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인간 유해 반환/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인간 유해 반환/황비웅 논설위원

황비웅 기자
황비웅 기자
입력 2023-10-18 23:27
수정 2023-10-1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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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이라는 유산이 가져온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식민지 약탈은 도를 넘어 인간 유해 수집으로 이어졌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유럽에서 ‘토이모코’라 일컫는 문신한 마오리족 주검의 머리를 수집하는 유행이 일어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마오리족들은 위대한 인물이 죽으면 주검에서 머리를 잘라 내 두상을 보존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유럽인들이 이를 비싸게 거래했다. 이 머리들은 유럽의 박물관 곳곳으로 흩어졌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 박물관들이 식민지에서 원주민과 흑인의 유해를 수집한 명분은 과학이었다. 박물관들은 인류 역사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인간 유해를 수집하고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수집된 인간 유해들은 유족들의 동의 없이 약탈한 것으로 윤리적 문제가 불거진 것은 필연이었다. 그럼에도 박물관들은 연구 대상인 인간 유해 반환에 쉽사리 동의하지 않았다. 영국박물관과 영국 자연사박물관 등은 1963년에 제정된 영국박물관법에 따라 인간 유해 반환에 반대한 대표적 기관들이다. 원주민 단체들은 인간 유해를 반환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다행히 원주민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인간 유해는 차츰 박물관에서 사라지는 추세다. 약 30여년 전 미국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무덤의 반환과 보존’에 대한 연방법이 제정되면서 원주민 유해를 보관·전시 중인 박물관은 이를 반환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늦었지만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박물관(펜박물관)은 연구 대상이었던 흑인 유해 13구의 전시를 중단하고 장례를 치른 바 있다. 2004년에는 영국에서 원주민 유해 반환을 목적으로 한 인체조직법이 제정됐고, 영국과 스웨덴 등 유럽 박물관들이 마오리족의 두개골을 뉴질랜드에 반환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영국 런던의 자연사박물관도 호주 원주민 유해 18구를 호주 정부에 반환했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 촬영지로 유명한 미국 뉴욕의 자연사박물관도 1만 2000여점의 인간 유해를 모두 철거하기로 했다. 개관 이래 최초의 흑인 박물관장인 숀 디케이터가 내린 결정이다. 윤리적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인간 유해들이 고향에 편안하게 묻히기를 기도한다.
2023-10-1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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