자와 놀아주다가 스러져가며 헝클어지는
  • 무기력한 나날… “당신은 나를 일으켜 산 정상에 오르게 해줘요”[강동삼의 벅차오름]

    무기력한 나날… “당신은 나를 일으켜 산 정상에 오르게 해줘요”[강동삼의 벅차오름]

    코로나19 백신접종 후유증인지 아니면 4050에게 갑작스레 찾아오는 심근경색 때문인지(전자라고 의심들지만 입증하긴 힘든) 2년 전 가을 이맘때쯤 퇴근길에 가슴을 움켜쥐고 주저 앉았다. 밤새 고통 속에 지새우고 난 다음날 신촌 S대병원에 가 진료를 받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 비극의 드라마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처럼 의사가 “당장 수술(심장 스탠스 시술)을 해야” 한단다. 시술을 마친 다음날 병실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누워 있는데, 불현듯 ‘아, 이렇게 유서·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말 그대로 ‘인생무상’했다. 처음엔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멍했다. 주변에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는 듯. 그냥 물이 흐르는대로 살아가리라 하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졌다. 가장이니까 버티며 살아야지 하는 마음 뿐이었다. 돈도, 명예도 소용 없었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와 함께 삶을 뒤돌아보며 회한과 실의에 빠졌다. #액티브하게 혼자있는 시간은 걷기…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 걷고 또 걷는다 슬픔도 고통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위안할 수 있는 게 전부였던 나날, 의지하게 된 곳이
  • To. 지미봉에게…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처럼 너에게 편지를 써[강동삼의 벅차오름]

    To. 지미봉에게…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처럼 너에게 편지를 써[강동삼의 벅차오름]

    TO. ‘그리운 친구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를 쓰고 싶다. 이메일이 아닌 손 편지를 쓰고 싶다. 빨간우체통까지 그 편지가 갈 지는 모르겠으나 편지를 써본 지 너무 오래됐다. 불현듯 내 손글씨가 좋았었나 가물거릴 정도로 오래됐다. 낯설다. 하지만, 정말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라는 동물원(김광석)의 노래처럼 종달리 바다에게, 지미 오름에게라도 편지를 쓰고 싶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 나오는 한 내용같은…. ‘보드랍고 대지 같고 자그마하고 동그랗고 투명하고/당신은 초승달이요 사과나무 길입니다./벌거벗은 당신은 밀 이삭처럼 가냘픕니다/벌거벗은 당신은 쿠바의 저녁처럼 푸릅니다/당신 머릿곁에는 메꽃과 별이 빛납니다/벌거벗은 당신은 거대하고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라는 편지를 쓴 ‘우편배달부’를 흉내낼 순 없지만, 정말 종달리의 잔잔한 바다에 편지를 띄우고 싶은 날이다. # 올레길 마지막 21코스… 호락호락하게 보았다가는 가파른 계단에 혼쭐 TO. 보고싶은 지미 봉에게. 안녕? 넌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정류장에서 광치기 해변까지 이어지는 제주 올레 1코스(15.1㎞)와 해녀박물관~구좌읍 종달바당까지 이어지는 1
  • ‘너를 기다리는 동안’… 한국의 나폴리 서귀포 바다와 사랑에 빠지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너를 기다리는 동안’… 한국의 나폴리 서귀포 바다와 사랑에 빠지다[강동삼의 벅차오름]

    # 이탈리아 나폴리와도 바꾸지 않을 아름다운 바다 서귀포 영국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토머스 칼라일)’고 자랑스럽게 말하듯, 서귀포사람(서귀피안)들은 서귀포 앞바다를 이탈리아의 나폴리와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한국의 나폴리 서귀포 바다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다. 서귀포 삼매봉을 지날때쯤 펼쳐지는 코발트빛 바다 위에 떠 있는 범섬, 문섬, 그리고 섶섬은 1985년 당시 인기있던 노래 윤수일의 ‘환상의 섬’ 그 자체다. 눈앞에 그 환상의 섬이 펼쳐지면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은 아닐까 생각든다. 너무나 아름다워 마음마저 행복해질 정도다. 노래가사 처럼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은 그 섬엔/문명이 할퀴고 간 초라한 그 모습’일 수도 있지만, 서귀포 앞바다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여서 안도하고 그 변함없음에 경탄하게 된다. 어릴 적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변함없는 모습일 때 더 반가운 것과 같은거다. 주름이 생기고 살이 찌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지만, 성형하지 않은 옛 모습 그대로일 때의 그 익숙한 아름다움이다. 사람은 낯섦보다 익숙함에 더 끌린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