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수 마감 전날 기준 바꿔
208명이 몰린 서울의 한 사립고교 정교사 채용 과정에서 서류 심사기준이 원서 마감 전날 갑자기 바뀌어 원래 기준이라면 꼴찌를 했어야 하는 지원자가 최종 합격했다. 특정인 채용을 위해 교사들이 짬짜미한 결과다.지난해 1월 진행된 H고 영어교사 공채 과정에서 행정실장 A씨와 교무부장(현 교장) B씨는 같은 학교의 기간제교사 G씨가 합격할 수 있도록 서류심사 기준을 변경하려고 영어교사들을 회유·압박했다. A씨는 권한 없이 심사기준 변경에 개입했고 자신의 뜻과 다르게 기준이 정해지자 술을 먹고 관련 교사에게 전화해 욕을 하기도 했다. 영어과 대표교사인 C씨는 교과협의회 표결로 기준이 확정됐는데도 교장에게는 ‘협의 중’이라고 보고한 뒤 동료 교사들에게는 ‘교장 의견’이라며 표결 결과를 취소시켰고, 새 기준에 관한 동의를 받았다. 결국 출신 대학과 전공, 대학 성적 등 객관 요소에 따라 가산점을 주게 돼 있던 심사 기준은 인성과 업무 적합도 등 주관 요소로 바뀌었다.
G씨는 변경된 기준에 따라 공동 2위로 서류심사를 통과했다. 원래 기준이었다면 최하위인 15등으로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G씨는 지원자 중 유일하게 업무 적합도 가산점의 최고점인 4점을 받았다. 서류심사에 앞서 치러진 필기시험에서 G씨가 1등을 차지하긴 했으나, C씨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석연치 않은 대목도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은 비리 제보를 받고 H고를 감사해 A씨와 B씨가 특정인 합격을 위해 서류 심사기준 변경을 청탁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또 A씨는 파면, B씨와 심사기준 변경을 주도한 C씨는 해임, 나머지 관련자 3명은 감봉·견책 등의 조치를 하라고 학교법인에 요구했다. 부정 채용된 G씨은 직접 저지른 부정행위가 발견되지 않아 따로 처분을 요구하지 않았다. 교육청은 임용 취소를 학교법인에 요구할 수 있는지 법률 검토 중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A씨 등이 전임 교장의 부탁으로 부정 채용에 나섰고, 전 교장 가족과 G씨 가족이 함께 정치활동을 하는 인연이 있다는 제보자의 전언이 있었으나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2018-01-17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