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전공의 없는 상태 이어질 것”… 이대로는 집에서 애 낳을 판

“산과 전공의 없는 상태 이어질 것”… 이대로는 집에서 애 낳을 판

한지은 기자
한지은 기자
입력 2024-06-05 00:24
수정 2024-06-0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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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갈등에 출산 인프라 붕괴

서울도 응급 분만 가능한 곳 부족
“고위험 산모들 불안감만 커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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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텅 빈 복도를 바삐 걷고 있다.  뉴스1
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텅 빈 복도를 바삐 걷고 있다.
뉴스1
“5월 초 전원 문의가 왔어요. 25주차 산모가 광주에서 받아 줄 대학병원이 없어 서울로 오고 있다고요. 얼마 뒤 결국 산모가 구급차에서 출산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다행히 아기는 무사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홍순철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4일 대한분만병의원협회와 대한주산의학회 등이 공동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최근 겪은 위급 상황을 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홍 교수는 “응급 수술을 하려면 마취과 교수와 신생아 중환자실 인력 등을 갖춰야 하는데 이를 갖춘 병원이 서울에도 얼마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공의 이탈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산부인과 병의원과 대학병원 간 전원이 더욱 어려워지는 등 분만 인프라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고 산부인과 의사들은 입을 모았다. 이들은 “수도권 대학병원마저 안전하지 않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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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조규홍(가운데)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전공의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을 철회하고 복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4일 조규홍(가운데)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전공의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을 철회하고 복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가뜩이나 전공의들의 기피 대상이던 대학병원 산부인과는 집단행동 이후 붕괴 직전에 도달했다. 김영주 대한모체태아의학회 회장(이화여대 목동병원)은 “전공의들이 나가고서 우리 병원에는 주니어 선생 둘이 2교대로 당직을 하고 있다”면서 “이들마저 그만두면 나도 매일 당직하다가 지쳐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장은 “정부가 마지막 보루로 믿는 대학병원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려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재유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회장은 “급할 땐 동네 병의원에서 분만을 해 주고 고위험군은 대학병원에서 커버해 주는 연계 전달이 중요한데 지금 그게 무너졌다”면서 “산모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상윤 대한분만병의원협회 사무총장은 “요즘에는 산모들에게 혹시 위험해지면 전원할 곳이 없으니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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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대한모체태아의학회 회장이 4일 서울 중구 정동 상연재에서 열린 대한분만병의원협회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2024.6.4 연합뉴스
김영주 대한모체태아의학회 회장이 4일 서울 중구 정동 상연재에서 열린 대한분만병의원협회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2024.6.4
연합뉴스
정부가 이날 전공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하면서 복귀하는 전공의가 늘 것이란 기대가 커졌지만 ‘기피과’로 불리는 산부인과는 이마저도 예외다. 김 회장은 “피부과나 마취과 전공의는 한두 명씩 돌아오고 있지만 산부인과 전공의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며 낙담했다. 박인양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 회장도 “몇 년간 전공의, 전임의 없는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은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아야 한다며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불가항력 분만사고 보상법의 전면 개정 ▲분만 수가(의료 가격) 현실화 ▲산과 의사와 관련 인력 양성 지원 ▲분만 인프라 재구축 등을 요구했다. 신 회장은 “산부인과 인프라가 붕괴를 넘어 멸종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남은 산과 의사들은 버틸 수 있는 만큼 분만 현장을 지키겠지만 무너지는 분만 인프라를 일으킬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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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 회장이 4일 서울 중구 정동 상연재에서 열린 대한분만병의원협회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6.4 연합뉴스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 회장이 4일 서울 중구 정동 상연재에서 열린 대한분만병의원협회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6.4
연합뉴스
응급실을 찾는 경증 환자가 다시 늘면서 ‘응급실 뺑뺑이’가 또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3일 “응급실 경증 환자 수는 전공의 집단행동 전인 2월 첫째 주 8200여명에서 4월 첫째 주 약 6400명으로 감소했으나 지난달 넷째 주엔 7000여명으로 다시 증가했다”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용인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최근 응급실 경증 환자 증가를 체감하고 있다”면서 “정부에선 응급실 이용을 자제하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도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갈 곳이 없어진 경증 환자들이 응급실로 몰려 경증 환자 비율이 전공의 이탈 전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정부는 연일 경증 환자의 응급실 진료 자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수도권 소재 응급의학과 교수는 “증상이 약하다고 무작정 응급실 이용을 막을 순 없다”면서 “비응급 경증 환자가 응급실 진료 후 입원이나 수술 없이 퇴원하면 건강보험 급여를 제한하거나 비응급의료관리료를 신설해 병원과 의료진에게도 적정한 보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4-06-0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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