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정보 유포·딥페이크 협박도
“성차별·권위적 위문문화 없애야”
서울의 한 여고에서 군인에게 위문편지를 쓰도록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 온라인상에서는 편지를 쓴 학생의 신상을 유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시대에 뒤떨어진 위문편지 강요 논란과 함께 사이버 범죄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파장이 커지는 분위기다.13일 서울교육청 시민청원 게시판에는 ‘미성년자에게 위문편지를 강요하는 행위를 멈춰 달라’는 청원 글이 2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어 답변 요구 기준인 1만명을 훌쩍 넘겼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도 비슷한 청원 글이 올라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OO여고는_학생을_보호하라’는 해시태그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위문편지 강요 논란이 시작된 건 지난 1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위문편지 내용을 비판하는 게시글이 올라오면서다. 지난달 30일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해당 편지에는 “앞으로 인생에 시련이 많을 건데 이 정도는 이겨 줘야 사나이가 아닐까요?”,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일부 네티즌은 “군인에 대한 조롱”이라면서 “군인에 대한 예우 교육을 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편지를 쓴 학생의 신상 정보를 알아내 유포하고 악성 댓글을 남기거나 성희롱 메시지를 보냈다. 심지어 딥페이크(영상 합성) 영상에 얼굴을 합성하겠다는 디지털 성범죄까지 예고됐다.
학생들은 봉사활동 점수를 빌미로 편지 작성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생들이 공개한 ‘위문편지 작성에 대한 유의사항’을 살펴보면 ‘군인의 사기를 저하할 수 있는 내용은 피한다’, ‘지나치게 저속하지 않은 재미있는 내용도 좋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학교 측은 지난 12일 홈페이지에 “위문편지 중 일부의 부적절한 표현으로 행사 본래 취지와 의미가 심하게 왜곡된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공지했지만 학생에 대한 보호책은 없었다.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사무국장은 “학생들이 봉사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원치 않는 행위를 강요받는 인권침해적인 학교 현장”이라면서 “성차별적이고 권위적인 위문문화 자체가 타파돼야 한다”고 말했다.
2022-01-14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