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솔솔 수원… 양념 풍덩 포천… 갈비 열전 경기

소금 솔솔 수원… 양념 풍덩 포천… 갈비 열전 경기

김병철 기자
입력 2020-06-07 17:30
수정 2020-06-08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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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민 최애 먹거리 ‘수원갈비·포천이동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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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왕갈비. 수원시 제공
수원왕갈비.
수원시 제공
수도권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기 지역 먹거리는 무엇일까.

경기도가 최근 홈페이지에서 조사한 결과 참여자 1955명 가운데 22.8%인 445명이 ‘수원왕갈비’를 꼽았다. ‘포천 이동갈비’가 314명(16.1%)으로 뒤를 이었다. 평택 간장게장(12.7%)과 이천 쌀밥정식(10.2%) 등도 이름을 올렸다. 역시 소갈비는 전국 어디서나 대접받는다. 그중에서도 수원왕갈비와 포천이동갈비는 경기 지역 소갈비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70여㎞나 떨어진 두 지역에서 갈비가 유명해진 이유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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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왕갈비. 수원시 제공
수원왕갈비.
수원시 제공
수원갈비의 역사는 조선 정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조는 수원 화성을 축조하고 둔전(군량을 충당하기 위한 토지)을 꾸려가기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 유인책으로 신도시에 이주하는 백성들에게 송아지 한 마리씩을 나눠 주고 3년 뒤에 갚도록 했다. 농업 중심 사회였던 조선은 농사에 없어선 안 될 소의 도축을 엄격히 금지했지만 화성으로 이주하는 주민에게는 허용했다. 이 같은 정책이 시행되면서 점차 늘어나는 소를 팔기 위해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생겨났다.

수원은 예부터 한양으로 들어가는 물산이 모두 모이는 곳이어서, 우시장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든 소 장수로 성시를 이뤘다. 수원 우시장은 1940년대 ‘전국 3대 우시장’ 중 하나로 꼽혔으며 7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9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 우시장의 번성은 곧 소고기 음식점의 번성으로 이어졌다. 수원갈비는 1950년대 초 당시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이 사흘이 멀다 하고 시흥에서 말을 타고 달려와 포식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자유당 시절에는 신익희 선생이, 공화당 시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찾았다. 큰 갈빗대와 소금으로 양념해 숯불에 굽는 수원왕갈비의 원조는 1940년대 팔달구 영동시장 싸전거리에 있던 화춘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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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초창기 화춘옥 모형. 수원시 제공
수원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초창기 화춘옥 모형.
수원시 제공
처음에는 소갈비를 넣은 해장국을 팔았으나 돈벌이가 시원치 않자 궁리한 끝에 1956년 소갈비구이를 선보였다. 화춘옥은 곧바로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박 전 대통령이 화춘옥 갈비를 맛본 뒤 즐겨 찾게 되면서 대통령이 먹는 갈비로 더욱 유명해졌다.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관계자가 하루 전에 미리 와서 박 전 대통령에게 나갈 갈비를 점검하고 냉장고에 넣는 것을 확인한 후 봉인까지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수원에서 성업 중인 갈빗집 가운데 삼부자갈비, 가보정, 본수원갈비 등이 빅 3로 꼽힌다. 이 중 삼부자갈비가 수원 양념갈비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9년 폐업한 화춘옥의 마지막 주인인 고 김정애 선생이 원천동에 1984년 세운 갈빗집이다.

이후 수원시 곳곳에 수원왕갈비라는 이름을 내건 많은 식당이 생겨났으며 수원시는 이를 계기로 갈비를 지방의 고유 향토 음식으로 지정하고 매년 열리는 음식문화축제 등을 통해 수원갈비를 알리고 있다.

수원갈비는 전통적으로 간장이 아닌 소금을 기본으로 한다. 여러 갈빗집이 생기면서 갈비의 크기는 작아지고 양념도 간장 양념법이 일반화됐다. 그사이 갈비는 외식의 대표메뉴로 자리잡았지만 일부 갈빗집에서 취급하는 큼지막한 생갈비가 수원갈비의 원형에 가깝다.

최근에는 대부분 갈빗집이 원가와 물량 부족으로 한우 대신 수입 소고기를 사용하지만, 독특한 맛을 내는 비법만큼은 변함이 없다. 수원갈비는 대체로 갈비 1㎏에 배즙 4큰술, 다진파·양파즙·물엿·청주·소금·설탕 2큰술, 참기름 1과 2분의1 큰술, 다진 마늘·깨소금 1큰술, 버섯·후춧가루 약간씩이 들어간 양념장을 버무려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의 대형 갈빗집들은 갈비와 함께 양념게장 등 10여가지의 밑반찬을 내놔 푸짐한 한 상을 즐길 수 있다.

수원왕갈비 덕분에 수원왕갈비통닭도 뜨고 있다. 갈비소스를 통닭에 버무린 수원왕갈비통닭은 영화 ‘극한직업’에 소개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배우 류승룡의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대사는 수원왕갈비통닭의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수원 통닭거리는 왕갈비통닭을 맛보려는 타 지역 주민들이 몰려들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수원갈비가 사랑을 받는 데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화성 성곽 등 관광지도 거들었다. 화성행궁과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수원화성박물관, 행궁동 카페거리 등 곳곳에 들어선 관광지와 열기구 플라잉수원, 화성어차 등 관광체험 프로그램을 즐긴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수원갈비를 맛보는 것은 관광객들에게 필수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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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이동갈비.  경기도 제공
포천이동갈비.
경기도 제공
포천 하면 떠오르는 게 이동갈비다. 포천 이동갈비촌이 형성된 이동면 일대는 군부대가 많은 곳이다. 또 주변에 산정호수, 백운계곡, 국망봉 등 볼거리도 많다. 이 때문에 주말에는 관광객과 입대한 아들이나 친구, 연인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들에게 이동갈비는 없어서는 안 될 먹거리다. 이동면에서 갈빗집을 처음 시작한 곳은 ‘김미자할머니집’이다. 1960년대 후반 장암리에 식당을 개업한 김미자 할머니는 갈비와 국밥 등을 팔았다. 갈비를 먹을 기회가 많지 않은 장병들에게 많이 먹으라고 5000원에 10대를 주면서 후한 인심을 베풀었다고 한다. 면회객과 군인 사이에서 갈비가 푸짐하고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식당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유명세를 타고 30년 전부터 갈비구이 식당이 하나둘 생겨났고 최근에는 장암리에만 수십곳이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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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이동갈비거리.  경기도 제공
포천 이동갈비거리.
경기도 제공
이동갈비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푸짐하고 값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칼집을 넣어 넓게 편 갈빗살과 갈비를 이쑤시개에 꽂아 만든 이동갈비 대여섯 대가 1인분이다. 간장과 물엿 등을 기본으로 하는 달짝지근한 양념은 식당마다 고유의 비법으로 고기를 연하게 만들고 풍미를 더해 준다. 반찬으로 나오는 백김치는 뒷맛을 잡아 주고 찌개와 밥 외에 동치미를 내어주는 것 또한 매력이다.

수원갈비와 이동갈비의 차이점은 양념이다. 수원갈비는 소금 양념을, 이동갈비는 간장 양념을 쓴다. 이동갈비에 물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동갈빗집에선 일반 냉면 대신 동치미국수나 동치미냉면이 나오는 곳이 많다. 손님들은 “동치미냉면으로 마무리해야 제대로 된 이동갈비를 먹은 것”이라고 말한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2020-06-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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