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세 학생과 15세 선생님, 특별한 ‘배움 짝꿍’

76세 학생과 15세 선생님, 특별한 ‘배움 짝꿍’

김지예 기자
김지예 기자
입력 2024-04-29 03:17
수정 2024-04-2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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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청소년 ‘함께하는 공부’

서울시교육청 ‘세대 배움동행’
1대1로 영어·수학 공부 도와
어르신 “하나씩 알려줘 실력 늘어”
학생은 “배움의 소중함 알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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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서울여중 이서빈(왼쪽) 학생과 일성여중 황윤자 할머니가 영어 알파벳과 발음 방법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서울여중 이서빈(왼쪽) 학생과 일성여중 황윤자 할머니가 영어 알파벳과 발음 방법을 공부하고 있다.
“영어 문장을 시작할 때는 첫 글자에 대문자를 써요. a 대신 A로요. 문장 쓰실 때 꼭 기억해 두세요.”

지난 27일 오전 9시 서울 마포구에 있는 일성여자중고등학교 다목적실. 서울여중 3학년생 이서빈(15)양이 영어단어와 발음기호가 빼곡한 교재를 펼쳤다. 76세의 ‘중학교 1학년’ 황윤자 할머니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연필로 천천히 알파벳을 적어 나갔다. 언뜻 평범한 할머니와 손녀처럼 보이지만 중3 서빈양이 ‘교사’, 황 할머니는 ‘학생’이다. “같은 알파벳인데 발음이 달라 헷갈린다”는 황 할머니의 질문에 서빈양은 “단어에 따라 같은 철자도 다른 소리가 난다”며 단어를 읽어 나갔다. 황 할머니는 “배움에 대한 한이 있어 뒤늦게 중학교 과정에 입학했는데 이렇게 꼼꼼히 알려 주는 선생님이 있다니 행운”이라며 서빈양의 손을 꼭 잡았다. 2시간 남짓인 수업 시간 동안 질문과 답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이날 일성여중고에서는 서울여중 학생 40명과 60~70대 만학도 40명으로 이뤄진 ‘특별한 짝꿍’ 40쌍이 수업을 했다. 지난해 시작한 서울시교육청의 ‘세대 배움동행 교육활동’ 중 하나로 중학생이 어르신의 학습을 1대1로 돕는 프로그램이다. 할머니와 중학생이 함께 학습계획을 세우고 오는 11월까지 총 8번 만나 영어·수학을 공부한다.

어르신들은 ‘손녀뻘’ 멘토를 만나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임영숙(63)씨는 “처음에는 모르는 게 창피해 걱정이 컸는데 여러 번 물어보는데도 웃으며 어찌나 친절하게 알려 주는지 과외교사 같다”며 “앞으로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가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최혜원(69)씨는 “최소공약수 같은 수학 개념까지 잘 가르쳐 줘 실력이 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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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중 학생들과 일성여중고 학생들이 지난 27일 일성여중고 다목적실에서 1대1 수업을 하고 있다.
서울여중 학생들과 일성여중고 학생들이 지난 27일 일성여중고 다목적실에서 1대1 수업을 하고 있다.
청소년들도 당연하게 여겼던 공부의 소중함과 세대 간 소통을 배운다. 2년차 멘토인 이서빈양은 “학교에 가는 걸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어르신들을 보면 공부가 정말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처음엔 수업 시간인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나오는 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전날 저녁부터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미리 찾아보고 설명할 방법도 고민한다. 교사가 꿈인 안윤(13)양은 “제가 수학을 못하는데 어르신께 알려 드리다 보니 제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어르신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학생도 많았다.

참여를 원하는 학생이 많아지면서 서울시교육청은 운영 기관을 지난해 8개에서 올해 11개로 늘렸다. 참가자도 청소년 377명, 어르신 122명으로 287명 증가했다. 올해는 서울여중·일성여중고의 음악 공연과 대광중·진형중고의 ‘어르신 자서전 함께 쓰기’ 같은 활동도 계획 중이다. 양윤진 서울여중 교사는 “지난해 학생 100명이 넘게 신청했을 만큼 관심이 크다”며 “지역 학교들과 협력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어르신 학습 멘토링’은 서울이 유일하지만 지역 청소년과 어르신의 소통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충북교육청은 ‘세대공감 중점학교’를 지난해 64곳에서 올해 108곳으로 늘렸고, 부산교육청도 하반기 세대 간 소통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2024-04-2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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