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민 서울대 교수 인터뷰
“비영어권 국가 학생들에게 영어 습득이 획기적으로 이뤄지는 나이는 만 12~13세쯤입니다. 조기교육에 대한 조급함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에서 ‘영어 조기 교육 무용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한 학자다. 영어 교육은 어려서 시작할수록 효과가 뚜렷하며 특정 시점을 넘기면 따라잡기 어렵다는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 이론을 우리 사회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지난달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초교 1, 2학년 이전 공교육에서 영어 수업을 못하도록 한 정책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며 “공교육을 믿고 따라간 사람들은 불리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
-공교육에서는 영어를 초3 때부터 배운다. 그런데 유치원 방과후 수업이나 학원에서 쓰는 교재를 보면 3학년 교과서보다 훨씬 어렵다. 출판업자들이 교육과정에 대한 고려 없이 만든 탓이다. 유치원 교육에도 국가 예산이 투입된 만큼 공교육 영역으로 들어왔다고 봐야 하는데 이때 3학년 교과서보다 어려운 내용을 선행학습시키는 건 맞지 않다. 정리가 필요하다.
→영어는 일찍 배울수록 좋다는 학설(‘결정적 시기’ 이론)이 많이 알려졌는데.
-그건 미국·영국 등 영어권 국가 이민자를 대상으로 이민 온 나이에 따라 영어 능력에 차이가 있는가를 연구해 세운 학설이다. 이 경우 한 살이라도 빨리 이민 가야 원어민에 가까워지는 게 맞다. 하지만 영어를 외국어로 쓰는 우리 학생들에게는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이론이다. 비영어권 학생이 영어를 학습할 때 결정적 시기는 만 12~13세(중 1~2학년)쯤 된다.
→교육 효과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학부모로서 가르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정부가 꼭 막아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다.
-정부 방침에 따라 초3 때부터 영어를 시작해도 평가 등에 있어서 손해 보지 않는다는 신념을 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보다 시험이 어렵게 나오는 차이가 있다 보니 학부모나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믿지 못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를 봐도 변별력만 고려해 학생들이 틀리게 하는 게 목적인 문제가 출제된다.
→초 1, 2학년 이전 방과후 영어 수업 금지에 대한 학부모들의 거부감이 큰데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국가가 영어 교육에 어떤 로드맵을 가졌는지 보여 줘야 한다. 예컨대 전일제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 유치원)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포함해서 알려줘야 한다. 국민 설득을 위해 조기 영어교육의 효과를 실증적이고 객관적으로 정책 연구해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2018-03-30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