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인권 존중한다던 탈레반 “방송서 여자 목소리 나오면 안 돼”

女인권 존중한다던 탈레반 “방송서 여자 목소리 나오면 안 돼”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입력 2021-09-02 02:27
수정 2021-09-02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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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서 女기자·앵커 내쫓고 출입금지
“방송은 되지만 여성 음악 나와선 안돼”
국경없는기자회 “미디어에 女 없으면
모든 아프간 여성 침묵하게 할 것”
“여성 기자 자유·안전 보장해야”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언론인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연관 없음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언론인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연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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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 입은 여성
부르카 입은 여성 미군이 완전 철수한 다음날 1일(현지시간)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성들이 카불 와지르 아크바르 칸 병원 근처를 걷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1-09-01
미군의 철수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밝혔지만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언론계 여성부터 직격탄을 맞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탈레반은 “방송을 할 수는 있지만 여성의 목소리가 나오거나 여성의 음악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조건을 달았다. 아프간의 여성TV는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입성한 날부터 모든 방송 활동이 중단됐다. 미군이 떠난 첫날 아프간 여성들은 청바지를 불태웠고 부르카로 전신을 가린 채 외출을 해야만 했다.

일하는 女기자 7명 중 6명 사라져
“이슬람 율법 따라 ‘일 관두라’ 종용 받아”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경 없는 기자회(RSF)는 1일(현지시간) ‘아프간 여성 기자 보호 센터’(CPAWJ)와 함께 조사한 결과 아프간 여성 언론인 700명 중 현재 일하는 기자는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프간에는 2020년 기준 직원 4940명을 고용한 언론사 108개 언론사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여성 직원은 기자 700명을 포함해 1080명으로 집계됐다.

현재 가장 규모가 큰 언론사 8곳에서 근무하는 여성 510명 중 현직에 남아있는 직원은 기자 39명을 포함해 76명뿐이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 탈레반이 장악한 지방에서는 민간 언론사에 근무하는 여성 기자들 대부분이 일을 그만두도록 종용받았다고 RSF는 설명했다.

RSF와 CPAWJ가 2020년 조사했을 때만 해도 카불, 헤라트, 발흐 등 3개 지방에서 근무하는 여성 기자는 1700명 이상이었으나, 지금은 극소수만이 집에서 기사를 쓰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15일 수도 카불마저 탈레반 손에 넘어가고 나서 톨로뉴스, 아리아나뉴스, 카불뉴스, 샴샤드 TV 등 일부 민간 방송사들은 여성 기자들을 계속 현장에 내보내다가 탈레반의 압박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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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레반
탈레반 탈레반 지지자들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후 2021년 9월 1일 칸다하르에서 미군 철수를 축하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2021-09-01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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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군이 2021년 9월 01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미군 철수를 축하하기 위해 집회를 가졌다. 탈레반은 20년간의 분쟁으로 피해를 입은 경제를 되살리고 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국제 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탈레반의 승리 이후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국가 재건이며 탈레반 정권 하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지원은 적절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국제사회가 신뢰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EPA 연합뉴스 2021-09-01
탈레반군이 2021년 9월 01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미군 철수를 축하하기 위해 집회를 가졌다. 탈레반은 20년간의 분쟁으로 피해를 입은 경제를 되살리고 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국제 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탈레반의 승리 이후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국가 재건이며 탈레반 정권 하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지원은 적절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국제사회가 신뢰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EPA 연합뉴스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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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군이 2021년 9월 01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미군 철수를 축하하기 위해 집회를 가졌다. 탈레반은 20년간의 분쟁으로 피해를 입은 경제를 되살리고 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국제 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탈레반의 승리 이후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국가 재건이며 탈레반 정권 하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지원은 적절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국제사회가 신뢰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EPA 연합뉴스 2021-09-01
탈레반군이 2021년 9월 01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미군 철수를 축하하기 위해 집회를 가졌다. 탈레반은 20년간의 분쟁으로 피해를 입은 경제를 되살리고 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국제 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탈레반의 승리 이후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국가 재건이며 탈레반 정권 하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지원은 적절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국제사회가 신뢰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EPA 연합뉴스 2021-09-01
탈레반, 카불 국영 방송 여성 앵커 교체
방송사 출입 금지 “당분간 집에 머물라”
가즈니에 있는 한 민간 라디오 방송국에는 탈레반이 찾아와 “방송을 계속해도 되지만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음악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탈레반은 카불에 있는 국영 RTA 방송의 앵커를 교체하면서 기존 여성 앵커에게 “당분간 집에 머물라”고 했고, 다른 여성 앵커의 방송사 출입을 금지했다.

아프간어로 ‘여성 TV’를 뜻하는 잔 TV와 ‘미시즈 TV’를 뜻하는 바노 TV는 여성 기자를 각각 35명, 47명을 고용했으나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한 지난달 15일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탈레반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한 여성 기자는 “다른 여성을 돕고 싶은 나에게 완벽한 직업이었는데 다시 그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며칠 안에 여성이 업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언제쯤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크리스토프 들루아르 RSF 사무총장은 “미디어에 여성 기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모든 아프간 여성을 침묵하게 할 것”이라며 탈레반을 향해 “여성 기자들의 자유와 안전을 즉각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RSF가 지난 4월 발표한 2021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서 아프간은 180개국 중 122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프간 장악 이후 탈레반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아프간의 한 뉴스에서 총을 든 탈레반 대원 8명이 뉴스 진행자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BBCYaldaHakim 트위터
아프간 장악 이후 탈레반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아프간의 한 뉴스에서 총을 든 탈레반 대원 8명이 뉴스 진행자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BBCYaldaHakim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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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집권 첫날 부르카 입고 외출한 아프간 여성들
탈레반 집권 첫날 부르카 입고 외출한 아프간 여성들 미군이 모두 떠나고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완전 장악한 첫날인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이 수도 카불 시내를 걷고 있다. 카불 AFP 연합뉴스 2021-09-01
미군 철수 후 첫날 아프간인들,
청바지 불태우고 수염 기르고

여성 직장 쫓겨나고 수염 긴 남자로 대체
화려했던 수도, 금욕의 분위기 암울
미군이 철수한 이후 첫날을 맞은 아프간인들은 31일(현지시간) 청바지와 탈레반의 눈엣가시가 될만한 옷들을 전부 불태웠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아리파 아마디(가명)는 이날 아침 청바지 등을 모두 태우며 “오빠가 나가서 부르카(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를 사다 줬다”면서 “난 울면서 청바지를 태웠고 동시에 희망도 같이 불태웠다”고 말했다.

아마디는 지난 20년 동안 서방의 지원을 받는 정부 아래서 교육과 고용 등 일상에 자유를 누렸던 세대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파라에 있는 세관 사무소에 취직하는 데 성공했으나 3주 만에 일자리를 잃었다. 여성 상당수가 탈레반이 사무실을 떠나라는 요청에 쫓겨났기 때문이다.

아마디의 자리에는 긴 수염을 한 남성이 자리를 대신했다. 아마디는 “더는 그 무엇도 날 행복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카불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네사르 카리미(가명)는 은행 앞에는 “수백 명이 있었고 탈레반은 막대기로 사람들을 때렸다”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결국 빈손으로 집에 왔다”고 말했다.

화려했던 수도의 풍경은 탈레반 치하의 금욕적인 분위기에 맞춰 뒷걸음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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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카불의 부르카 입은 여성
아프간 카불의 부르카 입은 여성 미군이 철수한 다음날인 31일(현지시간) 아프간 수도 카불의 한 거리에서 부르카를 입은 여성이 아이와 함께 길을 가고 있다. 2021.8.31
AFP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탈레반에 피살된 아프간 코미디언 나자르 모하마드.
지난달 29일 탈레반에 피살된 아프간 코미디언 나자르 모하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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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좋은 관계 원해” 밝히는 아프간 탈레반 대변인
“미국과 좋은 관계 원해” 밝히는 아프간 탈레반 대변인 31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의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가운데)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군이 전날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한 가운데 그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원한다”고 선언했으며, 아프간전 종식과 관련해서는 “아프간 국민에 대해 축하한다”고 밝혔다. 2021.8.31
AFP 연합뉴스
“수염, 의상 여기선 목숨 위협하는 투쟁”
“탈레반 치하 삶·죽음 거리 매우 가까워”
카리미는 “카불은 이전까지만 해도 아프간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도시였다”면서 “화려한 헤어스타일부터 쟁글 팝, 터키 드라마까지 품었던 곳이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자르-이-샤리프에 사는 자바르 라마니(가명)는 탈레반 위협을 피하고자 수염을 기르고 아프간 전통의상을 입기로 했다.

그는 “탈레반 치하에서는 삶과 죽음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면서 “수염과 의상이 다른 나라에서는 매우 간단한 것일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목숨을 위협하는 투쟁이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1996∼2001년 집권 당시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을 앞세워 엄격하게 사회를 통제했다. 특히 아프간 여성은 남성의 동행 없이는 외출이 안 됐고 취업 및 각종 사회 활동이 제약됐으며 교육 기회가 박탈됐다. 외출할 때는 부르카까지 착용해야 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여성들이 ‘부르카’를 입고 길을 걷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여성들이 ‘부르카’를 입고 길을 걷고 있다. AP 연합뉴스
탈레반은 1기 통치(1996년~2001년) 때와는 달리 유화적인 면모를 보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앞서 지방 경찰청장을 처형하거나 부르카를 쓰지 않고 외출한 여성을 총살하는 등 과격한 행태가 전해지면서 탈레반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자비후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지난달 1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고 “이슬람 율법이 보장하는 선에서 여성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발표했다.

탈레반 정치국 대변인 수하일 샤힌은 영국 스카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여성들이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을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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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폭스뉴스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북부 타크하르주의 주도 탈로칸에서 한 여성이 부르카 없이 거리로 나갔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사진은 죽은 여성의 가족들이 시신을 끌어안고 슬퍼하고 있는 모습. 폭스뉴스 캡처
17일(현지시간) 폭스뉴스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북부 타크하르주의 주도 탈로칸에서 한 여성이 부르카 없이 거리로 나갔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사진은 죽은 여성의 가족들이 시신을 끌어안고 슬퍼하고 있는 모습.
폭스뉴스 캡처
탈레반 “여성 인권 존중” 하루 만에
‘부르카’ 미착용 외출 여성 총살
그러나 탈레반의 공개적 천명에도 불구하고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이 총에 맞아 숨졌다.

폭스뉴스는 지난달 17일 “아프가니스탄 타하르 지역의 한 여성이 몸을 다 가리는 의복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했다가 무장 세력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아프간 타크하르주 주도 탈로칸에서 전날 한 남색 원피스 차림의 여성이 피투성이가 된 채 숨져 있고,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여성을 끌어안은 채 비통해하는 모습이 찍혔다.

뉴욕포스트는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는 새로운 포용적 시대를 열겠다고 탈레반이 약속한 날,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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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인권과 성평등의 후퇴는 막아야 한다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카불에선 여성들이 당당히 거리로 나와 탈레반에 반대하는 시위도 열었다. 카불 로이터 연합뉴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인권과 성평등의 후퇴는 막아야 한다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카불에선 여성들이 당당히 거리로 나와 탈레반에 반대하는 시위도 열었다.
카불 로이터 연합뉴스
서양화 된 복장을 입었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총으로 위협하고 폭행하는 탈레반(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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