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비례대표 3위… 바른·평화당 넘어
녹색당 신지예 청소년이 뽑은 서울시장진보 젊은층들 시각엔 민주당도 보수당
정의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들이 6·13 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국회 의석 수가 훨씬 많은 보수정당보다 더 큰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정치 지형이 격변하는 조짐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국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 결과 정의당은 10석을 확보하며 더불어민주당 47석, 자유한국당 24석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바른미래당은 4석, 평화당은 2석에 그쳤다.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정의당은 9석으로 민주당 238석, 한국당 133석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바른미래당은 2석, 평화당은 3석을 차지하는 데 불과했다. 정의당의 국회의원 의석 수는 6석으로 바른미래당(30석), 평화당(14석)과 비교해 규모는 훨씬 작지만 이번 선거에서 얻은 성과는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을 뛰어넘는 수준인 셈이다. 또 정의당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시·도의원을 배출하기도 했다.
국회 의석이 1석도 없는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 32명의 후보를 출마시켰다. 비록 단 1명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지만 녹색당의 이름을 전국에 알렸다. 녹색당 고은영 제주지사 후보는 3.5%의 득표율로 김방훈 한국당 후보를 제치고 3위를 했다.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는 1.6%의 득표율로 3위인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5위를 기록한 정의당 김종민 후보보다 1000여표가 더 많았다. ‘페미니스트 후보’라는 점을 선거 내내 강조한 신 후보는 15일 라디오에 출연해 “한 달만 더 (선거운동 기간이) 있었으면 김문수 한국당 후보도 이겼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또 다른 진보정당인 민중당은 구·시·군의원 선거에서 11석을 확보하는 소소한 성과를 냈다.
2016년 촛불혁명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 한국당이 사상 유례없는 참패를 당한 시점에 나타난 진보정당의 약진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보수와 진보는 한국당과 민주당으로 구분됐지만 사실 이념보다는 지역구도에 기반한 구분이라는 측면이 강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한국당이 대구·경북(TK)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참패하면서 지역구도가 크게 완화됐다. 이와 동시에 진보정당이 약진했다는 것은 정치 지형이 이념 구도로 변화하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보수를 대변한다고 자처해 온 한국당식 정치가 퇴조하는 가운데 소수자 인권 강조, 환경보호 등 진보적 가치를 내세운 정의당과 녹색당이 진보의 영역을 차지하면 민주당은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밀리게 된다. 결국 정의당이나 녹색당이 진보, 민주당이 보수로 재편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흐름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 청소년들이 뽑은 서울시장에 녹색당 신지예 후보가 박원순 민주당 서울시장 당선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는데, 진보 성향이 강한 청소년들 시각에서는 민주당을 보수당으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안보 문제 등 보수의 가치만을 놓고 경쟁한 기존 선거와 달리 이번 선거는 녹색당이 환경 문제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 등 삶의 질 쪽으로 이슈를 제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국당이 배척받은 건 보수의 이념과 가치를 추구한 게 아니라 자기 권력욕과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보였기 때문”이라면서 “진보정당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가치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2018-06-16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