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 등교 앞두고 기초학력 평가 논쟁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지만, 기초학력 보장의 기본 틀을 세우려는 법안은 1년째 국회에 계류돼 있다. 평가를 둘러싼 논쟁에 매몰되다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진다.
●“국가 차원 전체 시험” vs “다방면 평가 강화”
지난 2일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11월 실시된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공개하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국민의힘 교육위원회는 “모든 학교와 학생들이 참여하는 국가 차원의 일관되고 객관적인 기초학력 진단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는 전국의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의 3%를 표집해 실시한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대상이 아닌 학년과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국가 차원의 학력 진단이 실시되지 않고 있어 “진단을 하지 않아 학력이 떨어진다”는 게 교총과 야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학업성취도평가를 전수조사로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는 요구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학업성취도를 전수조사하고 결과를 공개해 경쟁을 부추겼던 과거의 실패 사례를 반복하는 것으로, 기초학력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진단 강화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나 과거 일제고사로의 회귀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표준화된 전수 시험이 없다는 것을 “진단을 하지 않는다”고 몰아세우기에는 무리가 있다. 각 학교가 학년 초에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별 학교가 자체 개발한 평가를 실시하거나 상담, 관찰 등 다방면의 평가 수단이 활용되나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 등이 공동 개발한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이 보편적으로 활용된다. 주요 과목에서 학년별·수준별 문제가 제공돼 학생들의 학습 부진 여부를 주기적으로 진단할 수 있다.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각 학교의 자율적인 기초학력 진단을 강화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초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모든 학생의 기초학력 진단을 의무화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초학력 진단을 둘러싸고 교육계와 정치권의 견해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각 교육청과 학교가 자율적으로 실시하는 기초학력 진단평가에는 빈틈이 있어, 국가 차원의 일제식 시험을 통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한 갈래다.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공개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기도 하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1월 “매년 초등학교 2개 학년과 중학교 1개 학년, 고등학교 1개 학년의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학력향상지원법’을 발의했다.
전국 공통의 일제식 시험을 통한 기초학력 진단은 평가에 대한 학부모들의 신뢰도가 높아, 학생에게 학습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학부모들을 설득할 때 유리하다는 게 장점이다. 다만 표준화된 시험인 탓에 학교 간, 지역 간 비교와 서열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교육 당국이 평가 결과를 비공개로 부친다 해도 국회에서 자료를 요구할 경우 이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교육 당국이 공개할 경우 사실상 과거 ‘일제고사’의 부활이나 마찬가지인데, 일제고사는 학교가 시험 성적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을 야간자습과 기출문제 풀이로 몰아넣는 부작용을 낳은 바 있다.
반대편에서는 “기초학력 진단평가가 학생 줄세우기와 ‘부진아 낙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맞선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의무화하거나 강화하는 정책이 추진될 때마다 이 같은 이유로 거세게 반발했다. 다만 전국 단위의 일제식 시험이 아닌 학교가 자율적으로 평가 도구를 정해 진단평가를 실시한다는 구상에도 ‘학생 줄세우기’ 우려를 앞세워 거부한 데 대해서는 “일제고사의 트라우마가 작용한 게 아닌가”라는 시각도 있다.
●교육부 ‘중재안’ 내년 9월 시행하지만
기초학력 진단을 체계화할 필요성이 커지자 교육부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교육부는 현행 학업성취도평가를 확대·개편해 내년 9월부터 희망하는 학교가 자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 지원시스템’은 교과별 성취 수준뿐 아니라 사회·정서적 역량이나 문제 해결력, 자기 효능감 등 비인지적 영역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교육부는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진단평가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도 부작용은 방지한다는 구상이다. 평가 결과는 학생 개인과 학교에만 제공하며, 평가에 참여하는 학교들에 참여 시기에 따라 각기 다른 문항을 제공해 전국 공통 시험을 통한 비교와 서열화 가능성을 차단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2024년에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지원이 가능하다”면서 “시스템이 체계가 잡히면 기존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과 통합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참여 여부를 자율에 맡기기보다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공방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 논쟁 갇혀 현장 시스템 구축은 뒷전
진단평가를 둘러싼 논쟁에 갇혀 기초학력 보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 더불어민주당의 강득구 의원과 박홍근 의원은 지난해 6월 나란히 ‘기초학력보장법’을 발의했지만 1년째 계류 중이다. 두 법안은 ▲교육부 소속으로 ‘기초학력 보장위원회’ 설치 ▲5년마다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 수립 ▲학교가 기초학력 진단검사를 실시해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 선정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이와 대동소이한 법안이 발의됐으나 지지부진한 논의 끝에 폐기된 바 있다. 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법안이 탄력을 받지 못하는 것은 진단평가를 둘러싼 교육계의 공방이 타협점을 찾지 못한 게 주요 원인이다. 학생들을 관찰하고 지도해야 할 교사들이 위원회에 보고할 서류와 공문에 매달리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현장의 불신도 걸림돌이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진단평가의 부작용이나 행정업무 과중 등 현장에서 제기되는 우려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초학력 보장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서둘러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계에서는 지난 1년여의 학습 결손을 해소하기 위해 단기 대응책과 장기 과제를 동시에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김 공동대표는 “2학기부터라도 기초학력을 전담할 교사를 각 학교에 배치하고 방학이나 방과 후에 학습 결손을 보충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학기 전면 등교 이후 학교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도 요구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와 교사가 방역이나 행정 업무 부담에서 벗어나 학생들 개개인에 대한 학습 진단과 지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학급당 학생수 감축을 통해 개별화 학습이 가능한 환경 조성 ▲기초학력 전담 교사 양성 등이 필요하다고 교육계는 입을 모은다.
박 교수는 “지역아동센터와 공공 도서관 등 지역사회의 각종 기관들이 학습 보충의 역할을 맡고 가정에 방치된 학생에게 교육 당국과 지역사회가 ‘사회적 부모’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범사회적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21-06-09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